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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망해서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해요.
회사가 망해서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해요.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 연세 의대 교수
  • 승인 2017.12.26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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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과의 관련성만 충분하다면 산재 보상 차별없이 받을 수 있어

45세 박도장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 17년 동안 직원이 15명인 조그만 자동차 공업사에서 도장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공업사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민원이 많이 생겼고, 결국 1년전 공업사 사장은 더 이상 사업을 하기 싫다고 폐업했다. 공업사는 유통업체에 매각되어 그 자리에는 대형 마트가 들어섰다.

박씨는 갑자기 일 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갑자기 쉬어서 그런지 몸도 좋지 않은 것 같고, 취직이 잘 안되어 1년째 계속 쉬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쉽게 피로하고, 조금만 부딪쳐도 멍이 잘 들어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으로 진단 받았다. 주치의는 박씨의 직업을 듣고 난 후에 아마도 도장 일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만일 도장 일과 관련이 있다면 직업병으로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주치의사의 말은 자신은 박씨가 직업병인지 아닌지 확진할 수 없고, 직업병 여부를 알려면 일하던 공업사의 환경과 어떤 물질을 썼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박씨는 도대체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다. 공업사는 이미 폐업해서 사장은 어디에 있는지 연락도 되지 않았다. 박씨가 일하던 당시의 작업 환경이나 어떤 물질을 썼는지도 밝힐 수 없었다.

박씨가 생각해도 자신의 백혈병은 도장일을 하면서 사용했던 신나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정말 자신의 백혈병이 도장 일과 관련이 있다면 직업병이 분명한데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과연 회사가 망한 박씨는 직업병으로 인정 받고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박씨처럼 회사가 망한 후 직업병이 발생하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직업병이 확실하다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 이제부터 박씨가 어떻게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박씨가 다녔던 공업사는 직원이 15명으로 산재보험을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했던 것이 분명하다. 또 대부분의 자동차 공업사들은 산재 사고가 종종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대부분 가입한다. 그래서 박씨가 근무할 당시에 산재보험에 가입했던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산재는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업장과 사업주가 명백하기 때문에 책임의 주체를 따질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는 산재보험에 가입함으로서 산재보상에 대한 주체가 근로복지공단이 된다. 결국 산재 보상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실시하기 때문에 근로자는 자신의 재해나 질병이 직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 모든 보상을 근로복지공단에서 실시하기 때문에 사업주와 다툴 일이 없다.

박씨와 같은 경우는 회사가 폐업했기 때문에 문제인데, 이런 경우도 박씨가 직장에 다닌 기간 동안 이미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박씨의 백혈병이 박씨가 다녔던 공업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 증명되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보상을 받기 위한 절차도 일반 산재 근로자와 똑 같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질병 여부에 대한 심사를 거쳐 승인하고 보상한다.

문제는 박씨의 경우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박씨가 근무할 당시의 작업환경과 취급 했던 신나의 성분 등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자동차 공업사들은 신나, 소음, 분진 등 유해인자들에 노출되기 때문에 매년 작업환경측정을 받는다. 다만 사업장이 폐업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료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박씨가 이런 자료들을 구하려고 어려운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박씨는 자신이 자동차 공업사에서 17년간 도장부서에서 일했다는 것과 이때 신나를 취급했던 사실 그리고 현재 백혈병이 걸렸다는 사실로 충분히 산재 요양 신청을 할 수 있다. 사업장이 폐업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기록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근무를 입증할 수 있다. 또한 작업환경이나 취급물질은 작업환경측정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작업환경측정 기록을 회사가 없어졌어도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한 기관에는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다. 물론 이 작업환경측정 기록과 같은 것을 요양신청 시에 첨부하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일단 이러한 사실들로 요양 신청이 가능하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된 직업성 암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직업병 역학조사를 의뢰하는데, 직업병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과정 중에 안전보건공단에서 해당 사업장의 과거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특수건강진단 결과를 찾아본다. 만일 이 과정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 시절의 자동차 공업사의 일반적인 작업환경을 고려해서 판단하게 된다.

물론 박씨가 꼭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업장이 폐업하지 않은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의 보통의 근로자와 똑같은 조건에서 직업병 여부를 조사받고, 조사 결과 직업병이라면 동일하게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회사를 퇴직하고 난 후에 그 회사와 관련된 직업병이 발생하거나 박씨와 같이 회사가 폐업한 후에 직업병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직업성 암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의 잠복기를 거치기 때문에 직업성 암을 의심할 수 있는 환자들 가운데는 의심되는 직장을 퇴직했거나 직장이 없어진 경우가 많다.

실제로 30년 전에 석면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 악성중피종(석면이 원인인 암)에 걸렸는데, 이 회사는 이미 20년 전에 폐업해서 아무런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이 이 근로자는 이 회사에 다닐 때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증거로 자신이 그 회사에 다녔던 것을 입증하였고, 그 회사가 석면 공장이라는 것은 다른 조사에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 근로자가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회사를 퇴직했거나 회사가 폐업을 했다고 해도 직업병과의 관련성만 충분하다면 회사가 없어졌다고 해도 산재 보상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 연세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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