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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 승인 2017.12.2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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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을 뒷받침하는 정책

헝거 게임, 엘리시움, 스타 트렉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 인터넷에 기초한 사이버 물리 시스템, 3D 프린터와 스마트 팩토리 등,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을 통하여 생산성의 비약적인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없앨 것을 걱정하고 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향후 510백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였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임금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낼까? 공상과학 영화를 보면 세 가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첫 번째 미래는 “헝거 게임”이다. 나라의 이름은 판엠(Panem)이다. 판엠은 빵과 서커스(라틴어로 panem et circenses)로 통치하는 나라이다. 나라가 유지되려면 누군가의 잉여노동이 필요하다. 식민지 사람들이 잉여노동을 제공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국주의 식민지 시스템이다. 착취 모델.

두 번째 미래는 “엘리시움”이다. 그리스에서 엘리시움(Elysium)은 착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었다. 영화에서는 지구를 버리고 간 1%의 부자들이 사는 우주도시를 말한다. 엘리시움에서는 인공지능이 모든 질병을 순식간에 치료해준다. 버려진 사람들은 지구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간다. 잉여노동도 필요 없다. 배제 모델.

세 번째 미래는 “스타 트렉”이다. 물질복제장치(replicator)는 원자를 조립해서 순식간에 물건을 만들 수 있다. 화폐가 사라졌고, 빈부격차도 없어졌다. 할 일이 없어졌을까? 아니다. 사람들은 트레킹(trekking)을 한다. “우주, 최후의 개척지.... 이들의 임무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과 문명을 발견하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대담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공유 모델.

일론 머스크, 마크 주커버그, 크리스 휴즈, 샘 알트먼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가들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소득을 통해서 “헝거 게임”이나 “엘리시움” 같이 착취하고 배제하는 세상이 아니라 “스타 트렉” 같이 공유하고 탐험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일 것이다.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특징 

기본소득은 정치 공동체가 개인적으로, 보편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정기적으로, 그리고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해 가는 경제에서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고, 부족한 수요를 보충하여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은 매우 단순한 정책이지만 다섯 가지 역설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기본소득은 중산층을 순수혜자로 만든다.

오늘날 같이 소득분배가 불평등한 상황에서는 비례세를 부과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그것을 1/n로 나누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산층이 순수혜자가 된다. 예를 들어서, 가계에 귀속되는 모든 소득에 대하여 십일조를 걷으면 1인당 연간 30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한 번 계산해 보시라.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부분의 독자들은 순수혜 가구(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은 가구)가 될 것이다.

완전고용이 보장되고 중산층의 소득이 계속 증가한다면, 일부 저소득층의 소득을 선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중산층의 소득도 점점 감소하고 있어서, 중산층에게도 보조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함께 지원하는 현명한 방법은 모두가 일정한 비율로 기여를 해서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2)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의 노동유인을 줄이지 않는다.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흔한 반대 중의 하나는 기본소득을 주면 누가 일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노동유인을 따질 때에는 복지가 없는 상태와 기본소득을 비교하면 안 되고, 선별복지와 기본소득을 비교해야 한다. 구직수당 같은 전통적인 선별소득보장 정책은 일을 하면 못 받게 된다. 그래서 일을 안 하려고 한다. 기본소득은 일을 해도 받는다. 그래서 일을 더 하게 된다. 핀란드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에서도 자기가 만든 미술품을 팔거나 창업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번 세계경제포럼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도 이 점을 강조하였다. 밀튼 프리드먼, 제임스 미드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한 사람이 20명 가까이나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 2014년 기본소득공동행동(준) 발족식에서 열린 심포지움 모습. 사진출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3) 기본소득은 경제 파이를 키운다.

선별소득 보장 정책은 보장소득 이하의 임금을 지급하는 저임금 일자리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보장소득 이하의 돈을 받고서는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그렇지 않다. 저임금이라고 할지라도 일을 하면 그만큼 소득이 늘어난다. 따라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일자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고급의 과학기술 분야 이외에도, 인공지능이 잘 못하는 소통과 돌봄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같은 일자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므로 저임금을 받더라도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선별소득보장 정책처럼 약간의 소득을 얻는다는 이유로 소득보장에서 제외시킨다면 이런 일자리는 생겨나기 힘들다. 기본소득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지급되기 때문에 돌봄과 소통 분야 일자리가 생겨나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이 기본소득은 보람 있는 일자리를 늘려서 파이를 키우는 정책이다.  

4) 기본소득은 정치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복지 조각이 크다.

기본소득에 대한 흔한 비판 중의 하나는 일정한 재원으로 모두에게 나누어 주지 말고 저소득층에게만 나누어 주면 빈곤탈출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정치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저소득층에게만 나누어 주겠다고 하면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든다.

숫자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먼저 선별소득 보장의 경우. 저소득층을 위해서 1%의 세금을 내자고 하면 아마도 찬성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을 위해서 10%의 세금을 내자고 하면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의 경우. 모두가 나누어 갖기 위해서 1%의 세금을 내자고 하든 10%의 세금을 내자고 하든 대다수의 가구가 순수혜 가구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경우든 사람들이 내는 돈과 받는 돈만 정확하게 계산한다면 찬성이 많을 것이다.  

5) 기본소득은 동태적으로 복지 조각을 늘려가기가 쉽다.

특징 4)와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함께 순수혜자로 만드니까 1인1표의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 때마다 금액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소수의 저소득층만을 순수혜자로 만드는 선별소득보장 정책은 금액을 늘리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보면,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지난 번 대선 때에는 20만원이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30만원이 되었다. 이번에 도입되는 아동수당도 다음 번 대선 때에는 대상도 늘어나고 금액도 올라갈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소득의 필요성 

기본소득은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 때문에 4차 산업혁명과 잘 들어맞는 정책이 될 수 있다. 2016년 기준으로 15세 이상의 인구는 4,300만명이다. 이중에서 취업자는 2,600만명이고 사실상의 실업자는 400만명이다. 취업자 중에는 영세자영업자가 500만명이고, 비정규직이 800만명이 있다.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과 사실상의 실업자를 불안정노동으로 보면 1,700만명이나 된다.

이런 상태에서 세금을 걷어서 실업자들에게 구직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이 도입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영세자영업과 비정규직도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 영세자영업자나 비정규직은 실업자보다 형편이 더 좋으니까 괜찮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일을 안 해도 굶어죽지 않아야 실업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영세자영업이라도 해야 한다. 결국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서 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불공정한 정책이 될 위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이다. 무급가족종사자들은 거의 모두 구직수당 신청을 할 것이다. 위의 통계에서 15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는 약 1,500만명이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이 구직수당을 신청하기 위하여 실업자인 체 할 것이다. 실업자의 기준은 간단하다. 지난 주(지난 달)에 구직활동을 한 것을 증명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이들이 모두 구직수당 신청을 한다면? 실업률이 갑자기 30%가 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상당수는 수입이 마이너스이다. 폐업을 하고 구직수당을 타려고 할 것이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일을 그만하고 구직수당을 받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불안정 노동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미 중산층의 표준적인 모습은 불안정노동자이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불안정 노동인 나라에서 선별소득보장 정책은 불공정하고, 도덕적 해이가 심하고, 비효율적이고, 지속 불가능하다. 모두에게 비례적으로 세금을 걷어서 1/n로 나누는 기본소득 정책은 공정하고, 도덕적 해이가 없고,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다. 기본소득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을 뒷받침하는 정책이고, 경제 파이를 키우고, 복지 조각도 키우는 정책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소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2009년 출범하였다. 2010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13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에서 17번째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가입하였다. 2016년에는 서울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를 주최하였다.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기본소득의 사상, 이론, 정책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를 만들어서 내년 초에 발의될 개헌안에 기본소득 조항을 추가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00만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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