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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발자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발자취
  •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 승인 2017.12.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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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벨기에서 첫 모임…2004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명칭 변경…한국, 2010년 대회에서 열일곱 번째 지역 네트워크로 가입

<특집2-2.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이번 9월말에 리스본에서 열리는 제1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BIEN Congress)의 주제가 ‘기본소득의 시행’인 것은 누가 보아도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의 여러 지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이처럼 오늘날에는 ‘때를 만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가을 벨기에의 유서 깊은 대학인 루뱅 대학에서 유럽의 기본소득 주창자와 지지자 60여 명이 처음 모였을 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뿌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지는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1986년에 루뱅에서 열린 모임도 우연적인 일이긴 했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를 비롯한 세 명의 연구자가 '보편적 수당'(allocation universel)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1983년에 샤를 푸리에 집단(Collectif Charles Fourier)이라는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이 국가 재단의 논문상을 받아 상금을 얻게 되자 이들은 이 돈을 유럽 차원의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데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하고 2년에 한 번씩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1986년의 모임을 포함해서 바르셀로나 대회(2004년)까지 모두 열 차례 대회가 열렸다. 이 시기는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복지국가의 ‘개혁’이 논의되던 시기였다. 당시 복지국가 개혁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늘어나는 실업과 복지 비용에 대처하기 위해 복지 혜택에 좀 더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 노력을 해야 하고 노동 의사가 좀 더 분명해야 했다. 또한 수급 액수를 줄이고 수급 기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존 복지 체계 자체가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실업의 덫과 빈곤의 덫이다. 실업수당 수급자가 일자리를 구할 경우 실업수당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는데, 만약 새로 구한 일자리를 통한 소득이 실업수당과 비슷하거나 낮을 경우 그 수급자는 일을 하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는 선택을 한다는 게 실업의 덫이다. 똑같은 양상이 공공부조 수급자에게 나타는 경우를 빈곤의 덫이라 한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이 없기 때문에 새로 일을 구하더라도 그만큼 소득이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으며, 따라서 노동유인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기존 복지국가의 ‘개혁’에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개입하면서 1990년대 말은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서는 조세 개혁과 함께 기본소득 의제가 함께 공적 논의의 장에 올랐다. 아일랜드에서는 1997년에 기본소득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는 정부 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BIEN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독일 등에서는 기본소득이 공적 논의의 지평에 오르지 못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여전히 기존 복지 제도를 지키고자 하는 흐름이 강했고, 이를 지킬 수 있는 힘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기본소득 논의는 유럽을 넘어서 확대되었다.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 논의가 있었던 북아메리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투쟁이 전개되던 라틴아메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민주 국가가 된 남아프리카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에 따라 2004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권리: 평등한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열린 바르셀로나 대회는 세계문화포럼이라는 더 큰 행사의 일부로 열렸는데, 이 포럼에서는 새로운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선언은 “나이, 성, 성적 지향, 시민 혹은 피고용인으로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는 기본소득 혹은 보편적 시민소득”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 2016년 서울에서 열린 대회 참석자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2006년 대회는 ‘지구’네트워크로 이름을 바꾼 이후 처음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유럽 이외의 지역인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주 대주교가 영상 축하 연설을 통해 ‘보편적 현금 급여’를 강력하게 지지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가 발전한 유럽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을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BIEN 대회는 더블린(2008년), 상파울루(2010년), 뮌헨(2012년), 몬트리올(2014년)에서 열렸다. 2008년 경제 위기가 터지고 난 이후였기 때문에 대회 주제들은 기본소득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구이자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이 되었다. 또한 기본소득 운동이 점점 더 널리 확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2010년 대회에서 한국이 열일곱 번째 지역 네트워크로 가입했다. 또 하나 중요한 일로 2014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차기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BIEN 대회와 별도로 이 시기에는 기본소득 실험, 기본소득 제도화 운동 등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다. 나미비아와 인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있었으며, 유럽연합 차원에서 기본소득 입법 운동이 있었고,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을 헌법에 명기하자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이는 점차 기본소득이 현실의 지평에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2016년 서울 대회는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논의를 모아내려 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던 신자유주의가 그 수명을 다했기에 새로운 진보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생태 위기를 넘어서는 전망이 필수적이라는 사고가 이 주제에 반영되어 있었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 필리프 판 파레이스, 얀 오토 안데르손 등 유럽의 기본소득 주창자들뿐만 아니라 사라트 다발라, 도루 야마모리, 추이즈위안, 강남훈 등 아시아의 학자와 활동가 들이 기조 발제자로 나서 기본소득의 현실성과 긴급성에 대해 논의했다.

기본소득 논의가 2016년에 현실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 마디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에서 나왔다. 이제는 완전고용-사회보험이라는 틀에 기초했던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마저 더 이상 그런 패러다임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기본소득과 같은 소득 보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제4차 산업혁명의 전망으로 인해 더욱 더 고용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 대회 몇 달 전에 서울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사이에 열린 바둑 대국은 우연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서울 대회를 전환점으로 해서 전 세계 기본소득 운동이 하나의 순환을 마감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건 30년이라는 세월 때문만도, 그 시간 속에서 나이 들어간 기본소득 운동 주역들의 안티클라이맥스 때문만도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세월과 그 노력의 어우러짐 속에서 기본소득의 시간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기본소득의 시행'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리스본 대회가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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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리스본 대회로의 초대 

글 : 안드레 코엘류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공동 조직위원, 포르투갈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BIEN Congress)가 2017년 9월 25일에서 27일까지 리스본에서 열린다. 1986년 9월 벨기에 루뱅 라 뇌브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모임 이래 열일곱 번째로 열리게 된다.

BIEN의 첫 번째 대회가 열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첨예한 불평등, 실업, 불안정한 고용, 전반적인 경제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빈곤 상태 혹은 준 빈곤 상태로 내몰렸다. 고용은 더 이상은 모두에게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며, 자동화와 금융 위기로 인해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또한 소득만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일자리를 할 수 없이 가져야 하기 때문에 직무 만족도도 낮다. 동시에 사회보장 체계가 있는 곳에서도 이 사회보장 체계는 이러한 사회 변화를 대응하기에는 너무 낡았고 부적절하게 되었다. 조건부 조항과 벌칙 조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보장을 받는 사람들은 빈곤선이나 빈곤선보다 아래 수준의 수당을 위해 낙인 효과를 감내해야 한다.

최근에 오래되었지만 갱신된 아이디어가 정치적 장과 공론장에서 부상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이다. 진보적인 사회 정책으로 인식되는 기본소득은 유럽과 기타 지역의 정당들이 채택하고 있으며,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나와 네덜란드의 몇몇 자치체에서는 독자적인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리스본에서 열리는 대회의 주된 초점은 기본소득 실험과 기본소득의 시행이다. 이와 함께 탈성장, 복지, 디지털 경제, 고용, 인권, 노동의 미래 등등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질 것이다. 연구자, 정치가, 시민사회 활동가, 기업 대표자, NGO 활동가, 일반 시민 등이 함께 할 것이며, 현대 사회에서 변화의 이정표가 될 대회 주제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 에블린 포르제, 엘리자베스 로즈, 루이즈 하구, 위르겐 데 위스펠라레, 가이 스탠딩이 기조 발표자로 나설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3호(2017년 12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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