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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사회공통자본의 평등한 배당
기본소득은 사회공통자본의 평등한 배당
  •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 승인 2017.12.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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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의 희소화와 복지국가의 잔여화가 기본소득 논의 활성화의 배경

<특집2-3. 기본소득 논의의 쟁점>

1. 뜨거워진 논의의 배경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뜨거워진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부채의존성장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가계가처분 소득의 증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절실해졌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경제침체는 ILO(2012)뿐만 아니라 OECD(2014)나 IMF(2011; 2014)도 소득불평등이 성장을 제약한다는 인식을 표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득분배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반드시 기본소득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의 인상, 일자리에 기초한 전통적 복지국가의 확대, 공공서비스 확충 등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이는 유리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기본소득 논의의 또 다른 배경은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대폭 줄이거나 고용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는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서 제4차 산업혁명으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200만개, 줄어드는 일자리는 710만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고, 옥스퍼드대학교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A. 오스본은 컴퓨터화가 702종의 노동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미국 일자리의 47%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령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총량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플랫폼 노동의 증대로 고용형태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미국의 경우 임시직 플랫폼 노동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규모는 현재 전체 노동공급의 34%인데 3년 후인 2020년에는 43%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시킨 가계 가처분소득의 부족과 일자리 부족이라는 두 가지 배경은 사실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2012년 ILO의 라부아(Marc Lavoie)와 스톡함머(Engelbert Stockhammer)는 이윤주도성장의 두 가지 형태인 선진국의 부채의존성장과 신흥국의 수출주도성장이 2008년 이후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친노동적 분배를 기조로 하는 사회정책과 임금정책을 결합한 임금주도성장(Wage led growth)을 주장했다. 하지만 임금주도성장의 핵심인 친노동적 분배는 오직 일자리가 충분한 상태에서만 가계 가처분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면 임금기반의 가계 가처분소득의 증대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런데 OECD 주요 국가에서 일자리의 부족은 제4차 산업혁명 이후에나 닥칠 일이 아니라 이미 닥친 일이다. 덧붙여, 일자리가 날로 희소해지는 사회에서는 완전고용의 가정 위에 수립된 전통적인 복지국가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일자리가 희소해지는 만큼 늘어났고, 결국 복지국가의 기능은 더 이상 빈곤예방이 아니라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후적 빈곤구제의 기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일자리의 희소화와 복지국가의 잔여화는 일자리 여부와 무관한 기본소득 도입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가장 큰 배경이다.

일자리 감소는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더욱 심화되겠지만 사실은 이미 오랜 전부터 진행 중인 사태이기도 하다. 고용 없는 자산소득의 증가는 GDP에서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꾸준히 하락시켜 왔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지속적으로 하향 추세였다.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1971년 이후로 하락 추세였고, OECD 주요국과 비교할 때 대략 10% 정도 낮은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도 시계열로 보면 1996년 이전에는 상승 추세였지만 1998년 이후에는 하락 추세이거나 정체하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원인이다.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의 확산은 임금교섭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소득분배율을 하락시킨다. 하지만 모든 것을 노동시장 내부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적어도 미국의 노동소득의 GDP 점유율은 전통적 자본의 착취율 강화나 임금률 하락이라기보다 고용과 연관되지 않은 금융자산소득이나 지식자산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래의 그래프는 특히 GDP 대비 지식자산생산(Intellectual Property Products: IPP)의 비중 증가와 노동소득점유(Labor share)의 하락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지식자산생산(IPP)이 노동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미국 1947-2013)

파란선은 지식자산생산(IPP)을 포함한 전체 생산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며, 주황선은 지식자산생산을 제외한 전통적인 생산에서의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의 경향적 하락은 양쪽 모두 나타난다. 하지만 지식자산생산을 제외한 전통적 생산에서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기울기가 완만하고 평균값으로 볼 때 거의 하락이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반면에, 지식자산생산을 합산한 전체 생산에서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전통적인 생산에서의 노동소득분배율보다 낮고 해마다 격차가 커진다. 지식자산생산을 제외한 전통적인 생산에서도 1971년과 그 이후를 비교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이 관찰되는 만큼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을 전적으로 지식자산자본의 소득분배율 상승에 돌릴 수는 없지만, 지식자산생산을 포함할 때와 제외할 때의 노동소득분배율의 격차가 1947년 이후 매년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지식자산생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이후로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고(1.8%에서 2013년 6.5% 가량으로 증가), 이는 임금으로 분해되지 않는 자본소득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뜻이다. 디지털자본은 임금만이 아니라 임금부대비용도 전통적 자본보다 훨씬 적게 부담한다. 고용을 덜 하기 때문에 사회보험료 부담도 적다. 현재의 사회보험체계는 고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운다, 임금이나 임금부대비용으로 분해되지 않는다면 오직 조세를 통해 수익의 일부를 거둬들이는 방법만이 남지만 이 또한 용이치 않다. 전 세계적 규모의 부불 데이터 노동에 기반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은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에 서버를 두고 오직 그곳에만 세금을 내면 그만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디지털자본이 주축이 될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더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전통산업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ICT혁명과 자동화를 거부하는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가 대안이 될 수 없다면, 대안은 기본소득 도입일 수밖에 없다. 사회보험이나 최저임금의 효과는 고용노동에 한정될 뿐이며 일자리가 희소해지는 사회에서는 기본소득과 같은 전체 사회적 효과를 낼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교섭력 강화로 임금기금을 확대하는 방법은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 자본의 소득분배율을 줄이는 효과만을 가질 뿐, 고용 없는 생산 부분을 재분배하는 효과는 없다. 특정한 사회계층, 즉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인 공공부조는 기본소득과 비교할 때 재분배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고 지원규모를 늘리려면 일자리를 가진 중산층의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해결책은 기본소득이다. 고용 없는 자산소득, 즉 금융소득 및 지식자산소득에서 전체 사회구성원으로의 소득 이전은 기본소득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이 사회진보의 방향으로 작용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의 여가 시간과 사회문화적 참여가 늘어나려면 고용 없는 생산부분에서 전체 사회구성원으로의 소득이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2. 기본소득은 사회공통자본의 배당 

18세기 말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토지정의』(Agrarian Justice, 1796)에서 땅을 개간한 사람에게 인공적 소유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땅 그 자체는 모든 인류의 자연적 소유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어느 누구의 소유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공통자본의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토지에 관한 페인의 생각은 지식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여 획득한 것이므로 최소한 70%를 세금으로 걷어 공공재정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고 제안(Boston Review, oct. 1, 2000)했다. 더욱이 오늘날의 디지털자본, 플랫폼 기업은 단지 그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의해서만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빅데이터 없이 알고리즘은 구동될 수 없고 더 좋은 알고리즘이 개발될 수도 없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부불 데이터 노동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공통자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토지, 지식, 네트워크, 빅데이터, 금융, 생태환경 등은 사회공통자본으로 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배타적으로 수익을 전유하는 것은 분배정의에 맞지 않다. 일한 사람에게 일한 만큼의 몫을 돌려주어야 하겠지만, 어느 누구의 것이라고 귀속시킬 수 없는 것에 약간의 노동을 첨가하여 수익을 전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분배정의에 맞지 않다. 사회공통자본의 수익을 모두에게 분배하는 기본소득은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분배하라’는 ‘응분의 원리’(suum cuique tribuere)에 따르면 모두에게 속한 것은 모두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오늘날처럼 사회공통자본이 증대한 시대에는 오직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에만 ‘응분의 원리’가 지켜질 수 있다. 사회공통자본의 수익은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지급될 수 없다. 그것은 원래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 유무나 소득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배당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의 원리는 궁핍, 출산, 장애, 구직실패 등으로 국가의 보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지급하던 전통적 복지국가의 공적 이전소득과 완전히 다른 원리에 근거한다. 복지국가의 사회수당이 필요의 원리에 근거한다면, 기본소득은 사회공통자본에서 나오는 공유부(共有富)의 평등한 분배이다.

지식, 빅데이터, 토지, 생태환경, 금융 등을 사회공통자본으로 본다면, 원칙적으로 원천적 소유권은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있고 수익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원칙에 입각할 경우에도 그 실현형태는 상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소유, 운영, 분배의 전 영역에 걸쳐 공유부(共有富) 민주주의와 공유부 배당을 실시하는 것이다. 즉 사회공통자본은 별도의 사회적 법인 형태로 사회화하고, 원천적 소유권자인 모든 시민이 1인 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유부 민주주의에 의해 운영되고, 수익은 국가재정과 별도의 가칭 사회계정으로 관리하여 전 사회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로 분배되는 방식이다. 빅데이터처럼 아직 채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으면서 디지털자본에 의해 무상으로 인클로져 되고 있는 사회공통자본에 대하여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사회공통자본의 운영에서 공유부 민주주의 대신에 임대 개념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빅데이터를 사용하는 디지털기업 등에게 일종의 공유지 임차인과 비슷한 지위를 부여하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18세기 말에 토마스 스펜스(Thomas Spence)가 토지에 대해 구상한 바 있다. 스펜스는 모든 토지를 공동체의 소유로 되돌리되 공동경영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두어 사인에게 임대하고 사용료를 걷어서 공무원 월급, 공공서비스,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할 때 사회계정에 들어오는 수익은 일종의 빅데이터 사용료로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 세 번째 방식은 사회공통자본의 개념을 전제하더라도 디지털자본을 일반적인 사적 소유자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고 조세제도를 활용하여 수익을 환수하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토지에 대해서 적용한다면 사적인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되 토지보유세를 걷어서 모두에게 1/n로 토지배당을 나눠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3. 해묵은 쟁점 - “일하지 않으려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3장 10절)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해묵은 항의는 노동하지 않는 베짱이에게도 소득을 이전하는 것은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만들어내고 정의의 원칙에 알맞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대개의 베짱이는 비자발적 실업자이고 ‘일하지 않으려는 자’가 아니라 ‘일하지 않는 자’에 불과하다는 반박은 사족에 불과하다.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정의의 문제는 설령 그가 ‘일하지 않으려는 자’라고 하더라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윤리에 근거한 해묵은 항의는 혹시 기본소득이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착취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부터 시작하여 무조건적 소득이전은 호혜성(reciprocity) 원칙에 어긋난다는 항변까지 여전히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런데 앞서 살폈듯이, 기본소득은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과 일자리의 희소화에 따른 필요성의 관점뿐만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도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 베짱이나 말리부 해변의 서퍼도 토지, 자연환경, 빅데이터와 같은 사회공통자본의 원천적 소유자이므로 고용노동을 제공하는 사회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사회공통자본의 수익으로부터 배당받을 권리를 가진다. 베버리지 리포트가 나온 후 2년 뒤인 1944년에 집필된 글에서 옥스퍼드 경제학자 콜(George D. H. Cole)은 “현재의 생산력은 현재의 노력과 (...) 사회적 유산의 공동결과(a joint result)”이며 “모든 시민들이 이러한 공통유산(common heritage)의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배분(allocation) 후에 남는 생산물의 잔액만이 보수의 형태로, 유인으로서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지한 최초의 학자들 중 한 명인 콜의 이러한 생각은 조세로 재원을 마련하는 기본소득도 그 원리로 보면 일종의 선(先)분배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적으로 전유된 사회공통자본의 수익을 환수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재분배하는 제도이지만 원리에 따라 살펴보면 모든 사람의 ‘공통유산’으로부터 비롯되는 선분배이다. 

4. 일자리 보장(job guarantee)과 기본소득 보장 

사회공통자본의 수익을 모두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발상에 동의하더라도, 일자리 그 자체는 소득창출과 별도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사회적 삶의 중심을 차지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상황은 타파하기 위하여 국가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캔자스 시티 미주리 대학(University of Missouri-Kansas City; UMKC)과 바드 대학의 제롬 레비 경제연구소(Jerome Levy Economics Institute, Bard College)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학자들은 정부를 최종고용자(employer of last resort)로 보는 직접적 일자리창출(direct job creation)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제안들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국가를 최종고용자로 하는 공공일자리에는 노동력 절감기술이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교육과 사회서비스 일자리처럼 감성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성이 다른 직종보다는 낮은 직종조차 점증하는 자동화 위험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국가가 앞장서서 노동력 절감기술의 진보를 가로막거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일정 시기가 지나면 공공일자리는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고 당사자에게도 큰 만족감을 줄 수 없는 일자리로만 채워지게 될 것이다. 부수적인 문제점은 공공일자리 확대가 민간일자리를 구축하여 설령 일자리의 질은 높아지더라도 총고용량의 증대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일자리보장 정책의 근본 전제와 관련된다. 일자리가 소득원천으로서의 기능보다 더 근본적인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는 전제는 미국의 피고용자 중 단지 1/3만이 자신의 일자리에 만족감을 가지고 전념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단지 1/5만이 그럴 뿐이라는 조사결과 앞에 무너지고 만다. 일자리의 가치는 내재적일 수 없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외적 가치에 가깝다.

▲ 2014년 6월 27~29일,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교에서 제15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대회가 열렸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는 1986년 결성과 함께 제1차 대회가 열렸으며, 그 이후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사진출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생산자본의 설비투자로 일자리 확대가 가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한편으로 생태적 한계와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자본과 노동의 성장주의 동맹에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과 자동화로 산업자본주의의 완전고용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긴 역사적 안목에서 돌이켜 보면, 완전고용이 가능했으며 임금노동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소득원천으로 기능한 시기는 인류 역사상 불과 20여년,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불과했다. 신흥개발국들은 이 시기를 훨씬 더 압축적으로 겪고 있다. 먼저 언급해 둘 점은, 이와 같은 임금노동 일자리의 황금기에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활동의 절반쯤은 부불 노동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육, 돌봄, 가사노동의 대부분은 지불노동이 아니었으며 그림자 노동의 형태로 수행되었다.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수많은 활동, 국가나 시장에 의해 완벽히 제공될 수 없는 수많은 공동체 활동은 화폐로 보상되지 않는 자원 활동의 형태로 제공되어 왔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역사의 특정 국면에서 임금노동 중심으로 소득이 분배되던 사회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과연 이러한 역사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별도로 일자리의 미래와 관련된 논의를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의로 만든다.

오늘날에도 일자리를 골고루 나누는 길이 여전히 남아있다면 노동시간단축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사회적 갈등의 전선이 은폐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을 원할 것이고 반대로 자본은 노동력 절감기술을 피고용자 숫자를 줄이는데 사용할 것이다. 물론 가계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지 않는 노동시간단축만이 노동자들이 동의할 수 있고 또한 소비기반을 축소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축된 노동시간 전부가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20년 전에 오브리 법(loi de Aubry)에 의해 주당 35시간제가 도입되었을 때에도 단축된 노동시간의 절반 이상은 노동력 절감기술에 의해 잠식당했다. 오늘날 노동시간단축이 이루어진다면 잠식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려면 노동시간단축은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보다 더 큰 폭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은 오늘날 미니잡(Minijob)이라 불리는 주당 15시간 이하의 노동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며 지배적인 고용형태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소득 도입으로 사회공통자본의 분배, 공유부(共有富)의 분배가 이루진다면 줄어든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충분한 소득을 얻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여가시간과 더 많은 문화적 사회적 참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에게 좋은 변화이다. 창업효과와 사회적 경제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들의 재분배와 사회적 시간의 재분배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노동력 절감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가계 가처분소득의 축소 없이 일자리 공유가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나아가 임금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다면적 활동의 사회로 이행하는 경로이다.  

5. 최저임금과 기본소득 

ILO의 임금주도성장론은 최저임금 인상을 가계 가처분소득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본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기본소득과 비슷한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저임금은 임금최저선(wage floor)를 만들어내고 임금격차를 줄여 전체적인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에 도움을 준다. 임금최저선이 사회 전체의 소득분배에 작용하는 범위는 오직 경제활동인구의 60%에서 70%에 불과한 피고용자에 한정된다. 이 범위를 벗어나서 임금최저선은 재분배효과를 가질 수 없다. 반면에 소득최저선(income floor)을 설정해 주는 기본소득 제도는 피고용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에 대해 보편적 소득보장의 기능을 가진다. 최저임금은 고용의 질은 별도로 하더라도 누구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던 시대에는 적절한 소득재분배 수단이었다. 물론 오늘날의 일자리 부족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며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실증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해서 지식자산생산과 같은 고용 없는 생산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용 없는 자본소득이 증대하고 있는 시대에 최저임금이 사회적 부의 재분배에 끼치는 효과는 기본소득의 효과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한계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최저시급 제도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며 노동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오늘날에는 임금소득에 대한 보장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프로젝트형 노동, 플랫폼 노동에 대하여 최저시급제도는 소득보장 효과를 아예 가질 수 없다. 새로운 고용형태에 맞게 사회적 임금최저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임금만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고 최저시급처럼 전 사회적 협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임금협상력의 관점에서도 생계수준 이상의 높은 기본소득은 질 나쁜 일자리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함으로써 임금수준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최저임금도 시간당 임금최저선을 설정함으로써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 내지만 일자리를 거부할 정도의 커다란 협상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많은 학자들에게서 높은 액수의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최저임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반면에 독일 아탁(attac)의 기본소득 그룹은 기본소득,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인상을 상호 연동된 정책믹스로 간주한다. 이러한 입장은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도입된 경우에 보다 많은 설득력을 가진다. 적은 액수의 기본소득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욕구를 발생시키겠지만 질 나쁜 일자리에 대한 거부권까지 부여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최저임금제가 폐지된다면 오히려 기본소득은 임금보조금의 역할을 하게 되고 지불되는 임금의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본소득 지급액수가 생계수준보다 낮은 도입단계에서 최저임금과 기본소득은 상호 연동된 정책믹스로 보아야 한다.  

6. 근로연계복지 또는 근로장려세제와 기본소득 

근로연계복지(workfare)는 근로능력이 있는 공공부조 수급자에게 근로활동 참여를 의무화시키는 정책이다. 대표적으로 생계노동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노동소득이 적어서 생계가 어려운 근로빈곤층(working poor)에게 조세환급의 형식으로 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EITC: Earned-Income Tax Credit)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확산되었던 근로장려세제는 한국에서도 2009년에 첫 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하여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대폭 확대가 계획되고 있는 제도이다. 근로참여가 수급권 박탈이나 높은 한계암묵세율로 이어져서 취업을 포기하고 실업의 덫(unemployment trap)에 빠지게 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비교할 때, 근로장려세제는 근로에 참여하면 할수록 소득지원금이 늘어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모든 소득수준에서 이와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근로장려세제는 세 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구간에서는 노동소득이 늘어나면 날수록 소득지원도 늘어나지만 일정한 소득수준 이후부터는 노동소득이 늘어나도 더 이상 소득지원이 늘어나지 않으며 이와 같은 두 번째 구간을 지나 세 번째 구간부터는 노동소득이 늘어날수록 소득지원은 줄어든다. 실업의 덫에 빠지지 않고 근로를 통해 빈곤의 덫(poverty trap)에서 벗어나는 효과는 오직 첫 번째 구간에서만 발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첫 번째 구간을 벗어난다고 해도 근로장려금을 합친 소득이 여전히 생계수준 소득에 못 미친다. 물론 소득지원이 늘어나는 구간, 정체하는 구간, 줄어드는 구간의 설계를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업의 덫이나 빈곤의 덫과 관련하여 모든 사람에게 소득최저선을 제공하고 그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노동 여부에 따라 일하면 일한만큼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는 기본소득 제도가 근로장려세제보다 훨씬 더 간명하고 효과적인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적 특성보다 더 중요한 단점은 근로장려세제가 저임금 노동에의 강제를 경제적 유인을 통해 제도화한다는 점이다. 근로장려세제는 임금노동에도 불구하고 생계수준 소득을 얻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의 존재를 사회적 사실로서 전제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근로장려세제는 저임금 노동을 해소할 목적으로 도입된 최저임금 제도보다도 노동시장의 개선에 대해 훨씬 더 비관적인 제도이다.  

7. 기존의 복지제도와 기본소득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본소득은 노동력 절감기술의 발전으로 경제성장과 임금소득이 탈동조화(Decoupling)되는 시대, 자본소득 내부에서 고용 없는 생산과 전통적 생산의 격차가 커져가고 노동소득 내부에서도 불안정노동과 임시직이 증대하는 시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한다. 지식공통자산에 대한 인클로저가 본격화 되고 있는 시대에는 오직 기본소득 도입과 같은 공유부 분배정치를 통해서만 전체적인 노동소득분배율의 추세적 하락을 막고 가계 가처분소득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소득은 완전고용 가정에 입각한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원리에 입각해 있고 전혀 다른 종류의 사회적 도전에 대한 응답이지만, 기본소득 도입과 현실에 존재하는 복지체계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진다. 기본소득 도입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점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한국처럼 공공복지지출이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저부담 저복지 상태라는 점을 배경으로 하지만, 또한 거기에는 고정적인 예산제약선을 설정해 두고 기본소득인가 기존 복지의 강화인가를 양자택일적으로 묻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인가 복지국가인가의 양자선택의 강요는 대단히 기만적인 전선 설정이다.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를 보면 적어도 공공서비스와 공적 이전소득의 발전은 양자택일적 교환관계(Trade-off)가 아니었고 하나가 늘면 다른 하나도 늘어나는 연속적 축적관계(그랜저 인과관계: Granger causality)에 있었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기존의 현금급여와 기본소득의 관계일 뿐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보편적 아동수당이나 자산심사 없는 기초연금 등 보편적인 사회수당은 완전 대체되겠지만, 장애수당처럼 개별적인 처지와 필요에 따라 심사를 거쳐 지급되는 선별적 사회수당은 존속되어야 한다. 만약 과도기로서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적 사회수당도 이층 구조로 존속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소득최저선을 설정한다. 이렇게 설정된 소득최저선이 생계수준보다 낮다면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적 사회수당은 기본소득 도입에 의해 완전 대체될 수 없고 오직 부분적으로만 대체될 뿐이다. 이와 같은 과도기 모델을 혼합복지모델(Mixed Welfare Model)이라 부를 수 있고 거기에서 소득최저선은 기본소득과 선별적 사회수당의 합계에 의해 형성된다. 소득최저선의 형성에 선별적 사회수당이 재차 필요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도입 모델의 의의는 전체 사회적인 소득불평등을 단지 선별적 사회수당만 도입된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이 시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지급액수를 가진 여러 기본소득 모델의 재분배효과에 대한 국내 연구문헌들은 기존 복지제도와 비교할 때 기본소득이 각종 소득불평등지수를 가장 많이 호전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8. 비용 대비 비효과성 반론과 재정환상 

도입모델로서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에 대하여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소요재원의 전체 규모는 매우 크지만 1/n로 나누면 매우 적은 액수라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비용 대비 비(非)효과성 반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지급액수가 충분한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하여 일반화할 수 있다. 즉 생계비를 초과하는 높은 기본소득은 재정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없고, 반면에 낮은 기본소득은 재정부담이 적어서 실현 가능성은 높지만 개인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미미하여 사회적 효과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기본소득의 불평등 시정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기본소득 지급액의 차이는 불평등 시정효과의 규모에서의 차이만을 의미할 뿐이다. 180조 원 규모의 기본소득은 1인당 월 30만 원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불평등을 180조 원만큼 시정할 것이며 1인당 월 4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는 240조 원 규모의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240조 원만큼 완화할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기본소득 재정이란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고 전액 1/n로 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생겨난다. 결론적으로, 어떤 수준의 기본소득이든지 비용 대비 비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낮은 기본소득을 도입하여 지급액수가 저소득층의 생계비 이하라면 선별적 사회수당의 이층 구조를 두면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기본소득조차 중산층을 포함하여 전체 소득분위에 대해 가장 명확한 불평등 시정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조세와 배당의 결합(the principle of tax and share)이라는 기본소득 제도의 특성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필요한 명목부담과 순부담의 차이를 낳는다. 설령 명목증세 규모가 180조 원이라고 해도 순증세 규모는 각 개인이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더 낸 세금에서 기본소득 지급액을 뺀 값의 합계이며, 실제로 이와 같은 순조세 규모는 명목조세 규모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재분배 규모는 명목부담 규모가 아니라 이와 같은 순부담 규모와 같다. 소득에 따라 부담액은 다르지만 기본소득 지급액은 같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개별적인 재정환상(fiscal illusion)은 사라진다. 누구나 수혜자인지 부담자인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명목조세를 기준으로 판단하여 기본소득을 도입을 위해서는 막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지레 겁을 먹는 것도 일종의 재정환상이라면 재정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9.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기본소득의 탁월성 

앞에서는 기본소득 논의의 배경과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특성과 장점들이 다른 제도와의 비교 속에서 검토되었다. 이 글의 마무리에서는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탁월성을 검토하는 것이 매우 적절할 것 같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공동대표이자 과거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했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1) 보장의 차원에서 최소수혜자를 가장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차등의 원칙’, 2) 그 사회에서 가장 자유로운 그룹에 부과되지 않은 통제를 어떤 그룹에 대한 통제에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후견주의 테스트’, 3) 시혜인가 권리인가의 문제, 4) 생태적 억제에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 5) 품위 있는 노동을 증진하는가의 문제라는 다섯 가지 정의 기준을 가지고 기본소득과 여러 다른 제도들을 검토한 후 다음 표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보장에 관한

차등원칙

(security difference principle)

후견주의 테스트 원칙

(paternalism test principle)

 

시혜가 아닌 권리의 원칙

(right-not-charity principle)

생태적 억제의 원칙(ecological constraint principle)

품위 있는 노동 원칙(dignified work principle)

최저임금

X

O

O

-

-

사회보험

X

O

O

-

-

자산심사형 사회부조

X

X

X

-

X

식량보조/바우처

X

X

X

-

-

일자리보장

X

X

X

-

X

근로연계복지

(Workfare)

X

X

X

-

X

근로장려세제

(EITC)

X

O

O

-

X

음소득세

X

O

O

-

X

개인적 자선

X

X

X

-

X

기본소득

O

O

O

O

O

(Guy Standing, 2017, p. 214) 

표가 보여주듯이 다른 모든 제도가 ‘차등의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반면에 기본소득은 충족시키며, 다른 모든 제도가 ‘품위 있는 노동’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반면에 기본소득은 ‘품위 있는 노동’을 증진시킨다. 다른 모든 제도가 생태적 효과를 낳지 못하는 반면에 기본소득은 생태적 억제에 도움이 된다. 바로 이 마지막 논점, 기본소득이 생태적 전환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마지막 과제가 될 것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득분배가 평등하면 할수록 파이 키우기의 유혹, 양적 성장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나아가 생태세와 이를 사회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배당하는 보편적 생태배당의 결합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평등권을 보장하면서도 자원절감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킬 높은 수준의 생태세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3호(2017년 9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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