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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자영업자
쫓겨나는 자영업자
  • 김창섭 뉴미디어본부장
  • 승인 2018.01.08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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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주 월세 4배, 보증금 2.9배 인상…젠트리피케인션의 피해자들

서울 종로구 서촌시장 먹자골목에 탑차가 정문을 가로 막은, 매우 특이한 족발집(본가 궁중족발)이 있다.

연말이라 손님들로 붐비는 다른 식당들 사이에 고립된 이 식당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궈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준다.

건물주가 철거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속 고육책이다. 

세입자(궁중족발 대표 김우식)의 불행은 건물주가 바뀌면서 시작됐다. 세입자인 궁중족발은 이전에 보증금 3,500만원에 월세 297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새로운 건물주는 보증금을 1억원으로, 월세를 1,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2016년 1월 세입자에게 통보했다. 기존에 비해 월세는 무려 4배, 보증금은 2.9배가 인상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임대료 인상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악용해 합법적으로 세입자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새 건물주는 임대차보호법 제10조(계약갱신 요구 등) 7항 2 “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세입자(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이나라 새 건물주는 임차인이 3기분 임대료를 미납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해, 세입자에게 입금계좌를 가르쳐 주지 않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권태로 변호사는 “이번 경우도 대표적인 임대차보호법 악용사례”라며,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이같은 피해자는 계속 양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새 건물주인 이일규씨는 이런 주장에 대해 “월세와 보증금을 올린 것은 결국 세입자를 내 보내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정당한 재산권 행사이며, 오히려 세입자와 불순세력이 판결까지 완료된 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억울해도 법질서 테두리에서 저항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이 문제와 관련한 토론회 개최”를 강력히 요구했다.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세입자는 건물주의 명도소송에 대항해 법원에 월세를 공탁했으나, 위 법률에 의거 패소판결을 받았다. 법적인 방어막이 모두 없어진 상태에서, 건물주와 법원집행관은 궁중족발에 대한 강제퇴거를 집행했다. 

두 번에 걸친 강제퇴거 과정에서 2017년 11월9일 저항하던 족발집 사장의 손가락이 부분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제윤경 의원을 중심으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당장 궁중족발의 법적인 보호막은 전무한 상태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는 600만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상가프리미엄을 포함해 빚을 지고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신규 자영업자가 인테리어 등 추가투자를 거쳐 단골을 확보하며 자리를 잡는데 3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문제는 어렵게 자리를 잡은 뒤에 발생한다. 장사를 열심히 한 결과 단골이 늘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가는 역설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인디밴드의 공간으로 유명해지자, 폭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정작 인디밴드와 상인들이 쫓겨나게 된 홍대주변이 대표적인 예이다.

법적으로 저항할 방법이 없어진 세입자들은 외부의 도움으로 어렵게 버티고 있다. 현재 궁중족발에는 매일 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철거에 대항하기 위해 청년들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디밴드 등의 가수, 미술인, 종교인, 정당인 등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상영회> 등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용어설명>

◇ 젠트리피케이션

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출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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