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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가져다 준 훈풍?
브렉시트가 가져다 준 훈풍?
  •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 승인 2018.01.19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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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금융시장에 긍정적 작용

< 브렉시트③ 브렉시트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

6월 24일 글로벌 금융시장은 과거에 없던 경험을 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영국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직후 출구조사부터 개표방송까지 실시간으로 상황을 체크하면서 시장변동에 대처해 나갔다. 예상과 달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실시되면서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당일 코스피도 2,001p에서 출발하였으나 장중 1,892p까지 하락하는 등 큰 폭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그런데 브렉시트 투표 후 3주가 지난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감을 되찾아가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의 증시도 브렉시트 이전 수준을 넘어섰거나 거의 근접한 상태이다. 미국 증시는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글로벌 매크로 상황이 단기간에 크게 호전된 것도 아닌데 증시가 호조세이다. 

<각국 증시의 브렉시트 투표 이후 주가 회복 여부>

▲ 출처: 블룸버그

채권시장도 글로벌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가격이 상승한 상태다. 물론 최근 금리가 일정부분 재상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브렉시트 이전 대비 낮은 상태다. 10년만기 국채금리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 금리가 브렉시트 투표 이후 각각 20bp 정도 하락했으며 독일과 일본도 각각 12bp, 8bp 하락했다. 

< 브렉시트 투표 이후 각국 금리 변동 상황>

▲ 주: 각국의 10년만기 국채 기준, 출처: 블룸버그

브렉시트 투표 이후 글로벌 주식과 채권시장이 모두 좋은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브렉시트의 영향은 끝났는가? 솔직히 여기에 대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라는 것이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이벤트여서 이에 따른 실물경기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라는 이슈는 장기적으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진행되면서 금융시장에서 그야말로 불확실성이라는 변수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현재 금융시장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각국이 미래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각종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경제의 브렉시트 영향을 살펴보자. 영국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 자체에만 집중해서 보면 그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 GDP 하락 폭을 향후 15년간 3.8%~7.5%로 본다. 만약 영국이 유럽연합과 협상을 잘 마무리해서 좋은 관세조건을 맺고 탈퇴할 수 있다면 성장률 하락폭은 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중간재중 영국에 판매되는 물량까지 감안하면 영향이 좀 더 커질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브렉시트가 우리나라 실물경제에 미치는 피해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답은 우리나라 자체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기조 변화를 살펴보자. 브렉시트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그 이전에 비해 좀더 완화적인 입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미 연준은 통화정책회의에서 브렉시트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미국 채권시장 참여자들이 바라보는 올해 연준의 금리인상 확률은 뚝 떨어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들이 섣불리 긴축적인 정책을 펼칠 수 없으며, 유동성을 꾸준히 공급해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것이란 얘기가 된다. 

<미연준의 금리인상 확률 추이>

▲ 출처: 블룸버그

정치적 불확실성은 흔히 신흥국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선진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테러발생 등으로 난민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11월에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민자들에 대해 공격적인 언급을 하고 보호주의 무역을 강조하는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전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이벤트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브렉시트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중앙은행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 연준은 9월에 금리를 쉽게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연초만 하더라도 올해 미국이 4차례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현재 금리인상 확률은 상당히 낮게 평가되고 있다. 유럽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현재 진행중인 채권매입 규모를 늘릴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종합해 보면,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브렉시트 투표 이전에 비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에서 늘어난 유동성은 어디로 움직일까? 신흥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실제 브렉시트 투표 이후 아세아 신흥국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유동성은 대부분 선진국으로 유입되었다. 신흥국에 대한 유동성 유입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가 외환보유고라 할 수 있다. 2014년 9월부터 신흥국의 외환보유고는 감소세를 지속했다. 이는 올해 초까지 지속됐다. 외환보유고 규모 자체가 장기간 감소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2008년 리먼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신흥국의 외환보유고 감소 기간은 5개월 정도에 그쳤다. 그만큼 최근 2년간 신흥국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반등에 성공한 신흥국 외환보유고는 3월과 4월에도 늘어났다. 이러한 흐름은 하반기까지 좀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흥국 경기의 개선 신호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물론 외환보유고가 늘어났다는 것이 2000년대 중반과 같은 신흥국의 고속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강한 성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하락세를 지속하던 경제지표들이 조금씩 돌아서고 있는 모습은 감지된다. 실제로 중국 등 각국의 제조업 신규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신흥국 외환보유고 : 다시 늘어나기 시작>

▲ 출처: 톰슨로이터

신흥국이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현재 주요 선진국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지만, 정부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지는 못 하고 있다. 미국은 11월 대선이 끝난 후 새 정부가 들어서야 정부지출을 늘릴 수 있으며, 유럽은 2009년 12월부터 시작된 재정위기가 아직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출을 늘리기는 어렵다. 반면,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재정지출이 용이하다. 우선 중국이 3월부터 정부지출 증가율을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과 더불어 대대적인 재정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정부지출을 늘리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금리 레벨이 낮아진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보다 효과가 있는 것은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이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나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지출을 늘려주는 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예를 들어보면, 국영기업의 투자 증가율은 올해 2월에는 10% 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3월부터 20%까지 투자 증가율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간 부진을 면치 못한 신흥국 경제지표들이 하반기에는 조금씩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동남아 신흥국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유동성 유입, 경제지표의 점진적 개선 등이 작용한 결과이다. 향후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의 금융시장은 계속 주목해야 할 것이다. 

종합해 보면, 경제지표가 조금씩 개선되는 와중에 유동성 공급이 늘어난다는 점이 브렉시트가 주는 시사점이라 하겠다.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있을 때, 중앙은행들이 경제지표가 충분히 좋아지기 전까지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기조가 나타날 때, 전반적인 자산가격들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과거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2013년 하반기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물가상승률이 2%까지 올라오고 경제지표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 공화 양당이 정부부채한도 증액 협상을 두고 난항을 겪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지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현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연준은 경제지표가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는 자산매입 기조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글로벌 유동성이 늘어났고, 미국과 유럽 몇몇 국가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들 국가에서는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때의 경험을 감안한다면 최근 브렉시트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자산가격 안정세를 이해할 수 있다. 당분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을 긍정적으로 볼 만한 이유도 된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최근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를 이유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1%, 3.4%로 1%p씩 낮추는 등 여전히 불안감은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에 대한 각국의 대처와 경제지표 개선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금융시장 안정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38호(2016년 9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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