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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미소국가들
유럽의 미소국가들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8.01.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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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

유럽에는 아주 작은 나라들― 마이크로스테이츠(Microstates)들이 있다. 우리말로 조무래기 나라들이라 옮겨도 무방하겠지만 좀 점잖게 미소(微小)국가라고 부르면 좋을 듯하다. 그런데 마이크로스테이트는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과는 다르다. 마이크로스테이트가 주요 국가들로부터 공인을 받은 독립 주권국가인 반면 마이크로네이션은 스스로 독립을 선언했을 뿐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한 나라들이다. 영토와 국민, 주권 즉 통치기구에 의한 실효적 지배를 국가의 3대 성립조건으로 꼽는데 마이크로네이션은 이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칭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테이트(State)와 네이션(Nation)은 어떻게 다를까. 흔히 두 단어를 혼용하는가 하면 스테이트는 국가, 네이션은 나라 또는 민족으로 번역한다. 네이션-스테이트(Nation state)의 경우, 전통적으로 민족국가라고 옮기지만 최근에는 국민을 구성하는 민족의 다양화 현상을 감안해 국민국가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어떻게 부르던 국가는 정치적 결사체이고 민족은 문화 및 언어 공동체, 국민은 문화 및 사회공동체라고 보면 무난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 3대 네이션에 북아일랜드라는 지역이 덧붙어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는 스테이트를 이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미소국가와 일반 국가를 가르는 기준을 무엇일까. 보통 1,000㎢ 미만의 영토 면적과 50만 명 이하의 인구 규모를 가진 나라를 미소국가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유럽에는 6개 미소국가가 있다. 가장 작은 바티칸시국(0.44㎢)으로부터 크기 순서로 모나코(2.02㎢), 산마리노(61㎢), 리히텐슈타인(160㎢), 몰타(316㎢), 안도라(468㎢)다. 서울시의 면적이 605㎢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들 나라의 크기를 대강 가늠할 수 있다. 인구를 보면 바티칸시국이 842명, 모나코 30,508명, 산마리노 32,742명, 리히텐슈타인 37,313명, 안도라 85,458명의 순이다. 몰타의 경우 42만 명을 초과해 일반 국가의 경계에 근접해 있다. 또 룩셈부르크는 면적이 2,586㎢, 인구가 57만 명을 초과해 미소국가의 몸집을 넘어섰다. 

▲ 2007년까지 리히텐슈타인 의회가 사용했던 정부청사 건물. 출처=한국어 위키백과

8월 5일 개막하는 2016 리우 올림픽에 모나코 2명, 산마리노 4명, 리텐슈타인 3명, 몰타 2명, 안도라 5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육상 선수 2명이 올림픽 출전 기준기록을 충족시킨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도, 체조, 수영, 사격 등 국제연맹이 ‘보편적 참가’ 명목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다. 이들 5개국 가운데 어떤 나라도 올림픽 역사상 메달을 딴 적이 없다. 리히텐슈타인의 여자 테니스 선수 스테파니 포크트(26)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로 ITF의 초청을 받아 리우 올림픽에 참가한다. 지난 3월에 마감된 엔트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201개 NOC에서 28개 종목에 걸쳐 총10,500명 이상의 선수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이 555명으로 최대, 호스트인 브라질 465명, 독일 425명, 중국 413명, 호주 410명의 순이고 일본은 330명, 한국 205명, 북한 35명 등이다. 

올해 봄에는 그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보지 못했던 마이크로스테이츠를 행선지로 정했다. 2000년대 초에는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를 가는 길에 영국의 바스(Bath)와 벨기에의 스파(Spa)를 주말에 들르는 온천 테마여행을 했었다. 모나코는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를 갔을 때 들렀고, 바티칸이야 로마의 주요 관광지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간 곳 중의 하나다. 몰타와 산마리노는 몇 해 전 한데 엮어 다녀왔기 때문에 여행계획에서 제외했다. 결국 미소국가 가운데 이번 여행에서 갈 나라들은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만 남은 셈이다. 몰도바(Moldova)와 몰도바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한 트랜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도 갔었지만 이 글에서는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을 다루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한다. 

안도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피레네 산맥 해발 1,000m 고지에 자리 잡은 산중소국이다. 언어는 바르셀로나와 마찬가지로 카탈루냐어가 공용어지만 스페인어가 많이 쓰인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70% 정도 일치한다면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는 절반 정도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카탈루냐어를 쓰는 사람치고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다. 안도라 경제의 80%는 관광수입으로 지탱된다. 연간 9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주로 겨울철 스키와 여름철 트레킹을 즐기고 몇 군데 조촐한 면세점에서 술 담배와 보석 등의 쇼핑을 하러 온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농토가 비좁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품은 외부로부터 수입해 들어온다. 

따로 비자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입국할 수 있다. 입국 스탬프는 승용차를 타고 입국할 때 국경검문소에서 요청할 때만 찍어주기 때문에 산마리노나 리히텐슈타인처럼 관광 안내소에서 받을 수 없다. 안도라에는 비행장과 기차역이 없기 때문에 헬리콥터가 아니면 모두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쪽에서는 툴루즈 공항에서 정기 버스편(Novatel)이 있다. 그러나 유럽 밖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 대다수는 바르셀로나에서 안도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상트역을 거쳐 안도라 내의 수도(라기보다는 읍내) 안도라 라 베야(Andorra la Vella)까지 3시간 반 남짓 걸리고 왕복 요금은 2016년 5월 현재 €44.5였다. 

버스 터미널은 골짜기 쪽이고 그 북쪽으로 은행과 면세점, 슈퍼마켓 등이 있는 뉴타운이 펼쳐져 있지만 정작 가야할 곳은 남서쪽 언덕 위의 올드타운이다. 터미널에서 올드타운 끄트머리까지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가려면 30분은 족히 걸린다. 조그만 읍내 광장 안쪽에 현대식 의회 및 행정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바로 옆에는 유서 깊은 상트 에스테브 교회가 있다. 타운 북쪽 끝에 가면 현대식 교회같기도 하고 미술관같기도 한 높다란 유리 건물이 보이는데 사실은 칼데아(Cakdea)라는 이름의 스파 사우나 겸 수영장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워터파크라 할 수 있다. 

안도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두 개의 조각이다. 뉴타운 관광안내소 옆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의 고귀함’은 달리 특유의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의 시계가 왕관(티아라)을 쓰고 있는 높이 4.5m의 꽤 큰 조각이다. 또 하나는 올드타운에서 골짜기 아래로 내려와 오래된 다리 옆에 있는 ‘7 Poetes(7명의 시인들)’이란 조각이다. 이들 시인상은 스테인리스 기둥 위에 폴리에스터 레진으로 만든 12m 높이의 조각인데 안도라의 7개 읍을 상징한다고 한다. 두 조각 모두 2013∼14년의 시기에 세워져 최근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을 지을 때 예술작품을 세우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 조각품이 많이 들어섰지만 안도라의 두 조각만큼 인상적인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안도라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FC 바르셀로나 경기장 등과 몬주익 언덕, 몬세라트 수도원 등 지난번 못 갔던 곳을 들른 다음 유로라인 버스를 타고 취리히로 향했다. 버스는 밤새 남불의 페르피냥과 몽펠리에, 아비뇽을 거쳐 그르노블에서 알프스를 넘어 만 25시간 만에 취리히에 도착했다. 취리히역에서 밤을 새운 다음 온라인으로 예약한 기차표로 리히텐슈타인 국경에 가까운 자르간스역에 갔다. 여기는 리히텐슈타인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지만 불과 60㎞ 거리에 국제포럼으로 유명한 다보스(Davos)가 있다. 자르간스역을 빠져나오면 리히텐슈타인으로 가는 버스가 기차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다. 유로를 쓰는 안도라와 갈리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프랑을 쓴다.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바두스(Vaduz)까지 왕복하는 1일 버스패스는 12.8스위스프랑(€11.6). 

바두스는 안도라와 분위기가 날씨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둘 다 높은 산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안도라가 지중해 지방의 분위기라면 바두스는 거의 발틱3국 등 동유럽에 가깝다. 안도라가 동네사람들끼리 오밀조밀 모여사는 분위기라면 바두스는 봉건 영주의 성과 성아랫동네 사람들의 거주지가 확연히 구분돼 있다. 중심가도 올드타운의 분위기가 없고 듬성듬성 들어선 게 뭔가 소원해 보인다. 여기도 큰길 안쪽에 중심 쇼핑가라고 할 만한 길거리는 있다. 아침 일찍 도착한 탓이었겠지만 뭔가 거리감이 있고 냉랭한 느낌이다. 여기도 은행들이 많은 편이지만 룩셈부르크만큼은 금융 중심지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경제적 활기가 떨어져 보인다. 그래도 1인당 국민총생산은 15만 달러에 육박해 세계 2위를 자랑한다. 국고 수입의 30%는 명목상 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리히텐슈타인의 지형은 남북으로 긴데 남쪽으로 스위스와의 주 통로가 열려있고 서쪽으로 스위스와 연결이 되지만 동쪽으로 오스트리아와는 교통이 거의 없고 외줄기 길이 있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할 일이라면 길거리와 교회,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것 외에 등산이 최고일 것이다. 곳곳에 스위스 알프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다. 자전거나 스키에 취미가 있다면 더더욱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로컬 사람들과 사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곳 사람들은 관광객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가도 스위스와 비슷한 수준이라 꽤 비싸고 오래 머물 만한 유인이 부족하다. 하지만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산마리노 등 산중 미소국가들을 다냐보고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보는 눈에 따라 뭔가 패턴을 읽을 수 있을 성 싶다.

▲ 리히텐슈타인의 행정 구역. 출처=한국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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