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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가기 위한 머나먼 여정일본, 정부주도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추진…일본 노동계 “저임금으로 동일화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 주장
안주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도코하 대학 교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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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9  13: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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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임금체계를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6월2일 일본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을 향한 비정규 고용의 처우개선이 포함된 ‘1억 총 활약 플랜’이 통과되었다. 아베 수상이 올해 1월 시정연설에서 처음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언급했고 보수정권이 이러한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단발적인 언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본 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이슈화되고 정책화되고 있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둘러싼 대립 구조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일본 노동계에서도 주장하는 것으로 언뜻 보면 노동계와 보수정권의 합의로 쉽게 정책화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동일한 노동인지를 평가할 직무평가가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한 임금체계는 직능자격제도라 불리는 시스템인데, 이는 능력 고과, 업적 고과, 태도∙의욕 고과 등 3가지의 항목으로 평가된다. 일견 그 사람의 능력, 직무성과,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직무성과를 평가하는 업적 고과는 거의 유명무실했고, 그 사람의 잠재적 능력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이 주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엄밀한 직무평가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고, 직무평가보다는 속인적 평가에 따른 임금체계가 정착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평가 기준은 노동자의 불만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무마하는 측면에서 연공임금(호봉제) 테두리 내에서 직능자격제도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현 임금체계와 고용관행에서 동일노동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둘째,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는 임금 형평성을 재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엄청난 대립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처럼 기업규모, 고용형태와 성별에 따라 임금격차가 심한 국가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가 기존의 남성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주장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 정규직에게는 연공체계의 임금, 기업 내 복리후생제도, 퇴직금 제도가 적용되지만 이러한 혜택은 비정규직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실제 아베 정권은 대기업 정규직을 기득권 세력의 하나로 규정하고 노동시간 유연화나 해고 자유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아베 정권에서 시행하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저임금으로 동일화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고용관행과 임금체계를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논의는 더딜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동 내부의 대립 또한 존재한다. 일본의 야마다 카즈오(山田和代) 연구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가 정규직의 50% 임금을 받으면서도 직무평가의 결과는 70~80%이었다. 즉 정규직의 7~8할의 일을 하고도 5할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가 아니더라도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자체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한 목소리를 낼 만큼 일본의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 안주영 도코하 대학 교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가계의 주 수입원과 보조 수입원의 역할 분담으로 정당화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가족구조가 다양화되는 속에서 이러한 역할 분담은 지속될 수도 정당화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아베 정권의 선제적 조치에 대해 기존의 임금체계를 전제로 한 조합원 보호에 머무르게 된다면 결국 노동 내부의 갈등을 방치해 경영 측과 보수 정권과의 대결 구도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로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공임금을 정규직의 기득권이라고 비판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고도성장 시기의 인력 부족 상황에 처한 일본 기업은 신입사원을 낮은 초임으로 일괄 채용해서 회사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배치해왔다. 낮은 초임은 승급으로 인한 임금인상으로 만회되었고, 이는 연령 증가에 따른 생활비 부담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는 전환배치와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고 경영자는 장기고용을 인정했다. 

이렇게 다양한 제도들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어가며 일본의 고용관행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연공임금제는 노동조합이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관철시킨 것이 아닌 경영자 측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나름의 대가를 얻고 합의한 제도이다. 이러한 관행 속에 인생 설계를 해온 노동자들의 행동을 기득권 옹호라고 비판하는 것은 몰역사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상유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고용관행이 저성장, 고령화, 글로벌화 추세 속에서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고용관행은 전문성보다는 충성심을 우선해 왔기 때문에 시장의 다양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저성장으로 신규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내 인적 구조는 피라미드에서 항아리 형태가 된다. 이 때문에 연공임금제는 기업의 임금부담을 가중시키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는 임금의 형평성 재구축에서부터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대한 대응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당위성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문제의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사회복지 구상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직무급이 보편화된 유럽에서는 일본과 같은 연공임금이 아니라 사회복지제도가 이러한 기능을 수행했다. 가족수당과 주택정책이 연공임금이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인생설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OECD 국가 중 고령화가 최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 수준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혜택마저 현역 세대보다는 고령자 세대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되고 새로운 사회복지 구상이 논의되고 있지만, 사회복지는 고용을 전제로 구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의 임금체계와 고용관행을 병행해서 논의하지 않으면 사회복지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관행 재구축,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진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현재 일본 사회 내에 만연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이에 따라 전체 임금체계는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것인지, 그리고 임금체계와 연동한 사회복지 구상은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알맹이가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베 수상이 말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파악할 수 없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알맹이가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비전은 거의 대다수 국민의 이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난한 협의과정과 조정을 필요로 한다. 만일 정부가 기업 내 고용안정과 생활급을 노동자에게 양보 받으려면 그에 걸 맞는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이 필요하고 기업 또한 그에 걸 맞는 재정 부담이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임금체계 구축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테이블에서 논의하고 협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을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기에는 한국에서도 너무나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3월 고용노동부가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한 이후 임금체계 개편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임금피크제와 성과주의인데, 그 핵심에는 연공임금제의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 

노동조합은 기업과 정부가 고령자의 임금삭감과 연공임금제의 축소를 위해 임금피크제와 성과주의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비판하며 노사정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연공임금제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임금 형평성을 재구축하는 방법이 노동 문제의 핵심적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한국에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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