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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투기꾼들만 살판 난 ‘강제 민영화’
그리스 투기꾼들만 살판 난 ‘강제 민영화’
  • 닐스 카드리츠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일어판 발&
  • 승인 2018.02.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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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강요는 결국 기업을 도매급에 넘기는 셈

2015년 7월, 그리스는 자신의 머리를 겨눈 총구 밑에서 유럽 ‘상대국’들의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 이제 그리스 예산 및 재정에 관련된 결정들은 이 상대국들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리스에 강요된 민영화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EU 회원국에서 실시됐던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자본 이동을 계획 중이다. 

2016년 2월에 발간된 초국적 연구소(TNI, Trans National Institute)의 ‘유럽의 산업 민영화’ 에 관한 논문은 “민영화된 기업들이 더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민영화의 그림자는 임금을 곤두박질치게 하는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소득격차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1) 

그리스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가 부채가 촉발된 위기 상황에서, 그리스는 자국의 국영(또는 준국영) 기업들을 최대한 입찰자들에게 팔아넘기라는 국제채권단의 강요를 받게 됐다. 이러한 공공재화의 경매입찰은 2010년 이후 ‘트로이카’(2)가 강요한 ‘구제책’의 가장 터무니없는 측면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 경제는 끝없는 침체에 빠져들게 됐다. 앞서 언급한 논문의 저자들은 위기에 빠진 국가의 국영기업들에 민영화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기업을 도매급에 넘기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민영화란 배임행위의 모든 요소가 담긴, 종합선물세트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공공부문의 장단점에 관한 견해와는 별개로 인정된다. 그리스의 공공부문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능장애에 시달렸으며, 민영화 추종자들은 바로 이 점을 논거로 삼았다. 일부 국영기업들은 국민에게 필수적인 그 어떤 재화나 서비스(전기나 대중교통 등)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은 높지만 노동 강도는 낮은 ‘꿈의 일자리’를 정부 지지자들에게 (고객과 납세자의 부담으로) 마련해주는 것뿐이었다. 이는 이 기업들의 입찰이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잘 보여준다.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계산법 

민영화의 합법성을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평가하려면, 경영진은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정부가 국가의 재산을 팔면서 포기한 수입과 입찰가가 상응하는가? 둘째, 해당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어떠한 투자 보장을 받는가? 셋째, 전략상 국익에 필수적인 분야의 민영화 기업들에 정부는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민영화 프로젝트에서, 이 세 가지 질문은 매우 첨예하게 제기됐다. 중국의 원양운수집단(COSCO)이 피레우스항만공사(OLP)의 지분을 67% 매입한 건과, 독일 프라포트그룹이 지휘하는 민영 컨소시엄에 14개 공항을 양도한 건이다. 

먼저 중국 국영기업 COSCO의 피레우스항 매입 과정은, 거의 그리스 ‘패물’ 경매 수준으로 이뤄졌다. 일단 입찰형태는 단독입찰이었으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가는 물론, 다른 일련의 조건까지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독점 입찰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로 마무리됐다. 이 거래로 인해 COSCO는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항에 대한 전적 통제권을 부여받았으며, 2008년에 부두 운영권의 장기(35년) 임대계약을 체결해 컨테이너 터미널의 2/3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3) 

COSCO는 OLP의 지분 2/3를 얻기 위해 3억 6,850만 유로를 지불했다. 이 가격은 완전히 불투명한 과정으로 교섭된 것이다. 민영화 과정을 감독하는 그리스민영화기구(TAIPED)는 중국 측의 우선 제안가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중국기업이 승낙한 추가금액은 민영화기구가 정한 ‘공정가격’처럼 아직도 비밀로 남아 있다. TAIPED는 거래의 종합가치를 단 15억 유로로 평가했다. 이 금액은 하루아침에 폭락할 수 있는 세수의 판매가에, 매수인이 약속한 3억 5천만 유로의 투자가치를 더한, 즉 아주 절묘한 계산으로 나온 것이다. 

이 계산에는 이중의 속임수가 쓰였다. 거래 이전에 COSCO는 피레우스항의 컨테이너터미널 2/3를 사용한다는 명목 하에, OLP에 연간 3천5백만 유로를 지불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금액 중 2/3가 OLP의 최대 소유주에게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COSCO의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오른쪽 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이처럼 그리스 정부는 터미널 양도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받을 수 있었던 7억 유로에 해당하는 임대료를 포기한 것인데, 이를 피레우스항 민영화 거래의 종합가치에서 빼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COSCO측의 향후 투자가치를 더한 부분에는 또 다른, 좀 더 기발한 오류가 숨어있다. 이 계산은 유럽연합(EU)이 여객선터미널 증축 프로젝트에 지급한 1억 1천5백만 유로의 보조금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 돈의 지급은 항구 민영화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게다가 COSCO가 약속한 투자를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심지어 매도증서에는 COSCO가 약속을 불이행할 경우에도, 5년 간 그에 대한 제재를 일절 금지하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4) 

프라포트사의 최대 수익을 위한 최적의 조건 

또 다른 민영화 프로젝트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독일 기업 프라포트는 그리스 과두 정치인인 디미트리스 쿠펠루조스(5)와의 협의 하에, 14개 공항의 운영권 및 개발권을 40년 기한 50년 옵션으로 획득했다. 이 계약을 체결하며 지불한 12억 3천만 유로에 40년 간 연간 양도세와 세금납입액을 더하면 총 80억 유로에 달한다. 

이번 매매를 비난하는 이들은 또 다른 계산법을 제안한다. 오늘날 14개의 공항은 연간 1억 5천만 유로의 연간 소득을 가져다주는데, 이를 전체 양도기간에 적용하면 60억 유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데스, 코스, 미코노스, 산토리니, 코르푸 등의 유명 관광지로 향하는 상업 여객기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프라포트 측의 증언에 의하면, 향후 이 공항들의 연간 소득은 상당 수준 오를 예정이다. 유럽대륙과 이 유명 관광지 섬들을 잇는 항공운행이 최근 몇 년 사이에 20%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프라포트의 최고재무책임자 마티아스 치샹은 2017년부터는 “오로지 그리스 공항들을 통해서만” 연간 1억 달러의 추가이윤을 얻을 것으로 본다.(6) 

이 프로젝트의 경우, 처음에 세 후보가 경쟁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는 그리스 민영화 과정에서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다. 그렇다고 해도 프라포트사의 오너 스테판 슐트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까? 슐트는 “자사의 입찰제안서가 훌륭했던 덕분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한 바 있다. 

▲ 아테네의 그리스 의회. 출처=한국어 위키백과

여기에는 눈에 띄는 기이한 점이 최소한 두 가지 존재한다. 먼저, 돈을 벌어다주는 항공노선을 넘겨주겠다는 놀라운 결정이다. 2013년 초까지만 해도 그리스 정부는 다른 진행 방식을 고려하는 중이었다. 그리스 내 37개 공항을 흑자 또는 적자 시설로 분류해서는, 매수인이 ‘돈 되는 공항’에만 목매지 않고 외진 섬들을 잇기 위한 공항 개발에 재투자할 수 있게끔 독려하려했다. 하지만 수익에만 집중하지 않게 하려는 이 계획은 ‘트로이카’의 명확한 거부에 부딪혔다. 트로이카는 민영화 ‘패키지’에 수익성 높은 선택지만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트로이카’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열강, 즉 독일이 이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 사안의 또 다른 기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면 의혹은 더욱 강력해진다. TAIPED가 입찰과정에서 독일 항공사의 자회사 루프트한자 컨설팅을 ‘기술 고문’으로 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루프트한자 컨설팅은 프라포트사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루프트한자 컨설팅은 프라포트사의 주식 지분 중 8.45%를 소유한 공동 주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프로젝트에는 EU의 전 입찰관련 규정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도의까지 위반하는, 명백한 이해충돌 요소들이 빠짐없이 모여 있는 것이다. 

TNI의 논문 저자들 또한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이한 세부사항을 지적했다. 프라포트사는 대부분 헤센 주와 프랑크푸르트 시에 속하는데, 이들 도시가 프라포트사의 지분 51.3%를 소유하고 있다. 즉 그리스의 공공재화를 현금화해 얻는 수익의 대부분이,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 독일의 지자체 수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를 명백한 약탈로 보든 안 보든, 그 결과는 변함없다. 염가판매한 민영화의 즉각적인 산물은 부채 변제로 금세 녹아 없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정부는 이러한 민영화 프로젝트보다 자국재정을 안정시키는 데 유용할 장기적 소득원을 넘긴 셈이다. 

한편 프라포트는 그리스 공항들의 이윤을 최대화하겠다고 결심했다. 승객 수의 지속적 증가뿐 아니라, 재무책임자 치샹이 솔직하게 밝혔듯, “추가이윤을 신속하게 내기 위한 상업구역의 일관된 확장 및 최적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프라포트사는 ‘최대 수익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보장받는 데 집중했다. 토지세 및 지방세 지급뿐 아니라 모든 기본적인 재정적 의무를 면제받았다. 예컨대 14개 공항의 이전 협력업체들과 맺은 각종 임대차 및 계약들을 단번에 취소할 수도 있다. 해고된 요식업체, 상가, 납품업체 등에게 단 한 푼의 손해배상도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상대 업체에 영업허가증을 발급해줄 수 있다. 여기서 손해배상은 그리스 정부의 몫이다. 손해배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 당국은 프라포트가 해고한 고용인들에게 배상해야 한다. 사측(프라포트)의 책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향후 산업재해 피해자들에게 부담될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공항 확장공사에 필요한 환경조사 자금도 조달해야 한다. 심지어는 공사현장에서 공교롭게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돼 공사가 늦어질 경우에도, 그리스 정부가 비용을 물도록 규정돼 있다.(7) 

제 3의 선택지는 분명 존재했다 

이처럼 공공기금을 무한정 사용해 매수인의 지출을 전부 메꿔주는 행태는 파렴치함의 끝을 보여준다. 또한, EU가 스스로 제정한 원칙들도 위반한 셈이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그것에 주어진 보조금, 양도된 자금을 비롯해 담보금의 감소에 기여한다.” 이는 2012년 10월 상수처리시설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들을 대상으로 EU 집행위원회가 표명한 내용이다. 

프라포트사의 경우는 약간 다르게 진행했다. 14개 공항의 매수인은 강요당한 그리스 정부 측의 보조금, 양도된 자금, 담보금 등으로 구성된 준비금을 거의 무한정 이용했다. 자국경제의 핵심 분야 의 결정들과 관련해, 그리스 정부의 발언권은 전무했다. 예를 들어 아직 한참 더 발전해야 하는 섬들의 지방세와 관련해서도, 전혀 의견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프라포트 민영화 프로젝트의 변호인단은 코르푸나 산토리니 공항처럼 노후하고 불편한 공항들의 개축 공사에는 그리스 측이 감당해내기 어려운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해결책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예컨대 유럽투자은행(EIB)의 대출을 받아 이 인프라들을 현대화하는 데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에는 장기적으로 유용한, 지속적으로 상승할 정기소득을 보장해줄 투자의 기회였다. 

그리스 공공재정의 지속적인 안정화를 우려하는 이에게, 프라포트사와의 거래는 최악의 선택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채권단의 지배하에 놓인 이 나라에 강요 또는 계획된 19개 민영화 프로젝트 중 대부분(가스, 전기, 테살로니키의 3개 항만 등)도 마찬가지다. 국가소유 부동산 분야만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민간투자자들에게서 이 부동산을 좀 더 유용한 목적에 사용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공부문을 과거방식으로 보존하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물론 이는 잘못된 추론이다. 그러나 국제 약탈자들을 위한 염가판매와 파벌정치를 위한 후원주의(Clienteli sm) 경제학 외에도, 제3의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글·닐스 카드리츠케 Niels Kadritzk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일어판 발행인. 독일어판에 게재된 이 기사의 내용은 이보다 좀 더 길다. 

번역·박나리 karsella@naver.com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Sol Trumbo Vila, Matthijs Peters, ‘The privatisation industry in Europe’, Transnational Institute, Amsterdam, 2016년 2월. 

(2) EU 집행위원회, 유럽투자은행, IMF로 구성된 비공식 집단. 여러 그리스 행정부에 추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다양한 경제 조정책을 강요했다. 

(3) Pierre Rimbert, ‘파이레스항에서의 중국식 사회모형(Modèle social chinois au Pirée)’, Panagiotis Grigoriou, ‘새로운 그리스의 가이드투어(Visite guidée de la nouvelle Athèn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각각 2013년 2월호와 2014년 4월호 참조. 

(4) 이러한 세부내용들이 그리스 인디사이트 ‘더프레스프로젝트(The Press Project)’에서 폭로됐다. 

(5) 디미트리스 쿠펠루조스는 그리스 내에서의 정치 인맥, 그리고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과의 접촉을 통해 에너지 및 인프라 분야에서 부를 축적했다. 

(6) Börsen-Zeitung, Francfort, 2016년 2월 27일. 

(7) 그리스에 강요된 조건들의 목록이 ‘더프레스프로젝트’ 사이트에 공개됐다. 

<이코노미21>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과 기사제휴를 맺고 주요 글로벌 기사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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