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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왜 실패했나?
참여정부는 왜 실패했나?
  • 김용석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
  • 승인 2018.02.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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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실패’는 국가운영 준비 부족 때문…공개적인 정무직 인사 명단을 취합한 ‘플럼 북’ 제도 시급히 도입해야

참여정부는 성공했나? 실패했나?

‘실패했다’ 그 이유를 두 가지 들고 싶다.

참여정부에 이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다. 2007년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게 된 데 대한 배경 설명은 물론 다양하다. 200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진영의 문제, 민주개혁 세력의 이합집산, 이명박 경제 살리기 ‘거짓’ 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 등등 다양한 원인 제시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를 심판한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구차한 변명이 필요 없다. 뭔가 잘해보려고 했는데, 어쨌든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참담했다. 참여정부평가포럼을 기억하는가? 참여정부 주축 인사들은 참여정부를 제대로 평가해보자고 항변하고 싶어 했던 것이나, 결국 포럼은 해체되고 책임자가 스스로 ‘폐족’(?)임을 자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참여정부 ‘실패’의 다른 이유는 국가운영 준비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 후보를 결정한 이후에도 국가운영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반대하는 민주당 내외의 정치 세력들의 온갖 공세에 시달렸고, 여론조사에서도 많이 흔들렸다. 그보다는 국가운영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국가운영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고, 준비할 시간도 물론 부족했다.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20여일 정도 남긴 시점에서 노무현-정몽준 대통령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으니, 대선 준비에 급급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참여정부의 태생적 한계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2017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구태여 참여정부 ’실패’를 내세우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2017 대선 한판 승부를 앞두고, 우리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국가를 잘 운영할 것이라는 믿음도 주어야 한다. 국가운영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자기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하게 되었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지만, 내게는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나는 김상현-정대철-김근태 라인에 있었고, 정대철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비주류였다. 김대중 민주당 총재가 지명한 지구장 위원장들, 대체로 그 지구당 위원장들이 지명하는 대의원들, 그 대의원들이 참석한 전당대회, 어쨌든 80~90%가 김대중 후보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대의원들로 구성된 전당대회에서 비주류라니, 참으로 무모한 선택이었다. 동교동에서는 우리 비주류를 ‘반란군’이라고 불렀으니까...

내가 김대중 대통령후보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탄생할 것이 뻔했지만,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겠다는 정대철 후보의 도전이 전체 그림에는 유의미하다고 보았고, 동교동 가신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적 공로는 인정하지만, 개방적이지 못한 태도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터였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지만, 내가 거기 낄 틈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김대중 집권 이후 일자리를 찾아서 청와대를 찾은 나에게 동교동계 핵심 인사가 내게 건넨 첫 마디가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어요?” 라고 말할 정도 였으니.... 이건 뭐?

국민의 정부 시절, ‘비주류 원죄’ 탓에 변방을 떠돌던 나는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오랜 기간 정치활동을 같이 해왔던 ‘평민연’ 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1988년 김대중 비판적 지지와 민주화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표방하고 평민당에 입당한 100여 명의 재야 인사들이 만든 조직이 ‘평민연’이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 ’비판’은 사라지고, 김대중 ‘지지’만 남은 ‘평민연’으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동교동에 끌려 다니는 ‘평민연’ 동료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터였다. 나는 유인태, 김학민, 고영하 등이 만든 ‘마포팀’에 합류하였다. ‘마포팀’은 쉽게 말하자면 김원기-정대철 등의 하부 단위인 셈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줄을 선 것일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고, ‘마포팀’의 유인태가 정무수석에 지명되면서 나도 청와대 말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막강한 제왕적 대통령, 국가운영은 원맨 쇼?  

우리나라 대통령 중심제를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말한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 시민사회 2비서관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둘러본 대통령 권한은 참으로 막강하였다. 조금 지나치게 말하자면 봉건시대의 왕하고 무엇이 다른지? 대통령 비서실만 해도 수석비서관들이 7~8명에, 비서관급이 40여명, 행정관들이 100여명이 넘는 듯했다. 무슨 특보들도 10여명 내외다. 경호실은 독립부대로 편성되어 있고,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임금님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내부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도 나는 겁이 났다. 높은 담벼락에 출입증이다 뭐다 해서 분위기가 삼엄했다.

직속 행정기관인 국무총리실에도 상당수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고, 당시 27개 정부 부처와 수 십개의 국책 연구기관들이 각 위원회 별로 총리실 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특수 권력기관으로 불리우는 감사원, 검찰, 국정원, 국세청 등이 청와대 발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내가 제일 못마땅했던 것은 4~6급 내외의 청와대 행정관이 각 부처 차관급들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되나? 이게 권력인가?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다. 수 십만 군대의 총지휘자다. 육군 보병 소총수로 전방에서 근무했던 나로서는 군 통수권자를 보좌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완장이 무서운 것이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찔하다. 청와대 비서진들의 모든 활동은 대통령인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대통령님이 주재하는 회의에 배석이라도 할라치면 일지감치 가서 대기해야 하고, 대통령님 입장 시에는 일어나서 박수를 치거나 목례를 바쳐야 한다.

특히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 검찰 등 소위 4대 권력기관들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한다는 것은 청와대 권력의 정점처럼 보였다. 지방분권을 말하지만,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출장소라고 부른다는 말을 실감했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자면, 지자체 권한은 거의 없다고 보면 아마도 맞는 말이 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민의를 가장 많이 거스른 권력 기관은 아마도 국가정보원과 검찰 조직일 듯싶다.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드러났지만, 지자체에는 이런 기구가 없다. 그 예산 자체도 보안이란다. 국가정보원의 정보망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물론 알 수 없다. 지금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최악의 나락에 빠져 있다. 혁신의 목소리가 하늘을 지르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감사원은 직무감찰과 회계검사 기능이 있다. 회계검사 대상은 필요적 검사사항과 선택적 검사사항으로 구분되고, 필요적 검사대상은 감사원에서 반드시 검사하여야 하는 사항으로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 38,700여개 기관의 회계업무가 이에 해당한다. 선택적 검사사항은 감사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국무총리의 요구가 있을 때 검사할 수 있는 사항으로서, 국고수납 대리점(금융기관) 등 29,300여개 기관의 회계업무가 이에 해당한다. 이 방대한 권한이 믿겨지는가? 국세청은 조세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모든 기업들이 국세청 눈치를 본다. 우리나라에서 세무사찰이 기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는 통치 수단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양극화를 극복할 조세정책이 필요한데, 국세청의 역할 변화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

대통령을 장래의 꿈이라고 쓰는 어린이가 많은 이상한 나라다.  

직능 단체들에 대한 민주주의 훈련을 주문하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것이 확정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는 엄청난 중압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거 장난이 아니네.... 안성에서 활동하던 후배 홍석완의 도움으로 청와대 인근에 당시 보증금 4백만 원에 40만 원짜리 월세 방을 구했다. 출퇴근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처음 일한 직책은 시민사회 2비서관이었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운동 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사회 1비서관은 장준영이었고, 나는 음식물중앙회와 같은 직능단체를 맡아서 일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는 시행되었지만, 기존의 독재정권의 통치기구들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고 나는 판단했고, 그 골간은 ‘통반’ 조직과 ‘직능’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통반’ 조직은 전형적인 선거조직이었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여러 가지 조치들을 통해서 자율성이 회복되어 가고 있어서, 이제는 ‘직능’ 조직에 메스를 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88년 인천시 부평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었는데, 십정 1동 통장으로부터 통장들이 전출입 신고를 받으면서 주민들의 정치성향을 조사해서 3등급으로 분류한다는 관행을 제보받은 적이 있다. 과연 통장의 전출입 카드에는 주민들이 당시 정부에 대해서 지지, 중립, 반대 3등급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바가 있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부터 5가작통제니 해서 주민통제 수단으로 통반 조직을 활용해왔던 것이 분명했다.

통반 조직과 마찬가지로 독재정권 아래에서 각종 직능 단체들은 정권의 앞잡이 행동부대들이었다. 무슨 일만 생기면 궐기대회다, 신문 도배다, 난리들을 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어버이연합이 하는 짓거리와 유사하다. 우리나라 직능단체들은 독재 정권이 권력유지를 위해서 마음먹고 만든 단체들이다. 직능단체 탄생 과정을 잠시 돌아보자면.... 초기에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을 배경으로 직능인들 몇이 직능단체를 구성하고 직능단체 지도부를 표방한다. 명분은 직능인의 집단 이익을 지키자는 것이지만, 이들은 여권 정치인에게 ‘표와 돈’을 상납한다. 정치인은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직능단체들이 ‘표와 돈’을 모아다가 주는 것이다. 반대급부로 정치 권력은 ‘교육과 인증제도’를 선물한다. 직능단체 지도력은 이러한 ‘교육과 인증제도’로 유지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반 직능인들이 협회를 마다하기가 어렵고, 또박또박 회비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야권이 정치력을 조금씩 가지게 되면서 이러한 관계들도 변화가 오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말끔하게 고리를 끊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었다.

나는 청와대 직능단체 담당 시민사회 2비서관으로서,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해서 한의사회, 음식물중앙회 등 주요 직능단체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했다. 직능단체들과의 정책간담회도 개최했다. 대한노인회 사무실이 효창동에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았으니, 과거의 독재 정권과의 유착을 끊으시오.... 과거와 같은 정치 똘마니 노릇 하지 마시오....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아울러, 직능인들의 민원을 청취하고, 행정적 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 어버이연합 같은 요상한 단체들이 전경련과 청와대, 국정원 등의 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는데, 나는 금새 이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청와대 대통령 정무직 인사 일을 보게 되다

나는 청와대에서 시민사회 2비서관으로 일한지 2달 정도가 지날 무렵 인사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인사수석은 정찬용, 인사비서관은 권선택이었다. 내가 인사로 가게 된 것은 정무직 인사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무직 인사에 대한 실무적인 진행이 원활치 않았다. 내가 인사비서관으로 가면서, 민주당 측이 전달한 추천인사가 6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당청의 원활한 인사 협의를 위해서, 당시 정권의 주요 포스트에 위치했던 유인태 정무수석, 이강철 실세,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 김태랑 민주당 인사위원장 등과 매주 정례 조찬회의를 주관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무직 인사정보를 공개하고, 추천과 협의를 거쳤다. 정리된 인사안은 정찬용 수석을 통해서 문희상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회의에 올려졌다. 물론 인사추천은 다양하게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제안되었을 것이나, 이 라인에서 협의된 정무직 인사안이 최종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한다.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인사에 관여하는 자리가 3천 곳이 넘는다고 한다. 하도 많고 복잡해서 인사비서관인 나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 ‘대외비’ 자료로 5권의 책자에 기관 현황과 연역 및 명단이 정리가 된 자료가 있는데 보안이란다. 왜, 보안인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이 알면 큰 일 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하긴 사드 배치 장소도 보안이라면서 주민들 모르게 몰래 배치해야 한다는 얼빠진 국회의원이 설쳐대는 나라 아닌가? 청와대를 그만두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이 자료다. 몰래 들고 나오고 싶었지만, 고유번호가 찍혀있어서 이 자료가 없어지면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몰래 복사할 생각도 해봤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흠... 이런 이야기도 보안인가? 잘 모르겠다. 13년이나 지났는데, 이런 이야기 한다고 내가 처벌을 받으려나? 우리도 미국처럼 공개적인 정무직 인사 명단을 취합한 ‘플럼 북’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정무직 인사를 명기한 플럼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낙하산’ 논란은 없다. 정무직으로 정해진 자리에 정파적 인사가 낙하산(?)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 인사가 적임자인지는 치열하게 비판하고 토론하지만 ‘낙하산 제도’ 자체가 문제라면, 내부 승진을 원칙으로 하라는 말인가? 여야 모두 정권이 바뀌면 반복되는 이 문제에 왜 진솔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국가운영-인사 편에서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정권 교체, 대통령 교체인가? 세력 교체인가? 

대통령 교체와 세력 교체는 무엇이 다른가?

많은 민주 시민들이 2017년 대선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역주행과 패악질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2016. 4. 13 총선에 국민들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주었고, 야권의 각종 혁신 작업들이 국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비판 중심으로 제한적이다. 해서 2017 정권교체를 범 야권은 갈망하고 있다. 정권교체는 최고의 지상 과제다. 당연히 정권을 교체해서 민주적인 대통령이 국가운영의 중심에 서야 한다. 제대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가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통령 인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 활동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인사 준비를 하는 것은 너무 늦다. 왜냐하면, 지금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아무리 늦어도 당선 후 1년 이내에 국가운영 방향을 세우고 혁신적으로 통치할 토대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의 성패 여부는 집권 초기에 판가름 날 것이다. 참여정부 ‘실패’를 말하고, 국가운영 ‘준비’를 강조하는 이유다.

▲ 청와대 본관 모습. 사진=청와대 공식홈페이지
참여정부는 그야말로 대선 과정에서 롤라코스트를 타고 성립되었다. 국가운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인서비서관으로 가면서, 정부 산하 기관에 대해서 아는 곳은 환경공단, 마사회 정도였다. 대통령 직간접 인사 자리는 3.000곳에 이른다고 한다. 인사란 무엇인가? ‘어느’ 기관에 ‘누구’를 보내는 것 아닌가? 기관의 실태나 운영방향 등에 대한 학습 없이, ‘그’ 기관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면서, ‘누구’를 보낼 수 있겠는가? 그 ‘누구’는 또 ‘누구’인가? 관료들은 기관과 인사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고,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준비가 없다. 관료들 뜻대로 할 량이라면, 정권은 뭐하러 잡는가?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 시절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은 긴장과 심리적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 극기 훈련 같은 세월이었다. 쓰나미 인풋, 용량 오버! 빠킹. 빠킹!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소지한 핸드폰을 사무실 직원에게 맡겨두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금새 점심시간이 된다. 밥 먹으러 가면서, 핸드폰을 받아드는데, 사무실 직원이 A4 용지에 빽빽하게 오전에 전화 온 내역을 정리해서 준다. 보통 30명이 넘는다. 안부 전화부터 만나자는 것까지... 정신이 없다. 내게 온 전화에 대한 물리적인 처리가 불가능하다. “청와대 가더니 변했다”는 등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것 정도는 그리 신경 쓸 일도 아니지만, 어쩌라구? 특히 인사 문제는 대부분 개별 면담을 요청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별히 만나서 긴히 전할 이야기가 있다는데...

범 야권 입장에서 정권교체가 이 시점 우리의 최고 목표겠지만, 정권 잡으면 국가운영을 잘 할 수 있나? 국가운영 준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금 제언하는 이유다. 생생한 경험을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국가운영에 대한 경험 전수, 학습, 국가운영 노하우에 대한 공동인식 작업은 대통령 선거 캠프가 대통령 당선이후 준비할 일이 아니다. 방대한 국가라는 조직을 설사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통령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무직 인사 기록부인 플럼북 제도를 여야 합의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당의 제 정파가 정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더라도, 정치권이 국가운영에 대한 준비를 나름대로 해나가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뜻이다.

정치권 합의로 플럼 북 제도를 도입할 것을 거듭 제안한다. 

손을 놓아버린 참여정부 청와대 권력, 국정원, 검찰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 

참여정부 초기에 국정원과 검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대통령 맞나?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언행’을 중심으로 비판들 했지만, 트집 잡은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세련된 언행이 보기에 좋기는 하겠지만, 다소 거친 ‘언행’이 무슨 그리 큰 흠집이 되겠는가? 참여정부를 평가하면서, ‘탈 권위’라는 미명아래 통치 수단을 포기한 부분이 참여정부 ‘평가’의 핵심 쟁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잘한 일인가? 국정원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독재정권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광범위한 정치사찰과 공작을 통해서, 가짜 간첩들을 양산해내는 등 공안 분위기를 조성한 주역이었고, 각종 사찰을 통해서 범 야권 정치인 탄압의 첨병 노릇을 해왔다. 철저한 국정원 혁신이 요구되던 상황이었다. “독대하지 않겠다”는 것이 과거의 이러한 악습을 차단하는 방안이 될 수 있겠는가? 면전에서는 권력에 순종하는 체 하지만, 틈만 나면 과거 악습으로 돌아가려는 사찰기관, 국정원 원장을 “안 만나겠다”는 것으로 국정원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인가? 대통령 권력이 장난인가?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 통치 포기의 클라이막스는 ‘검사들과의 대화’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여정부는 끝났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분노가 치밀어서 주체할 바를 몰랐고, 엄중한 청와대 권력의 담벼락 안에서 진행되는 대통령의 뻘짓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와도 이 문제를 토론할 수 없었다. 울분이 치솟았다. 이러려고 정권을 잡았나? 그 검사들이 머지않은 훗날 노무현 대통령의 목숨을 옥죄어 왔던 것 아닌가?

통치를 포기한 노무현 대통령....

지못미? 누구로부터 지켜내지 못했고,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것인가?

내 마음은 이미 청와대를 떠나 버렸다. 원통하다. 참으로 원통하다.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망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대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국가운영을 준비하지 않으면, 민주적 전진은 불가능하다 

감사원에 대해서는 다음에 충분히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참여정부는 초기 감사원장으로 고려대학교 윤성식 교수를 희망하였다. 그런데, 윤성식 교수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무렵 윤성식 교수를 내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일반적인 회계감사를 보완할 정책감사의 중요성을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사원은 행정 조직의 운영 방향을 좌우하는 기관이다. 일선 행정은 감사 방향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선 행정은 감사 잘 받기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감사원 운영 방안이나 감사원장 인사에 대해서도 사전에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 국세청 역시 중요한 기관인데, 혁신 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2016. 4. 13 총선 이후, 범야권 집권의 전망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그 때 일들을 되새기고 곰씹고 하면서 ‘국가운영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박하게 다가왔다. 국정원, 검찰, 감사원, 국세청, 청와대 인사.... 그런데, 그 당시에는 권력을 놓아버린 노무현 대통령이 원망스럽고 국민들께 죄송하고 뭐 그렇게만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참여정부 ‘실패’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만 비판하는 것이 맞는가? 우리는 뭘 잘했나?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이나 검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노무현 대통령 탓인가? 검사들과 대화하면서, 참여정부가 우습게 보이면서, 범죄 집단인 검찰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게 된 것이 온전히 노무현 대통령 탓인가?

참여정부에 참여한 우리는 왜 검찰 혁신안을 가지고 있지 못했는가? 야권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저절로 검찰이 개혁될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검찰 혁신안을 만들어 내고, 힘차게 추진하려 했다면, 노무현 대통령 혼자 생각대로 검사들과 만날 수 있었을까?

국정원장 독대 여부는 노무현 대통령 혼자서 결정해도 되는 사안인가? 국정원 혁신안에 이 문제도 포함되어서 광범위한 토론과 국정원 혁신 방향의 제시가 필요했던 것 아닌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혼자서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방치한 우리들 책임 아닌가? 우리는 국정원 혁신안을 가지고 있었는가?

감사원장 문제는 국회를 설득하지 못했으니, 감사원 혁신에 대한 책임을 일부러 따지자면 청와대와 국회가 나눠가질 사안처럼 보인다.

국세청 혁신안을 토론했던 기억이나 흔적도 잘 안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국가운영의 가장 힘 있는 기관인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에 대해서 확실한 혁신방안 없이 표류한 참여정부의 ‘실패’는 이미 참여정부 초기에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들 책임 아닌가? 확고한 혁신 방안과 추진 계획 없이 집권하려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모독행위 아닌가? 지금도 무슨 무슨 대권 주자들이 고개를 내미는데, 제대로 할 자신 없으면, 나서지 마라! 권하고 싶다!

하나만 덧붙이겠다.

통치 수단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었던 참여정부가 그나마 통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남은 길은 국민참여를 이끌어 내는 길 뿐이었다. 어쩌면, 통치수단의 적절한 활용과 국민참여 기반의 확대는 참여정부 생명력의 두 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국민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국민참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과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겠는데, 참여정부 초기에 설치되었던 국민참여 수석실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후기에 국민참여 수석실이 시민사회 수석실로 되돌아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과오를 지적하는 이도 없고 성찰하는 이도 없다. 지자체 확대 방안도 세종시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외에 실질적으로 중앙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는 등의 구체적인 준비와 추진 전략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는 참여정부의 ‘실패’라기 보다는 ‘한계’라고도 볼 수 있겠다.

2017 대선 이후 출범할 새로운 민주정부는 풀뿌리 지방자치 권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지금부터 지자체 권한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7 정권 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국가운영 준비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새로운 민주적 전진은 불가능하다.

지금부터 국가운영 준비를 시작해도 늦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38호(2016년 10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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