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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수출정지의 충격과 중일관계
희토류 수출정지의 충격과 중일관계
  • 임재환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8.02.19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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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수출제한, 중일관계 근간인 “정경분리” 원칙에 반하는 조치…센카쿠열도 갈등을 계기로 중일관계 “전략적 경쟁관계로 이행”

커버스토리 4 - China Stress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대치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중단 강경 대응으로 몰아 붙이자, 일본이 중국 어선 선장을 석방하는 백기를 것이다. 양국간의 갈등을 일거에 정리해 버린 희토류는 자원 무기화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한겨레 2015 6 7 “중국 희토류업계 옛날이여) 

2010 9, 중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9 7 일본 정부가 센카쿠열도 인근 영해에서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의 선장을 구속하면서 시작된 위기는 9 23 선장의 석방이 발표되면서 진정되었다. 2주간에 걸친 중일간의 대립은 이후 “센카쿠 쇼크”라고 불리울 만큼 일본의 대중인식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였고 이후 일본 정부의 대중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무엇이 2010 9월의 대립을쇼크”로 만들었던 것일까?

일본의 관점에서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한가지 이유는 선장의 구류연장 결정에 대해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제한이라는 경제제재로 대응했다는 점에 있다. 밑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이러한 중국의 조치는 전후 중일관계를 특징지어온 “정경분리”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으로 일본정부는 물론 일본 경제계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이 글에서는 2010년 9월 중국정부가 행한 희토류 수출제한조치와 일본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러한 중국의 행동이 중일간의 외교 및 경제관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

과연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조치는 위의 기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정부에게백기”를 들리고양국간의 갈등을 일거에 정리해 버린” 것일까. 그러나 당연하게도 희토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고 중일대립의 현실은 훨씬 구조적이다. 희토류 수출문제를 중심으로 중일관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동시에 2010년의 일본에 못지 않게 곤란을 겪고 있는 2017년의 한국에의 정책적 함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글의 하나의 목적이다

위기의 발생 

먼저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을 전후한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위기의 발단은 9 7 센카쿠 인근해역에서 발생한 중국어선과 일본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태도를 급속히 경직시킨 것은, 그리고 양국간의 긴장을 급속히 고조시킨 것은 9 19 일본 정부가 내린 중국 선장의 구류연장 결정이었다. 그전까지 중국의 대응은 두차례 일본대사를 초치하여 선장의 신속한 석방을 촉구한 것에 불과했는데, 사안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충분히 전달 되었다고 판단한 탓인지, 아니면 전례대로 일본측이 기소를 포기하고 선장을 돌려 보낼 것이라고 판단한 탓인지, 일본의 구류연장 결정에 대한 중국의 대항조치는 강력하고 과감했다.

먼저 구류연장결정이 행해진 9월 19일, 중국 외교부는 중일간 각료급 교류의 잠정중단을 발표했다. 이튿날인 9월 20일에는 허베이성의 군사관리구역에서의 비디오 촬영을 이유로 일본 건설회사의 직원 4명이 중국 당국에 구속되었다. 또한 중국 외교부는 21일, 유엔총회기간중의 중일간 총리급회담에 대해 시기가 적절치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인기그룹 스맵의 상하이 공연이 무기한 연기되고 뉴욕에 입성한 원쟈바오 총리는 격앙된 어조로 중국인 선장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하면서 일본측이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지도. 출처=위키백과

또 하나의 위기: 희토류 수출정지 

그리고 중국은 전혀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일본을 압박해왔다. 9 24 오하타 경제산업성 장관은희토류의 신규계약과 선박적재절차가 정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수출승인서와 신규계약서의 발급이 지연되고 있다는 종합상사들의 보고를 공식화했다. 동시에 오하타는 일본이외에는 통관절차의 지연이 보고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센카쿠의 어선충돌사건과의 관련성을 시사하였다.

한편 중국 정부는 수출정체에 대한 일본측의 항의에 대해 제재조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실제로 희토류의 수출정체는 중국 선장의 석방으로 위기가 일단락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는데 현상변경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11 13 요코하마에서 행해진 나오토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의 짧은 회담이었다. 수상은 직접 희토류 문제를 제기했고 후진타오 주석은 양국관계의 호혜성에 대해 언급하는 방식으로 일본 측의 문제제기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해당사안에 대한 지도부의 입장이 정리된 탓인지 같은 날 오하타 경제산업성 장관과의 면담에서 쟝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은 “적절한 시기에 세관절차상의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이는 위기발생이후 처음으로 중국당국이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동시에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그리고 오하타 장관이 세관절차의 변화를 감지했다고 언급한 지 이틀이 지난 11월 18일, 현지수출업체로부터 수출승인 및 신규신청의 서류작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어 왔다.  

일본의 대응: 정부와 기업 

위기해결의 계기가 양국정상회담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희토류 수출제한조치에 대해 일본측이 그외의 아무런 대응도 내어 놓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먼저 일본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한 양자교섭을 중국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추가예산안의 일환으로 1000억원 규모의 희토류 대책을 발표했다. 10월 7일에 공개된 대책안의 개요는 일본기업에 의한 희토류 관련 설비투자에 390억원, 해외 광산개발과 권익확보 지원에 460억원, 그리고 대체재와 리사이클 기술 개발에 각각 120억원과 3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희토류의 사용량을 줄이는 동시에 조달원의 다양화를 추진하여 희토류의 공급부족에 대비하고 희토류 확보를 위한 산업기술의 유출과 생산거점의 이전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중국의 수출제한을 염두에 둔 정책안이었다.

희토류 수출제한조치에 대해서는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9월 24일의 동경증시에서 희토류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희토류의 대일수출이 전면금지될 경우 재고부족의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에 신속하게 반응한 것은 희토류의 수입과 이용에 의존하는 기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소우지츠 상사는 중국과 유사한 지층구조를 가진 베트남에서의 광산개발을 위한 조사일정을 앞당겼고, TDK는 희토류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개발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중국현지의 생산업체와의 합작을 통해 정면돌파를 모색하는 기업도 존재했다. 현지기업과의 공동개발에 의해 생산된 희토류는 수출수량제한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쇼와전기는 “기술유출의 리스크보다 원료조달의 리스크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에 있어서의 희토류 합금의 설비증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제재에 대해 시장전체가 혼란에 빠진것은 아니었다. 희토류를 사용하는 기업들 중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토요타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조달경로와 재고량 등을 조사, 적어도 6개월은 생산라인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히타치는 “중국으로부터의 공급이 줄어 들 리스크에 대비해 수년전부터 재고를 늘려 왔음”을 분명히 했다. 미쯔비시와 미쯔이등의 대형상사들은 “금번의 곤란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와 같은 시장의 반응은 센카쿠 위기 이전부터 중국의 희토류 수출이 감소하고 있었던 사실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UFJ미쯔비시 은행이 “전기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중국으로부터의 희토류 조달은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것은 2010년 7월이었다. 

▲ 일본해상자위대 사열식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희토류 수출제한과 중일관계의 변화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 정부의 강한 위기의식과 신속한 정책대응, 그리고 시장의 다양한 반응은 희토류 수출제한조치가 일본에게 던져 충격의 크기를 전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충격의 구체적 내용은 나아가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모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0년의 위기는 외교관계가 경제관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에서 중일관계의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일까. 배후에는 어떠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중일관계는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지만정랭경열”(政冷経熱)이라는 어구가 표현하듯이 무역과 투자는 급속히 확대되었다. 야스쿠니 참배로 중일관계를 흔들었던 코이즈미 내각의 6 동안 중일무역의 규모는 2.7배나 확대되었다. 2007 중국은 미국을 앞서 일본의 최대무역국이 되었으며 2008년에는 역시 미국을 누르고 일본 최대의 수출시장으로 부상하였다. 투자 대상으로서도 중국은 가장 유망한 진출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경제관계의 확대와 심화가 정치적 긴장을 완화한다는 자유주의의 주장보다는 상대적 이익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 정치관계를 악화시킨다는 현실주의의 주장이 중일관계에는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관점에서 도쿄대학의 마루카와 교수는 희토류 수출규제를 둘러 싼 중일갈등의 본질을 “테크노 내셔널리즘의 충돌”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센카쿠 위기 이전부터 이미 중일간에는 희토류 수출을 둘러 싼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즉 중국의 수출규제에 대한 일본의 불안과 희토류 고갈에 대한 중국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마루카와는 센카쿠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희토류 문제는 언젠가는 외교적 마찰로 확대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희토류 문제가 센카쿠를 둘러 영토갈등과 맞물려 표면화되었다는 사실이 일본의 충격을 증폭시켰다는 점에는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국외교문제평의회 쉐일라 스미스 박사는 2010년의 위기가쇼크”였던 것은 중일관계를 안정시켜 기존의 메커니즘이 변화된 조건하에서 더이상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희토류 수출정지조치야말로 그러한 중일관계의 변질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2010년 후반에 발생한 두가지 위기, 그리고 2012년 센카쿠열도의 국유화결정이 촉발시킨 또 하나의 중대한 위기를 계기로 중일관계의 성격과 방향은 본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필자는 중일관계의 전략적 경쟁관계로의 이행이라고 정의해 왔는데 이는 중일간 권력전이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압력은 물론, 지금까지 논의해 온 양국관계의 구체적 맥락과 위기의 성격, 특히 경제구조에 있어서의 경합성의 증대와 영토갈등의 전면화 등의 요인을 고려한 개념이다. 즉 중일관계는 군사적 경쟁의 요구가 경제적 협력의 유인을 억제하는 경쟁 우위의 관계, 즉 2010년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든 것이다.  

2010년의 일본과 2017년의 한국 

그렇다면 2010년의 일본의 대응과 중일관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를 주는 것일까. 2010년의 일본과 2017년의 한국이 처한 위기를 비교해 보면 먼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유사점을 발견할 있다.

첫째, 두 사건 모두 중국경제의 체질 변화 혹은 대외경제정책의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중국시장 혹은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내포하는 리스크를 표면화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둘째, 두 사건 모두 당사국들의 안전보장문제가 위기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도, 타협은 물론 교섭의 대상으로 하기도 어려운 사안이 문제의 본질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셋째, 일본과 한국에 초점을 맞추면 사건 모두 국내정치의 불안정 혹은 외교능력의 부재가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일본의 민주당 내각은 중국과의 의사소통능력은 물론 자국의 관료기구에 대한 통제력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였다. 만약 자민당 정권이었다면 2010년의 위기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본내에 일반적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사상 초유의 정치공백 상태에서 위기를 맞이한 한국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 위기에는 차이점도 명확히 존재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2017년의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 자신의 능력 증대에 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지속적으로 외교역량을 증대시켜 왔고, 특히 외교정책에 있어 경제제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전술과 전략이 다양화 되었다. 현재 한국에게 가해지고 있는 제재의 내용과 규모는 2010년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둘째,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정책꾸러미에는 2010년 이후 일본이 선택한 전략적 경쟁이라는 선택지가 없다. 즉 일본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상대화시키는 동시에 군사적 경쟁에 집중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센카쿠를 둘러 싼 영토갈등이 중일관계의 핵심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실효지배하에 있는 센카쿠를 지켜내야 한다는 명분은 중국과의 대립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에 대한 국내적 합의를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센카쿠와 같이 우선순위가 분명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대립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외교의 최대과제인 북한문제는 중국의 “협력”을 얻어 내지 못하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가 얼마나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지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2010년 일본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얻어 낼 수 있는 최대의 수확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4호(2017년 11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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