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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급변 시나리오 아닌 경협 활성화 대책 필요”
“북 급변 시나리오 아닌 경협 활성화 대책 필요”
  • 이승현 통일뉴스 기자
  • 승인 2018.02.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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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미래 신성장동력·분단위기 극복 원천

커버스토리 1 그럼에도 남북경협이 필요한 이유 - 남북경협의 필요성과 의미 

“북한의 체제 불안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시나리오 대신에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1월 3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대북 전문가들과 만나 의견을 청취한 결과 북의 체제불안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익히 알려진 북한은 통제사회이며, 국가 주도의 배급제가 망가진 지 오래여서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아직 기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평양과 나머지 지방의 소득 격차가 크다는 대북 인식도 팽배해 있다.

박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실제로 북은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를 허용한지 꽤 됐고 지금은 거꾸로 지방에 장마당 사기업 같은 조직이 생겨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정부가 느슨한 형태이지만 세금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주민들이 현재 사용 중인 핸드폰이 280만대가 넘어가고 있는데 없어서 못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그동안 상의에서는 북한 급변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는데, 북한의 시장경제 이행이 시작됐고 지방도시는 전부 다 시장경제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대한상공회의소가 북측 조선상업회의소와 함께 회원단체로 소속돼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를 통해 북한산 물품의 해외 시장 진출 등 중개무역 활성화를 시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조선상업회의소가 발행한 원산지증명을 근거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북한산이라는 원산지증명서를 발행, 한국의 다양한 무역 거래선을 활용해 북한산 물품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중개무역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나아가 북의 산업화 정도가 낮기 때문에 탄소배출권이 많이 남아돌 것이라며 기후협약이 진행되면 북의 탄소배출권도 사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1988년 남북교역이 시작된 이래 주로 일선을 지켜오던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들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관심과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뭘 먹고 살거냐’...30대기업 CEO 7할이 ‘남북경협’ 

대한상의에 앞서 지난해 7월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남북경제교류의 신 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를 제시하면서 북을 상생의 동반자로 대하려는 인식전환을 공개한 바 있다. 

<그림1> 지난해 7월 전경련이 제시한 남북경제교류의 7대 전략과제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당시 ‘전경련 남북경제교류 세미나’에서 “남북한이 상호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제중심의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그 핵심은 ‘북한경제개발은 북한이 주도한다는 원칙 하에서 남북한의 대기업과 주변국이 같이 북한 개발에 참여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주변국의 지지 속에 당국 간 대화가 진전이 되어서 조속한 시일 내에 민간경제 대표단과 북한 당국자와의 만남이 성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전경련 평양 상주사무소 개설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전경련은 북한 경제의 특징에 비추어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진전과 조화, △남북 상호이익, △북한 주도 북한경제개발, △남북한 산업 장점 결합 산업구조 구축, △동북아경제권 형성을 위한 주변국 참여와 지지 확보 등을 남북경제교류의 신 5대 원칙으로 발표했다.

더불어 경제단체 상주사무소 설치와 한반도 서부축 경협루트 확보, 접경지역 경협사업 재개 및 확장 등 7대 전략과제를 별도로 제시했다.

남북경협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강화하고 한국의 고도성장 경험과 지식을 접목하는 개발협력 방식을 제시했지만 그 속내는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아야 하는 남한이나, 시장화나 개혁·개방을 꾀하려는 북한 모두에게 답보상태에 있는 현재의 남북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분단체제’는 대기업에도 질곡 

저성장의 늪에 빠진 자본이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미래 성장동력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저개발 상태의 신규 시장인 북한인 것이다.

30대 그룹의 신임 CEO들이 인터뷰 단계에서 단골로 받는 질문이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겠느냐’는 것이고, 7할 이상이 ‘남북경협’이라고 답변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상황이 아니다.

자본은 스스로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더 이상 분단체제에 ‘기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질곡’이 되어 버린 분단체제를 ‘해체’하려는 것은 자본의 요구에도 충실한 합법칙성에 가깝다.

과거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18개 동구권 국가와 교류하는 북방정책과 남북경협을 처음 시도한 노태우 정부 당시 1인당 GDP 2만2,000 달러의 눈금은 아직도 한 계단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지표를 살펴보자.

2013년 통일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통일이후 20년간 총 4,000조원의 비용이 드는 반면 같은 기간 GDP 증대효과는 비용대비 50%이상 높은 총 6,000조원에 달한다.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은 2015년 통일을 전제로 통일 효과가 단일경제권에 미칠 경우에는 1인당 실질 GDP가 7만 484달러(2050년), 유라시아 경제권까지 확산될 경우에는 9만1,588달러(2050년)으로 세계7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한상의가 최근 남북경협분과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전경련이 지난 2014년부터 ‘통일경제위원회’를 발족해 운영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을 정도이다. \

▲ 전경련은 2015년 7월 15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남북경제교류의 뉴 패러다임과 경제교류 활성화”를 주제로 남북경제교류 세미나를 개최, 박찬호 전경련 전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공=전경련

남북경협에 녹아있는 ‘경제적 편익’과 ‘평화적 편익’ 

물론 남측 자본의 입장에서 북의 시장과 자원 등이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라고 인식된다고 하더라도, 북측에서 볼 때 남의 자본과 기술이 갖는 내재적 속성으로 인해 침략적 성격이 부각된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의 경우 중국 훈춘 물류산업단지가 추후 토지사용권을 매각해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시세차익을 남기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부지이용료가 지나치게 저렴해 동반성장 원칙에는 부합하지 않는 구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앞으로 상생 발전의 원칙이 확립되고 적절한 규제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북측 내륙의 자원개발에 진출하는 기업들에 의한 광물자원의 투기적인 개발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남북경협은 남측 자본과 기업의 입장에서 신성장동력 발굴 및 경쟁력 제고라는 ‘경제적 편익’과 함께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추동하는 ‘평화적 편익’을 동시에 제공하는 사업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원칙이 필요하다.

더불어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위한 투자는 ‘퍼주기’나 소모성 비용이 아니라 통일비용을 줄이고 통일시기를 앞당기는 사전 투자라는 관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2월 ‘남북교류협력 수준에 따른 통일비용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남북 교류·협력이 통일비용을 줄이며, 북한 경제 성장속도가 빨라질수록 통일이 완성되는 시점이 빨라지고 통일비용 역시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인구구조 측면에서 고령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운데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북의 경우 지금부터 10년간이라고 적시함으로써 남북 교류협력을 본격화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난해 11월 평양을 다녀 온 김정태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이사장은 지난 20여 년간 남북경협을 통해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만으로도 북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 자료를 제시해 설명한 바 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도 남북경협 규모는 총액 104억 달러 정도였으며, 남측 경제에 미치는 부가가치 규모만 240억 달러에 달했다. 부가세만 24억달러, 즉 2조 5~6천억원 규모인데,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북측에 쌀·비료로 도와 준 것이 1조 8천억원 정도 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남북경협으로 거둔 세금으로 북을 도와준 것이다.

이런 기조로 2050년까지 남북 경협이 활성화된다면, 거둘 수 있는 세금만 1천조 원이 넘는다. 

당국간 개발협력사업·수익목적 민간 경협 분리 

다른 측면에서 남북경협을 통해 최근 북측이 다양한 경제 개선 조치와 ‘인민생활 향상’에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당국 간 협력 확대는 물론이고 민간의 인도적 지원 등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5.24 대북제재조치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운영 활성화를 비롯해 최근 북측이 지정한 26곳의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화 진전을 비롯한 최근 북한 경제의 여러 가지 특징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남북경협은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당국 간 개발협력 사업과 수익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민간기업의 남북 경협으로 분리·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당국간 협력사업은 남북관계 진전 정도와 북의 수용태도 및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하고, 민간의 남북경협은 ‘고위험, 고수익’의 벤처사업으로 진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남북경협을 발판으로 중국 및 동북아 경제로 진출하는 ‘남북경협 브릿지론’과 북에서 추진 중인 소규모 경제개발구에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방식의 남북경협’도 새로운 경협 모델로 제시했다.

특히 평양이나 남포에 남북경협을 위한 새로운 거점을 구축하고 기존 개성공단과 연결하는 ‘남북경제협력 벨트’ 구상, 그리고 핵심 거점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리원, 해주, 송림, 평성 등 개성-평양·남포 벨트에 위치한 중소규모 도시들도 남북경협의 2차 거점으로 육성해 철도·도로, 항만, 전력 등 인프라 개발협력을 연계해 추진하자는 방안은 기존 남북경협의 거점을 확장하고 파급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25년 남북경협, 최근 10년 급격한 정체 겪어 

남북경협은 지난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그해 10월 ‘남북물자교류에 대한 기본지침’에 따라 시작됐다.

이후 김영삼 정부시기까지 남북경협의 초보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 양·질적 성장을 거듭했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급격한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간의 총 교역규모는 1990년 1,350만 달러에서 2014년 23억4,000만 달러로 174배 이상 확대됐고 교역 건수와 품목도 각각 1,038배, 27배 이상 증가했다. 

<그림2> 1994년부터 2014년까지 남북교역액 현황. 자료=통일부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으로 투자·협력사업이 넓어지면서 북의 대남 무역의존도는 1990년 0.3%에서 2007년 37.9%로 높아졌고 2002년부터는 한국이 중국에 이어 북측의 두 번째 무역대상국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2010년의 5.24대북 제재조치 등으로 남북경협은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금강산관광과 교역, 위탁가공은 전면 중단, 개성공단 사업 등은 신규투자가 금지된 상태이다.

한편, 국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한반도 리스크와 내수 부진 속에 잠재성장률 하락 추이가 이어지고 있다.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7천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북의 천연자원 개발은 물론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도·도로, 항만, 통신, 에너지 등 거대한 인프라 개발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누구도 갖지 못한 상생의 신성장 엔진을 가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남북경협은 또한 근원적 위기인 분단을 극복하는데 불가역적인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36호(2016년 2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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