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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 이철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장
  • 승인 2018.04.0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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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말 노동을 탈바꿈할까?…디지털 기술, 반드시 친 노동자적이지는 않아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기기 위한 IBM의 딥블루 컴퓨터의 능력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놀라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체스 게임을 이기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능한 모든 이동 경로 조합을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의 계산 능력 문제였고, 계산 능력과 관련해서는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에 IBM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수행한 새로운 도전은 왓슨(Watson)이라 불리는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고 체스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되는 퀴즈쇼(Jeopardy!)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퀴즈쇼는 학습, 언어, 연상 등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개방형 게임이다. 2011년까지 인지적 능력은 컴퓨터의 보편적 특성이 전혀 아니었지만, 왓슨은 퀴즈쇼에서 두 명의 세계챔피언을 이길 수 있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현재 기계가 어떻게 계산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정보와 환경에 따라 어떻게 이해하고, 학습하고, 반응할 수 있는가를 명백히 입증한 것이다. 기계는 지능적인 도구로 변모해가고 있다. 요즘 로봇은 음악을 작곡하고, 신문기사를 작성하며, 고등학교 시험을 채점하고, 공예품에 색칠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만약 상황이 이렇다면, 이것은 낮은 수준의 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어쩌면 기술에 의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고차원적인 능력에 해당한다. 과연 이러한 성취들은 좋은 소식의 징조일까?

이 글은 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또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인 디지털 기술(digital technology), 자동화(automation),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화(robotization)가 노동과 일자리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주요한 저서나 논문들은 현재 단계가 전례 없는 방식(즉, 이러한 디지털 기술, 자동화, 로봇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전의 것과는 다르다)으로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낳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글은 브린욜프슨과 맥아피(E. Brynjolfsson and A. McAfee)의 저서 『제2의 기계시대: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The Second Machine Age)』(2014)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러한 예측과 주장이 지나친 과장법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형태, 방향, 결과에 대한 권력 관계의 중요성을 포착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기

찬사를 받고 있는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저서 『제2의 기계시대』(2014)는 사회에서 새롭게 출현하고 각광을 받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진보에 대해 냉철하지만 궁극적으로 희망적인 비전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무인자동차와 3D 프린터와 같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심사숙고하고 이러한 기술이 노동의 미래에 대한 커다란 함의를 강조한다.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많은 일자리들을 없애고 있고, 이는 잠재적으로 고실업과 불평등의 심화를 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발전은 덜 고생스럽고 보다 창조적인 노동, 인간의 자유의 확대라는 풍족한 미래의 가능성을 낳는다. 정치적으로 이 책의 아이디어는 기술 진보가 사회에 어떻게 많은 비용을 부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제공되는 ‘풍요로운 보상’을 활용할 수 있는 개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제2의 기계시대』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연구 분야, 즉 기술적으로 발전한 세계에서 노동과 삶의 미래를 그려보는 문헌의 한 부분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K. Marx)와 케인즈(J. M. Keynes)는 자본주의 하에서 기술의 진보로부터 거대한 전환(이러한 전환이 좋든 나쁘든 간에)을 예상하였다(마르크스, 2008[1867]; Keynes, 1963[1930]). 다른 학자들, 예를 들어 벨(D. Bell)과 토플러(A. Toffler)도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이 초래한 사회적·경제적 변동을 다루었다(벨, 2006[1973]; 토플러, 1990[1970]). 문학 영역에서도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2015[1932])와 보니것(K. Vonnegut)의 『자동 피아노(Player Piano)』(2001[1952])와 같은 작품들은 미래의 기술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관심은 제2의 기계시대(혹은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기술이다. 이들은 연산력에서의 거대하고 지속적인 개선들을 강조하고 이러한 개선들이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부문에서 엄청난 발전의 토대를 어떻게 창출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 로봇이 활용과 응용의 측면에서 제약이 있었던 반면, 현재 로봇은 수많은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되고 응용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저자들이 노동 영역을 전환시키는 디지털 기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들은 디지털 기술의 응용이 노동(양과 크기, 내용과 질)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서로 대립적인 관점(부정적 대 긍정적)을 제시한다.

부정적인 측면

먼저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디지털 기술은 현재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많은 일자리들을 제거할 수도 있다. 육체적인 일자리와 일상적(단순반복적)인 일자리들은 자동화에 가장 취약한 일자리로 남게 되지만 기계가 몇몇의 고임금 일자리들을 포함한 비육체적인 일자리와 비일상적인 일자리를 대체하는 범주의 일자리들도 존재한다. 로봇 공학의 발전은 기계가 지금까지 자동화로부터 생존해왔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은 기계가 숙달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인자동차의 출현으로 인해 택시기사와 트럭운전자가 수행하는 인간적인 과업들은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고 창고 주변의 경로를 탐색할 수 있는 로봇은 공장과 창고의 직공들이 수행하는 인간적인 작업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질병을 진단하고, 언어를 번역하며, 미디어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설계와 확산은 또한 일부 고임금 의사들, 번역가들, 저널리스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디지털 기술의 도래를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연계시킨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실업은 “‘평범한 숙련’을 소유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로부터 기인한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17).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많은 일자리들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에서 불평들을 증가시키거나 확산시키기 시작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승자독식 경제(winner-take-all-economy)’의 전망을 예견하는데, 승자독식 경제에서는 소수 엘리트의 소득, 부, 삶의 기회가 사회의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그리고 많이) 커지게 된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188-206). 이들은 기술변동의 퇴행적인 효과의 증거로서 최근 몇 십 년 동안 선진개발국가들에서 소득불평등의 증가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을 강조한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168-175, 184-187).

긍정적인 측면

다음으로 디지털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을 보자. 저자들은 만약 사회가 어떤 변화나 개혁을 경험하게 된다면, 디지털 기술의 비용을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을 제시한다. 이들이 제시하고 있듯이,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은 사회가 필요로 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물건들에 대해 보다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사회에 의해 예방될 수 있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19-228). 인간은 아이디어 떠올리기(ideation)와 창의성과 같은 독특한 자질(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41-242)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질은 가장 최선의 이용가능한 디지털 기술과 결합될 때 미래에 소비와 노동의 새로운 자원을 창출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사회는 “기존 일자리가 자동화하면서 내쫓긴 사람들의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대량실업을 예방하기 위해 요구되는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31).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새롭게 출현하게 될 고용기회를 알아챌 수 있는 상상력과 기업가적 재능이다. 일자리의 질과 관련해서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미래의 일자리들이 현재의 일자리들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업무를 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창의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일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10). 미래의 좋은 일자리들은 창의적인 작가, 디지털 과학자, 기업가를 포함할 것이다(Brynjolfsson and McAfee, 2015). 손재주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종류의 숙련과 경험에 의존적인 덜 좋은 다른 일자리들(정원사, 돌봄, 가사 등과 같이 항상 고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로봇이 대체하기에 적절치 않은 일자리들)은 적어도 디지털 기술이 그 일자리들을 없애기 전까지는 유지될 수는 있지만, 경제는 ‘새롭고 더 나은’ 양질의 일자리들을 창출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Brynjolfsson and McAfee, 2015). 본질적으로 이러한 결과(새로운 양질의 일자리 창출)는 디지털 기술을 보완하는 방법들을 찾고자 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일어날 것이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경제발전과 사회진보로 나아가는 경로로서 ‘기계(디지털 기술)에 맞서는 대신에 기계와 함께 경쟁하는 사회(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40)’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 귀빈식당에서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7월 6일 주최한 ‘2017 춘계 과학기술 정책토론회’ 모습. 사진출처=미래창조과학부
서울 영등포구 국회 귀빈식당에서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7월 6일 주최한 ‘2017 춘계 과학기술 정책토론회’ 모습. 사진출처=미래창조과학부

풍요의 최대화, 격차의 최소화를 위한 해결책

저자들은 또한 디지털 기술로부터 초래되는 불평등의 증가 또는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해결책들을 권고한다. 위에서 강조했듯이, (양질의) 유급 고용의 새로운 자원들이 미래에 창출될 수 있고 창출될 것이라는 저자들의 관점은 실업과 연계되는 불평등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다 직접적으로 저자들은 더 많은 고용과 더 적은 불평등을 지원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더 많은 이민자(인재)의 수용과 기업가 정신의 고취와 함께 교육과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를 지지한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62-288). 이들은 또한 소득분배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기본소득(basic income)’ 또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의 채택을 포함한 다른 정책들의 장점들을 고려하고 있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290-312).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책은 노동 영역에서의 디지털 기술의 장단점을 강조한다. 비록 이들의 책이 제2의 기계시대의 결과에 대한 결정적인 의견과 결론을 제공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책은 사회가 디지털 기술로부터 유래하는 ‘풍요’를 최대화하고 ‘격차’를 최소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사회,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정책입안자들이 노동과 (보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줄 것을 주장하는 하나의 호소라 할 수 있다.

노동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테제는 흥미롭고 도발적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그 자체가 어떻게 동등하지 않은 권력의 산물이 되는가를 인식하지 못한다. 디지털 기술은 중립적이라기보다는 권력이 노동이 아니라 자본에 속해 있는 조건 하에서 창출되고, 활용되며, 재생산된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디지털 기술이 생산되고,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의미하며, 디지털 기술이 산출하는 결과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대리인들에 의존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의 목적과 결과는 중립적인가?

여기서 형성되는 두 가지 상호 밀접한 지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 지점은 디지털 기술의 목적과 관련된다. 디지털 기술이 자본주의 하에서 발전하는 한, 디지털 기술은 잉여가치 생산의 증가라는 목표를 자기의 주요 목적으로 삼는다. 여기서 ‘잉여가치’라는 개념은 임금으로 보상되지 않고 생산에서 노동자가 창출하는 부가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사실상, 잉여가치는 임금으로 지급되지 않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해당하고, 이 노동시간은 자본주의적 이윤의 원천을 구성한다. 여기서 핵심은 디지털 기술이 잉여가치 추구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만약 디지털 기술이 잉여가치 생산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 기술은 자본에 의해 차단될 것이다. 두 번째 지점은 디지털 기술의 결과와 관련된다. 디지털 기술이 잉여가치의 생산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범위에서, 디지털 기술은 자본가(사용자)에게 긍정적이고(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부정적인(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착취를 촉진하기 위해 활용되거나 활용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은 반드시 친(親)노동자적인 성격을 갖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두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마존(Amazon.com)에서 운영하고 있는 AMT(A- mazon Mechanical Turk) 사례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Bergvall-Kåreborn and Howcroft, 2014). AMT는 기업들이 디지털 노동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크라우드 고용 플랫폼(crowd employment platform)’이다. 이 플랫폼은 기업들이 유급 고용이라는 보다 전통적인 자원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소규모 데이터 처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플랫폼은 이른바 ‘P2P경제(peer-to-peer economy, 공유경제) 또는 긱경제(gig economy)’에서(Friedman, 2014)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AMT와 태스크래빗(TaskRabbit)과 같은 다른 유사한 플랫폼을 포함하여 크라우드소싱을 특별히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의 저서 『제2의 기계시대』를 쓰는데(그래프 작성 및 수정) 태스크래빗을 이용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306-309).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공유경제 기업은 인간 노동의 가치를 줄이기보다는 증가시키는 혁신의 사례”이고, 공유경제의 성장은 정책입안자들이 장려해야 한다(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309).

그러나 AMT(와 여타 유사한 크라우드 고용 플랫폼)은 노동의 질에 대해 명백히 부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Bergvall-Kåreborn and Howcroft, 2014). 그것은 노동자들이 따분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할당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사회보장도 없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 지불을 수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랫폼은 기업들이 정상적인 노동표준을 우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들을 비가시적이고 원격에 위치하게 만듦으로써 기업들이 도덕적 책임성을 경시하게 만드는 일을 초래한다. 이들은 AMT를 “노동력을 포섭하고 배제하기 위해 자본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술로 보고 있다(Bergvall-Kåreborn and Howcroft, 2014: 221).

관례적인 노동 환경 내에서, 사용자들은 잉여가치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용자는 노동자들이 매 순간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녕을 측정하고 모니터링 하는 전자장치를 착용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장치들은 종종 ‘건강’ 프로그램의 일부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과 효과는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증가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과 삶에 대해서 ‘더 행복해지기’ 때문에 발생했다기보다는 작업장 안팎에서 늘어난 감시와 노동시간에 의해 지배를 받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 추구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노동력을 양산할 수 있다(Cederström and Spicer, 2015; Davies, 2015). 실제로 아마존(Amazon.com) 창고에서 디지털 기술은 노동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모니터링 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디지털 테일러리즘(digital Taylorism)’의 결과는 작업장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면, 자본주의 하에서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보다 정확한 방식으로 일하는 데 적합한 정교한 디지털 일정 관리 장치를 사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동일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가며 디지털 기술의 설계와 운영을 어떻게 구체화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디지털 기술은 비정치적인가?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관점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디지털 기술을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인 용어로 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들의 책에는 자본의 권력이라는 용어보다는 컴퓨터의 권력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고 사용될 것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들은 권력 문제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사회에서 ‘불평등의 확산’ 문제를 사고할 때 권력 문제를 인식한다. 그러나 여기서 권력은 거의 디지털 기술의 사후 효과로서만 다루어진다. 이들은 권력이 디지털 기술의 선택과 진화·발전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즉 디지털 기술의 본질적인 정치적 속성과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과장은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 한 과학 잡지는 “인공지능의 거품이 꺼질 것인가?”라고 물었다(New Scientist, 2016.07.16.).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 신경망(ANN: artificial neural networks)은 우리(인간)처럼 ‘배우지 않고’, 인지적인 컴퓨터는 인간과 동일하게 ‘사고하지 않으며’, 신경망은 인간의 ‘신경세포가 아니다.’ 기계의 언어는 목적의식적인 의인화(인격화)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하는 무서운 순간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이러한 컴퓨터 사용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 기업들의 지배와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결과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러한 정치적 질문들은 우리가 목도하기 시작한 로봇 혁명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쉽게 사라져 버리곤 한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 노동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주요 문제는 현대 사회가 기술로부터 얻는 편익을 어떻게 집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한편으로, 기술은 역사적으로 생계 조건을 개선할 수 있었고 생산성 수익을 통한 소득의 증가를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저자들의 주장처럼 제2의 기계시대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르다고 믿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분석이 정확하다면, 이번에는 실제로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노동의 미래를 인간적인 노동으로 탈바꿈하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적 수단들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2호(2017년 8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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