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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인생기행
빛바랜 인생기행
  • 신성은 선임기자
  • 승인 2018.05.2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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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0대, 반환점을 한참 돌아 빛이 바랜 인생
그래서 더 소중한 우리네 기행, 우리의 여행 이야기

아마도 다소 힘겨웠던 것 같다. 그래선지 아직도 기억은 선연하다. 1980년대 학창시절, 교정은 항상 침침했다. 무언가가 항상 어깨를 눌렀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같이했다.

우린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고 대학을 동경했다. 고교시절 지긋지긋한 시험에, 찬란한 청춘과 순수한 열정의 숨가쁜 발산을 기대했다. 그런데 우리를 맞은 대학은 처절했다. 전혀 다른 사실, 그땐 진실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고민, 힘겨운 번민은 우리를 짓눌렀다.

찬란한 청춘은 우리네 시선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엔 독재 대한민국의 엄연한, 참담한 현실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를 감쌌다.

우리의 청춘은 통기타가 어우러진 술집에서, 미팅의 설레는 카페에서 이따금씩 우리를 맞기도 했다.

나의 기억엔 밝고 열렬한 청춘의 기록이 많지 않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우리의 삶은 아쉽지만 종착역으로 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억을 해보면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은 무척 빨랐다. 앞으로도 더 빠르게 갈 것 같다.

우리네 청춘은 너무 거칠게 가버렸고 어느새 우리는 남은 삶을 걱정하고 하루하루 무시무시한 병들의 공세를 무서워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한 친구가 그랬다. “우린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야. 오래 살았잖아”. 난 그때 깜짝놀랬다. 동의하기 싫었다. 하지만 사실이다.  

젊은 시절, 우리의 가슴을 눌렀던 것,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이제는 희미해졌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아주 현실적이다. 물리적이다.

몸은 늙어가고 있다. 분명 힘도 떨어졌다. 의사들은, 한의사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계속 각인시키려 한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선지 요즘 가끔씩 내가 맞는 여행은 무척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 나이에도 설렌다는 것이 다소 그렇지만 말이다. 우리 나이에 여행은 여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데 여행은 언제나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돈에 따른 차이는 절대로 우리네 감성의 차이를 이길 수 없다.

독일 베른린 자그마한 숲에 밀려 자리잡은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
독일 베른린 자그마한 숲에 밀려 자리잡은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

 

나는 이제 남은 시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남은 시간에 우리네 역사가 남겨준 아주 소중한 것들을 좀 더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다시 고전을 읽는다. 그래서 다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어본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들여다 볼 것이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이제 여행은 단순히 뭘 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넘쳐나는 SNS 때문일까! 여행인지 사진을 찍어 날리는 건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그래서 다들 여행을 더 하려고 발버둥 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에게 여행은 정말 소중하다. 많이 느껴진다. 어릴 적 아주 꿈이 많고 감성이 너무 충만했을 때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지금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이곳에 있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것들을 마음속에, 머리속에 남기려고 나도 모르게 노력한다.

나의 여행은, 나의 글쓰기는 이런 나의 느낌이다. 스스로의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다. 무언가를, 나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무슨 아쉬움인지 우리네들과 나누고 싶다. 내 것을 나누고 남의 것을 받고 싶다. 서로를 공유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전엔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도시에 가면 나의 기억속에 그 도시가 그려진다. 그냥 내가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눈이 아주 밝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40대, 50대의 우리는 물리적 나이로는 삶의 반쯤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반환점을 한참 돌았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물리적 나이는, 인생은 빛이 바랐다. 그래서 시간이 더 아쉽다. 빛 바란 인생의 여행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여행으로 만나는 여러가지엔 역사가 있고 철학이 있다. 우리, 아니 인류의 삶이다. 현재이고 과거의 이어짐이다. 미래의 한 켠 일 수 있다. 그래서 나의 느낌이 더욱 강렬해진다.

젊었을 때, 기자였던 때 그리고 비즈니스로 많은 나라를 다녔다. 때론 아주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 나이 들어서 여행은 우리네에겐 아주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의 감성은 더욱 강렬할 수 있다. 지난 시절의 위세에 빼앗긴 청춘의 보답일지 모르겠다.

나의 바람이지만 찬찬히 읽고 느끼고 그리고 누군가가 뭔가를 나에게 애기해줬으면 좋겠다. 난 정말 So cool 했는데 지금은 왠지 바뀌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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