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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 분쟁이 정부 경제노선에 던지는 세 가지 물음
미-중 무역 분쟁이 정부 경제노선에 던지는 세 가지 물음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8.21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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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의 비빌 언덕으로만 볼까?
기재부는 ‘경기회복세’라는 기존 판단을 유지할까?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역량을 보여줄까?

7월 취업자 증가폭이 1년 전보다 겨우 5천명밖에 늘어나지 않았다는 통계청 17일 발표수치를 접하고 나서 정부여당이 분주하다. 당·정·청이 긴급 합동 휴일 회의까지 하는 이벤트까지 벌이면서 내년 일자리 예산을 올해보다 2조원 이상 늘려 22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집권여당 정책위의장은 “앞으로 5년 간 세수가 애초 계획보다 60조원 이상 늘어난다”는 근거 없는 전망을 내세우며 ‘생활친화형(?) 사회간접자본투자 증대’ 등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7일 긴급경제현안간담회를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7일 긴급경제현안간담회를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많은 언론들은 ‘또 돈 퍼부으려 한다’고 야단이다. ‘새로운 게 뭐가 있냐?’는 불만도 쏟아진다. 지금의 고용 참사는 2년 연속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인데도 이에 대한 솔직한 인정도 없이 재정 투입을 늘리려는 데 대한 앙칼진 비판에서부터, ‘이 참에 소득주도성장이란 ’듣보잡‘을 폐기시키자’는 이데올로기 공세까지 반응의 스펙트럼은 다양해 보인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축으로 설정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창출 둔화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울 게 없다’는 점도 그렇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교역 축소, 한국경제의 수출수요 감소 등 부정적인 효과를 전망하면서도 ‘또 돈 퍼부으려 한다’는 무책임한 비난을 쏟아내는 점에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교역 축소에 따른 해외수요가 감소되면, 이를 보완하는 수단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한 국내수요 부양밖에 달리 뭐가 있냐는 생각에서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 부르는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당·정·청의 긴급 주말 회동을 부른 낮은 취업자 증가는 복합적 배경을 깔고 있다. 크게는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 일자리 감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자영업 구조조정 △경기침체라고 규정할 만큼 나빠진 경기 사정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교육서비스업 등의 일자리 감소 등이다. 이 중에서 여러 국책연구기관들이나 학자들의 ‘뜨거운 가슴’은 ‘차가운 이성’을 밀어내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낳는 부정적인 효과를 애써 배제해 왔다.

반면에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낳은 부작용을 인정하는 모습과 행동을 보인지 오래다. 상당한 반발 속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을 올해보다 4%포인트 가까이 낮추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면서, 대신에 근로장려세제(EITC) 적용대상 자격의 상당폭 완화와 제공혜택 확대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말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8월에도 현재의 경기 상태가 9개월째 회복세라는 판단을 여전히 유지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이 애초 3.0%에서 2.9%로 낮아졌는데도 그렇다(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179).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하면서 ‘고용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표명하고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해도 이건 넌센스다.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재정은 적극적 경기대응의 역할보다는 소극적 역할을 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경기회복세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은 양립가능한가?

이런 모순과 역설의 이유는, 결국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후유증에서 찾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청와대나 기획재정부나 ‘경기 회복세’라는 판단을 뒤집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다. 이 판단이 뒤집히면 가뜩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혐의가 갈 위험성을 서로가 경계하지 않을까 싶다.

하기야 이런 모순은 고용 참사를 사과하면서 ‘지금부터 향후 5년 간 60조원의 세수가 더 걷힌다’는 걸 근거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집권여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경기는 회복세가 유지되면서 성장을 하고 세수는 애초 세입예산보다 점점 더 느는데 고용 창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돈을 더 풀어 고용을 늘리겠다‘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세입예산을 웃도는 초과세수가 발생해온 사례를 분석하면, ‘고용 창출이 없는데 세수가 늘어나는’ 경로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정부여당의 핀셋증세가 적용되는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이 크게 증가하면서 소득세수가 늘거나,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강화해 세수가 늘어나거나, 국내수요와 해외수요가 좋아져 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증가해 법인세수가 늘거나, 박근혜 정부처럼 부동산시장이 커지면서 양도세와 취득세, 보유세 등이 크게 늘어나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집권 초기에 정부여당은 낙관적 초과세수 전망에 기대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런 근거 없는 낙관은 집권 1년3개월이 넘도록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불요불급한 SOC 투자 축소’라는 계획이 ‘생활친화형 SOC'라는 듣보잡 용어의 등장을 배경으로 번복됐다는 것 정도다. ‘우리는 경기회복세에 있다’는 판단이 바뀌지 않는 한 낙관이 몽상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몽상을 꿈꾸는 사이에 국민부담률을 기준으로 형평에 맞는 조세체계를 설계하면서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혁신과 사회적 대타협은 물 건너가기 쉽다.

지금이야말로 국내수요 부양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 필요

경기회복세라는 규정과 신규 고용창출 둔화 속에서 그동안의 재정지출은 공공서비스와 규제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아래 표를 보면, 올해 5~7월 신규 상용근로자의 74~77%가 보건·복지, 공공행정, 금융·보험, 정보통신 등에서 창출됐다. 정부 입김이 깊숙이 작용하는 분야들이다.

표-2018년 5월 산업별 취업자 증가 수와 증가율 (전년 동월 대비, 단위: 만명)*6월과 7월 전체 취업자 증가에는 5월 감소였던 전문과학및기술서비스업 각 2.1만명, 0.4만명 포함
표-2018년 5월 산업별 취업자 증가 수와 증가율 (전년 동월 대비, 단위: 만명)
*6월과 7월 전체 취업자 증가에는 5월 감소였던 전문과학및기술서비스업 각 2.1만명, 0.4만명 포함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 가능성 속에서 지금까지 위태롭게 유지돼온 이런 모순적 결합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경기대응적 재정의 적극적 역할만이 유일하다. 이는 결국 공공서비스와 규제산업 분야의 신규 일자리 창출에 더 집중으로 이어진다. 늘어나는 재정 부담과 함께, 공공서비스 분야의 임금과 인사체계를 연공주의에서 직무주의로 혁신해야 할 필요와 요구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생활친화형’ SOC 투자라는 이름으로 미뤄졌던 도로와 철도 건설 등을 통한 건설업과 철강업 부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와 함께, 실업급여와 사회복지 지출 등 자동적인 경기대응적 재정지출도 지금보다 크게 증가할 수도 있다. 어쩌면, 기획재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라는 국가채무비율을 웃도는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

경기 둔화 속에서 공정성장과 혁신성장은 더 절실하게 중요해진다. 공정성장이 돼야 국가 재정지출로만 떠받치고 있는 중소상공인의 지급여력이 최소한이나마 갖춰질 수 있다. 정부 재정이 떠받치는 전례 없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선 공정성장과 혁신성장, 후 소득주도성장의 노선을 가는 것이 맞았을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왕창 꼬여버린 모양새다. 아마도 한국경제의 앞날은, 미-중 무역분쟁이 불을 붙은 이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신규투자를 늘려서 몇 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식의 익숙한 과거를 되풀이하는 기업들의 발표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투기 사태는 ‘규제 샌드박스’가 없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사전규제조차 없는 데서 비롯했음을 잊지 않는 기억력이 필요하다. 공정성장과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지야말로 이 국가에 진정한 혁신의 역량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늠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잠재성장률은 수요와 무관하게 오로지 기술과 인구 등 공급 측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의 교조주의가 만들고 있는 프레임 전쟁 역시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엔 최근 악화한 신규고용 창출 둔화의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삽질에서 찾는 듯한 어느 집권여당 당대표 후보의 시야는 너무 좁고 정쟁적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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