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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확장적 재정지출'이 맞다
이번에는 '확장적 재정지출'이 맞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8.29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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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예산 축소 통한 '조삼모사'식 재정지출 가능성 사라져
장밋빛 세수전망, '재정 보수주의'와 본격적인 논쟁 예고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뤄진 '2019 예산안' 사전브리핑의 모습 - 기획재정부 제공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뤄진 '2019 예산안' 사전브리핑의 모습 - 기획재정부 제공

예고한 대로 정부는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내년 예산안을 28일 확정해 발표했다. 예산 총지출은 올해보다 9.7%(41조7천억원) 늘린 470조5천억원이다. 정부가 밝힌 내년 경상성장률(명목 경제성장률) 전망치 4.4%의 두 배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고, 글로벌 대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빼면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내년 예산은 아래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과 경제활력 제고, 소득분배 개선과 사회안전망 확충, 국민 삶의 질 개선에 중점 편성했다.

정부가 확정한 ‘2018~2022년 국가재정중기운용계획’을 보면 재정지출 규모는 2020년엔 504조 6천억원, 2021년엔 535조 9천억원, 2022년엔 567조 6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돼 있다. 5년 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7.3%로 지난해 중기재정운용계획의 5.8%보다 크게 높아졌다.

경기대응적 재정지출 확대가 아니라고 내세우는 이유

재정지출 규모를 크게 확대한 이유에 대해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경제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의 편익이 국가에 좋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성장률 전망 하향조정, 취업자 증가폭 급감, 소득격차 확대,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등 경기 둔화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세에 있다는 기존 판단을 유지하면서 재정지출 확대를 옹호한 것이다. 세수 호조로 인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듣기에 따라 경제부총리의 이런 발언은 여러 가지 방식의 반발을 부를 성싶다. 이를테면 ‘세수 호조가 없었으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가 어느 정도 늘어나더라도 저소득층을 위한 공적 이전지출 확대,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지출 확대, 사회안전망 강화 등에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냐?’는 논박이 가능하다. ‘이런 게 ‘경기대응적’(counter cyclical) 재정지출 확장이 아니고 뭐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경기 둔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저소득층이고, 경기둔화 시기야말로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한 국가의 의식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물음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이야말로 진짜 ‘확장적 재정지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그동안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의 실상은 일종의 시늉에 가까웠다. ‘기재부의 의도성이 강한 보수적 세입 예산편성 → 예산을 웃도는 막대한 초과세수 발생 → 일부 초과세수 등을 이용한 추경 편성’이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재정지출 확대 시늉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기재부의 꼼수=보수적 세입예산 편성이 사라지다

하지만 이번 세입예산안에 담긴 확장적 재정지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엉터리 세수 추계에 바탕한 보수적 예산 편성이라는 거품이 사라지면서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중의 상승으로 언제든 이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본격적인 국가채무 논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정부의 빚과 가계의 빚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재정 보수주의’가 시장 만능주의와 결합해 급부상할 위험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정지출 확대 ‘시늉’의 시발점은 세입예산안의 의도적 축소였다. 지난해 세입예산(추경 기준)보다 늘어난 초과세수는 14조3천억원 많은 265조4천억원이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올해 상정한 세입예산안은 268조2천억원이었다. 지난해 실제 세수보다 겨우 1.1%(2조8천억원)밖에 안 늘려 잡은 것이다. 실제 세수 추정이 늦어도 6월에는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축소 편성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실질 경제성장률을 3%로 설정하면서 세입 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더 밑돌게 잡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게다가, 성장률의 정체 속에서도 초과세수가 계속 발생했다는 점도 의도적인 세입예산 축소 편성을 뒷받침한다. 국세 초과세수는 2015년부터 이어졌는데, 2조2천억원 수준에서 2016년 9조8천억원으로 늘어났다가 2017년에는 애초 세입예산 기준으로 23조6천억원이나 됐다. 세수오차율(국세수입 전망과 실제 국세수입 차이)가 점점 더 벌어져온 것이다. 이는 재정 지출의 ‘조삼모사’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었다.

내년 세입예산안에서는 이런 농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국세 세입예산을 299조3천억원으로 잡았다. 올해 284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국세 수입보다 5.4% 늘린 것이다. 의도적인 축소 편성을 배제한 것이다. 올해 국세 수입 예산은 268조1천억원인데, 상반기 동안 58.6%인 157조2천억원이 걷혔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19조3천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국세 수입은 예산안보다 15~16조원 늘어난 284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나치게 낙관적 세수 전망, ‘재정 보수주의’의 반발 부를 위험성

문제는 기재부가 이런 낙관적 세수 전망을 2020년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국세 수입은 각각 13조4천억원, 2022년에는 14조6천억원으로 증가하는 걸로 돼 있다. 연평균 6.1%씩 증가하는 꼴이다. 2021년부터 세수 불확실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세수 전망은 장밋빛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나치게 낙관적인 세수 전망은 재정 보수주의자들의 비빌 언덕이 된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별로 안 늘어난다고 하는데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가 어느 정도 높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확장적 재정지출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비전과 판단이 자리할 지점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세수전망을 갖다 놓는 것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수 증가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측면에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세수 전망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법인세수 증가는 삼성전자나 에스케이하이닉스 등 일부 극소수 대기업의 엄청난 영업이익에 기댄다는 점,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기는커녕 틈만 나면 머리를 쳐들면서 양도세․취득세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지난 10여년 동안 100조원이 넘는 재원이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찔끔찔끔 투입됐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필요한 곳에 제때 충분한 재원을 넉넉히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세입예산 편성과 재정지출 확대 시늉은 재정정책에서 이걸 가로막아온 기재부의 ‘꼼수’였다. 이번 예산안에서 그것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커다란 개선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재정 보수주의’와의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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