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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사익편취 규제 개정안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 의 한계
공정위 사익편취 규제 개정안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 의 한계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8.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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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만으로 빠져나가면? 총수일가 지분만 있어도 공정위 자동조사권 발동으로 바꿔야

 

공정거래위원회 로고

뭔가를 정의(definition)하는 것은 뭔가를 배제하기 마련이다. 규제를 적용함에 있어 대상을 확정할 때가 특히 그렇다. ‘구멍’(loophole)이라 불리는 틈새가 그렇게 해서 생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입법 예고한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개정안 가운데 총수(정확하게는 ‘동일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부분이 그렇다. 개정안이 한 ‘구멍’은 틀어막을 수는 있겠지만 다른 구멍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빛을 보면 좋겠지만, 국회라는 시․공간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소우주’인 터라 낙관하기가 어렵다. 콩을 넣으면 메주나 간장, 된장이 나와야 하는데, 고추장이나 ‘고간장’(고추장+간장), ‘고된장’(고추장+된장)이 나오는 곳이 국회임을 자주 봐왔던 터였다. 온갖 황당한 궤변과 기상천외한 반대 논리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에서 총수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축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규모 △이 기업집단과 거래하는 기업에서 동일인이 보유한 지분의 크기다.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대기업집단이 동일인이 30%(상장·등록사), 20%(비상장·등록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과 거래하면 발동되는 게 뼈대를 이룬다. 개정안은 기업집단의 규모를 건드리지 않았다. 자산 5조원 미만의 중소 기업집단은 빠져나간다. 이번에 건드린 것은 동일인의 지분 크기다. 상장·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동일인이 보유한 지분의 크기를 20% 이상으로 통일하고, 이들 기업의 자회사(지분 50% 이상)도 대상으로 추가했다.

지분 20% 이상 강화 시 대상기업 231개에서 607개로 367개 늘어나

지난 27일 입법 예고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내용
지난 27일 입법 예고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내용

이것만으로도 예상되는 효과는 상당하다. 공정위가 지난 27일 발표한 ‘2018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을 보면, 적용 대상이 231개(동일인 평균 지분 52.4%)에서 607개로 376개나 늘어난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229). 상장·등록사여도 30% 미만의 지분으로 빠져나가는 곳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이노션, 현대글로비스,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HDC아이콘트롤스, 태영건설, SK D&D, 한화, 유니드 등 19개 집단 27개사였다. 동일인 지분이 20% 이상인 기업의 자회사는 47개 집단 소속 349개 회사나 됐다. 이 중 100% 완전 자회사는 220개였다.

이런 엄청난 공백은 반드시 메워야 한다. 하지만 아예 거론조차 않는, 어쩌면 근본에서 더 중요한 공백이 있다. 먼저, 동일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의 크기를 가지고 사익편취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문제라는 점이다. 개정안 이전에 30% 미만으로 빠져나가는 행태가 만연했던 현실에 비춰볼 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동일인의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춰 규제를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행태가 다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게 현실적인 문제다.

'지분 20% 미만' 미꾸라지 규제 회피 현실화는 시간문제

논리적인 문제는 이렇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하나 이상으로 기업으로 이뤄지는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개인(동일인일가 포함)이나 이 개인이 지배하는 기업’을 말한다. 창업자일가라고 불러야 할 ‘총수일가’는 이 동일인이 자연인인 개인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렇게 기업집단과 동일인이라는 개념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인으로서 동일인(과 동일인일가)의 지분이 20% 미만인 회사가 이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과 거래하는 것 자체가 사익편취에 해당될 수 있다. 논리적으로 20% 미만이 사익편취 배제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집단 내부에서 효율적이고 원활한 자원 배분의 필요성으로 인해 하나 이상의 기업이 필요해질 수 있다. 이것은 기업집단이라는 존재 자체가 창출하는 필요성, 달리 말하면 '긍정적인 외부성'(positive externality)이다. 이 긍정적 외부성이 사업상의 기회로 현실화해 기업이라는 형태로 육화한다면, 이 기업은 기업집단의 공동기업이 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형태상으로는 법인 형태의 동일인과 관련 계열사 법인들의 공동 출자가 될 것이다.

이때 자연인으로서 개인인 동일인의 출자가 허용된다면 반드시 사익편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집단 내부적으로 공동으로 창출된 사업상의 기회와 이것이 창출하는 이익의 일부가 그 많고 적음을 떠나 개인에 귀속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속되는 이익이 기업집단 자체를 승계하는 자금으로 활용되는 현실에 비춰보면, 동일인(동일인일가) 개인의 지분은 원천 금지해야 하고, 이들은 기업집단 자체의 이익 증가라는 형태로 간접적으로만 이익을 누리는 게 바람직하다.

동일인 지분의 존재 자체가 사익편취의 가능성 제공

이런 논리에서 보면, ‘동일인 지분 20% 미만’이라는 기준 자체가 커다란 ‘구멍’이다. 바른 처방은 동일인 지분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시행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동일인(동일인일가)의 지분이 단 한 주라도 있는 기업이 기업집단과 거래할 경우, 공정위와 중소기업청의 자동조사권을 발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만 공정위가 고심하면서 2017년 1월 발표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규정 가이드라인’도 빛을 발휘한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공정위는 기업집단 내부적으로 창출된 긍정적 외부성, 기업집단 소속이 아닌 다른 기업의 사업상 기회 침해 방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규제 적용 예외 사례를 자세히 설명했다. 예를 들어, ‘기업집단 내부적으로 필요한 사업상의 효율성 증대’의 경우에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 △기업집단 소속이 아닌 다른 회사와의 거래로는 실현할 수 없음을 입증 등의 조건을 달았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가 아니려면 해당 연도 상품·용역의 거래 총액이 200억 미만이거나, 동시에 정상가격과의 거래조건 차이가 7% 미만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려면 해당 연도 거래 총액이 200억 원 미만이고, 거래 상대방 평균 매출액의 12% 미만을 동시에 만족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총수일가 단 한 주만 있어도 공정위 자동조사권 발동 필요

‘동일인 지분 20% 미만’ 이외에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이라는 기준이 낳는 배제로 인해 발생하는 틈새도 무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증가한 기업집단의 90%가 독립기업이 거버넌스를 바꿔 기업집단이 됐다는 점에서 충분한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기업집단 비중 확대의 특징과 거시경제적 함의’(한국개발연구원, 2016)를 보면, 상용근로자 50인 이상 기업 중 기업집단 소속 비중은 2008년 38%에서 2014년 48%로 10%포인트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연평균 기업집단이 145.5개 늘었는데, 90%가 독립기업의 거버넌스 변경을 통한 것이고, 독립기업이 거버넌스를 바꿔 기업집단으로 이동한 경우의 75%는 자회사를 설립 또는 취득하는 형태였다. 이런 중소 기업집단의 증가 배경으로 ‘피터팬 신드롬’(중소기업 졸업에 따른 각종 면세·지원 혜택 상실과 새로운 규제 부과 등으로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현상)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대기업 총수일가를 본뜬 새끼 동일인(동일인일가)의 사익편취가 심각할 수 있음은 심심찮게 드러나는 상식 이하의 ‘갑질’ 사례들에서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이번 국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내용 한계 안에서 서로 치고받는 모습을 보여주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 한 명만이라도 지난 대통령선거 때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제시했던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소속 정당이 다르다고 애써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 기억력은 있을 것이다. 그는 ‘총수일가가 단 한 주라도 갖고 있는 기업은 기업집단과 거래를 금지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센세이셔널리즘을 노린 거친 제안의 성격을 지닌다. 그럼에도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과 거래하는 기업에 해당 동일인이 얼마나 지분을 갖고 있느냐는 곁가지’라는 통찰만은 분명하다. ‘지분 20% 미만’을 없애고 ‘동일인이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과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거래 시 자동조사권을 발동한다’는 공정거래법 개정 수정안이 제안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지분 20% 미만을 이용한 미꾸라지 사례들이 등장하기 전에 국회에서 이런 논의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희망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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