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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추구하는 ‘친기업’과 ‘친서민’의 묘한 결합
트럼프가 추구하는 ‘친기업’과 ‘친서민’의 묘한 결합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9.0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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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와 일자리법, 금리 인상 중단 요구가 함축하는 11월 중간선거 승리의 방정식
지난 8월27일 미국-멕시코 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개정 협상 타결 직후 회견하는 모습 - 백악관 홈페이지
지난 8월27일 타결된 미국-멕시코 간 나프타 개정협상 직후 기자회견 모습  - 백악관 홈페이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수단은 다르다. 트럼프 정부는 감세를, 문재인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내세운다. 물론 내용은 많이 다르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포함해 기업 감세를 통한 투자 확충이라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트레이드마크를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 규제 완화 기치를 높이 내걸기는 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어온 비과세 감면 기조와 법인세 인상을 기조로 하는 문재인 정부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트럼프가 동원하는 감세 정책의 한 축이 바로 근로장려세제(EITC)이고, 문재인 정부도 최근 이 제도의 대폭 강화를 발표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이 부분이다. 트럼프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 속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글로벌화로 인해 피해를 본 하층 백인 노동자 등 서민층의 지지를 얻고 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전통적인 공화당의 감세 노선만으로는 자신의 지지층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 친기업 편향으로 비판받고 있는 지난해 12월 제정된 ‘감세와일자리법’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 그리고 연준을 향한 트럼프의 금리 인상 중단 요구가 함축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11월 중선선거의 승리를 위해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지지층은 물론 선거 판세를 뒤집게 한 하층 서민들의 지지를 결합하는 방정식을 다시 한 번 쓰고 있다는 얘기다.

‘감세와일자리법’에 대한 민주당 비판이 갖는 한계

감세와일자리법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세금을 낮추는 내용도 포함한다. 민주당 의원들의 전원 거부 속에서 공화당만으로 통과된 애초 법안은 기업 감세는 영구적으로, 개인 감세는 2027년 종료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4월 개인 감세까지 영구적으로 만드는 법안을 발의했다. 감세의 제2라운드를 개인 감세의 영구화로 잡은 것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14%포인트나 낮춘 감세와일자리법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이뤄졌던 기업 감세가 생산성을 높이거나 실질임금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고, 상위 1%의 부유층만 살찌웠다는 점에 집중된다. 레이건 정부 때 봤던 것처럼 기업 감세는 결국 재정적자만 늘리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분명히 타당하고 정확한 비판이다.

소득분위별 총소득 대비 비중과 감세 혜택에서 차지하는 비중
소득분위별 소득비중과 감세 혜택 비중 - EPI, 2018년 4월

하지만 개인 감세로 들어가면 약간 복잡해진다. 감세와일자리법이 소득 불평등을 일부 악화시키는 건 사실이다. 미국의 리버럴 싱크탱크에 속하는 경제정책연구소(EPI)의 계산을 보면, 하위 40%(연 4만8600달러 미만의 소득계층)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1%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감세를 100으로 놓고 볼 때 하위 40%에 돌아가는 감세 혜택은 6.5%밖에 안 된다. 하위 40~95%층(연 4만8600달러 이상~30만7900달러 미만)의 경우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7%, 감세 혜택 비중은 54.8%로 격차가 조금 난다(세부적으로 40~80%층의 두 비율은 34.9%, 31.6%, 80~95%층은 23.8%, 23.2%이다). 이에 비해 상위 5%층의 두 비율은 28.6%, 40.3%이다. 감세 혜택의 압도적 비중이 이 계층에 쏠려있는 것이다.

부자 감세는 맞는데, 서민층 면세가구도 수백만명 늘어

이 정도라면 상위 5%만을 위한 부유층 감세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악화한다는 비판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도시연구소와 브루킹스연구소의 공동 운영하고 있는 조세정책센터에 따르면, 45.8%의 ‘조세단위’(tax unit)가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거나 근로장려세제의 지원을 받는다. 감세와일자리법에 포함된 표준소득 공제 확대, 자녀당 근로장려금 2배 인상 등으로 수백만 가구가 면세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연방소득세에서 차지하는 상위 1%의 비중이 2017년 38%에서 올해 43.3%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킴에도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근거로 공화당의 감세가 세법을 더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까지 나온다.

감세와일자리법이 주택시장과 맞물려 낳는 효과도 그리 단순하지 않다. 최근 1년6개월 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단기금리 인상은 장기금리의 상승을 불러왔다. 10년 만기 재무부채권 금리는 8월 말 2.8%를 조금 웃돌고 있다. 1년 전보다 0.6%포인트 올랐다. 덩달아 모기지(주택저당채권) 금리도 올랐다. 4.2%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가 상승했다. 모기지 금리의 상승은 주택시장의 둔화를 낳았다. 기존 주택판매 건수가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505만 채를 정점으로 해서 올해 7월 475만 채로 줄었다. 신규 주택 착수 건수도 지난 7월까지 3개월 동안 연평균 121만5천 채로 지난해 같은 기간은 131만7천 채보다 1.4% 감소했다.

연준을 향한 트럼프의 금리 인상 중단 요구의 노림수

모기지 금리의 상승은 서민층 가구의 주택비용(지대)의 상승을 낳는다. 주택비용은 미국 저소득 가구와 중간소득의 지출에서 단일 지출 항목으로는 가장 크다. 연준을 향해 트럼프가 금리 인상 중단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이 위안화에 대한 달러 강세를 가져와 중국에 대한 무역보복 압력을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미국 서민층에 대한 트럼프의 전략적 접근의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연준의 행태에 비춰보면, 감세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고 보고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트럼프의 요구는 ‘오바마를 이롭게 한 연준이 서민층의 주택비용을 높이려 한다’는 선동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연준은 여전히 민주당과 월가의 편’이라는 공세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트럼프의 대중국 보복관세 부과는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중국내 미국 기업들을 겨냥하는 측면도 있다. ‘관세 부과 당할래?, 아니면 미국으로 복귀할래?’ 라는 식의 선택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 등 관세를 부과당하지 않는 인근 국가로 가버리면 소용이 없겠지만, 트럼프가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해외 미국 기업들을 다시 미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감세와일자리법에 담긴 법인세율 14%포인트 인하를 포함한 기업 감세 내용이 이전의 기업 감세와 견줘 갖는 차별성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에 임하는 트럼프의 정치경제학의 방정식은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꽤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는 친기업적 글로벌화의 모순을 폭발시킴과 함께 글로벌화를 부정하지 않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하는 딜렘마를 안고 있다. 아직까지는 친기업과 친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모순적 결합을 그럴 듯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해볼 수 있다. 이제 겨우 전열을 갖추기 시작한 미국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이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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