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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원내대표에게 - “출산주도성장? 그게 복지예요. 소득 증가 통해 성장으로 이어지는”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 “출산주도성장? 그게 복지예요. 소득 증가 통해 성장으로 이어지는”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9.0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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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에 여전한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
지난 9월4일 국회에서 재계 단체 회장을 만나는 모습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지난 9월4일 국회에서 재계 단체 회장을 만나는 모습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자신만만해 보였다. 연설하는 내내 여유가 엿보였다. 몇 개월 전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의 ‘죽 쑤기’가 우리의 꽃놀이패가 아니라는 말은 입발림일 뿐임을 그의 얼굴은 감추지 못했다. ‘물에 빠진 개를 구한 뒤에는 반드시 개패듯 때려야 한다’는 중국 문학가 루쉰의 말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라는 말은 ‘이제 자유한국당의 시간’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개혁을 위한 세심한 협치를 소홀히 하면서, 그의 말마따나 혼자 똥볼 차는 “대통령 정치”로 흘려보낸 시간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9월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유한국당은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이 아니라 분배론이라고 했다. 성장과 분배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자유한국당의 적폐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신에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지금부터라도 노동력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성장을 꾀하자는 소리처럼 들린다. 내용을 살펴봤다.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명이 될 때까지 출산장려금 2천만원, 성년에 이르기까지 20년 간 월 33만원씩 수당 1억원을 지급하자고 한다. 필요한 재원은 20년 간 연평균 18조원이다.

뭐라고 하든 이것은 복지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기반 복지’다. 아이들이 버젓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커갈 수 있도록 출발선과 기회를 되도록 균등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수당으로 줄 수도 있고 적립계좌를 설정해줄 수도 있다. 적립 방식은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자산을 형성해주는 방식이다. 영국 노동당은 2002년 9월 후자의 형태로 아동신탁기금(Child Trust Fund)을 창설했다. 복지는 시장소득을 보완하는 2차적 분배고, 분배의 개선은 가구소득의 증가로, 소득의 증가는 소비의 증가로, 소비의 증가는 결국 성장의 촉진으로 이어진다. 그가 만들어낸 출산주도성장은 결국 소득주도성장인 것이다.

간만에 김 원내대표가 참 좋은 제안을 했다. 정부와 여당이 발전시켜서 수용하면 된다. 물론 가공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아동수당 형태로 지급하면 부모가 홀라당 써버리는 문제가 남는다. 아이들의 미래자산으로 쌓이도록 적립형태로 만드는 게 좋다. 우리도 한국판 아동신탁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출산장려금 2천만원과 함께, 현재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적립해주면 된다. 반씩 나눠 일부는 적립하고 일부는 부모가 처분할 수 있게 해도 좋다. 적립계좌는 성년 때까지 인출을 제한해서, 인생 1모작을 시작하는 교육, 주거 등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영국 노동당처럼 출발선과 기회의 균등을 위해 자산소득의 차이에 따라 저소득 가구에 더 많이 적립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가 아니라 사회 자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출산율 하락은 막아야 한다. 지금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고 한다. 지난해 출산율은 1.05명까지 떨어졌다.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력 공급을 늘려 성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자는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성장(정확히는 잠재성장률)을 오로지 기술이나 인구 등과 같은 공급 측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발상이 깔려 있다. 수요의 부진으로 실제 성장률이 하락하면 잠재성장률도 하락한다는 경험적 증거는 수두룩하다.

지금의 성장 둔화는 공급 측 요인인 출산율 저하와는 관련이 없다. 이런 주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지금의 취업자 증가폭 둔화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는 전혀 관계없고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취업자가 줄어드는 것은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지 모집단인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다.

너무 급격하지만 않다면 인구가 주는 것 자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기대수명의 연장과 고령화의 속도만큼 퇴직 시기가 늦어지기만 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민간기업에서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면 퇴직해야 하는 현실은 이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만이 예외다. 이걸 바꿔줘야 한다.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누적적으로 올라가는 임금 곡선을 완만하게 해주는 것도 퇴직 연령이 늦어지기 위한 주요한 환경의 하나다. 김 원내대표가 제안한 공공부문 혁신도 이 지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공공부문에서 연공주의를 혁신하면, 이는 민간부문으로 파급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지나친 출산율 저하를 막는 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려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의 단축이 꼭 필요하다. 기업의 지급능력이 근로시간 단축에도 이전의 임금 수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줄어드는 임금은 각종 사회임금의 강화, 곧 복지 강화를 통해 푸는 게 정답이다. 의무교육 확대를 통한 교육비 절감, 근로장려금의 확대․강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역시 소득주도성장의 정책수단들에 속한다. 김 원내대표처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노동시간 단축까지 버무려서 싸잡아 비판할 일이 아니다.

정부․여당은 김 원내대표의 좋은 제안을 통 크게 받아주면 된다. ‘붉은 깃발을 뽑아내자!’는 저급한 선동에 대해서는 발끈하지 말고 웃어넘겨주면 될 일이다. 뭘 반성했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는 자유한국당의 ‘준동’과 다가오는 국회의 시간에 임하는 태도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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