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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대 도시, 시카고의 어두운 민낯
미국의 3대 도시, 시카고의 어두운 민낯
  • 허유진 미국 통신원
  • 승인 2018.09.05 14: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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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 미시건 호수가 한가득 펼쳐진 곳, 우아함을 자랑하는 다양한 초고층 건물들로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에게 사랑받는 건축의 메카, 미국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시카고 미술관을 비롯하여 재즈와 뮤지컬로 즐길 거리가 가득한 문화의 고장.

그러나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시카고 남·서부지역에 매일 같이 일어나는 갱들의 총격 사건, 같은 시카고 내에 존재하는 빈부 차이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시카고의 생생한 자화상이다.

미시건 호수와 시카고의 초고층 건물들
미시건 호수와 시카고의 초고층 건물들

끊이지 않는 총격 사건, 남부 주민들의 두려운 삶

8월 3일에서 6일 사이 시카고에서 여러 건의 총격 사고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해서 12명이 죽고 50여 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원인은 갱단들 간의 총싸움으로 추정되며 이날 시민들을 방패막이 삼아 총격전을 벌이는 갱들의 총격전에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남부 지역에서 14세 소년이 길에서 총에 맞았고, 운전 중인 한 남성이 날아오는 총알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시카고에서는 갱단 간 갈등으로 인해 총격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이는 마치 교전지역을 방불케 하며 누가 총에 맞는지는 고려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희생자를 내고 있다.

특히 이런 총격 사고 대다수는 남·서부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일어난다. 안타까운 것은 시카고 빈곤층과 흑인들 역시 남·서부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어 아이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총격 사고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참고로 올해 들어 시카고에서 일어난 1천700여 건의 총격 사건 대다수가 시카고 남·서부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런 사실은 빈곤 지역에 편중된 시카고 총격 사고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세상 - 시카고 북부 vs 남·서부

이처럼 시카고는 일자리와 부가 몰려있는 부유한 북부지역과 흑인과 빈곤층이 사는 남·서부지역을 경계로 소득과 인종이 분리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일 시카고 시민 수백 명이 시카고 북부를 행진하며 남부 지방의 총기 문제와 빈곤문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날 시위대는 "하나의 시카고"를 외치며 도심에서부터 프로야구 경기장인 리글리필드까지 5km를 행진했다. 체포될 각오로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그들은 빈곤과 총격 사건이 끊이지 않는 남부지역의 현실을 지적하며 일자리 마련과 총기 사고 없는 안전한 사회 호소했다.

이날 시카고 그랜트 파크는 미국 최대의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가 개막되었는데, 시위 측은 “비싼 입장권을 살 수 없는 남부의 시민들을 위해 공연을 거부해 달라”라고 요청했으나 거부 당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시카고 시민단체와 수천 명의 시민들이 도심을 지나는 94번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평화의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날 2.4km를 행진하며 시카고의 주지사와 시장을 향해 구체적 대안과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외쳤다. 그들이 이날 94번 고속도로를 행진 장소로 택한 이유는 1960년대 초반에 건설된 이 도로가 당시 시카고의 부유한 백인층 주택가와 흑인이 살던 공공 임대주택가를 나누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날 경찰은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행진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며 도로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부 체포하겠다고 했으나, 집회 참여자들과 평화적 시위를 약속하고 행진을 허용했다.

시카고의 화려한 도심
시카고의 화려한 도심

갱들의 도시, 시카고

어째서 시카고에는 매일 갱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 일상화 되었을까. 시카고가 갱들의 도시가 된 이유는 1919년 미국에서 시행된 금주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방국가 특성상 모든 주에서 이 법이 실시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불법행위가 되었다. 물론 사회 지배층들은 제한적으로 만들어지는 술을 매우 비싸게 마실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시카고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갱단들이 밀주산업에 대거 뛰어들었다.

특히 이탈리아계 이민자들과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시카고 범죄 조직에 진출하여 규모 있는 갱단을 형성했다. 이는 미국의 수많은 백인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일자리가 부족했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고달픈 처지,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 이주하여 앵글로색슨족과 같은 백인계 이민자 사이에서 '하얀 깜둥이'로 차별을 받았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설움과 분노에 기인한다. 따라서 두 나라 이민자들은 범죄조직으로 대거 진출하여 아일랜드의 갱과 이탈리아계 마피아 간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당시 시카고에서는 밀주 산업의 이권을 위해 아일랜드계 갱단과 이탈리아계 마피아 간 주도권 싸움이 이루어지는 갱단의 춘추 전국시대가 열린다. 이때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가 일인자를 차지하며 밀주·도박산업을 통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고 경찰, 검찰, 시카고 시장 등 정계 인사까지 자기 영향력 아래 두며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이처럼 갱단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과 사회 구조 속에서 시카고 갱들은 더욱 더 확대됐고 그들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졌다. 시카고 범죄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시카고에는 59개의 갱단과 2,400개 이상의 소규모 갱단이 있다고 한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세상

히스 레저가 조커로 등장하고 배트맨이 도시를 지키는 영화 다크나이트는 시카고 마천루 건물들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영화에는 범죄의 도시 '고담시'가 나오는데 이는 마치 갱들의 총격전이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지는 시카고의 남·서부지역을 그대로 묘사한 듯하다.

이처럼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시카고에서 매년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은 700여 명이 넘는다. 이는 미국의 3대 도시인 뉴욕과 LA에의 총격 희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더구나 경찰이 갱을 잡을 수 있는 확률 또한 매우 적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 아름다운 미시건 호, 그리고 완벽한 문화생활까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 시카고. 그러나 갱들이 쏜 총에 맞아 다치거나 죽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고통스러운 곳이 바로 시카고이다. 안타까운 점은 갱단들 간 총싸움이 시카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반복된다는 것, 이에 남부 지방에 사는 아이들과 여러 시민들 역시 함께 총에 맞아 허무하게 희생된다는 것, 그리고 빈곤한 남부 지방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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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18-09-05 15:24:50
치안이 저렇게 불안한데 미국의 막강한 정보력과 군사력으로도 해결되지않는건... 이유가 있는걸까요?..어딜가나 없는 사람만 피해보는 세상이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