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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8.07.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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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라고 하면 제일 먼저 프랑스의 화가 고갱(Paul Gauguin)이 떠오른다. 고갱이 1891년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 향했을 때 그는 온갖 위선과 허영 탐욕으로 가득 찬 문명의 땅에서 벗어나 단순한 삶과 고결한 야만의 ‘잃어버린 낙원’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리라. 이런 원시주의와 야수파를 위한 실험은 유럽 지성사의 한 줄기를 이루는 전원주의(Pastoralism)의 복고적 전통에 부합할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유럽이 세계의 오지와 구석을 샅샅이 식민지화하려 했던 제국주의의 물결에도 걸맞았다. 그럼에도 고갱은 자신의 백인우월적 인종주의와 가부장적 여성 혐오로 인해 결국 이국주의(Exoticism)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고갱이 빈센트 반 고호와 아를르 ‘노란 집(Yellow House)’에서 함께 살았던 두 달 동안의 동거는 끝없는 말싸움과 다툼 때문에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자르는 비극으로 끝을 보았다. 나는 고흐의 전기 ‘삶에의 열망(Lust for Life)’에서 사건의 전말을 읽고 난 다음부터는 고갱이 더 싫어졌다. 19세기의 많은 유럽 사람들처럼 두 사람 모두 매독의 후유증 끝에 각각 자살과 병사의 길을 걸어갔지만 1888년의 사건에서 고갱의 행태는 매독의 탓이라기보다 ‘프랑스적 악랄함’의 표출이라고 보였다. 타히티에 갔을 때 그곳에 고갱 미술관이 있지만 원본 그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듣고 아예 찾아 가지도 않았다. 복사판 그림이나 허접한 스케치 몇 장, 그리고 사진 자료 정도라면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타히티 하면 또 생각나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화가 천경자 여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천 화백의 그림이 채색이 강렬해서 어딘가 일본풍이라고 느낀 탓인지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끝 무렵인가 그가 타히티로 소묘여행을 가면서 당시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과 그림을 보고 완전히 생각을 바꿨고 지금도 걸출한 화가로 손꼽는다. 그때만 해도 타히티라면 책에서는 읽었을지언정 직접 가볼 수는 없는 아스라이 먼 곳이었다. 아마 남극대륙과 북극보다는 덜하겠지만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는 훨씬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남미라면 60년대에 이미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더러 있었다. 아프리카라면 김찬삼 여행기에서 흥미진진한 얘기를 넉넉히 읽은 터였다. 그러나 타히티라니…비용은 고사하고 한국에서 비행기 편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몰랐던 때였다.

요새는 구글링을 조금만 해보면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로 타히티 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서울에서 가는 직항편은 없지만 호놀룰루나 로스앤젤리스, 도쿄를 경유하면 타히티의 수도 파피에이테이(Papeete)에서 5㎞ 떨어진 파아아(Faa’a)공항에 손쉽게 닿을 수 있다. 타히티의 지명은 철자만 봐서는 어떻게 소리 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지만 ‘e’는 ‘에이’라고 읽고 대부분의 글자를 발음한다는 것을 알면 그런대로 넘어갈 만하다. 타히티어는 사모아, 통아, 마오리, 하와이와 함께 폴리네시아 어족을 이루고 이들 언어는 어휘가 조금씩 다를 뿐 문법구조 등은 동일하다. 그 이유는 폴리네시아인들은 기본적으로 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인들은 타이완에서 시작해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피지, 통아, 사모아, 타히티의 순으로 퍼져갔고 불과 1,000년 전에 끝으로 북쪽으로 하와이, 남쪽으로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동쪽 끝으로는 이스터 섬이 마지막이었다,

마오리의 구전 전설에 따르면 타이완 이전에 ‘슈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슈신이라면 여진족의 옛 명칭인 ‘숙신’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 고조선의 ‘조선’도 ‘쥬신’에서 나왔고 한민족과 만주족(여진족)은 한 뿌리라는 주장도 있다. 재밌는 것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소사이어티 제도 가운데 한 섬인 라이아테아에 가면 천 년 전 뉴질랜드를 향해 카누들이 떠났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가 타히티에서 만난 뉴질랜드의 ‘힙합 대부’ DLT는 이런 설화를 전해주면서 뉴질랜드의 한국이민자들은 ‘아시아의 마오리’라고 덧붙였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뉴질랜드 마오리가 용감하다면 타히티 사람들은 살랑살랑하게 부드럽다면서 한국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자신감이 넘치고 ‘폼을 잡는다’는 점에서 마오리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태평양에는 많은 섬이 있는데 크게 3분해서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로 나눈다.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폴리네시아는 피지를 경계로 동쪽에 사는 종족이며 체격이 건장하고 피부 색깔이 상대적으로 옅다. 피지를 포함해 이서의 바나투, 솔로몬 제도, 뉴칼레도니아 등이 멜라네시아인데 ‘멜라닌’과 같은 어근이라 살갗이 검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호주의 원주민인 아보리진(Aborigine)과 뉴기니아인에 가깝다. 미크로네시아는 적도 북쪽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섬들로 괌과 사이판, 팔라우, 미크로네시아연합, 키리바티, 나우루 등인데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더 쉽게 말해서, 뉴질랜드, 하와이, 타히티 등 적도 남동쪽의 큰 섬들이 폴리네시아이고 그 서쪽 파푸아 뉴기니아에 가까운 섬들이 멜라네시아, 적도 북쪽의 점점이 흩어진 작은 섬들이 미크네시아라고 기억하면 된다.

2016년 12월 벼르고 벼르던 타히티 여행에 나섰다. 가장 싼 비행기 일정을 고르다 보니 연말연시를 지나 돌아오게 되는 바람에 한 달이 넘도록 타히티에서 머물 수밖에 없게 됐다. 물가가 유럽보다 높고 숙박비가 엄청나게 비싼 타히티에서 그토록 오래 지낸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결국 최대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되 가능한 한 캠프그라운드에서 숙박을 하도록 계획을 짜고 텐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인터넷에서는 소사이어티 제도 각 섬의 캠핑장이 자세히 나와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없어 현지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비행기 표. 구글 플라이츠를 검색해 보니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만 호놀룰루에서 타히티까지 $780대의 요금이 떴다. 알고 보니 하와이안항공이 주1회만 운항하기 때문이었다. 서울―호놀룰루 구간은 71만원의 요금을 내건 대한항공 직항편을 택했다. 결국 150만원을 약간 웃도는 요금을 치른 셈이다. 현지에 가서 들으니 타히티―로스앤젤리스 요금이 호놀룰루 구간보다 싸다고 했다. 미국 가는 길에 LA에서 타히티 왕복표를 구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숙소를 알아보니 가장 싼 곳이 공항에서 약 15㎞ 떨어진 ‘테 미티’와 ‘타아로아 롯지’였다. 둘 다 무난해 보였지만 비치에 붙어있는 타아로아를 택했다. 토요일 밤 늦게 비행기가 도착해서 공항에서 밤을 새고 일요일 아침에 숙소로 가려니 일요일엔 버스가 전혀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짐을 메고 15㎞를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고민 끝에 차를 하루 동안 렌트해서 우선 숙소에 짐을 부리고 남은 시간 동안 타히티 누이(큰섬)과 좁다란 지협으로 연결된 타히티 이티(작은섬)를 돌아보기로 했다. 큰섬의 순환도로를 타고 한 바퀴 돌려면 도합 120㎞가 되고 작은섬은 중간에 길이 끊겨 양쪽 공히 18㎞씩 모두 36㎞를 갈수 있었다. 돌면서 보니 가운데 높은 산들은 앞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타히티 큰섬의 최고봉이 2,241m나 되니 백두산보다 낮아도 한라산보다는 한참 더 높다. 간혹 나있는 골짜기를 통해 높은 산들을 보니 봉우리가 뾰족뾰족한 것이 ‘몽유도원도’에 나오는 산들 같았다.

타히티섬에서 며칠을 머물다 보라보라섬에 갔고, 에어타히티의 패스를 산 김에 라이아테아 섬과 후아히네 섬, 그리고 모아레아 섬에서 각각 일주일씩 머물다 다시 타히티 섬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파피에이테이 시내에 있는 호스텔에 묵었는데 앞서 묵었던 롯지보다는 낫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타히티를 떠나는 마지막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2017년 1월 새로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주인을 만나 구경을 하러 갔다. 새로 문을 연 호스텔답게 깨끗하고 친절이 넘쳤다. 저녁밥을 나눠 먹자더니 무료로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마침 토요일이라 버스가 일찍 끊어져 여차하면 5㎞ 정도는 걸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새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은 마하나 롯지(mahanalodge.papeete@gmail.com)인데 가격도 싸고 시내 한복판 크루즈 터미널 가까이(5 rue Paul Gauguin)에 자리 잡아 시내 구경과 비행기 및 페리 타기에 편리해 보였다.

타히티 섬엔 더러 비치가 있지만 환초가 적어서 다이빙이나 스노클링 등에 가장 적합한 곳은 아니다. 파피에이테에이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수도이다 보니 도회지의 느낌이 강하고 도심에서 20㎞ 이상 나가거나 작은섬에 가야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그나마 타히티 섬을 잘 둘러보려면 리조트의 비치와 벨버디어나 수원지로 올라가는 트레킹, 파피에이테이 시내 구경과 렌트카로 순환도로 일주에 하루씩은 최소한 잡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휴식과 산책, 지는 해 바라보기로 소일하는 날과 도착­출발 날짜를 더하면 꼬박 일주일은 걸려야 한다. 타히티 섬은 우리가 막연히 그리는 것처럼 목가적인 풍경은 아니지만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수도이자 경제 문화 사회적 중심지로서 가치가 있다.

다만 폴리네시아 전역은 대부분이 비싼데 체감물가로는 유럽의 근 두 배, 미국의 근 세 배에 이른다는 느낌이었다. 물가가 높은 것은 프랑스 해외속령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여기는 60년대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하면서 돈을 들이부었고 관광수입도 짭짤한 데다 국내 정치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무원 숫자를 늘리다 보니 세입 확보를 위해 고율관세를 매기는 듯했다. 다만 우유와 버터 등 낙농제품과 설탕 등 생필품은 면세라서 예컨대 뉴질랜드산 버터는 뉴질랜드보다 싸기도 했다. 후아히네 섬에서 만난 프랑스 수병은 리무쟁 출신의 목동인데 세계를 둘러보고 싶어서 해군에 1년 계약으로 입대했다고 했다. 파피에이테이 부두에 가면 군함 몇 척이 정박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군함이 그가 타고 있는 741 프리게이트함이었다. 프랑스 해군에서 인기 최고가 타히티 근무라서 그는 신병교육 수료시 1등을 한 덕분에 올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이 구석진 곳에 누가 쳐들어오겠는가. 승조원들은 불도 안 나고 사고도 없는 마을의 소방대원처럼 열심히 먹고 마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타히티 섬. 사진=위키백과
타히티 섬. 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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