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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새로운 무산계급 '대학 교원'
21세기의 새로운 무산계급 '대학 교원'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7.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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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원 처우 악화 및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 불안정성 심화

<박노자 교수의 글로벌인사이트>

며칠 전에 런던의 SOAS (동방 및 아프리카학 대학)대학에서 워크숍 하느라고 영국에 잠깐 갔다온 일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영국 동료들은 대단히 흥분된 상태이었다. 다름이 아니고 영국 대학의 역사상 제일 길게 갈 파업을 준비하느라, 전국 대학 선생들이 몇주전부터 열을 올려온 것이다. 문제는 연금이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대학 선생들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연금이라는 비교적 좋은 조건이 주어져 있어, 대학 부문의 임금은 민영부문에 비해 좀 낮아도 그래도 “안정된 직장에다가 연금이 보장된 직장”이라고 나름의 메리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 교원들의 연금제도 개악이 예고되어 있다. 이제부터 연금은 각자의 기여도를 정확히 반영할 것인데, 임금도 연금재단에의 기여액수도 대학부문에서 비교적 낮기 때문에 교원들이 실제로 퇴직 이후에 다달이 받을 돈은 현재보다는 약 20~40% 정도 깎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퇴직 이후의 교원이 ‘빈민’'으로 전락될 셈인데, 이와 같은 상황을 막아 보려고 영국 동료들이 지금 활기찬 계급투쟁을 펴려는 것이다.

한때 영국에서도 대학교수는 '사회귀족'쯤 됐는데, 요즘은 전혀 아니다. 실질 임금으로 따진다면, 영국의 대부분의 근로자들처럼 대학 교원들의 소득은 지난 15년동안 소폭 하락됐다. 높다고 할 수 있는 소득도 결코 아니다. 다소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의 정교수급 교원을 제외한다면, '보통'의 영국 대학 교원이 받는 평균 연봉(약 5만 파운드)은 평균 전국 임금(2만7천 파운드 정도)보다 다소 높아도 특히 런던처럼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도시에서 살기에는 빡빡하다고 할 수준이다. 만약 아이까지 키우려면 런던에서는 맞벌이 부부이어야 가능할 정도다. 영국에서 약 1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법률가는 대학 교원보다 두배나 많은 연봉(약 10만 파운드)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데, 대학의 법학부에서 교원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돈만의 문제인가? 본래 대학 교원의 특징은 다른 직종에서 보기 드문 ‘자율성’이었는데, 이 ‘자율성’은 이젠 찾아 보기도 힘들다. 영국 같으면 1986년부터, 노르웨이 같으면 2006년부터 교원들의 학술논저 발표 실적을 계량화하고 그 숫자를 반영하여 재정지원 관련 결정을 한다. 즉,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것은 이젠 단순히 개개인의 연구자적 ‘관심’이나 “자아 실현’의 문제라기보다는 ‘돈벌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교원은 많은 경우에 ‘논객’이기도 했는데, 대중적인 글이 더이상 ‘업적’이 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시대에 많은 교원들은 매체들의 기고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수 없다. 논문들을 쓰고, 역시 ‘돈’으로 환수되는, 그 수가 계속 늘어나는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이젠 없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대학 교원들의 실질적인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55~60시간 이상 되는데, 노르웨이도 그보다 약간 밑돌거나 대략 그 정도다. 한국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거의 '3D직종'처럼 된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노르웨이 토박이들이 아예 더이상 일하려 하지도 않는다. 노르웨이의 교원과 연구자 중 4분의 1은 이미 외국인이며, 특히 '어렵다'는 평이 있는 자연과학에서의 외국인의 비율은 45% 이상이다. 아마도 차후 구미권의 연구노동자의 전형적인 상(像)은 중국이나 인도, 한국, 러시아 등 출신인 이주노동자일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의 정교수급 교원을 제외한다면, '보통'의 영국 대학 교원이 받는 평균 연봉(약 5만 파운드)은 평균 전국 임금(2만7천 파운드 정도)보다 다소 높지만 특히 런던처럼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도시에서 살기에는 빡빡하다고 할 수준이다. 사진은 케임브리지 대학. 사진=위키백과
영국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의 정교수급 교원을 제외한다면, '보통'의 영국 대학 교원이 받는 평균 연봉(약 5만 파운드)은 평균 전국 임금(2만7천 파운드 정도)보다 다소 높지만 특히 런던처럼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도시에서 살기에는 빡빡하다고 할 수준이다. 사진은 케임브리지 대학. 사진=위키백과

경향적으로 나빠져가는 대우, 일상화된 과로, 학술적 실적을 내놓으라는 지속적인 압박과 업적에 대한 부단한 통제 등의 악조건에다가 세계의 연구, 교수 노동자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고등교육, 연구 분야에서의 상상 이상의 노동 불안화다. 노르웨이 경제 전반으로 보면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근로인구의 9%도 안되지만,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오슬로대에서는 24%나 된다. 건설부문과 대학부문은 노동 불안화의 측면에서 노르웨이에서 단독 최악이다. 그만큼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그다지 많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그래도 나름 관철된다) 각종의 프로젝트 연구원과 포스닥 (박사이후과정생)등이 많다는 거다. 독일의 경우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평균 연령은 33세 정도지만 정규직이 되는 평균 연령은 약 42~43세다. 즉 각종의 포스닥과 프로젝트 연구원을 거의 10년 가까이 하는 것은 이젠 학계의 필수적인 '통과의례'처럼 됐다. 연구원 자리는 보통 2~3년씩이고 다음 임시직은 얼마든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일 수도 있다. 정규직 되기 전까지 약 4~5개 나라를 경험해보는, 이젠 학계의 많은 구성원들에게 다반사가 된 '학자 유량민'의 삶은 부부생활이나 동거, 육아에 전혀 친화적이지 않다. “연애도 사치고, 연애를 해도 결혼은 사치”와 같은 한국 대학가의 최근의 '명언'(?)들은 사실 구미권 학계 하급 구성원들의 신세에 그대로 맞다. '결혼'보다는, 비정규성의 늪을 아예 평생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은 더 큰 관심거리며 걱정거리다. 고등교육 노동의 불안화가 가장 심화된 미국의 경우, 최근에 신규 임용의 70% 정도는 정규직(tenure-track full-time)이 아닌 각종의 비정규직(파트타임, 임시직, 기한이 있는 계약직 등)인데 많은 경우에 비정규직들은 퇴직할 때까지 '만년 비정규직'으로 남는다. 즉 '긴 통과의례'는 얼마든지 평생의 멍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칭 '명문대'의 일부 고급 정규직 교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등교육 부문이 이처럼 ‘무산계급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면으로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의식적 전략이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수가 급증해도 대학예산에 들어가는 국가의 고정(固定)지원금이 제자리걸음이나 줄어들고, 그 대신 산업화 가능한 결과를 내놓아야 할 연구프로젝트 지원금은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늘어나는 것이다. 결국 돈에 궁해진 국·공립 대학들이 비정규직들을 양산하고,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연구자들이 연구업적 늘리기에 올인한다. 또 일면으로는 수급의 논리가 작용되기도 한다. 해방 당시에 대학생 총수가 1만6천 명에 불과했던 한국에서는, 요즘의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자 수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 정도의 연구자수가 해마다 박사가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가 '돈을 아끼느라고' 교육기본인프라에 크게 투자하지 않고 교육·연구분야 지망생들이 계속 더 많이 배출되는 상황에서는 이 분야 종사자 전체의 일종의 '무산계급화'는 거의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악조건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런던에서 본 영국의 동료처럼 행동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파업과 같은 연대적인 행동으로 그나마 신자유주의 국가의 가장 포악한 개악 시도라도 분쇄할 수 있다면 그 연대력으로 언젠가 국가에 압력을 넣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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