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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민스크의 3박4일
벨라루스 민스크의 3박4일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8.07.09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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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부터 무비자 허용
콘서트, 오페라 공연 입장료 매우 저렴

벨라루스(Belarus)라고 하면 대부분에게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백러시아’라고 하면 어디선가 들어봤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때 백러시아라고 불리던 벨라루스는 쉽게 말해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내륙국가다. 남쪽으로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이 자리 잡고 있다. 1991년 소련(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이전 소련의 15개 공화국 가운데 백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소련과 별도로 유엔의 창립회원국이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모두 9세기에서 13세기에 존속했던 ‘키예프 루스’의 후예다. 최근 크림반도 등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벨라루스는 분리 독립 후에도 러시아와 가장 가깝고 충실한 동맹관계를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또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24년째 권위주의 통치를 계속하고 있는 ‘유럽 최후의 독재국가’라고 불리고 있다.

벨라루스는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할 때 거쳐 갔던 길목이었다. 나폴레옹은 폴란드에서 리투아니아로 우회, 벨라루스 북방을 지나 스몰렌스크로 진군해서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Minsk)는 무사했다. 그러나 2차 대전 때 독일 중앙방면군의 공격을 받은 민스크는 80%가 파괴되고 50년대에 스탈린 건축양식으로 재건됐다. 때문에 민스크에는 몇 군데 교회를 제외하고 오래된 역사유적이 드물다. 이 나라의 전체면적이 20만 평방킬로미터 남짓이니 남한의 두 배이고, 한반도의 22만 평방킬로미터에 조금 못 미친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원이고 가장 높은 산이 해발 346m에 불과한 데 반해 인구는 950만 명 정도로 어딜 가나 공간이 넉넉한 편이다. 1986년 체르노빌의 원자로 폭발사고 때 누출된 방사능의 70%가 때마침 북쪽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어 벨라루스 동남부지역을 오염시켜 심각한 피해를 봤다.

벨라루스 정부의 인권 탄압 때문에 EU의 제재를 받고 루카셴코 대통령이 EU 입국금지 대상이 되는 등에 대한 반발로 벨라루스는 그동안 서방과의 교류에 소극적이었다. 구 소련권의 시민에 대해서는 무비자 입국과 무제한 체류를 허용하면서도 서방 관광객에 대해서는 초청장과 숙박지와 교통편 사전 예약을 의무화하고 비싼 비자료를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입국을 제한하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루불과 함께 벨라루스 루불의 가치가 폭락하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벨라루스 정부는 관광객 유치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2017년 2월부터 한국을 포함, EU국가와 미국, 일본, 인도 등 50여 개 국 국민에 대해 5일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민스크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에 한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기차나 버스편으로 입국하면 반드시 비자를 미리 받아야 한다. 항공편과 기차편 모두 러시아와는 국내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입출국 절차를 정확히 이행하지 않고 러시아로 넘어가는 경우 추후 법적 저촉으로 구류처분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유럽에 있는 국가를 거의 다 가보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벨라루스와 페로 군도(Faroe Islands), 두 나라였다. 페로 군도는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사이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로 이름 자체가 ‘양들의 섬’이라는 뜻의 외딴 곳이다. 항공편과 페리가 있지만 비싸고 접근이 어려워서 지금도 맨 마지막 행선지로 미뤄두고 있다. 벨라루스는 비교적 큰 나라라 3년 전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경유비자를 얻으러 이태원의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 주한 벨라루스 대사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구비서류가 복잡하고 비자 피가 비싼 것은 감수할 작정이었지만 기차표를 모두 비자 발급 전에 구매해야만 한다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다. 벨라루스를 따로 항공편으로 가기에는 별다른 매력이 없고, 기차편을 예약하자니 마땅한 온라인 사이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초 벨라루스가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오픈 기간 중 주말여행으로 벨라루스를 다녀오기로 하고 항공권을 예약했다.

여행 넉 달 전에 예약하니 항공료가 비교적 쌌다.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민스크를 다녀오는 루프트한자 왕복표가 200달러 이하로 나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을 빠짐없이 가보려는 차원이라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지난 6월2일 새벽 일찍 숙소를 출발해 파리의 지하철과 전철(RER) 편으로 샤를드골공항에 도착, 7시50분발 항공기에 탑승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한 시간 비행하고 한 시간 안에 환승한 다음 민스크까지는 다시 두 시간을 더 날아가야 한다. 과거에 EU국가를 드나들 때 출입국 절차가 시간을 끈 적이 없었는데 벨라루스로 갈 때와 돌아올 때 모두 꼬치꼬치 캐물었다. 테러관련 용의점이 없는 데도 까다롭게 구는 것을 보니 EU의 시각에서 벨라루스란 나라 자체가 일종의 요시찰 대상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민스크 공항에 도착한 후 입국심사대에서 여성 경찰관이 확대경으로 여권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이 7~8년 전 우크라이나를 들어갈 때와 아주 비슷했다. 여권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의료보험증서를 요구했다. 미리 여행보험에 들고 영문 가입증명서를 인쇄해 간 참이라 얼른 내보였지만 증서에 벨라루스라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행금지국가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에 유효한 보험이라고 설명해도 “그럼 왜 글로벌이라고 써있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하릴없이 4일간 체류에 4유로씩 지불하고 현지 의료보험을 구입한 다음에야 통과를 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약 40㎞를 달리는 동안 보니 고속도로가 아주 잘 닦여있고 시내 길거리도 깨끗한 것이 인상이 좋았다. 어느 나라나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각별히 신경을 써서 관리를 하지만 벨라루스는 민스크 시내 어디를 가나 휴지 한 장 떨어진 것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청결했다. 우리나라도 새마을 운동을 할 때 청소부터 시작했지만 나라가 발전하려면 길거리 청소가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

3박4일의 일정에 따르면 금요일 밤에는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갈라 콘서트를 관람하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보는 걸로 돼있었다. 토요일에는 시내 구경과 미술관 등을 방문하는 계획이었다. 도착 당일 저녁식사 뒤에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북위 54도에 있는 민스크는 6월초에 오후 10시가 돼야 해가 지기 때문에 7시에 시작한 콘서트가 9시에 끝나고 밖에 나와도 아직 훤했다. 콘서트는 비엔나를 테마로 왈츠와 폴카 등 오케스트라 연주와 오페라 아리아 등 성악곡을 엮은 프로그램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전음악 연주회에 가본 것이 하도 오래 됐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음악가들과 교향악단의 수준이 대단히 높고 관객들이 즐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페라하우스에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시내 한복판의 호수에 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그곳의 이름은 ‘눈물의 섬.’ 1979년부터 89년까지 10년을 끌었던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징집돼 끌려갔다가 희생된 장병을 기리는 기념물들이 있었다. 약간 높다랗게 십자가가 달린 기념탑과 함께 아주 소박한 성모자상도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사람 키만 한 크기의 천사상이었다. 둘레를 돌로 쌓은 조촐한 샘물 앞에서 어깨 죽지에 날개를 접고 있는 어린 천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은 병사들이 죽고 다쳤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냉대를 받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내팽개쳐 둬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튿날 민스크 시내의 미술관과 몇몇 교회를 들러보고 호수를 굽어보는 광장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대부분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는데 한 사람이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알고 보니 모스크바에 사는 러시아 젊은 사업가인데 영국 런던에서 유학을 했다고 소개했다. 지난주에 민스크에 오고, 그 전주에도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하기에 “여자 친구로군?”했더니 껄껄대며 “맞다”고 한다. 그리고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여자 친구 사진을 꺼내 보여주는데 모델 몸매에 예쁜 얼굴을 한 벨라루스 처녀였다. 인터넷에 보면 벨라루스의 미인들 사진이 즐비한데 물론 사람 나름이지만 상당수는 돈 많은 외국인을 낚아서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애를 낳아서 평생 양육비를 타내려는 심계를 품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벨라루스 이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국가에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일요일 밤에 저녁 6시부터 3시간 동안 이어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은 음악과 연기 공히 뛰어난 공연이었다.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 반 정도로 압축하다 보니 약간 건너뛰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나야 예브게니 오네긴 제목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것을 모르는데 멋지게 차려입은 민스크의 선남선녀들은 모두 푸시킨의 원작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러시아어와 함께 영문 대사가 자막으로 무대 밑에서 흘러가는 바람에 우리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특히 그라민 대공 역으로 나오는 베이스의 노래가 압권이었다. 현지 관중도 같은 생각인지 꽃다발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그런데 이들 콘서트와 오페라 공연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입장료가 엄청 싸다는 점이었다. 약 7천원에서 1만2천원 정도면 훌륭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11월부터 2월까지가 음악회와 오페라, 발레 등의 시즌인데 석 달 쯤 민스크에 머물면서 매주 2~3번 관람을 하면 웬만한 클래식 레퍼트와는 모두 섭렵할 수 있을 듯했다.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쩔쩔 끓는 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테니스와 사이클링, 카약·카누 등 수상스포츠를 모두 값싸게 즐길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항상 살 만한 곳― 가거지(可居地)가 어디인지를 살폈다. 비록 내가 그곳에 가서 살지는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살 만한 곳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벨라루스는 아직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고 스탈린 시대의 망령이 살아있는 나라지만 가격이 착한 데다 치안도 잘 돼있고 사람들도 순박해서 유럽의 가거지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요새는 옛날처럼 어느 한 나라에 가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고국에 잘 오지도 못하는 시대가 아니다.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비행기만 타면 늘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자연과 스포츠를 즐기는 데 최고지만 문화생활에서는 수준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벨라루스는 여름에는 스포츠와 트레킹, 겨울에는 문화생활, 봄·가을에는 러시아, 발칸반도와 동유럽, 좀 멀게는 중동 등 인접 국가로의 단기 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싶다.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모습. 사진=위키백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모습. 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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