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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복지국가와 소득주도 성장
역동적 복지국가와 소득주도 성장
  •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 승인 2018.07.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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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복지국가의 4대 원칙은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역동적 복지국가’는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안한 국가발전 모델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경제성장과 복지를 통합적으로 달성하려는 성장 엔진을 탑재한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이다. 그리고 역동적 복지국가는 국민의 ‘행복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국민의 집’이다. 이 집은 자유와 평등을 향해 있고, 현판에는 존엄·연대·정의라는 3대 가치가 새겨져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네 기둥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데,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가 그것이다. 이것이 역동적 복지국가의 4대 원칙이다.

이 글의 목적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설명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개념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높이려는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4가지 원칙으로 구성되는데,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4가지 원칙의 나머지 하나인 혁신적 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 성장’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제기된 배경

포용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 정책 기조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한마디로 가계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복지의 확충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추구해왔던 ‘대기업 중심의 성장 방식’은 이미 한계가 드러났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한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2017’을 보면, 우리나라는 노동자 250명 이상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12.8%에 불과하다. 조사대상 OECD 37개 국가 가운데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11.6%인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낮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체의 56%인 점을 감안하면 고용이 너무 저조한 것이다. 결국 수출 대기업 중심의 기존 체제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요약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대기업의 41.3%에 불과하다. 이는 OECD 37개 국가 가운데 멕시코를 제외하면 격차가 가장 큰 것이다.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임금 수준이 형편없이 낮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 자영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는 크게 부족하고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 하위 소득계층에서는 실질소득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이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었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니까, 패러다임 전환의 새로운 방식으로 ‘소득주도 성장’이 제기된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제대로 이해해야

특히 지난 보수정부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저성장 상태가 이어졌다. 경제와 산업이 양극화되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복지 안전망이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기업가적 도전 정신과 혁신 동력이 부진해지면서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나온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길이며,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득주도 성장’을 편협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소득주도 성장을 ‘수요 측면의 성장론’으로 한정해서 이해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고, 이것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는 선순환의 고리로 설명하는 방식인데, 이것은 전통적인 총수요 증대 정책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한 측면만을 설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급 측의 혁신 성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수요 측면의 소득은 성장의 결과이지 성장의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단기적 경기부양책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들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요보다는 공급 측면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규제완화와 감세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옹호한다. 그런데 공급 측면의 혁신만을 강조했던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는 게 명백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80%를 넘었는데 지금은 70%에 불과하다. 수출 대기업들과 주주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실질소득이 늘지 않은 채 삶의 불안정성만 더 커졌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자는 대로 규제완화와 부자감세를 했지만 결국 양극화와 불평등만 심해졌고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경제성장 전문가를 자임하며 선 성장론을 설파했다. 지금의 작은 파이를 나누어 먹어치우는 ‘복지 분배’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선 성장’으로 파이를 키워서 나중에 나눌 것인지,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유권자들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파이를 키우는 성장 전문가이기 때문에 747 공약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정 수준의 국민소득에 도달한 나라는 ‘복지 없는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첫 번째 핵심 내용: 보편적·적극적 복지 체제의 확립

2007년 당시 우리나라는 복지가 성장의 전제조건이 되는 그런 상태에 이미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복지와 성장을 대립시키면서 ‘선 성장 후 복지’를 공약했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지려면 이제 소득주도 성장의 길을 가야하는데, 그것의 핵심적 요체는 바로 ‘복지 체제의 확립’이다. 경제성장의 엔진을 탑재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중심으로 복지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라야 ‘소득주도 성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보편적 복지는 자산조사를 통해 가난한 일부 국민을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국민 모두에게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하는데, 국민 누구라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일생에 걸쳐 제도적으로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한다. 선진 복지국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소득보장’ 제도에는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이 있다. 그리고 ‘보편적 사회서비스 보장’ 제도에는 보육·교육·의료·요양이 포함된다.

복지국가는 근로능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일을 해서 소득을 얻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소득 단절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사회보험 제도를 운영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소득 단절에 대해 산재보험이 작동하고, 회사의 폐업이나 해고로 소득이 단절된 경우 고용보험이, 질병으로 소득이 단절된 경우 질병보험이 작동한다. 그리고 노령과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의 경우는 국민연금이 작동한다. 이게 바로 4대 사회보험이다. 또 사회수당 제도는 애초 근로소득을 얻기 어려운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인데,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공적 보험료가 아니라 국가 재정에서 조달한다. 아동수당, 장애인수당, 노인수당이 여기에 속한다.

보편적 사회서비스 제도에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서비스가 포함되는데, 이들 사회서비스는 경제학적 ‘가치재’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회서비스는 생애주기별로 누구나 이용해야만 하고, 또 국민들 모두가 이용하도록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그런 경제사회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는 국가의 책임 투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선진 복지국가들은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4대 사회서비스를 사실상 무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차별 없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 회복, 생산 확대,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 회복, 생산 확대,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보편적 복지는 중산층을 포함해 국민 누구나 복지의 혜택을 누리고 비용부담의 주체가 된다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하고, 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한다. 결과적으로 경제사회적 격차를 줄여준다. 그래서 경제의 역동적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는 ‘연대의 제도화’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공통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보편적 복지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충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적극적 복지’를 살펴보자. 적극적 복지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말한다. 국가가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감행함으로서 국민을 더 유능하고 창의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와 강화를 가져온다. 여기에는 맞춤형 특성화 교육 체계의 확립과 아동·여성·노인·장애인의 대상별 능력 개발 시스템이 특히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로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동·여성·노인·장애인의 잠재 능력과 직업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자유 시장과 기업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사회투자의 영역이다.

아동은 미래의 인적 자본이다. 아동기의 차별 없는 성장 환경과 질 높은 교육의 제공은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투자로 봐야한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것은 여성의 인권 향상과 합계출산율의 제고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노인과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직업 능력을 중심으로 온 국민의 창의성과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적극적 복지 전략은 기초생계를 유지하도록 현금을 지급하는 데만 머무는 소극적 복지를 벗어나 지식 기반 경제에 능동적으로 조응하려는 경제와 복지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자 미래 지향적 시도이다.

실업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기초생계비를 지급하는 데 머무는 것은 소극적 복지인데, 적극적 복지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다양한 정책적 개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적극적 복지의 목표 지점이다. 그래서 일자리는 적극적 복지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와 복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특히 일자리를 매개로 경제와 복지를 유기적 통합체로 보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적극적 개입주의 전략은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등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중요한 성과를 낳게 된다.

스웨덴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으로 설정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기업은 도산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한 실업자는 복지국가 정부가 실업급여의 제공이라는 소극적 복지와 함께 적극적 복지의 차원에서 직업훈련과 일자리 알선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스웨덴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전반적 과정을 통해 시대적 추세에 뒤떨어졌거나 낮은 기술 수준을 가진 노동자들의 직업 능력을 높여 더 나은 일자리로 유도하는데, 이런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social mobility)의 증대도 적극적 복지에 포함된다.

적극적 복지는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는 것인데, 이 일을 하려면 경제사회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책임성 강한 복지국가 정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 복지는 인적 자본의 전반적 수준을 높이고 지식 경제에 부합하는 노동의 창의성을 제고하는 데 유리하다. 또, 협력과 신뢰에 기반을 둔 사람 중심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일자리를 중심으로 사람에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는 복지의 제도적 확충임과 동시에 경제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성장의 중요한 기제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두 번째 핵심 내용: 공정한 경제 체제의 확립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려면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라는 복지 체제의 확립이 필요하고, 이에 더해 공정한 경제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공정한 경제 질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 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 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신장,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 극복, 연대적·누진적 조세 제도의 확립 등의 과제가 모두 해결돼야 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장과 경제에 대한 민주적 개입과 함께 유능한 복지국가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먼저, 경제민주화 조치들이다. 이것들을 실천하고 성과를 냄으로써 공정한 경제 질서를 확립할 수 있고, 그래야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해진다. 그리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위해 필요한 또 하나가 바로 노동 체제의 건강한 재편이다. 그러니까 경제 체제가 공정해지려면,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해지려면, 경제민주화와 노동 체제의 재편이라는 두 가지의 큰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습에 의한 것이든 능력을 발휘해서 경쟁시장의 승자로서 얻어낸 것이든 간에 부의 과도한 편중과 경제력의 집중은 격차 사회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킨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 사회는 계층이동을 어렵게 해서 경제적 역동성을 저하시킨다. 이런 후진적 사회일수록 부자와 경제적 승자들이 각종 불공정 행위와 정경유착 등의 지대 또는 특혜 추구 행위를 일삼는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를 재벌 개혁 정도로 인식하는 소극적 입장보다는 경제 전반의 불평등을 줄여 경제성장과 시장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목표로 삼는 보다 적극적인 입장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불공정 체제를 개혁하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즉,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시장의 자유화와 달리 책임성 강한 복지국가가 경제와 시장에 민주적으로 개입해 불공정에 대한 규제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조장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의 일차분배를 개선하려는 개입주의 전략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 재벌 대기업에 대한 투명성 제고와 공공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재벌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관계를 구축하고 상생 협력 모델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노사관계를 민주화해서 노동 친화적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이번에는 소득주도 성장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조건이자 핵심 내용으로 ‘노동 체제의 개혁’을 살펴보자. 앞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경제의 불공정 체제를 개혁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노동 체제의 개혁이 중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소득 분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 됐다. 노동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고, 고용 불안과 취업 절벽은 해가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의 본질적 목표인 공정한 경제 질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 체계의 큰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간의 소득배율이 4.79로 OECD 평균인 3.46에 비해 크게 높다. OECD 국가 중에서 미국의 5.01 다음으로 높아 소득 불평등 2위이다. 또 우리나라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도 매우 높다. ‘중위임금의 3분의2 미만’을 버는 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비중이 23.7%나 된다. 이는 덴마크의 7.9%나 핀란드의 8.4%에는 비할 바가 못 될 만큼 심각하고, OECD 평균인 16.8%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것이다. 저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도 문제이다. 2007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일자리는 약 440만 개가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본질적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기준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거대한 노동시장을 말한다.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이 그것이다. 먼저, 1차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을 말하는데 총 480만 명으로 전체 고용의 25%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2차 노동시장은 전체 고용의 75%를 차지하는데 중소기업의 정규직 840만 명, 대기업의 비정규직 183만 명,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395만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2차 노동시장은 일자리들 간에 격차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간에는 근로조건, 기업복지, 사회보험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어서 완전히 양극화돼 있다. 또 노동시장 간의 이동성도 매우 낮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완전하게 성공하려면 보편적·적극적 복지 체제의 확립과 함께 역동적 복지국가의 세 번째 원칙인 ‘공정한 경제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민주화뿐만 아니라 노동 체제의 개혁도 요구되는데, 이것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비대한 2차 노동시장을 축소하고 1차 노동시장과의 격차를 크게 줄여야 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수용해야 한다. 일방적이고 수량적인 유연화보다는 내부의 기능적 유연화에 초점을 맞추고, 2차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근무능력을 제고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셋째,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에 적합하도록 고용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연장된 정년까지 길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식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혁신 성장’의 전제조건이다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의 제도화를 통한 복지 체제의 확립과 경제민주화와 노동 체제의 혁신을 통한 공정한 경제 체제의 확립은 보통사람들의 소득을 높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혁신 성장’을 위한 동력을 창출한다. 즉, 보편적·적극적 복지 체제와 공정한 경제 체제의 확립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적 내용임과 동시에 ‘혁신 성장’의 전제조건이 된다.

혁신적 경제는 창의성, 다양성, 유연성을 중시하고, 혁신적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우리 경제가 혁신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려면 창의적 아이디어에 의존해야 하는데, 새로운 분야를 개발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의 다양한 분야들을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창의성은 획일성 속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창의성은 승자독식의 경제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적과 스펙에 따라 줄을 세우는 획일화된 서열화 경쟁 구조 속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제품을 창의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바로 혁신적 경제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연성인데, 혁신적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 체질이 유연해야 한다. 이것은 경영자와 관리자들뿐만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도 해당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따라 새로운 생산라인이 필요해지면 신속하게 기존의 방식을 정리하고 조직과 구조를 변경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야 한다. 결국 혁신은 경제와 산업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유연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혁신의 동력이 “열심히 하자!”라고 외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은 삶의 모든 과정과 산업과 경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가령, 교육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할 제도적 조건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산업과 경제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현되기는 어렵다. 또 보편적 복지를 통해 누구라도 사회안전망을 확보한 가운데 적성과 소질에 맞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국민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현시켜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가적 도전정신도 강해진다. 보편적 복지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배양하는 훌륭한 토대가 되고,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혁신적 경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혁신적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제가 전제조건으로 요구된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나라에서는 벤처기업이 기성의 대기업들 때문에 싹을 틔워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벤처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실질적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서 혁신의 동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는 혁신 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정한 경제는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자들에게 보다 우호적인 도전 환경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혁신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라야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이 지속 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위원회 출범 때 ‘혁신 성장’을 언급한 데 대해 보수 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 운용의 핸들을 꺾었다고 평가하면서 개념도 모호한 ‘소득주도 성장’보다는 ‘혁신 성장’에 제대로 주력해 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심지어 보수 일각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 혁신 성장과 마찰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공급 측 혁신 성장’ 방안인 규제완화만이 옳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보수 진영에서는 혁신 성장을 아주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측의 혁신’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성장세의 둔화 속에 분배까지 악화되면서 저성장의 고착화와 양극화의 심화라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고질병인 저성장과 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시도할 최적의 시기이며, 복지국가 건설의 대장정에 제대로 나설 때다.

소득주도 성장을 기반으로 혁신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혁신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과거처럼 효율적으로 모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선도적 혁신이 요구된다. 선도적 혁신 성장은 실패의 확률이 높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수많은 도전자들을 요구한다. 이것이 보편적·적극적 복지 체제와 공정한 경제 체제가 중요한 이유이다. 장차 학력이나 자금력이 아니라 비전과 아이디어에 몸을 던지는 진취적인 청년들이 많아져야 한다.

장차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가운데 자금과 설비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 혁신 창업을 통해 혁신 성장의 주역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상향적 ‘혁신 성장’이 가능하려면 창의성‧다양성‧유연성이 확보돼야 하고, 기업가적 도전정신을 키우고 실패가 성공의 자산이 되도록 하는 보편적‧적극적 사회안전망이 요구된다. 그러니까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진짜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내용인 보편적·적극적 복지 체제와 공정한 경제 체제를 반드시 확립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기존의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측의 혁신’만으로는 제대로 된 ‘혁신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적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데, 이게 바로 혁신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신 성장의 성과물은 소득주도 성장에 투입된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은 유기적 상호작용을 하는 통합적 구조물인 셈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방식의 가짜 ‘혁신 성장’이 아니라 복지국가 방식의 진짜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패러다임 대전환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이 글의 주요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밈 출판사, 2016)를 인용했으며, 필자가 그동안 방송 등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취지에 맞도록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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