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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vs 국가화폐, 부분지급준비금 통화제도에 대한 정반대의 대안
비트코인 vs 국가화폐, 부분지급준비금 통화제도에 대한 정반대의 대안
  •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소장
  • 승인 2018.07.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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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자산가치의 실물적 기초가 아예 없어
화폐로서 기능하려면 국가가 가상화폐로 조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국에서 올해 초 2600만원대까지 폭등하여 거래소 폐쇄 논란까지 일었던 비트코인은 2월초 한때 700만원대로 떨어지는 급락세를 보이다가 2월말부터 1300~1100만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비트코인거래소에서도 비트코인 시세는 폭등 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2월 중순부터 1만 달러 수준을 회복했다. 비트코인 역사상 두 번째 버블이었다. 2013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은 1000달러 수준이었는데 2015년 초가 되자 2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첫 번째 버블보다 등락폭이 더 컸던 것이 2017년 가을 이후의 두 번째 버블이다. 2017년 초 비트코인 시세는 1천 달러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1만 달러 수준이다. 2012년 비트코인 가격은 10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에 획득하여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1천배 이득을 취한 것이다.

비이성적 과열, 잇따르는 규제와 과세

2017년 가을 이후의 비트코인 시세에 대하여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는 전염성 버블의 측면을 말한다. 2013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실러에게 버블이란 “투자가능 자산에 대한 비이성적 과열의 전염 주기”이다. 실제로 비트코인 폭등세가 일반 대중에게 드러나면 가격 상승으로 인해 쉽게 큰돈을 번 사람들에 대한 질시가 생겨나고 버블은 커져간다. 실러는 비트코인이 “흥미로운 실험”이지만 “비트코인으로 임금을 받고 세금을 낼 수 없는 한에서” 금융세계의 항구적인 요소가 될 수 없으며 1640년대의 튤립 버블처럼 결국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14년 버블 이후 유럽과 미국의 금융당국은 비트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각종 규제와 과세 모델을 개발했다. 규제의 핵심은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규제와 미등록 거래소 규제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래수익에 대한 과세모델이 개발되었다. 자금세탁방지와 거래소 규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과세모델에서는 영국이 앞서 나갔는데 처음에는 가상화폐를 화폐가 아닌 상품권(voucher)의 일종으로 분류하여 20%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했지만 2014년부터는 폐지하고 금융자산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법인세, 소득세,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를 부과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독일은 「은행법」(Kreditwesengesetz) 제1조 제11항 제1호에 따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계좌의 단위’(units of account)로 규정하여 화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일종의 자산으로 취급하여 양도차익에 25%의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며 채굴은 영업소득으로 간주한다. 유럽차원의 규제에서 핵심 문제는 역시 자금세탁과 탈세이다. EU 회원국과 유럽의회는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마련에 가상화폐가 동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익명거래를 금지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2017년 12월 15일 거래소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규제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2014년의 제1차 버블 시기에 한국의 금융당국은 별 다른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17년 말의 폭등국면에 직면해서야 한국 법무부는 거래소 폐쇄를 언급했고 당국은 실명거래 및 과세 논의를 시작했다. 지금은 정부의 대응으로 시세가 꺾이자 피해자들의 비난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화폐로서의 가능성이 없다면 비트코인의 자산가치는 언젠가 붕괴한다

앞서 소개한 실러의 진단은 비트코인은 결코 화폐가 아니고 부동산, 주식, 파생금융상품 등과 같은 자산인데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교환수단이나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치가 있다고 보고 구매한다. 법정화폐(Legal Tender)로 비트코인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트코인 가격은 올라가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바꾸려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진다. 물론 이러한 변동은 거래되는 모든 자산에서 발생하는 일이고, 법정화폐도 단순히 교환수단의 기능만이 아니라 가치저장(Storing of Value) 기능도 가지기 때문에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화폐는 가장 유동적인 가치처장 수단으로서 다른 자산들의 가치저장 기능이 의심스러운 경제위기가 닥쳐올 때 가장 선호된다는 특성을 가진다. 반면에 비트코인은 자산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이나 다른 금융자산과 달리 자산가치의 실물적 기초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자산가치로서 비트코인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을 유동화시킨 부채담보부 증권(CDO)보다도 훨씬 더 순수하게 가공적이다. 부채담보부 증권의 자산가치는 적어도 기업과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이라는 실물적 요소에 근거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촉발된 2008년 경제위기는 실물경제의 지급불능 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 시세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을 구매할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현상으로서 비트코인은 일종의 금융자산이다. 세계 각국의 규제 및 과세모델은 ‘비이성적 과열’에 대비하고 금융범죄와 탈세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금융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 시세는 과연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부딪칠 것이다. ‘비이성적 과열’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cryptocurrency)가 화폐로 기능하거나 앞으로 그럴 수 있다는 기대가능성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거래소로 몰려드는 구매자들은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 아니라 투기적 기대를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기대는 법정화폐로 비트코인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계속 몰려오는 한에서는 충족될 것이고 시세는 오를 것이다. 하지만 화폐로서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모두에게 분명해지면 비트코인은 더 이상 자산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된다. 폭등이 비트코인이라는 금융자산에 대한 ‘비이성적 과열’ 때문이라면 폭락은 화폐로서의 불가능성 때문에 발생할 것이다.

애초에 비트코인은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화폐제도를 대체하는 대안화폐로 고안된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애초에 비트코인은 거래소에서 일종의 자산으로 법정통화와 거래되기 위해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화폐가 되려고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에 의해 공급되지 않으며 민간은행의 신용창조도 필요 없이 오직 디지털 채굴에 의해 생성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서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분권화된 거래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진 비트코인은 과연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1) 현재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기능하는가? 2) 앞으로는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 적어도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와 병렬적으로 기능하는 보완화폐(Complementary Currency)는 될 수 있을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서 3)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적인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비트코인의 특성과 화폐 기능

첫째 질문에 대해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은 부정적인 답을 내리고 있다. 화폐의 본래적 기능인 가치척도(Standard of Value), 교환수단(Medium of Exchange), 지불수단(Means of Payment)의 관점에서 볼 때 비트코인은 일반적 교환수단이나 일반적 등가물이 아니고 제한적 수용성만을 가지므로 화폐가 아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기능 이외에 화폐의 파생적인 기능인 가치저장(Storing of Value) 기능에서 볼 때도 가치변동의 폭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민간금융기관들은 향후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결제 시스템이 적어도 보완화폐로는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한다.

보완화폐라고 하면 대개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고 유통지역이 한정된 지역화폐나 LETS처럼 풀뿌리 공동체가 발행한 시간화폐를 떠올리지만, 현실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보완화폐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발행한다. 마일리지나 페이백(PayBack)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트코인이 보완화폐로 널리 쓰이게 된다는 것은 오늘날 민간은행이나 기업의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화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화폐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전자화폐의 경우, 가치단위의 발행과 행정을 관할하는 중앙결제기구가 있는 반면에,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P2P(peer-to-peer) 결제가 이루어진다. 이점에서 현재의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는 현재의 전자화폐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 기술이 테러자금 조성이나 금융범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는 특히 거래소 규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비트코인 정책의 배경인데, 가상화폐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이러한 익명성과 역외거래 편의성을 낮은 수수료 및 빠른 거래속도와 함께 장점으로 꼽는다. 익명성과 역외거래 편의성이 장점인가 위험인가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지만, 낮은 수수료에 대해서 소액지급수단의 사회적 비용에 관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비교 연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비트코인 거래비용은 수표나 신용카드보다는 다소 낮지만 현금보다는 4배, 직불카드보다는 2.5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비트코인이 보완화폐로 쓰이려면 ‘사회적 승인’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현재의 전자화폐는 디지털화된 법정화폐이며 언제든지 1:1로 법정화폐로 바꿀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설령 많은 사람들이 결제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투자자산이기 때문에 시세는 거래소에서 결정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가가 법정화폐뿐만 아니라 가상화폐도 조세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세납부액을 비트코인으로도 표시하려면 국가는 1원=x비트코인을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법정화폐와의 교환 비율은 비트코인 가치를 묶어두는 닻이 되어 시세가 출렁거리는 거래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이와 같은 ‘사회적 승인’이 실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자. 더 나아가 시중은행의 집중화된 데이터베이스를 경유하는 결제시스템은 폐기되었다고 가정하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대출을 통해 시중은행이 신용화폐를 공급하는 현재의 부분지급준비금 통화제도는 소멸하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원통화가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되면 시중은행의 화폐창조에 대한 부정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발권력에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리하여 블록체인 통화제도로 단일화되면 발권기관은 중앙은행도 아니고 시중은행도 아니며 디지털 채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맡게 된다. 위에서 던졌던 세 번째 질문,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적인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이와 같은 최종적인 상태를 전제로 한 질문이다. 또한 이 질문은 비트코인을 일종의 통화제도 개혁안으로 볼 때 과연 그 성격과 지향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포한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통화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부분지급준비금 통화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

흔히들 중앙은행을 배타적인 발권기관으로 여기지만 금융시스템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파생통화는 시중은행이 발행한다. 총통화의 관점에서 보면 발권기관은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으로 이중화되어 있다. 파생통화는 은행의 부채에 해당하는 예금 형태로 존재하며 계좌소유주인 개인과 기업의 지불결제에 사용된다. 반면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계좌를 통해 은행 간 지불결제에 필요한 통화이다. 개별적인 경제주체는 중앙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시중은행의 파생통화 창조에 의해서만 본원통화 공급이 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은 이렇게 이원화된 구조에서 시중은행의 역할이다. 시중은행은 단순히 본원통화를 보관하는 금고가 아니라 예치된 돈을 다시 꾸어주는 대출기관, 곧 화폐공급기관이다. 은행은 예금의 일정부분을 지급준비금으로 중앙은행에 적립하고 나머지를 다시 대출한다. 예를 들어 A가 은행에 100만원을 예금했고 지급준비율(Cash Reserve Ratio)이 10%라면 은행은 90만원을 B에게 다시 대출하고 B의 계좌에 90만원을 기입한다. 이로써 은행에는 90만원의 예금이 새로 생긴다. 은행은 90만원 중에서 다시 9만원을 뺀 81만원을 C에게 대출한다. 이렇게 새로 생긴 81만원의 예금의 90%인 72만 9천원을 은행은 D에게 다시 대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대출을 통해 획득한 예금이 소비를 위해 모두 인출될 때 중단되지만 그 돈이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서 은행계좌에 예치되는 순간부터 과정은 또다시 개시된다. 은행으로부터 현금을 인출하여 장롱이나 지갑 속에 넣어두는 일은 없다는 전제 하에서 은행의 화폐창조(money creation)는 본원 예금인 100만원이 모두 지급준비금으로 바뀔 때까지 계속된다. 결국 100만원의 예금은 대략 1000만원의 예금으로 부풀려진다. 이처럼 예금과 대출이 연쇄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예금은 팽창하고 파생통화량은 증가한다. 지급준비율이 작으면 작을수록 신용창조가 더 크고 파생통화량은 더 많이 팽창하게 된다. 현재 한국은행의 정기예금 지급준비율은 2%이고 기타 예금은 7%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본원통화 비중은 10% 이하이며 유통화폐량의 90% 이상이 시중은행이 창조한 신용화폐이다. 화폐발행이득(Seigniorage)은 불태환 본원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지급준비금 제도에 의한 막대한 대출과 예대차 금리차이의 형태로 시중은행이 더 많이 거둬들이고 있다.

현재의 화폐시스템은 ‘부채 기반 화폐창조’(debt-based money creation) 시스템이다. 시중은행은 대출을 통해 파생통화를 창조한다. ‘부채 기반 화폐창조’는 정부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은 채권시장에서 국채를 되사들임으로써 미래의 조세를 기반으로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이와 같은 ‘부채 기반 화폐창조’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현재의 금융시스템에서 신용화폐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은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올릴 수 없게 만들며, 결국 통화량 정책은 기준금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이루어진다. 그간 주류 경제학은 예금은행의 화폐창조가 성장에 필요한 화폐를 공급하여 경제의 발전적 순환을 이룬다고 설명해 왔지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설명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지급준비금으로 막대한 파생화폐를 창조해낸 금융시스템에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2008년 이후의 장기침체는 금융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채기반 화폐창조’는 오직 기업과 가계의 상환능력이 의심받지 않을 경우에만 유지된다는 점이다. 금융화와 부채의존성장을 통해 실물경제의 지급불능 위기를 아무리 지연하더라도 결국 지불능력이 임계점에 달하면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먼저 나타나고 실물경제 침체로 되먹임된다. ‘부채 기반 화폐창조’는 실물경제에 대해 지속적인 성장강제로 작용하지만 실물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면 화폐시스템 그 자체가 위기의 근원이 된다. 1930년대 공황기부터 오늘날까지 이런저런 형태로 제안되기 시작한 여러 종류의 대안화폐 시스템들은 ‘부채 기반 화폐창조’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공유한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별성을 중심으로 대안적 화폐제도들을 유형화하면 화폐구상으로서 비트코인은 과연 어떤 흐름의 연속선상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대안적 화폐제도들의 유형학

◇ 첫째 구분: 보완화폐 구상와 전면적 화폐시스템 개혁안의 구분

유통범위의 보편성을 기준으로 보면 화폐대안들은 보완화폐 구상과 전면적인 화폐시스템 개혁안으로 나눌 수 있다. 페이백 시스템에 의해 기업이 발행하는 보완화폐와 비교하면 여전히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지역화폐나 공동체 화폐의 도입도 최근에는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보완화폐 연구센터(Complementary Currency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1992년에 20여개에 불과했던 지역화폐 발행기관이 2011년에는 224개로 늘어났다. 지역화폐들은 화폐의 가치저장 기능을 약화시키고 교환수단 기능에 충실한 화폐시스템을 지향한다. 물론 이러한 지향에도 불구하고 지역화폐는 유통범위의 제한으로 인하여 전면적인 화폐시스템 개혁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특성인 역외유출 통제는 가치저장 기능을 약화시키고 교환수단 기능을 강화되는 효과도 낳는다.

◇ 가치저장 기능이 우선인가 교환수단 기능이 우선인가? 이자가 붙지 않는 ‘자유 화폐’

금융투기로 이어질 위험을 가지고 있는 화폐의 가치저장 기능과 교환수단 기능은 상호 대립적이라는 관점은 이미 1910년대 말에 실비오 게젤(Silvio Gesell)에 의해 ‘자유 화폐’(free money)라는 이름으로 제안되었다. 화폐의 유동성 프리미엄을 중립화시키려는 게젤의 구상은 1930년대 금융공황을 맞아 케인즈의 화폐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순환할수록 이자가 붙는 대신에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도록 설계된 게젤의 화폐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이미 실현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마이너스 금리 현상은 기준금리 이외에는 통화량 조절에 직접 개입할 실효 수단이 없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오히려 결과로서 드러난 사실은 기준금리 인하에 의해서도 통화량 확대는 불가능하며 결국 현재의 화폐시스템에서 통화량에 대한 중앙은행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빚 없는 화폐’(dept free money) 구상은 현재의 부분지급준비제 통화제도에 대한 개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 본원예금만큼만 대출하라! 전액지급준비제도

부분지급준비제에 대한 정반대 제도는 전액지급준비제(Full Reserve Banking) 또는 100% 지급준비율 제도이다. 전액지급준비제는 은행시스템에서 화폐창조 기능과 금융중개기능을 분리시킨다. 쉽게 말하면, 예금의 일부만 지급준비금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를 대출함으로써 화폐창조를 하던 시중은행은 전액지급준비제로 바뀌면 본원예금 규모 안에서만 대출해 주는 금융중개기관으로 변해야 한다. 1930년대 공황의 원인을 ‘계좌 돈’의 급속한 파괴에서 찾았던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전액지급준비제도에 의하여 1929년부터 1933년간의 화폐공급 붕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즈벨트 정부도 당시에 ‘시카고 플랜’이라고 불렸던 피셔의 계획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결국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도 ‘시카고 플랜’의 꾸준한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피셔의 계획은 매우 오랫동안 잊혀졌다. 전액준비제도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08년 금융공황 이후이다. 2012년에 두 명의 IMF 경제학자는 거시경제학의 최근 기법을 사용하여 계산한 결과 ‘시카고 플랜’이 채택되었더라면 뱅크런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민간채무와 공공채무는 감소하고 경기는 안정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IMF의 보고서는 현재 상황에서도 전액지급준비제도가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나는 출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금융자산도 가치저장 기능을 가진다. ‘화폐 레버리지 세(稅)’와 국가화폐

다른 한편, 전액지급준비제를 도입하여 은행의 파생화폐 창조를 금지해도 화폐대체물인 여타 금융자산의 가치저장 기능이 강화되는 결과만 생길 뿐이고 결국 국가가 통화량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할 수는 없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안은 ‘화폐 레버리지 세(稅)’(leverage money tax)에서 찾을 수 있다. ‘화폐 레버리지 세(稅)’는 “금융상품들은 실물생산의 재정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가치창조에 쓰인다”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채권, 증권, 모든 신용증서의 발급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이다. 이때 세율은 신용증서의 위험도에 대해 역진적으로 한다. 즉 신용증서의 이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세율은 낮다. 그 이유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가계나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과도한 화폐창조의 위험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화폐 레버리지 세(稅)’는 전액지급준비제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통화량 통제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조세모델로 해결한다. 반면에 조세제도가 아닌 화폐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국가가 통화량에 대한 직접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 방식으로서는 ‘국가화폐’(sovereign money)를 들 수 있다.

◇ 국가화폐 - 발권력의 공공화

부분지급준비제처럼 ‘부채 기반 화폐’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화폐는 ‘긍정 화폐’(positive money) 또는 ‘완전 화폐’(full money)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화폐 또는 ‘완전한 국가화폐’(full sovereign money)라는 명칭에는 전액지급준비제도와 대비되는 고유한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실제로 ‘소브린(sovereign) 금화’는 국왕이 아직 화폐발행권을 잉글랜드 은행에 넘기기 이전인 헨리 7세 치하에서 발행되었던 1파운드짜리 금화의 명칭이기도 했다. 분명 국가화폐는 전액지급준비제도와 매우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계좌를 지불결제 기능을 수행하는 거래계좌(transaction accounts)와 여수신 기능을 수행하는 투자계좌(investment accounts)로 구분하여 투자계좌가 지불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 이를 통해 시중은행의 화폐창조를 막고 대신에 금융중개기능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국가화폐는 전액지급준비제와 공통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이처럼 화폐창조와 금융중개를 엄격히 구별하려는 공통성이 있음에도 개념적으로 보다 엄밀히 따지자면, 전액지급준비제도는 시중은행의 화폐창조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100%의 지급준비금을 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국가화폐에서는 예금통화와 지급준비금의 구분이 없어지고 통화의 공급 및 유통을 본원통화로 일원화된다. 국가화폐에서 개인과 기업의 거래계좌는 은행의 대차대조표가 아니라 중앙은행의 전자결제시스템에 등록되어 예금통화가 아닌 본원통화로 지불결제가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국가화폐는 오히려 지급준비금 없는 화폐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지급준비의무 없는 화폐창조 기능은 전적으로 국가가 통제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러한 제안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통화증발의 의혹과 염려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가화폐 주창자들은 물가안정을 꾀하는 본원통화량 타게팅을 유달리 강조한다. 특히 요셉 후버(Joseph Huber)는 본원화폐를 공급하는 중앙은행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버금가는 ‘통화부’(Monetative)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국가화폐 구상에는 발행된 통화의 사용처는 의회가 결정하더라도 발행할 통화량은 통화발행위원회(Money Creation Committee)가 결정하도록 하는 매우 정교한 권력분립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화폐는 공공재인 화폐의 양은 국가가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매우 오래된 전통을 표현한다. 국가화폐는 발권력의 민주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권력을 시장으로부터 되찾아 오는 발권력 공공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국가화폐가 진정한 의미에서 발권력 민주화와 공공화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통화발행위원회(Money Creation Committee)의 구성과 운영원칙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국가화폐 구상에서는 발행할 통화의 총량은 통화발행위원회에서 정하지만 발행된 통화는 전부 중앙은행으로부터 정부에 공급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신용 공급을 위해 현재의 총액한도대출제도나 온렌딩 제도처럼 민간은행을 거쳐 기업에 대출할 수도 있고, 헬무트 크로이츠(Helmut Creutz)가 제안했듯이 국가재정을 충용하고 남은 본원통화량을 개별적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줄 수도 있다. 정부가 공급받은 화폐를 어디에 쓸 것인가는 예산권을 가진 의회에서 정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근 가상통화 관련 은행권 현장점검 배경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사진=정책브리핑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근 가상통화 관련 은행권 현장점검 배경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사진=정책브리핑

◇ ‘자유은행업’과 통화다원주의

국가화폐와 대척점에 있는 대안화폐 구상은 하이예크의 ‘자유은행업’(free-banking)이다. “버젓한 화폐는 정부로부터 기원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사기업으로부터만 발행될 수 있다”는 명제로 시작하는 하이예크의 ‘자유은행업’은 화폐창조의 탈국가화, 통화다원주의의 대표적 사례이다. ‘자유은행업’ 시스템에서는 오직 민간은행들의 경쟁에 의하여 화폐가 창조되고 독점적 발권은행은 사라진다. ‘자유은행업’의 핵심 주장은 은행 간 경쟁은 신용창조를 억제하는 효과를 낳아 기준금리로 느슨하게 개입하는 중앙은행이 있는 상태보다 오히려 더 건전한 신용창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자유은행업’ 시스템과 금본위제는 화폐는 시장의 자생적 산물이라는 관점을 공유하지만, 금본위제의 필연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금본위제 상품화폐를 일관되게 지지했던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달리 하이예크는 금이 필연적으로 가치척도(Standard of Value)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은행 간 경쟁에 의해서도 척도기능이 잘 수행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오스트리아 학파 안에서 ‘자유은행업’ 구상과 금본위제 복귀구상의 대립을 낳았다.

◇ 가상화폐 - 화폐창조의 탈중앙화 및 탈은행화

금융결제시스템이 블록체인 기반의 P2P 거래로 바뀌면 화폐 발권기관은 더 이상 은행이 아니게 된다. 비트코인의 발권기관은 중앙은행도 아니며 시중은행도 아닌 디지털 채굴에 참여하는 사인(私人)이다. 이 점에서 비트코인은 화폐창조를 탈중앙화할 뿐만 아니라 아예 탈은행화한다. 비트코인의 화폐구상은 중앙은행의 통화량 통제에 반대하며 화폐는 시장의 내적 필요에 의해 발생한다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관점에 접근한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무분별한 신용창조라는 문제와 관하여 ‘자유은행업’이 은행 간 경쟁에 의하여 무분별한 신용창조가 방지될 것이라는 시장낙관주의에 기대고 있는 반면에, 비트코인은 신용창조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게 만드는 기술적 해결을 추구한다.

‘자유은행업’에서 화폐의 민주화란 완벽한 공공화가 아니라 완벽한 시장화이며, 결국은 은행기업이 우위를 차지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달리 비트코인은 P2P 거래를 통한 분산화 모델이며 개별 사용자들의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반드시 은행 데이터베이스를 경유하지 않는 개별 사용자들의 거래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동일한 기술은 현재의 금융시스템 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가능하며, 만약 기업들이 은행을 경유하지 않은 기업 간 거래에 활용한다면 블록체인이 불러온 탈중앙화와 탈은행화는 기업화폐의 등장으로 귀착될 수도 있다.

대안적 화폐시스템에 대한 개방적 논의 필요한 국면

위에서 검토한 여러 가지 점에서 비트코인과 국가화폐는 현행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대한 정반대의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화폐는 아이슬란드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 국민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시도는 물론 좌절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부분지급준비제도가 불변의 화폐시스템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국가화폐는 영국 노동당의 의제그룹에서도 논의되는 주제이다. 비트코인 및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열기도 마찬가지로 변화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적어도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부터 화폐시스템은 사회적인 이유에서든 기술적인 이유에서든 변화를 강제 받고 있다. 대안적 화폐시스템에 대한 개방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한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살핀 부분지급준비제도 파생통화, 국가화폐, 비트코인의 화폐 특성은 다음과 같은 비교표로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부분지급준비제

파생통화

국가화폐

비트코인

발권주체

민간은행(신용창조)

중앙은행(본원통화)

사인(私人) 비은행

통화량 통제

중앙은행 기준금리에 의한 간접통제

 

 

통화량 직접조절

(monetative:

통화발행위원회)

통화량 상한선

 

화폐창조

불태환

(신용/부채로 창조)

불태환

(개인과 정부에 공급: 채무 없는 화폐)

 

디지털 채굴

 

통화량 증가요인

이윤주도/부채 기반 화폐창조는 성장강제

사회전체이익 고려 /GDP증가에 연동

디지털 채굴(향후 33년간 채굴가능/단위채굴량 감소)

사회화 근거

채무/신용능력

법률/경제적 필요와 가능성

희소성/사인 상호간의 신뢰

사회적 승인

일반적 지불수단

법적 지불수단

일반적 지불수단도 아니며 법적 지불수단도 아님

 

화폐발행이득

(Seigniorage)

민간은행의 화폐창조이득은 본원적 발행이득이 아님.

이자형태로 화폐창조이득을 취함.

1) 본원적 화폐발행이득은 모두에게,

2) 기업대출 이자는 중앙은행으로,

3) 민간은행 수익은

자계좌

(investment

accounts)에서 발생

 

개별 비트코인의 가치상승으로 개별적 보유자가 발행이득을 편취

테크놀로지와 DB

민간은행 DB

- 중앙은행 DB

- 민간은행 외부의 DB (블록체인 기술을 거래계좌에 응용할 수 있음)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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