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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산후안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8.07.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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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식민지다. 필리핀 동쪽의 섬 괌과 남태평양 아메리칸 사모아처럼 미국령이면서 미국의 한 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땅이 그곳이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 미국 시민권은 주어졌지만 대통령선거나 미 의회선거의 투표권은 없다. 그나마 시민권이 부여된 것은 1917년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푸에르토리코에서 장정들을 징집하기 위한 꼼수였다. 이곳 시민들은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내는 점이 유리한 반면 미국 정부로부터의 교부금이 적어서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만성적인 재정파탄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승격할 것인가 여부는 현재도 미결로 남아있는 현안이다.

푸에르토리코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와 크기가 비슷하고 제주도의 다섯 배 쯤 된다. 인구는 약 350만 명으로 제주도 인구 63만 명의 다섯 배를 약간 웃돈다. 인구의 75%는 히스패닉(스페인계 백인), 12%는 흑인이다. 미국 본토의 흑인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이웃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이나 아이티, 자메이카에 비해 백인 비율이 훨씬 높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첫 방문한 1492년 이후 단 한 세대 안에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살던 기십만 명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절멸됐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하고 노예로 삼아 끝없이 착취한 것에 더해 정복자들이 유럽에서 옮겨온 천연두 등 전염병균에 인디언들이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서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들이 결국 카리브해 국가 전역에서 인구의 주종을 차지하게 됐다. 아이티같은 나라는 도망 노예들이 프랑스 지배자들을 쫓아내고 독립한 나라인지라 인구 절대 다수가 흑인이고 백인과 흑인의 혼혈 자손인 물라토(Mulatto)가 소수 있을 뿐이다. 영국이 지배했던 자메이카도 흑인이 92%, 혼혈이 6%로 사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스페인령이었던 도미니카공화국은 흑인이 11%, 혼혈이 73%, 백인이 16%로 백인 비율이 더 높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던 식민지는 혼혈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스페인은 지배인종의 유전자를 적극적으로 퍼뜨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푸에르토리코는 백인계열의 인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푸에르토리코의 전략적 위치가 주된 이유였다. 지금 우리가 지도를 보면 푸에르토리코는 쿠바와 잡다한 카리브해 소국들 사이에 끼여 있는 조그만 섬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콜럼버스 이후 19세기 초 증기선이 발명되기까지의 범선시대에는 바람의 영향이 결정적 요소였다. 콜롬버스가 처음 다다른 신대륙의 땅은 바하마 제도였고, 그는 쿠바와 산토도밍고(현 이스파뇰라 섬)를 둘러본 뒤 귀환했다. 2차 항해에서는 카리브해 소(小)안틸레스 제도의 중간쯤에 있는 과달루프에 도착해서 푸에르토리코, 이스파뇰라, 쿠바를 순항했다. 콜럼버스가 드넓은 북미대륙을 놓아두고 굳이 카리브해 연안에서 맴돈 것은 애초 신대륙으로 향할 때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람이 부는 무역풍을 등에 지고 항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의 항해자들이 대서양을 건널 때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은 항구로 삼을 만한 지형조건이 갖춰졌고 물을 쉽게 얻을 수 첫 번째 땅이었다.

신대륙을 식민지로 삼은 스페인의 관점에서 인디언들의 저항이나 흑인 노예들의 반란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위협은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의 후발 식민세력이었다. 따라서 스페인은 카리브해의 관문이자 아메리카 신대륙 전체의 교두보인 푸에르토리코를 극도로 중시했다. 스페인은 산후안 만을 지키기 위해 모로 요새와 상크리스토발 요새 등 거창한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19세기 말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한 미국은 파나마 운하와 남미 대륙으로 가는 중간 거점으로 활용했다. 산후안의 인구는 42만 여 명으로 적잖은 도시지만 방문객들의 관심은 식민시대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올드 산후안과 콘대도 비치, 이슬라 베르데의 해변 등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좀 멀리 나간다면 페리를 타고 스페니시 버진 아일란드라 불리는 비에케스 섬이나 쿨레브라 섬으로 가서 다이빙과 스노클 등을 즐길 수도 있다.

푸에르토리코 수도인 산 후앙의 야경. 사진=위키피디아
푸에르토리코 수도인 산 후앙의 야경. 사진=위키피디아

내가 푸에르토리코를 가게 된 것은 미국 서부에서 카리브해 연안의 자메이카와 도미니카공화국, 아이티를 가는 중간 기착지로 삼기 위한 목적이었다. 어느 한 나라만 골라 두어 주일 동안 휴양을 하는 여행이라면 굳이 중계지가 필요 없겠지만 원래 주마간산 식으로 여행하는 처지라 항공편이 저렴하고 편리한 곳이 중요했다. 구글 플라이츠를 통해 검색해 보니 미국 서부에서 푸에르토리코로 가는 비행기 값이 가장 쌌다. 산호세에서 산후안 가는 항공편이 최저 275 달러가 나왔다. 일정이 조기 확정되지 않는 바람에 최저가는 놓치고 결국 366 달러를 치르고 표를 예약했다. 산후안에서 도미나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와 자메이카 킹스턴을 가려니 연결편이 편리하지 않았다. 결국 산토도밍고는 직항편으로 다녀와서 산후안에서 다시 미국 포트로더데일을 경유해 자메이카 몬테고베이로 가는 표를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산후안을 이주일 동안 세 번이나 방문하는 여정이 되고 말았다. 먼저 올드 산후안의 플라자 콜론에 있는 호스텔 포사다 산프란시스코에 예약을 해서 2박3일을 지냈다. 1박당 15달러라는 괜찮은 가격에 간단한 아침까지 주는 조건이고 운영관리가 빈틈없어 보였다. 1층에는 푸드코트가 있어 편리하지만 나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식사를 해결했다. 도착한 첫날 오후에는 올드 산후안의 관광안내도에 나와 있는 워킹 투어 노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 상크리스토발 요새부터 모로 요새까지 둘러 봤다. 이튿날은 크루즈 터미널에서 출발, 라 마리나를 거쳐 산후안의 관문인 푸에르타 데 산후안에서 카테드랄(대성당)으로 올라갔다 다시 옛 총독관저이자 현재 지사 집무실인 라 포르텔라자와 아르마스 광장 등을 들렀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방문 때는 콘대도 비치와 이슬라 베르데의 식당과 쇼핑몰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여느 대도시와 전혀 다를 것이 없이 풍경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의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회 인프라 때문에 꽤 애를 먹은 터라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우사인 볼트의 나라 자메이카가 주로 영어를 쓰는 반면 푸에르토리코는 주로 스페인어를 쓴다. 물론 젊은 세대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영어를 잘 구사하지만 큰 상점의 계산대에 있는 점원들조차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찰관들의 방탄조끼에 ‘폴리스’라 씌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폴리리시아’라고 스페인어로 표기된 것을 보더라도 영어 사용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돈은 미국 달러와 동전을 그대로 사용한다.

내가 푸에르토리코를 간 것은 11월 초순이었는데 기온이 섭씨 25도 아래로 내려가진 않는 것 같았다. 한해를 통틀어 봐도 화씨 60도(16˚C)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건기는 12월부터 3월, 우기이자 허리케인 계절은 6월부터 11월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가 있는 동안 비가 잦았다. 푸에르토리코라 하면 일단 위험한 곳이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내가 가서 느낀 바로는 특별히 위험한 도시라 여겨지지는 않았다. 물론 곳곳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드 산후안과 비치 등에 머무는 한은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푸에르토리코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나름 좋은 곳이 많을 테지만 우선 올드 산후안에서 며칠 묵으며 흘러간 옛날 콜로리얼 시대의 풍정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푸에르토리코는 식민시대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올드 산후안과 콘대도 비치, 이슬라 베르데의 해변 등이 유명하다. 사진= 푸에르토리코 관광청
푸에르토리코는 식민시대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올드 산후안과 콘대도 비치, 이슬라 베르데의 해변 등이 유명하다. 사진= 푸에르토리코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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