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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나프타 무역분쟁 해결 시스템 ‘양자패널’ 지켰다
캐나다, 나프타 무역분쟁 해결 시스템 ‘양자패널’ 지켰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0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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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방적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제어판 기능 유지
낙농․유제품 품목의 시장 접근은 미국에 양보
무역확장법 제232조 ‘국가안보’ 내세운 일방관세 부과는 미합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S) 무력화에 이견 없어

25년 간 유지돼온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라는 새 이름으로 앞으로 16년 간 다시 살아나게 됐다. 미국과 캐나다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협상 시한인 9월30일 자정을 앞두고 극적으로 나프타 개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프타는 미국-멕시코 협정으로 쪼그라들 뻔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와 막판 합의로 '나프타를 현대화시키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게 됐다. '약속을 지킨다'는 백악관 홈페이지 사진이 인상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와 막판 합의로 '나프타를 현대화시키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게 됐다.
'약속을 지킨다'는 백악관 홈페이지 사진이 인상적이다.

미국은 지난 8월26일 멕시코와 예비 개정안에 합의한 뒤 마감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캐나다의 동참 여부를 압박해 왔다. 새 협정은 미국 의회 검토기간 60일 등 정식 서명과 의회 비준을 거쳐 내년 상반기 발효할 것으로 보인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11월 말 퇴임하기는 하지만, 후임자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당선자 쪽에서 “원산지 규정 강화 등과 같은 새로운 변화는 기업들에 적응하기 위한 도전과제를 부과할 것”이라면서도 3국 간 무역협정 유지라는 큰 틀을 지지하고 있다. 새 협정은 16년 간 유지하되 6년마다 이행 상황 검토를 거치며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

벼랑 끝에 몰린 캐나다는 끝까지 무역분쟁 해결 절차를 담은 기존 나프타 제19장을 유지한다는 태도를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제19장의 유지를 ‘레드라인’(나프타 참여와 탈퇴의 기준선)으로 간주해 왔다. 제19장은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부과 등으로 인해 무역분쟁이 벌어졌을 경우, 관련 조치의 정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동수의 당사국 무역 전문가들로 이뤄지는 양자패널을 구성한다는 내용이다. 멕시코와 합의한 예비 개정안에서는 삭제됐지만, 캐나다 덕분으로 살아남게 됐다. 이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반덤핑․상계관세 부과에 대한 일정한 제어 기능을 확보하게 됐다.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는 여전히 미해결

하지만 멕시코는 물론 캐나다와의 이번 합의에서도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미국이 공세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무역보복 조치에 대한 적용 여부는 미해결로 남았다. 문제의 조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쿼터를 설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수출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10~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우리로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비슷한 관세 부과 위협을 받고 있던 한국은 지난 3월26일 한‐미 FTA를 합의하며 그 일환으로 무관세 철강 쿼터(2015~17년 수출량의 70%)를 확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애초 한‐미 FTA와 무관하게 4~6%의 저율 관세를 적용받던 철강 품목이 한‐미 FTA와 묶이면서 무관세를 조건으로 기존 수출량의 30%를 삭감한 것이다. 한‐미 FTA에 최종 서명까지 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관세 부과를 위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자패널을 지키는 대신에, 캐나다는 낙농․유제품 품목에서 양보했다. 연 160억달러에 이르는 캐나다의 낙농․유제품 시장에서 미국에 3.6%(약 5억8천만달러)를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캐나다가 유럽연합 등에 허용한 3.25%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는 자국의 낙농․유제품 시장 보호를 위해 200~300%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미국 낙농․유제품의 캐나다 수출액은 2016년 5억5700만달러나 됐다. 미국 낙농․유제품 품목의 혜택이 지금보다 커지겠지만, 캐나다 관련업계에 주는 충격이 아주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

자동차 무관세 수출 상한 캐나다 연 260만대, 멕시코 240만대로 넉넉…한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은 명분을, 캐나다는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캐나다 자동차 수출물량을 연 260만대로 상한선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캐나다의 현 자동차 생산능력 연력 650만대의 40% 수준이다. 캐나다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이 현재 연 18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넉넉한 상한선을 확보한 셈이다. 앞서 예비 개정안에서 약 200만대를 미국에 수출하는 멕시코는 240만대를 무관세 상한선으로 확보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캐나다의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서는 자동차에 대한 제232조 적용 문제가 캐나다 수준의 합의로 이어지지 않는 한,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이밖에 미국에 무관세로 자동차가 수출되기 위한 조건인 나프타 역내 부품비율이 현행 62.5%에서 75%로 상향된 것이나, 시간당 최저임금이 최소 16달러인 근로자들에 의한 생산 비중이 최소 5분의 2에 이르도록 한 미국과 멕시코의 예비 개정안 내용도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캐나다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S)를 무력화시키기로 한 미국과 멕시코의 예비 합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트뤼도 총리 역시 이 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밖으로 표현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이에 따라 새 협정에서 ISDS는 사실상 무력화하게 된다. 소송 제기 대상은 직접수용(direct expropriation),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위반으로 명확히 한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서 ISDS 소송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멕시코의 경우, 국내 법원과 행정적 구제 절차를 최소 30개월 거치도록 했다. 이 절차를 거쳐야 ISDS에 따른 소송을 걸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부분적으로 민영화한 멕시코 석유와 가스 분야를 포함해 통신, 에너지 생산, 인프라 부문에 대해서는 직접수용만이 아닌 간접수용 등을 포함해 이전과 같은 폭넓은 투자자의 권리를 인정했다. 멕시코가 다른 나라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면 미국 투자자에게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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