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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항, 무역협정에 어떻게 담겨야 하나?
노동조항, 무역협정에 어떻게 담겨야 하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0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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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주의로 악용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노동조항, 핵심 노동권을 투자자의 권리와 동격으로 인정해야
트럼프가 남발하고 있는 ‘사회적 덤핑’ 개념 정립도 늦출 수 없어
1994년 발효한 나프타는 지역 무역협정 최초로 부가협정으로 노동과 환경 관련 조항을 포함했지만 무역의 들러리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고, 최근 개정안은 보호주의로 악용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1992년 10월 애초 나프타에 서명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1994년 발효한 나프타는 지역 무역협정 최초로 부가협정으로 노동과 환경 관련 조항을 포함했지만 무역의 들러리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고, 최근 개정안은 보호주의로 악용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1992년 10월 애초 나프타에 서명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도입한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를 멕시코가 베끼는 일이 머지않아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개정에 합의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개정안의 일부를 이루는 ‘노동 협력에 관한 부가협정’(side agreement) 때문이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이름을 바꾼 나프타 부가협정 개정안에서 미국은 ‘미국에 수출되는 차량 당 40~45%가 시간당 최소 16달러(약 1만8천원)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세 나라 안에서 생산된 부품의 비율도 현행 62.5%에서 75%로 끌어올렸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보다 낮은 임금 수준을 노리고 공장을 미국 밖으로 이전하는 흐름을 막고, 멕시코의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라는 신호를 보내는 한편, 아시아의 대미 자동차 수출을 둔화시키려는 복합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시키고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내용이라고 추어올렸다. 과연 그럴까? 1994년 발효한 나프타가 지역 무역협정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동과 환경 관련 조항을 포함한 터라, 미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우려가 높은 편이다. 가뜩이나 심각한 멕시코의 ‘이중 경제’를 더 악화시킬 위험성이 높은 데다, 근본적으로는 구체적인 임금 수준까지 명시하는 식으로 무역과 노동 조항을 엮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미국에 수출하려면 멕시코 최저임금의 3.5배는 돼야 한다?

멕시코의 ‘이중 경제’는 수출산업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인 마킬라도라가 뒷받침하는 북부의 수출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으로 나뉜다. 멕시코 제조업 평균 임금은 지난 7월 기준으로 시간당 2.3달러 수준이다. 2018년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88.36페소(1월 기준 약 4.7달러)였다. 나프타 개정안에 담긴 시간당 16달러는 멕시코 제조업 평균 임금의 7배, 최저임금의 3.5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미국 지엠과 포드는 물론, 한국의 기아․현대차, 일본의 도요타, 닛산, 혼다, 마쓰다 등 멕시코에 조립 공장을 둔 글로벌 다국적 자동차업체들은 이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수익성 압박을 받기는 하겠지만, 경쟁업체들 모두 동일한 처지이니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는 건 역내 부품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관련 부품 공장들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부품 공장들의 임금 수준이 멕시코 최저임금을 웃돌기는 하겠지만, 한꺼번에 올라가는 임금 수준을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완성차 조립업체가 납품단가를 올려 부품업체의 지급 능력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그 대신에 수출 상한선을 240만대로 확보해 현행 수출량보다 40만대 늘어난 물량을 차지해 악화하는 수익성을 보완하려는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방안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해 임금의 일부를 지급하는 한국처럼, 멕시코 판 일자리 안정자금이 나오는 것이다. 멕시코 정부와 자동차 업체의 협력 속에서 두 방안이 병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자리 안정자금을 도입하기에 멕시코는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멕시코 국내적으로 이미 임금 수준이 높은 부문에 정부 보조를 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가 있다. 멕시코 다른 경제 부문들의 반발도 심할 것이다.

투자자의 권리처럼 노동조합과 인권단체도 소송할 수 있도록 해야

멕시코가 겪을 이런 현실적 문제에 비춰보면, 구체적인 임금 수준까지 명시한 이번 나프타 개정안은 노동조항을 보호주의에 이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들은 노동조항이 선진국의 보호주의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무역협정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해 왔다. 물론, 개발도상국들의 반대 논리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호주의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의 인정, 강제노동의 금지처럼 국제노동기구(ILO)가 인정하는 핵심 노동권을 무역헙정에 담는 것까지 난색을 나타내는 것은 명분상 매우 군색하다. 이런 핵심 노동권이 무역협정에 포함되는 것은 내국민 대우, 최소기준 대우, 직접수용의 금지와 같은 투자자의 권리가 무역협정에 담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투자자의 권리는 인정받는데, 핵심 노동권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불균형이다.

트럼프의 자화자찬과 달리, 이번 나프타 개정안은 노동조항이 무역과 연계하는 바람직한 선례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동조항이 보호주의의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고, 핵심 노동권이 무역과 상업적 이해의 볼모로 잡히지 않는 방안을 찾는 방안은 투자자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동등하게 놓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보호됐던 투자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생색에 그쳤던 노동권은 투자자의 권리와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핵심 노동권의 위반이 이뤄져도 이것이 무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한 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낳는 나프타의 기존 노동조항과 환경조항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역이나 투자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이나 무행동의 지속적이거나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벌어진 위반이라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투자자의 권리 침해에 대한 판정처럼 ‘권리’ 그 자체에 대한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게 맞다. 아울러, 노동조항 위반의 소송 주체를 정부로 한정한 것도 개선해야 한다. 권리 확보를 위해 투자자 개인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노동권이나 환경권 역시 노동자나 노동조합이나 인권단체, 환경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핵심 노동권 위반하는 ‘사회적 덤핑’은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조항과 무역 상의 ‘정당한 보호’를 연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가트)는 물론 그 후신인 세계우역기구(WTO)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듯이,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 부과, 세이프가드 발동 등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인정받는 보호 조치들이다. 이런 제도들의 맥락에서 핵심 노동권의 심각한 위반을 통해 생산된 상품의 수입이 급증하는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에 대한 무역구제 장치를 제대로 설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와 네오콘들이 ‘주권’을 내세우며 남용하고 있는 일방주의적 행동의 근저에 ‘미국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미국 예외주의’와 함께, ‘사회적 덤핑’에 맞선 정당한 조치의 부과라는 프레임이 동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반덤핑 조치나 상계관세 부과, 세이프가드의 발동이 그 자체로 보호주의를 구성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 덤핑’이라는 개념 자체가 보호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의 권리와 동등한 핵심 노동권의 인정과 분쟁 해결 절차 구축, 사회적 덤핑 개념의 수립과 이에 입각한 무역구제 조치의 확립 등이야말로 무역협정에 노동조항이 제대로 담기는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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