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15 16:51 (화)
시어스 파산과 국내 사모펀드 규제완화 방안의 공백
시어스 파산과 국내 사모펀드 규제완화 방안의 공백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22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모펀드 활성화 계획과 세계3대 사모펀드 KKR과 신한은행의 전략적 제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자산 약탈’ 행태 수렴

1. 126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유통업계의 아이콘인 시어스가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많은 원인 진단이 쏟아진다. 값싼 중국제 상품을 앞세우며 약진한 할인매장 월마트에 1991년부터 유통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아마존이 상징하는 전자상거래의 확산에 무너졌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한때 시장을 이끌던 내비게이션업체들이 스마트폰과 어플리케이션에 밀려 쓸쓸히 사라졌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영화 ‘안시성’의 묘사처럼 양만춘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웅’(unsung hero)이었다면, 시어스의 파산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원인’이 있다는 비판이 있다. 자신이 세운 헤지펀드인 ESL인베스트먼츠를 이끌며 2003년 할인매장 Kmart를 사들인 데 이어 2005년 시어스와 Kmart를 합병한 에드워드 램퍼트 시어스 홀딩스 회장의 경영전략이 그것이다.

에드워드 램퍼트의 헤지펀드 인수 이후 파산 신청한 한 시어스 매장의 전경. 위키피디아
램퍼트의 헤지펀드에  인수된 이후
끝내 파산 신청한 한 시어스 매장의 전경.
위키피디아

램퍼트는 ‘제2의 워런 버핏’으로 불릴 정도였다. 1987년 ESL 설립 이후 자동차부품 소매업체 Autozone, 자동차 거래업체 AutoNation 등에 투자해 그 자신이 거둔 투자수익만도 각각 7억5천만달러, 15억달러나 됐다. 하지만 가장 주목을 받은 사건은 Kmart와 시어스의 인수였다. 단기 차익거래 중심의 헤지펀드의 수익모델이 좀 더 장기적인 시야까지 염두에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대표적 사례로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당시 시어스는 할인매장의 약진과 전자상거래의 부상으로 성장이 정체돼 있는 상태였다. 1991년 시어스로부터 1위 자리를 빼앗은 월마트의 매출은 2001년 이미 시어스의 6배였다. 반면 Kmart는 월마트보다는 적지만 시어스가 고전하는 주요한 원인인 할인매장의 강자였다. 헤지펀드가 이런 결합을 통해 세계 굴지의 소매 유통업체가 되는 것이었으니 비상한 관심이 쏠릴 만도 했다.

실물투자 없고 자사주 구매에 6년간 60억달러

2. 소비자의 쇼핑행태 등 변화하는 환경에서 램퍼트는 나름의 비전과 경영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올해 초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Kmart의 입지와 시어스의 브랜드를 통합해 월마트의 공세에 대응하는 보완 전략을 추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위치상으로는 월마트와 근접하지만 가전제품과 내구재 판매 등 시어스의 강점 분야를 통해 월마트와 경쟁하고 이를 대체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에 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얼마나 이런 전략을 치밀하게 성실하게 추구했는지는 알 수 없다.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이런 전략이 수정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인 그의 모습이 사모펀드의 ‘약탈적’ 행태와 매우 비슷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헤지펀드도 사모펀드의 한 종류임)의 사업모델 수렴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램퍼트가 부실채권을 인수해 주식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Kmart를 인수한 이후 매장 매각, 재고 축소, 광고비 삭감 등을 통한 자본지출과 운영비용 축소가 벌어졌다. 영업이익 증가와 주가 상승이 뒤따랐다. 물론, 불필요한 자산과 지리적 이점이 없는 매장을 매각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Kmart 독자 성장모델이 아니라 시어스 인수를 통해 시너지를 노리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Kmart의 부동산 가치만으로도 램퍼트가 인수한 주식가치와 맘먹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Kmart를 개선하기보다 매장을 매각하는 것만으로도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게 사모펀드 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이렇게 상승한 Kmart의 주가를 바탕으로 시어스를 110억달러에 합병했다. 시어스 합병은 시너지를 노린 전략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너지 창출을 위해 얼마나 치밀한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너무 많다. 강점 분야를 키우려는 노력보다는 자사주 구매를 통한 주가 부양에 더 공을 들였다. 합병 이후 2012년까지 자사주 구매에 6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주당 174달러라는 높은 가격이었다. 램퍼트는 “시어스가 금융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휴짓조각이 된 지금의 가격 기준이 아니라 당시 기준에서만 봐도 재도약을 위한 생산적 투자에 소중한 현금흐름이 낭비됐다는 평가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부동산은 헤지펀드로, 리스료 신규 부담으로 현금흐름 압박

3대 사모펀드로 통하는 콜크래비츠로버츠에 인수된 이후 이자 부담 상환 압박에 시달리며 지난해 9월 파산 신청한 토이즈러스 매장의 전경. 위키피디아
3대 사모펀드로 통하는 콜크래비스로버츠(KKR)에 인수된 이후
지난해 9월 파산 신청한 토이즈러스 매장의 전경.
위키피디아

3. 2012년 이후에는 시어스의 강점으로 꼽히던 브랜드의 분사와 매각이 이어졌다. 가전기기와 잔디용품을 판매하는 전국 매장 브랜드인 ‘시어스 홈타운 앤 아울렛’에 이어, 연장과 도구 브랜드인 ‘크래프츠맨’이 분사를 거쳐 9억달러에 매각했다. 이 분사 과정에도 램퍼트와 헤지펀드 ELS가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실상은 베일에 싸여 있다.

놀라운 일은 또 있다. 2015년 합병 법인의 266개 이상 건물의 부동산 소유권을 떼어내 부동산투자회사 ‘세리티지 그로스 프로퍼티즈’에 30억달러에 매각한 일이다. 램퍼트는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이다. 이 역시 사모펀드가 즐겨 사용하는 ‘세일즈랜리스백’이라는 수법이다. 합병 회사는 사업 부문과 부동산 부문으로 회사를 물적 분할하고 부동산 부문을 떼어내 매각하고, 남은 사업 부문에서 애초 자신의 소유이던 부동산을 리스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매각대금의 대부분은 합병을 위해 사모펀드가 조달한 차입금을 갚는 데 사용한다.

사업이 어려워 운영비가 부족할 때 세일즈앤리스 방식을 통해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부동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리스료를 내면서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다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회사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리스료 부담만 새로 생기는 상황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어스의 꼴이 그랬다. 램퍼트와 ELS가 사모펀드처럼 인수 대상의 자산을 담보로 차입금을 빌리는 차입매수(레버리지드 바이아웃)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는 매장에 새로 투자되는 건 없었다는 점에서 회사에 신규자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신에 2016년 시어스 매장들이 부담한 리스료는 2억달러였고, 2017년에는 1억6천만달러였다. 리스료 부담이 낮아져서가 아니라 폐업하는 매장들이 늘면서 리스료가 줄었다.

리스료만 램퍼트와 헤지펀드에 들어간 게 아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시어스의 최대 채권자는 은행이 아니다. 압도적 대주주인 헤지펀드 ELS와 램퍼트 자신이다. 재고물량 등을 담보로 시어스 홀딩스에 26억6천만달러를 빌려줬다. 이에 따른 지급이자도 ELS와 램퍼트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램퍼트의 헤지펀드가 시어스의 최대 채권자라는 역설

4. 지금까지 드러난 실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합병 이후 매출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매장과 브랜드 라인에 대한 정비에 대한 의미있는 투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전자상거래의 부상에 대응해 웹사이트 개편과 모바일을 통한 판매에 일부 투자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가장 큰 투자는 자사주 구매를 통한 주가 부양이었다. 부동산을 포함한 시어스의 핵심 자산은 무수하게 매각됐다. 자산 매각대금의 상당 부분은 램퍼트와 헤지펀드 ELS로 향하는 터널로 들어갔다. 램퍼트가 Kmart와 시어스 인수 이후 더 부유해지지는 않았다. 보수는 연 1달러, 받은 스톡옵션은 휴짓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물적 분할을 통해 부동산 소유권을 헤지펀드 ELS 쪽으로 옮겨 놨다. 시어스가 망해도 건물에는 다른 매장들이 들어온다. 이들로부터 받는 임대료는 평방미터당 18달러로 시어스 매장들이 부담해온 4달러보다 4.5배나 높다. 램퍼트와 ELS는 이렇게 살찌는 데 반해, 현재 시어스의 부채는 113억달러고, 조만간 142개 매장이 폐쇄된다. 수만명의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결국 램퍼트와 헤지펀드 ELS에게는 Kmart와 시어스의 수지맞는 부동산 자산이 헤지(위험 회피)의 수단이었다. '벌처펀드'로 불리는 '약탈적‘ 사모펀드의 행태와 다를 게 없었다.

콜크래비스로버츠(KKR)의 차입매수와 토이즈러스의 몰락

5. 시어스의 몰락에 램퍼트와 헤지펀드가 ELS가 있다면, 2017년 9월 파산을 신청한 미국 굴지의 완구 판매업체인 토이즈러스의 몰락에는 세계 3대 사모펀드로 평가받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과 베인 캐피털,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보네이도리얼티트러스트가 있다. 파산의 직접적 원인은 52억달러에 이르는 장기부채에 대한 연간 이자 4~5억달러를 낼 수 없어서였다.

중국산 저가 완구를 앞세운 워마트, 아마존, 타겟과 같은 업체들로 인해 토이즈러스도 고전한 것은 시어스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모펀드에 인수된 이후 토이즈러스의 부채가 2.5배가 급증했다. 18억6천만달러에서 50억달러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사모펀드들이 차입매수(레버리지드 바이아웃)라는 방식으로 토이즈러스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인수자금의 상당 부분을 토이즈러스의 부동산 등의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을 통해 조달했다. 토이즈러스로서는 회사에 들어오는 새로운 자금은 적으면서 새로운 빛만 떠안게 된 셈이다.

인수 이후 사모펀드들이 토이즈러스와 베이비즈러스의 매장을 통합하고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0년까지 1500개 이상의 매장 중에서 146곳에 그쳤다. 유입된 신규자금은 적고 부채는 왕창 늘어나 이자 상환 부담으로 자금 여력이 부족했다. 2007년 토이즈러스의 영업이익 중에서 지급이자로 나가는 비중은 무려 97%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모펀드들은 ‘경영 자문료’ 명목이나, 온라인 완구판매를 위한 사업체 인수 등 사업 확대를 중개한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많은 현금을 챙겼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거의 20억달러에 이른다.

KKR과 같은 사모펀드들이 차입매수하며 소매 유통업체들에 쌓인 금융권 대출 중 만기 도래분은 향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는 1억달러 수준에서 2018년에는 19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9~2025년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은 연 평균 50억달러다. 미국 전체 고용의 6%인 80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소매 유통업계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사모펀드의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미국 언론인들과 학자들은 성경에 빗대어 ‘소매업의 종말(아포칼립스)’이라는 말로 이런 상황을 묘사한다.

정부의 사모펀드 활성화와 KKR-신한은행 전략적 업무협약

신한금융지주와 전략적 업무협약 체결한 KKR 3인방의 한명인 크래비츠. 위키피디아
최근 신한금융지주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한
KKR 3인방의 한명인 크래비츠. 위키피디아

6. 사모펀드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최근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는 토이즈러스를 몰락으로 이끈 사모펀드의 하나인 KKR이 신한은행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지난 9월21일 맺었다는 소식이다. 내용은 KKR이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자산 중 일부를 맡아서 운용하고 다양한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KKR은 신한금융지주의 계열사로 편입될 예정인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의 자산 운용은 물론 지분 일부를 매수할 의향도 있다고 한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KKR이 신한금융지주의 대주주가 된다는 얘기다. KKR은 1978년 처음으로 차입매수라는 걸 만들어낸 사모펀드의 대부 격이고, 2009년 오비맥주를 인수하기도 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또 다른 하나의 소식은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금융위원회가 본격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 9월27일 토론회에서 국내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방안이 발표됐다.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갖고 있느냐를 가지고 나누던 이원화한 사모펀드 규제체계를 일원화시키고,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로만 구성되는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육성하겠다는 게 뼈대다. 전환사채(BW)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사모펀드가 원활하게 인수하게 해서 성장 단계 기업의 경영권 보호와 자금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결국 이는 기업 인수․합병 시장 활성화로 이어진다.

외국계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합병 시장을 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국내 사모펀드를 육성하려는 방향 자체에 시비를 걸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융위원회 주최의 토론회에서 1995~2009년 미국에서 3874개 사모펀드가 투자한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사모펀드 투자기업이 비투자기업보다 투자 1년 뒤 매출은 110만달러, 고용 창출은 3.8명 더 많았다는 식의 정당화는 경계하는 게 좋다. 업종별로 세분화시켜 따져봐야 한다. 미국 소매 유통업의 경우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 행태로 인해 ‘소매업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말이다.

‘변형된 차입매수 부작용’ 낳는 은행법 제35조의3 제1항 개정해야

7. 그래서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것처럼 규제 완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규제 강화의 지점은 없는지도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금융위의 지적처럼 ‘경영참여를 하려면 지분 10%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10%룰이 오히려 기업의 경영권 방어 심리를 부추기고 중장기 자금의 공급에 걸림돌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규정을 없앨 수도 있다. 국내․외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새로 도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 아니다. 시어스나 토이즈러스의 파산을 재촉한 KKR이나 ELS가 차입매수나 알짜배기 자산의 분할과 매각과 같은 약탈적 행태가 가능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와 인센티브가 제대로 설계돼 있는지가 관건이다.

물론,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해 훌륭히 키워낸 사례도 많다. 사모펀드가 아니어도 ‘전략적 약탈’의 행태를 보이는 곳도 있다. 디자인센터, 기술연구소 등 자동차 연구․개발 업무 부문을 인적 분할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독립시키면서 최근 재발한 한국지엠 사태가 여기에 속한다. 인력 3,000여명이 신설법인인 지엠테크니컬코리아로 이동하고 지엠 본사의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맡게 된다. 그런데 분할 비율이 존속하는 한국지엠 0.982 대 신설법인 0.018이다. 한국지엠 전체 인력의 30%가 이동하고 디자인을 포함한 연구․개발 부문의 가치를 따지면 터무니없는 분할 비율을 설정한 것이다. 이는 자산의 20% 이상 분리 시 산업은행이 갖는 비토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한국지엠의 지분 17%를 갖는 산업은행이 신설법인의 지분 17%를 갖는 인적 분할을 했으니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5개월 전 7억5천만달러(약 8100억원)를 주식으로 신규투자 한 2대 주주 산업은행은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지엠 본사가 직접 지휘하는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해 국민 세금을 갖다 바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지엠 자동차 생산의 가치사슬을 좌우하는 연구․개발에 산업은행이 17%의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건 순진하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충분한 협의를 거쳐 연구․개발 부문은 한국지엠의 100% 자회사 형태의 물적 분할을 하는 게 타당했다.

이런 지엠 본사의 모습은 인수한 기업의 자산을 약탈하는 사모펀드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 국내 은행법과 자본시장법에서 사모펀드와 관련된 규정은 잘 갖춰져 있다. 현행 규정상 과도한 차입매수의 가능성은 순재산의 300%(경영참여형), 400%로 제한돼 있다. 동원 가능한 레버리지(지렛대)에 분명한 한계를 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은행법 제35조의3 제1항에서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가 발행하는 주식 지분이나 신주인수권, 일정한 수익권 등의 권리를 지분증권(수익증권 포함)을 취득하는 한도를 은행 자기자본의 100분의 1 이내 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지주회사에 속하는 은행이 지주회사의 다른 자회사가 업무집행사원(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격으로 사모펀드의 무한책임사원으로서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에 출자하는 경우를 예외로 둔 것이다. 이게 국내 사모펀드의 첫 번째 규제 공백이다.

신한금융지주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신한금융지주에는 신한금융투자라는 자회사 있다. 오렌지생명의 자산운용을 운용하는 KKR과 함께 신한금융투자는 기업 인수를 위한 사모펀드를 설립할 수 있다. 이 사모펀드가 어떤 기업 인수자금 동원을 위해 증권을 발행할 경우, 신한은행은 자기자본의 100분의 1 이내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이를 취득할 수 있다. KKR이 오렌지생명의 대주주가 된다면, 이런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신한은행은 KKR의 자금 지원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도한 대출이 아니라 과도한 지분증권 취득을 이용한 ‘변형된 차입매수’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인수 대상 기업으로서는 어느 것이든 현금흐름에 상당한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대출에는 이자를 지급하고, 지분증권에는 보장된 일정한 수익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이 예외조항은 없애는 게 필요하다. 짭짤한 수수료 수입에 일정한 수익까지 보장되기 때문에 은행이 고위험-고수익의 유혹에 빠져들 위험성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정책금융 지원 통한 성장기업의 수익 환수 방안 제도화 필요

둘째, 정책음융의 지원을 받아 성장 단계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사모펀드의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기업공개나 주권상장 등의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수익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도 확립해야 한다. 현재는 관련 제도가 너무 미비하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고용을 늘리는 그 자체로 됐다’는 식의 논리는 너무 진하다. 이는 기업은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값싸게 소비자에게 제공하면 되는 것이지,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또 다른 사회적 책임을 지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실의 사회화-수익의 사유화’가 아니라 사회적 지원을 통해 성장한 몫에 대해서는 사회에 환원되는 원칙과 제도가 사모펀드 활성화와 함께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그렇게 환원된 재원은 미래의 동량 기업들을 위한 국가의 정책금융 역량을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높은 상속세를 피해 사모펀드에 기업을 파는 행태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게 훨씬 세법상 훨씬 유리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현행 상속세는 일정 금액을 넘을 때 가산세율까지 감안하면 50~65%다. 반면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면 자본이득세 20%나 25%만 내면 된다. 대를 이어 부를 세습하는 것은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상속세율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자본이득세가 부과돠는 '대주주' 개념을 세분화시켜야 한다. 자본이득세 최고세율인 25%보다 높은 수준의 새로운 세율 구간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