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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프레임과 단기 공공일자리 5만9천개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프레임과 단기 공공일자리 5만9천개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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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결국 미약으로 가는가?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참 창대했다. 그 말 자체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섰다. 애초 내걸었던 ‘더불어성장’을 소득주도성장으로 이름을 갈아 끼웠다. 집권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그토록 많이 준비했다는 현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내건 거의 유일한 슬로건이니 기대도 컸다. ‘공정성장’은 정의당이나 옛 국민의당 쪽에서도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니 차별성을 보여주기가 어려웠다는 생각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이 성장 노선이냐?’는 반발에 부닥치며 집권 이후 이곳저곳에서 끌어다 짜깁기하며 급조한 성격이 강하니 논외다. 냉정히 말하면 애초 현 정부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지난 10월24일 대한상공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전문가와 관계장관 라운드테이블의 모습. 기획재정부
10월2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전문가와 관계장관 라운드테이블의 모습.
기획재정부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이 낳은 소득주도성장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핵심을 잘 살려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잠재성장률이 오롯이 공급 측면에서만 결정된다고 접근하는 주류경제학의 교조주의보다 수요 측면이 잠재성장률의 결정에 작용한다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소득주도성장’ 담론은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경제학 족보에도 없고 실험적으로 증명된 바도 없다는 힐난에 맞서 소득주도성장을 방어했던 데에는 이런 근거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부의 출범 당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혁신생태계의 창출’ 등과 같은 공급 측면의 성장잠재력을 키워가는 방안들이 매우 부실했던 것에 상당한 우려가 동시에 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급 측면의 혁신을 소홀하게 취급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줬기 때문이다.

기자의 기억으로 한국경제에서 현 정부가 내건 것과 같은 소득주도성장은 딱 한 차례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일어난 7․8․9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실질임금이 크게 오르며 국내 소비수요(내수)가 확장되고 투자의 증가로 이어진 게 그것이다. ‘임금 증가→소비 증가→투자 증가’라는 경로를 거치며 이전에 볼 수 없던 경제성장의 동학이 확보됐다. 생존권과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투쟁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소득주도성장의 미래는 불운했다. 이미 존재해오던 과잉투자, 자본시장 개방 등 기존 성장체제의 균열 요인의 도입 등과 얽히고 꼬이며 결국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을 두고 ‘노동자대투쟁이 아이엠에프 사태 낳았다’는 식으로 왜곡하는 건 사절이다.

김대중 정부 중반기인 2000년대 초반 내수가 반짝 살아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임금 등의 소득이 늘어나 증가한 내수가 아니었다. 엘지카드 사태가 상징하듯, 미래소득을 현재에 당겨쓰면서 팽창된 신용이 낳은 소비수요 증가였다. 굳이 표현하면 부채주도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에 기초한 성장을 추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두 경우 모두 해외수요(수출)를 늘리는 것은 상수였으니 이 역시 차이가 없다.

‘막비(莫非)소득주도성장’, 도대체 소득주도성장 아닌 게 뭔가?

모두가 아는 이런 옛날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소득 증가에 부정적이지 않으면 모든 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핵심 정책수단이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이 나타나자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 방어하는 과정에서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이런 식의 모습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17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홍장표 위원장은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의존한 성장은 그 효력을 다했다”며 “중소기업과 노동자, 자영업자 사이에 돈이 도는 내수시장과 내수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의 3대 축은 △가계소득 증대 △지출비용 경감 △안전망 확충이라고 덧붙였다. 솔직히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가늠이 어렵다. 예를 들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유류세 15% 인하도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다. 기존의 공공근로사업 1만8천명에다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5300명, 공공기관 행정업무 지원인력 2300명 등 5만9천개의 2~3개월 단기 공공일자리 창출도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다. 다만 어떤 명목으로든 세금 인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소득 증가분이 소비로 이어지는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만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른바 ‘핀셋 증세’ 프레임이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내수 위주의 근본적 자원배분인 환율정책의 부재

이런 소득주도성장의 프레임에는 중요한 몇 가지가 빠져 있다. 무엇보다 핵심 정책수단을 무엇으로 삼아갈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환율은 한 나라의 자원배분을 근본에서 결정한다. 완만한 환율 하락은 내수산업으로 자원을 이동시킨다. 수출주도성장 모델의 낙수효과가 한계에 이르렀다면, 완만한 환율 하락(원화가치 절상)을 통해 내수산업 쪽으로 자원을 이동시킬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내수 활성화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모델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다. 과연 그렇게 했는지 반문하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한‐미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환율 조작국 지정 문제로 미국한테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좀 더 당당하게 지킬 건 더 지키고 얻을 건 더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완만한 환율 인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수출 대기업의 심각한 사내유보이윤의 문제를 누그러뜨릴 것이고, 내수 중소기업의 설자리를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환율정책에 대한 검토도 없이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 소멸을 내세운다면 이는 입발림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소득불평등을 더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는 사실에 대한 진지한 대면이 없었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고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하다. 임금소득 하위계층의 소득증가율이 아무리 높아도 상위계층이 조금만 올라도 격차는 더 벌어진다는 건, 국회 입법조사처를 비롯해 여러 기관들이 내놓은 보고서에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나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조직노동의 상황은 이런 격차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를 이룬다. 게다가, 임금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자산소득의 불평등에 대해 현 정부는 거의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 왔다. 소득 불평등의 주범을 임금소득에서 찾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편협함이 반영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은 격차 축소보다는 일단 오르는 게 중요하다는 정책의 우선순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득불평등 되레 벌이는 치밀한 설계의 부재

전체 임금소득은 상향시키되 계층 간 격차는 줄이고 중위소득 계층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사회적 타협은 필수불가결하다. 공공부문 혁신을 통해 이 부분에서 앞장설 게 있다면 앞장서게 하는 채찍도 휘둘러야 한다. 하지만 치밀한 설계로 봐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전부였다. 도대체 어떤 임금체계를 적용할 것인지, 지금 공무원들처럼 연공주의를 계속 가져가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반발과 부작용이 심각하자,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떠받쳤다. 초과세수로 넉넉한 곳간 사정이 그마나 즉석 땜질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다행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급기야 가계소득 불평등이 심화한 것으로 나오자, 화들짝 놀라 통계청장까지 갈아치웠다. 통계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분위기를 조성한, 현 정부가 남긴 아마도 가장 나쁜 선례가 될 듯하다. 단기 공공일자리 5만9천개가 11월과 12월 고용동향에 어떻게 반영될지도 걱정거리다. 그 자체가 또 다른 분란의 진원지가 될 판이기 때문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통계청이 매월 정기적으로 해온 경제활동인구조사 표본교체의 원칙과 방법을 투명하게 시민들에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 고용동향을 파악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는 전국 1737개 조사구에서 3만5천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표본의 노후화, 응답자의 응답 부담 완화를 위해 매월 970가구를 교체한다.

네오칼렉키주의 임금주도성장 모델의 한계

어쩌면 애초부터 소득주도성장 담론은 잘못된 이름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득주도성장 모델의 근거가 되는 네오칼렉키주의의 모델은 ‘어떤 나라의 성장이 임금주도적이냐 이윤주도적이냐’를 따진다. 소득분배와 총수요의 관계에서 임금주도와 이윤주도 중에서 어떤 효과가 더 큰지를 따진다. 임금을 향한 소득의 재분배는 이윤과 비교해 임금의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비 수요를 부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높은 노동비용은 생산물의 경쟁력을 낮추어 순수출을 줄이고 사적 투자의 주요한 동기들(또는 재원을 조달하는 금융의 원천들)의 하나인 이윤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높은 임금이 소비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투자와 순수출에 주는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보다 크다면 (설비가동률로 보통 측정하는) 수요는 임금주도적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이윤주도적이다.

그러니 어떤 나라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증거가 매우 중요해진다. 사실상 분배론 아니냐는 지적을 제쳐두면, 현 정부 초기에 쏟아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도 ‘한국의 경제성장이 임금주도적이라고 볼만한 경험적 증거가 있느냐?’에 집중됐다. 국제적인 경험적 연구들의 증거도 일관되지 않는다거나, 수요가 임금주도적이라고 해도, (자본축적률로 측정하는) 경제성장은 임금주도적일 수도 이윤주도적일 수도 있는데, 한국경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게다가 네오칼렉키주의의 성장모델은 선택지 자체가 봉쇄된 폐쇄모델이다. 수요(설비가동률)가 이윤주도적이라면 성장(축적률) 역시 이윤주도적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경험적 증거가 이윤주도적 성장으로 나오면, 소득의 격차를 해소하고 노동분배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돼버리는 웃기는 정책적 지향이 모델 자체에 내포돼 있다는 얘기다.

‘공화적 경제성장’으로 수요과 공급 두 측면 포괄해야

더 큰 문제는 혁신주도성장(혁신성장)과 관계도 무척 애매하다는 것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혁신주도성장은 임금주도적인가 이윤주도적인가? 혁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간단하지 않지만, 단순화시키면 혁신주도성장은 굳이 따지면 이윤주도적이라고 하는 게 맞다. 국가든 민간이든 혁신을 추동하는 것은 투자고, 투자의 재원은 이윤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득주도성장 프레임으로 평가하면 현 정부는 임금주도적 성장도 하고, 이윤주도적 성장도 동시에 한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막비(莫非)소득주도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된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포용적 성장’, 여기에다 ‘공정성장’ 개념을 더해 원‐하청 상생관계 구축, 가맹사와 자영업자 등 을들의 젠트리피케이션 개선, 이를 통한 소득불평등의 완화와 두터운 내수시장의 형성을 추구하고, 연구․개발투자에 기반한 ‘혁신주도성장’으로 가면서 탄탄한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잡으면 될 것이다. 이런 수요와 공급 두 측면 모두에서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잠재성장률을 꾸준히 높이는 노선을 굳이 일컫는다면, ‘공화적 경제성장’(republican economic growth)이라는 조어를 해볼 수도 있겠다. 한 마디로 말해 수요과 공급 측면이 공화하고, 이해관계자들이 공화하며 성장 잠재력을 키워가는 노선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보천지하에 막비소득주도성장'(무릇 하늘 아래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게 없다)이라는 희화화만은 피해야 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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