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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왜 이러시나? 인터넷 표현 자유와 자유로운 정보 유통에 재갈
유럽연합, 왜 이러시나? 인터넷 표현 자유와 자유로운 정보 유통에 재갈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3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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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허가 없는 기사 링크 금지…인용권 보장한 베른협약 위반
콘텐츠 등록 전 사전 검열 의무화…민간에게 사법적 판단 강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이른바 GAFA(가파)로 불리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여러 나라에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우리는 네들 나라에 사업장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게 이들 기업이 내세우는 핑계다. 유럽연합은 이런 뻔뻔스러움에 철퇴를 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 맞게 법인세 체계 개편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마련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 법안을 제안했다. 법인세를 부과하는 전통적인 고정사업장(permanaat establishment)을 두지 않아도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벌어들인 수입(매출)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가능하게 개념이 '주요 디지털 사업장'(significat digital presence)이다. 유럽연합 역내에서 온라인 사업으로 매출이 700만유로 이상이거나 1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하거나 3천개 이상의 온라인 비즈니스계약을 맺은 기업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이하의 중소기업은 제외했다. 아일랜드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 2020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이들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세금 회피 횡포를 직접 겪었던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유럽연합 탄생의 산파였던 로마협정 체결 6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연합 정상들. 위키피디아
2017년 3월 유럽연합 탄생의 산파였던 로마협정 체결 6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연합 정상들. 위키피디아

유럽연합은 디지털 경제에 맞게 저작권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인터넷 상의 표현 자유와 자유로운 정보 유통에 재갈을 물리는 독소조항들로 얼룩져 있다. 구글의 유튜브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을 겨냥한 겉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럽연합 출판자본들의 제 잇속 챙기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이를 위해 유럽의회는 지난 9월12일 기존 저작권을 개정․확대하는 새로운 저작권지침(directive)을 승인했다. 찬성 438표, 반대 226표. 기권은 39표에 불과해 사실상 압승이었다. 회원국 정부를 대표하는 이사회(Council)와 협의를 거쳐 내년 1월 최종 투표를 통해 발효한다.

이 지침의 대표적 독소조항은 제11조와 제13조다. '링크세' 조항으로 불리는 제11조는 기자가 쓴 기사의 '정보 한 토막'(snippet)을 이용하려면 언론사의 허가를 얻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기사를 링크할 수 없다. 취지는 언론사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에 링크되는 기사에 대해 저작권료를 청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유효기간은 20년이다. 기사의 취지나 맥락을 설명하는 문구를 달지 않는 '순수 하이퍼링크'는 허용된다고 하지만, 링크에는 관련 정보 한 토막을 동반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언론사 허가 없이는 기사 링크를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뉴스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 발생하는 것이다. 신뢰성 있는 콘텐츠의 유통은 제한되는 반면, '정보 한 토막'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가짜뉴스의 유통은 촉진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팩트 체킹이나 가짜뉴스 색출 등을 통해 이용자를 확보하는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의 혁신에도 걸림돌이 된다.

게다가 이 조항은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인 베른협약에서 보장하는 인용권 위반해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베른협약 제10조는 "(공정한 관행과 정당화하는 범위 안에서) 언론 요약의 형태로 신문기사와 정기간행물을 인용"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콘텐츠 생산자에게 추가 수입이 돌아가게 한다는 취지가 실현될 가능성도 현실에서 부정당하고 있다. 2013년 '링크세'를 먼저 도입했던 독일의 경우 추가 수입을 얻은 언론인은 거의 없고 뉴스 유통의 제한으로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부작용만 양산됐다.

'업로드 필터'(upload filter) 조항으로 통하는 제13조가 지닌 문제점도 심각하다,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에서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제작하고 공유하는 GIF, 리믹스 음악, ‘밈’(meme)과 같은 광범위한 이용자창작콘텐츠(UGC)가 저작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여과 장치를 도입하고 미리 차단하라는 내용이다. 사실상 이용자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콘텐츠를 사전에 검열하라는 얘기다. 합법 여부를 법원이 아닌 민간사업자가 판단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꼴이다. 여과 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가 저작권 침해만이 아니라 명예훼손 등을 가려내는 데까지 확장되거나, 다른 감시 기능을 하는 쪽으로 이용될 위험성도 농후하다. 풍자 등의 내용을 담은 합법적 콘텐츠를 불법으로 분류돼 표현 자유를 제약하는 상황도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명예훼손 등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일방의 주장만 있어도 블라인드 처리 등 광범위한 임시조치를 하도록 의무화시킨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2로 인한 폐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

사전검열을 의무화시키는 제13조 등 독소조항을 포함한 새 저작권지침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전검열을 의무화시키는 제13조 등 독소조항을 포함한
새 저작권지침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13조 역시 독일과 관련된다. 독일은 2017년 10월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운용개선법'을 시행했다. 가짜뉴스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를 SNS기업 등 일반기업에 맡기고 "명백한 불법 콘텐츠"에 대해서는 불만 접수 후 24시간 이내에 삭제하거나 차단고, “명백하게 위법한 사항이 아닐 경우” 7일의 시간 안에 처리하도록 강제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매체와 플랫폼에도 책임 부과하는데, 가입회원 200만명 이상인 SNS 기업들은 모두 해당딘다. 해당 기업들은 6개월마다 가짜뉴스 내용, 삭제 비율, 처리내역 등을 담은 보고서를 독일정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제13조는 이런 내용이 저작권 분야에 적용된 것에 해당된다.

유럽연합 안에서 링크세 조항과 업로드 필터 조항에 반대하는 여론은 매우 거세다. 지난해 11월 디지털인권단체, 언론단체, 기자, 언론사 등을 대표하는 80여개 조직이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에게 반대 공개서한을 보냈는가 하면, 국경없는기자회와 휴먼라이트와치 등 57개 인권단체들, 유럽의 대학과 도서관, 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연구와 데이터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인 'SPARC 유럽'(the Scholarly Publishing and Academic Resources Coalition Europe)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저항이 진행돼 왔다.

이런 영향을 받아 두 조항에 대한 반대 투표는 훨씬 더 많았다. 전체 지침은 찬성 438표, 반대 226표였으나, 제11조는 찬성 393 반대 279표, 제13조는 찬성 366표, 반대 279표였다. 하지만 내년 1월 유럽의회 최종 투표에서 두 조항이 삭제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는 분석이 많다. '가파'로 상징되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견제의 명분이 크게 작용하는 데다, 인공지능(AI) 기반 알고리즘의 도입과 함께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위험 책임'(responsibility for risk) 또는 '엄격 책임'(strict liability)을 물으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 기존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를 '정보 매개자'로 취급하는 게 중심을 이뤘으나, 특정 상황에서 위험을 최소화시키고 부정적 영향을 취급해야 하는 당사자로 규정하는 '위험 관리 접근방식'(risk management approach)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에게 저작권 침해 여부, 가짜정보 여부, 명예훼손 여부 등 타인의 권리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광범위한 감시 의무를 부과하고 사법적 판단을 맡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독일의 소셜네트워크운용개선법도 위헌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라는 주장이 제기될 경우, 해당 정보를 무조건 임시조치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침해성 콘텐츠 여부를 놓고 다툼 중’이라는 표시의무를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분쟁 조정과 법원 소송 등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터넷 상의 권리 침해 여부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인터넷 전문법원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유럽연합이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기존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S)를 대신해 투자법원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투자법원 시스템은 지난 10월 싱가포르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과 투자보호협정에 포함됐다.

디지털 경제에서 유럽연합은 야누스의 얼굴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에게 정당한 과세권을 행사하기 위해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들 글로벌 기업에 광범위한 감시 의무를 부과하면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가로막는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점수를 매기면 어디에 무게를 둬야 할까? 하나는 침해당한 국가의 정당한 과세권을 회복하는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표현의 자유라는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미디어 산업을 위축시키는 국가권력의 발동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후자가 훨씬 더 막중한 사안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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