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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틈새 벌어지는 유럽연합-미국 대서양 동맹
점점 틈새 벌어지는 유럽연합-미국 대서양 동맹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1.05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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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석유․가스 거래 금지로 확대되는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이탈리아 예산 사태 등 내홍 속 힘 못받는 유럽연합의 ‘대항입법’

미국이 11월5일부터 이란산 제품에 대한 제재를 운송․에너지․금융 부문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럽연합(EU)의 자존심과 주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예고한 대로 이란산 석유․가스 등 에너지 제품 거래, 이란과 운송 거래, 이란 중앙은행과 금융기관과 거래, 보험의 제공, 에너지 부문에 대한 투자 등을 금지하는 제재 결정을 최근 내렸다. 이미 이란 통화인 리알화 거래가 차단되고 해외에 있는 이란 계좌들도 동결됐다. 예외는 한국과 인도, 터키 등 8개 나라에 대해 두기로 했다.

이란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는 유럽연합과 미국 등 다자 간 이행보증을 통해 2015년 체결됐으나, 미국은 지난 5월 이란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탈퇴했다. 지난 8월7일에는 1차 제재를 재도입했는데, 귀금속과 알루미늄,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품목에 대한 거래 제한이었다.

2015년 7월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 프랑스, 이란, 중국 등 당사국과 참여국 외무장관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JCPoA 합의 장면. 위키피디아
2015년 7월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 프랑스, 이란, 중국 등 당사국과 참여국 외무장관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JCPoA 합의 장면. 위키피디아

유럽연합은 1차 제재 재도입 때부터 이란은 핵합의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다며 JCPOA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996년 미국의 대쿠바 제재 당시 마련했던 ‘대항입법’(blocking statute)을 즉시 재발동했다. 이란과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유럽연합 기업들의 불이익을 회복하고, 미국의 제재에 따르는 유럽연합 기업들에 대해 역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다.

지난 11월2일 미국의 2차 제재 결정이 사실상 확정되자, 즉시 페데리카 모데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브루노 르 마리 프랑스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 등 7명 명의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JCPoA의 당사자로서 이란과의 합법적 석유․가스 수출․입을 지속하기 위한 금융채널을 구축할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 등 JCPoA 참가자국들, JCPoA를 지지하는 다른 나라들과도 관련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의 작업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도 덧붙였다.

세 나라의 외무․재무장관들이 미국의 제재에 대항하는 금융채널 방식은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하는 것이다. 세 나라 재무장관들은 SPV 설립을 위한 다음 모임에서 SPV 설립을 위한 후속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방식은 이란과 유럽연합 기업들 간의 거래를 SPV를 통한 3자 거래로 바꾸는 것이다. 유럽연합 기업들은 SPV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이란에 직접 에너지 결제대금을 보내는 것을 피하고, 이란은 SPV를 통해 유럽연합으로부터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녹록찮은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간 매개를 거치면서 거래비용이 상당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를 유럽연합과 이란 당국 차원에서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화물 운송 과정에서 동반되는 각종 보증 업무를 민간 기업들이 담당할 경우 이들 기업이 미국의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위협이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유럽연합과 이란 당국이 각종 보증을 책임지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계획에도 유럽연합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이 JCPoA를 이탈한 5월과 제재를 재도입한 지난 8월 이후 많은 유렵 기업들이 거래와 투자를 중단했다. 항공․보험․에너지․자동차 등의 부문에서 이란과 거래나 투자를 중단․보류한 유럽연합 기업들은 10월 말 기준으로 프랑스와 독일 각 14곳, 이탈리아 5곳, 영국 4곳 등 48곳에 이른다. 전체 거래 중단․보류 기업 86곳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구체적인 예들을 꼽자면, 노르웨이 에너지 업체인 사가 에너지 AS는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로 한 28억달러 합의 이행을 지난 8월 연기하기로 했다. 네덜란드계 에너지업체인 로얄더치셀은 지난 9월 이란산 원유의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계 에너지 대기업인 토탈은 이란 남부 가스전을 개발하기로 한 48억달러 규모의 합의를 지난 5월 철회했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덴마크계 머스크도 이란과 거래를 중단했다. 독일계 화물․자동차회사 다임러는 독일 정부로부터 수출 신용장을 얻었음에도 이란에 대한 벤처 투자를 지난 8월 보류했다.

널리 알려진 유럽연합 기업들 중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과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는 이란과 거래를 중단한다는 발표를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업들 이외에 유럽연합의 독자적 금융채널 구축 계획은 중․동유럽 국가들과 기업들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폴란드 기업들의 경우 이란에 의료장비를 수출하는 데 높은 관심을 보이며 협상을 벌여 왔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융기관을 찾기가 어려웠다. 폴란드의 금융기관은 거의 미국계 다국적 금융기관들이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려는 SPV는 숨통을 트여주는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은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에너지 의존을 줄이는 효과도 이들 지역 나라에 가져다 준다.

2017년 이란산 석유 5대 수입국(단위: 10억유로) - IMF
2017년 이란산 석유 5대 수입국(단위: 10억유로) - IMF

하지만 유럽연합의 우회 금융채널 구축 계획은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도 안고 있다. JCPoA를 유지하면서 유럽연합의 주권을 지키는 데 주요한 회원국의 힘이 한 데 모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탈퇴를 앞둔 영국의 적극적 움직임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라는 측면과 함께 브렉시트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유럽연합 내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계획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탈리아가 제출한 2019년 예산안을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난 10월23일 사상 처음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의 반유럽연합 성향을 더 키우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11월2일 공동성명에서 이탈리아 외무․재무장관이 빠져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이탈리아에는 극우세력 성향의 ‘동맹’과 반기성 정치를 내건 ‘오성운동’이 구성한 연립정부가 들어서 있다. 이 연립정부의 예산안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가장 큰 긍정성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0.8% 이내로 맞추라는 유럽연합의 지나치게 경직된 지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예산안은 재정적자를 2.4%로 늘려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재정적자 2.4%는 이전의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규정된 재정적자 목표치 3.0% 이내에 있는 수준이다. 반면 부정성은 부유층에 대한 최고세율 인하 등 불필요한 감세로 80억유로(약 10조1천억원)의 세수를 줄이게 한다는 점이다. 소비 지출 증가보다는 저축 증가로 이어져서 경기부양 효과가 약하고 감세분의 상당 부분이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등의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갈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내홍에도 유럽연합은 이란 핵합의를 유지시키는 데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다. 유럽연합에 가져올 안보환경의 급격한 악화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JCPoA는 미국과 동등하게 유럽연합이 주축이 되어 성사시킨 다자주의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금까지 12차례에 걸쳐 이란이 핵 합의를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일방주의를 고발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란 핵합의에 대해 단일한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내홍의 극복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제재에 순응하는 유럽연합 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는 대항입법이 ‘종이 호랑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연합 집행위를 주도하는 독일 정부가 긴축 일변도의 재정준칙을 고수하는 태도를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미국으로부터 ‘가신국가’ 대우를 받는 유럽연합 주권의 가늠대가 될 이란 핵합의 지키기와 미국의 제재 확대에 대한 대응의 관건은 결국 독일 정부의 리더십에 달려 있는 셈이다. 최근 정계은퇴의 뜻을 밝힌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이끌어온 13년의 유럽연합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통합과 포용보다 갈등과 분열로 얼룩졌다. 그 뿌리에는 통화동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원국 모두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재정준칙 적용이 큰 원인으로 자리한다. 이로 인해 발생한 회원국 간 경제성장의 격차, 회원국 내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커지면서 그것이 극우 포퓰리즘으로 나타났다는 많은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이 연두교서에서 내세운 ‘유럽연합 주권’이라는 호소는 찻잔 속 태풍이 될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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