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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예산안 대치정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탈리아 예산안 대치정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1.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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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상주의 변화 없이, 이탈리아 적자예산안 변화도 없을 듯

이탈리아의 2019년 예산안을 둘러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이탈리아 연립정부 간의 대치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침체된 경제 부양을 위해 짠 국내총생산의 2.4% 규모의 적자예산안을 집행위가 거부하며 설정한 수정안 제출의 기한이 11월13일로 다가왔음에도, 타협 가능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지난 11월9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오성운동의 대표이자 부총리로서 이탈리아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는 없을 것임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내년 예산안에 대한 집행위의 수정 요구에 대해서는 “국내총생산의 2.4%라는 재정적자 목표를 낮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예산안 수정도 없지만, 유로존 탈퇴도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탈리아, “유로존 탈퇴 없다+적자예산 수정 불가”

집행위가 이탈리아 예산안에서 문제삼는 것은 한 가지다. 2018년 국총생산의 130.9%로 추정되는 정부부채 규모 축소를 노력이 예산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안의 재정적자 2.4%가 유로존 안정성장협약의 조건인 3% 이내를 충족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조건인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60% 이내로 유지 ’와 견줄 때 현재의 정부부채가 너무 크니까 이를 줄여야 한다는 게 집행위의 요구다. 유럽연합 정부부채 축소 규칙에 따르면, 괴리분의 20분의 1이상을 3년 간 평균하여 내려야 한다. 이를 적용하면 괴리분 70.9%의 20분의 1인 3.55%포인트씩을 해마다 줄여서 2021년 국내총생산의 120%까지 정부부채를 떨어뜨려야 한다. 하지만 연립정부 예산안대로 하면 126.7%밖에 안 되니 수정안을 내라고 집행위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로존 탈퇴 없이 예산안 수정 불가’라는 배수진에 대해 집행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다. 이탈리아 정부가 수정 없이 예산안을 집행할 경우 재정수지와 재정적자 시정절차를 발동해 각각 국내총생산의 0.2%에 해당하는 이자와 예탁금, 국내총생산의 0.5%까지 벌금을 물게 하는 벌칙을 가하는 것이다. 벌칙을 가하라면 유로존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문제는 벌칙 부과가 의결되는 순간, 연립정부가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유로존 탈퇴가 본격적인 일정에 올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내 경제대국인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이탈할 경우 수습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그럼에도 현실화를 배제하기 어렵다. 지지기반이 몰락하지 않기 위해 연립정부를 구성한 좌파 성향의 오성운동과 우파 성향의 동맹에게 다른 선택의 길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당은 지난 3월에서 집행위가 강요하는 가혹한 긴축 반대를 내걸고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유럽연합 회의론’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깊숙한 배경, 1999년 유로 출범 이후 높아진 독일의 가격경쟁력

이번 대치정국은 겉으로 보기에 집행위와 이탈리아 연립정부 사이의 대립이다. 이탈리아 예산안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빈곤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오성운동이 요구로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무급 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미 심각한 이탈리아 서비스 부문의 저임금 상황을 기본소득이 악화시킬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동맹의 요구로 포함된 부유층 감세안은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이어지거나 해외유출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예산안 대치의 깊숙한 배경에는 1999년 유럽통화동맹 출범과 유로화 도입 이후 쌓인 독일과 나머지 유로존 대부분의 국가 사이의 대립, 특히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한층 더 심해진 대립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립의 핵심을 요약하면, ‘독일의 중상주의가 유로존 나머지 지역의 상대적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게 동반되지 않으면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나라에 긴축만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1999년 유로존 출범과 유로화 도입을 전후해 독일 슈뢰더 정부는 최대 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와 사용자단체의 동의 아래 ‘일자리, 교육, 경쟁력을 위한 협약’을 성사시켰다.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 증가분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만 사용한다는 공식 선언이 뒤따랐다. 높은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이런 임금 인상 자제(wage moderation)를 통해 독일 경제는 지속적인 경상흑자를 누렸다.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였다.

임금 자제 통해 물가상승률 밑도는 독일 단위노동비용

독일 단위노동비용 추이. 유로존 물가상승률을 밑돌 뿐더러 나머지 유로존 국가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을 하회한다. 자료 유럽연합 집행위 거시통계 데이터베이스 AMECO
<그림1> 독일과 유로존 주요국가 단위노동비용 추이
유로존 물가상승률을 밑돌 뿐더러 나머지 유로존 국가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을 하회한다.
자료 유럽연합 집행위 거시통계 데이터베이스 AMECO

첫째, 임금 자제는 단위노동비용의 하락을 가져와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유럽중앙은행의 목표치와 나머지 유로존 지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밑돌았는데, 유로존의 단일한 명목금리는 독일의 실질 인플레이션은 높이고 나머지 지역은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독일은 평가절하의 이점을 얻었다. 둘째, 임금 자제는 높은 실질 인플레이션과 결합해 독일의 국내수요 증가율을 둔화시켰다. 1995~2000년 1.7%였으나, 2000~2005년 -0.1%로 하락한 것이다. 반면 유로존 지역의 국내수요 증가율은 각각 3.2%, 2.0%였다. 셋째, 독일의 국내수요가 줄어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경쟁력과 수출의 증가로 이어지며 지속적인 경상흑자를 누렸다. 독일의 연 평균 명목 수출 증가율은 앞의 두 시기에 각각 8.2%, 3.1%였다. 이런 수입 둔화와 수출 증가는 1999년 이전에 수입과 수출이 비슷하게 움직이던 것과 분명히 달랐다.

나어미 유로존 지역에 대한 독일 경상흑자 추이. 분데스방크
<그림2>나머지 유로존 지역에 대한 독일 경상흑자 추이. 분데스방크

문제는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이렇게 쌓인 경상흑자 재조정을 위해 독일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임금 자제가 아닌 확대를 통해 나머지 유로존 지역의 수출품에 대한 수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가혹한 긴축 부과를 통해 유로존 지역의 수입만을 줄이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단위노동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독일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다른 나라에 적용된 긴축이 낳은 효과이다. 이로 인해 경기 하강이 단위노동비용 수렴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일종의 불황형 수렴인 셈이다.

이런 반발에 대해 독일 정부는 지속적인 흑자는 중국으로부터 수입 증가 등과 같은 비가격 요인으로 인한 것이지 가격 요인에 의한 경쟁력 상승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독일의 경쟁력이 생산성 상승분만큼의 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임금 자제 전략, 이것이 빚는 평가절하 효과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단일한 통화동맹 아래에서 경쟁력의 가장 유력한 척도는 단위노동비용의 하락 이외에는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일이 조금 덜 수출하고 수입을 늘려 조금 더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이는 독일이 다른 나라들에 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춰 경쟁력을 창출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반대의 모습이다.

독일 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를 향해 보호주의를 버리고 다자주의를 채택하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독일을 향해 무역수지 불균형을 수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달리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요구는 유로존 나머지 국가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물론 맥락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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