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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판 ‘금모으기 운동’의 가능성과 예산안 대치정국
이탈리아 판 ‘금모으기 운동’의 가능성과 예산안 대치정국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1.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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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민간저축 6743조원, 국채 매입의 저수지가 될 수 있을까?

1998년 1월 초 시작된 ‘금 모으기 운동’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에 회의부터 드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계급계층을 가리지 않았던 아이엠에프 사태 위기 극복의 의지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배신으로 이후에 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세금을 통한 ‘손실의 사회화’, 그렇게 회복된 뒤 발생한 ‘이익의 사유화’라는 적나라한 행태를 지켜본 시민들이 다시 ‘민주적 동원’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2016~2017년 겨울 전국을 덮은 ‘찬 이성, 더운 가슴’의 촛불이 점점 희미한 기억으로 부식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계급계층을 가로지르는 그런 움직임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에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연립정부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 2019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대치중이다. 집행위는 국내총생산 대비 2.6%로 돼 있는 적자 규모를 더 줄이라고, 연립정부는 침체된 경기의 부양을 위해 그럴 수 없다고 버티는 게 핵심이다. 근저에는 독일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유럽통화동맹 재정준칙의 개선이 깔려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03 참조). 이탈리아 경제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0%로 제자리걸음이었다.

외국인 비중 상대적으로 낮은 이탈리아 국채시장

유로존 주요국가의 국적별 국채 보유비중. 자료: AFP
유로존 주요국가의 국적별 국채 보유비중. 자료: AFP

예산안 대치정국이 길어지면 이탈리아 금융시장은 충격을 받게 돼 있다. 특히 국채시장이 그렇다. 외국인들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팔고 다시 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채를 소유한 국내인들이 여기세 가세할 수도 있다. 국채의 가격 하락(금리 급등) 등으로 정부의 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외국인이 떠나는 자리는 이탈리아 중앙은행이나 이탈리아 국민들이 메워야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중앙은행으로서는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 2012년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이후 이미 대량으로 국채를 매입했던 터이기도 하거니와, 정부 부채 축소를 고집하는 집행위와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건 이탈리아 국민들의 국내 저축이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순자산(저축) 규모는 상당하다. 2010년 이후 20% 가량 줄기는 했지만, 2016년 기준 5조2680억유로(약 6743조원)이다. 이에 비해 2019년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인 보유 국채는 1210억유로다. 민간 총저축의 2.3%에 그치는 셈이다.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외국인의 국채 보유 비중이 그동안 계속 줄어들었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2005년 외국인의 이탈리아 국채 보유 비중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과 비슷하게 50% 수준이었고 2009년까지 이 수준에서 오르내렸다.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지금은 35% 언저리에 있다.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국채 시장에서 민간 저축의 이용하는 것에 기대감과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연립정부의 한 축인 ‘동맹’ 소속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부장관은 지난 10월10일 프랑스 리용에서 열린 선진6개국(G6)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자리에 모인 친구인 프랑스도 스페인도 갖고 있지 않은, 이탈리아의 힘은 세계 어느 것과 비견될 수 없는 민간의 저축이다. 지금은 조용히 해외채권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국민들이 우리에게 힘을 보태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새롭게 발행하는 국채에 투자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맞춤형 세제 혜택을 부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2~13년 유로화 위기 당시 벨기에 정부가 거둔 것과 같은 성공을 기대하는 것이다. 벨기에 정부는 상승하는 국채 금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4%에 국채를 매입해줄 것을 시민들에 요청했는데, 이 계획은 성공을 거뒀다.

이탈리아 민간저축, 떠나는 외국인을 대체하는 버팀목 가능성

이탈리아 국적별 국채 보유현황. 자료:  Bruegel based on Banca d'Italia
이탈리아 국적별 국채 보유현황.
자료: Bruegel based on Banca d'Italia

연립정부가 이탈리아 국민들의 저축을 이용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는 ‘BTP 이탈리아’다. 시험대 성격의 지난 11월19~21일 발행에서 조건은 물가를 감안한 실질기준으로 연 1.5%의 최저수익률 보장이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8억6300만유로 어치를 매입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이후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판매됐다. 향후 이탈리아 국민들의 호응도가 높아질지는 여러 변수에 달려 있다. 먼저, 예산안 대치 국면에서 BTP 이탈리아를 매입하는 이들에게 어떤 세제 혜택을 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립정부의 또 다른 축인 좌파 성향의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이 지난 11월9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유론존 탈퇴도 없고 예산안 수정도 없다’며 배수진을 치기는 했지만, 유로존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냐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말끔히 가시지는 않은 상태다.

이런 요인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이탈리아 국민들의 ‘연대’ 의지가 과연 확실한가,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이런 의지를 북돋울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월 총선에서 ‘동맹’은 남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저축이 풍부한 북부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감세’를 내걸고 약진했다. 반면 ‘오성운동’은 남부지역에서 복지 확대를 내걸고 제1당이 됐다. 오성운동은 내국인의 국채 매입 활성화를 위한 감세를 받아들이며 ‘동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셈이다. 결국 ‘동맹’의 지지기반인 북부와 중부의 이탈리아 국민들이 얼마나 동참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상황은 낙관하기가 어렵다. 지난 몇 년간 이탈리아 국채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2012~13년 유로화 위기 이후 이탈리아 중앙은행에 힘입은 것이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국채 보유 비중은 2009년 5%에서 현재 20%로 높아졌다. 반면 내국인 중 이탈리아 은행의 비중은 낮아져 왔다. 2013년 25%에서 현재 15% 수준으로 감소세다. 은행이 아닌 다른 내국인들 비중도 2012년 35% 안팎에서 현재 27%대로 하락했다. 다른 내국인의 감소세를 중앙은행이 메운 셈이다.

북부와 중부의 이탈리아 국민 참여가 관건

이탈리아 지역별 가계저축. 자료:  Banca d'Italia Household Survey
이탈리아 지역별 가계저축.
자료: Banca d'Italia Household Survey

예산안 대치 정국이 길어지면서 자발적인 국채 매입이 저조하다면,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예금에 대한 일종의 부유세를 부과해 국채 매입을 위한 ‘국민연대기금’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이탈리아와 유럽 언론들에는 관련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도 이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회당 정부 시절인 1992년 7월 줄리아노 아마토 당시 총리는 모든 은행예금에 0.6%의 부담금을 부과했다.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전례에 비춰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예금에 대해 일회성 세금을 매기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른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맞춤형 세제 혜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메조기요르노'로 불리는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저축을 갖고 있는 중부와 북부의 이탈리아 국민들이 안전한 은행계좌를 찾아 이웃하는 스위스로 계좌를 옮기는 ‘자본 도피’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미 현지 언론들은 이런 선택지를 찾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연립정부의 운명은 이런 흐름들을 차단하고 기꺼이 동참할 수 있게 하는 열정을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연대를 보여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고 금융지식이 적어 해외로 돈을 이동시키는 데 제약이 많은 사람들의 몫이 될 위험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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