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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 ‘암호화폐’ 관련 개념 탑재?
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 ‘암호화폐’ 관련 개념 탑재?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2.05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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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민간 발행 가치의 전자적 표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무데뽀’ 식 ICO 반대와 대조
지난 12월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 SBS CNBC 화면 캡처
지난 12월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  SBS CNBC 화면 캡처

모처럼 ‘개념 탑재’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암호화폐 또는 가상통화와 관련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의 답변을 접하고서다. 그는 지난 11월2일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가상통화에 대해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발행한 가치의 전자적 표시”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가상통화에 대한 과세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촌평해 보자. 매우 정확한 정의다. 특히 국내 어떤 법에도 임금을 제외하곤 ‘거래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어떤 매개체를 통해 이뤄지는 쌍무적인 교환’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민간에서 발행한 가치의 전자적 표시인 가상통화가 바로 이 매개체다. 당사자 간 자발적 합의라고 해도 가상화폐로 임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법정 통화인 원화로만 임금을 지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답변에 너무 의미를 집어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상통화공개(ICO)에 대한 허용 여부와 관련해 그는 “시장 상황, 국제논의 동향, 투자자 보호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낯익은 답변을 내놨다. 이는 지난 1년 간 가상통화는 통화도, 화폐도, 금융통화상품도 아니라면서 가상통화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해 ‘무조건 안 돼!’라는 식의 ‘무데뽀’ 식 대응으로 일관해온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판에 박힌 말과 매우 닮은 것이다.

금융위의 막무가내 식 ICO 금지와 직무유기

그럼에도 홍 지명자, 아니 정확히는 홍 지명자의 답변자료를 작성한 어떤 공무원의 가상통화 정의에는 정확한 개념이 탑재돼 있다. 규제 공백의 상태에서 투기가 난무했던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실명거래 적용, 신규 가상계좌 금지 등의 규제를 올해 1월30일 적용하면서도 가상통화 자체에 ‘불법’ 딱지를 붙일 수 없었던 근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래 당사자들이 동의하면 한국은행권만이 아니라 민간에서 발행한 ‘사적 통화들’은 유통될 수 있다. 거래 당사자들이 많아질수록 유통 범위는 넓어진다. 국가은행권만이 유통되라는 법은 없다는 얘기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높은 인플레이션율이야말로 정부가 독점한 화폐 발행권 남용의 증거라며 1976년 '화폐의 탈국가화'라는 책에서 내세운 '사적 경쟁 통화체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그가 주장한 이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었다. 수많은 가상통화 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코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상통화의 화폐적 지위는 확고하지 못하다. 극도의 가격불안정으로 인해 계산단위로서나 유용한 교환의 매개체로서나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나 함량 미달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상통화는 현재로서는 기껏해야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가상통화의 화폐적 지위를 둘러싼 이견이 심하기 때문에 통화나 화폐라는 이름을 불이기보다는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 7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가상통화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체물, 일종의 무형자산으로 간주되면서 몰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인정됐다.

확고하지 못한 화폐적 지위에도 자발적 합의를 통해 여러 가지 암호자산을 사적 결제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한계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리라는 예단하는 것도 곤란하다. 가상통화들 간의 경쟁 속에서 가격 안정성 등이 우월한 녀석들이 출현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사적 통화 경쟁체제 속에서 지배적 사적 통화의 출현은 필연이라고 말한다. 독일 연방금융당국(BaFin)이 비트코인을 일종의 사적 결제수단으로 간주하면서 부가가치세 부과 등 연방법의 관할 아래 놓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BaFin은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와 교환할 수 없다는 차이점을 지닌 외환에 상당하는 계산단위’로 본다.

미국․독일․영국․싱가포르, 사례별 접근 통해 증권형 ICO에 현행 규제 적용

당사자 간 합의로 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갖는 사적 결제 수단의 이용 자체가 불법이 아닌 것처럼, 같은 맥락에서 암호자산을 이용한 ICO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금융위가 ‘무데뽀’로 ICO를 금지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현재 암호자산을 이용한 ICO 과정에서 기업들이 발행하는 것은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이다. 아직 개발돼 있지 않은 재화나 서비스의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이 법정 통화와 교환하여 토큰을 발행하고,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개발하여 토큰을 구입한 기여자(contributor)들에게 미래의 시점에 제공하는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과 달리, ICO는 글로벌한 접근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전을 통해 현금화할 수 있으며, 기부자들이 일종의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지역적이고 기부가 전형을 이룬다.

암호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를 통해 일종의 자본이득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틸리티 토큰은 증권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다. 이런 속성이 한층 더 강한 증권형 토큰(securities token)의 경우 증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암호자산시장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을 채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싱가포르 통화당국(MA), 영국 금융관리당국(FCA), 독일 연방금융감독당국 등은 기존 증권 관련법에 따라 사례별로 검토를 통해 ICO를 증권으로 규제하고 있다. 필요하면 법인세와 소득세를 부과한다. 이들 나라의 사례별 접근은 신기술이 자유롭게 발전하고 ‘기술 중립적' 규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어쩌면 유일한 방안이다. 이렇게 암호자산이 갖는 증권의 속성은 우리나라도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규제하면 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처럼 '무데뽀' 식 ICO 금지로 일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라마다 약간씩 증권에 대한 정의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돈의 투자 △공동의 기획(common enterprise) △다른 사람의 노력에서 나오는 이익에 대한 기대를 동반한다면, 증권으로 보는 게 보통이다.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금융투자상품과 증권에 대한 정의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증권은 △권리 취득 시 지급한 금전 등의 가치와 권리 행사를 통해 회수한 금전 등의 가치와의 차이가 나는 ‘투자성’이 있을 것 △취득과 동시에 지급한 금전 등을 빼곤 추가 지급의무가 없을 것 등이다. 이런 성격의 증권에는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 등이 있다.

사례별 접근, 신기술 발전과 ‘기술 중립적’ 규제 구현의 수단

통화도 화폐도 금융투자상품도 아니라며 지난 1년간 ICO 금지해온 최종국 금융위원장
통화도 화폐도 금융투자상품도 아니라며
지난 1년간 ICO 금지해온 최종구 금융위원장

지난 7월 암호자산과 거래소는 일종의 사행성 업종으로 간주돼 신규 벤처지정업종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정작 금융위가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니다. 사례별 검토를 통해 증권형 성격의 토큰을 발행하는 ICO에 대해서는 주식시장에 적용되는 ‘서킷 브레이크’(거래 중단제도)와 같은 것이 암호자산 거래소에 발동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양도차익 등에 대해서는 세법에 따라 기존 증권양도차익 관련 세율을 적용하면 된다. 현행 규제를 적용할 때 필요한 적절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암호자산 거래소에 암호자산을 매입할 때 적용하는 공시 기준 설정 등의 문제다. 기존 증권거래소에서 고위험의 파생상품을 매입할 때 적용되는 수준의 공시를 적용하는 것의 타당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례별 접근을 하는 과정에서 암호자산의 성격을 규정하는 새로운 개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일종의 무체물, 일종의 무형자산’으로 암호자산을 몰수의 대상으로 삼은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에 해당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런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6월 암호화폐에 대한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기업 성장과 변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상화폐는 “직․간접적으로 자산 소유자를 식별할 수 있는 전자 분산원장기술을 통하여 하나 이상의 가상화폐를 발행, 등록, 보유 또는 양도할 수 있는 토큰 형식의(constitue un jeton) 모든 무형재산(tout bien incorporel)”으로 정의했다. ‘‘디지털 무형재산’으로 접근한 것이다. 관습법 국가인 영국에서는 '가상 유체동산(virtual chose in possession)‘이라는 범주로 암호자산을 포괄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국내 금융감독당국의 암호자산과 관련한 '기술 억압적', '혁신 역행적' 규제의 타성에 개념이 탑재되는 일이 일어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기엔 암호자산 없는 블록체인이 가능하다는 식의 저급한 인식이 정부 전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바느질에서 바늘과 실을 구분해 어느 하나가 없는 바느질이 가능하다는 식의 이런 인식 아래에서 암호자산의 성격과 근본적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의, 이를테면 가상 유체동산인지, 디지틸 무형재산인지 등을 고민하거나 논의할 여지는 애초부터 없다. 기술 중립적 규제 접근을 취하고 있는 다른 나라 금융감독당국의 모습이나, 지난해 4월 별도의 가상통화법을 마련하고 소득세를 부과한 데 이어 2020년부터 암호자산을 재산신고 대상으로 의무화시킨다는 지난 11월 일본 재무성의 발표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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