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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소상공인 전용 상품권, ‘무작위 추첨’ 국민 배분도 가능
자영업․소상공인 전용 상품권, ‘무작위 추첨’ 국민 배분도 가능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2.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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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물량 줄이고 ‘예산+소득세’ 결합 통해 무작위 추첨 배분 검토 필요
일종의 18조원 어치 대규모 국채 발행에 해당
공무원 복지포인트 빼면 개인 판매 80% 돼야…대폭 할인 메우는 재정 투입 불가피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매출 증대 방안을 쏟아냈다. 올해 막대한 초과세수를 바탕으로 내년에 확대재정지출 계획을 짠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부문을 겨냥한 경기 부양 차원에서 유효수요 창출을 위해 온누리상품권과 고향사랑상품권 발행액을 왕창 늘리기로 한 것이다.

2019~2022년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 발행액 18조원

온누리상품권 발행액 추이
온누리상품권 발행액 추이

중소벤처기업부가 당정 협의를 거쳐 12월20일 발표한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8대 핵심 정책과제’를 보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전국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이 2019~2022년 연 평균 2조5천억원씩 10조원 어치가 발행된다. 올해 발행액 1조5천억원보다 연간 1조원씩 더 늘어난다. 물량 소화를 위해 공무원 복지포인트의 온누리상품권 지급비율을 현행 30%에서 내년 40%로 늘리고, 공공기관의 온누리상품권 구매에 들어가는 경상경비도 현행 1%에서 1.5%로 높아진다.

고향사랑상품권 발행액 추이
고향사랑상품권 발행액 추이

전국 전통시장에서 통용되는 온누리상품권과 달리,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향사랑상품권도 발행액이 크게 는다. 2019~2022년 연 평균 2조원씩 8조원이 발행된다. 올해 56개 지방자치단체가 3700억원 어치를 발행한 점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연간 발행 규모가 5배가 넘게 늘어나는 것이다.

연 4조5천억원 중 공공부문 소화물량 7800억원에 그쳐

두 가지 상품권 발행액 합계는 18조원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물량을 소화하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소화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1인당 47만~240만원이 넘게 지급되는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통해서다. 지난 13년 동안 소득으로 잡지 않아 끊임없는 세수 손실 논란을 겪어온 공무원 복지포인트에서 상품권 지급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2019년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약 1조4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올해 1조4340억원에다 내년 늘어나는 공무원이 3만6천명에 기본 지급하는 1인당 400포인트(1포인트 1천원)를 더한 수준이다. 이것의 40%는 5800억원이다. 다른 하나는 공공기관 구매를 늘리는 것이다. 2017년 공공기관 구매액은 1400억원 정도다. 구매경비가 1%에서 1.5%로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구매 물량은 2천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이 둘을 더하면 정부 차원에서 소화 가능 물량은 7800억원이다. 내년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 발행액 4조5천억원의 17%가 조금 넘는다.

공무원 복지포인트 추이
공무원 복지포인트 추이

나머지 83%는 민간 부문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화해야 한다. 결코 녹록치 않다. 2017년 온누리상품권 판매액 중 개인 구매 비율은 78.7%였고, 나머지가 공공기관과 기업의 몫이었다. 고향사랑상품권 판매액이 2017년 3088억원으로 2016년 1087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2조원에 이르는 발행 규모를 민간 판매가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 판매 시 할인율 높아져 재정 투입 불가피다른 부문 매출 감소 등 ‘영합게임’도 우려

개인 판매를 늘리려면 현행 5%인 할인율(때때로 특별할인율 10%)을 높여야 한다.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 발행은 일종의 ‘소비용’ 국채를 발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일반 국채 구매자에 이자를 지급한다면, 상품권 구매자에게는 할인 형식으로 이자를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할인액만큼을 정부 재정을 통해 메워야 한다. 4조5천억원의 80%(3조6천억원)가 개인에 판매되고 평균 할인율 15%라고 할 때 재정으로 5400억원을 메워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인 판매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에 손을 벌려야 한다. 2014~2017년 온누리상품권 기업 판매액은 912억~1329억원 수준이다.

2009년 식료품비주류음료 74조 171억원, 의류신발 34조3384억원, 음식숙박 48조3839억원2017년 식료품비주류음료 88조6546억원, 의류신발 37조7682억원, 음식숙박 52조3862억원
2009년 식료품비주류음료 74조 171억원, 의류신발 34조3384억원, 음식숙박 48조3839억원
2017년 식료품비주류음료 88조6546억원, 의류신발 37조7682억원, 음식숙박 52조3862억원

연간 3조6천억원 어치가 개인에 판매된다고 해도 문제다. 개인의 소비액이 그 이상으로 커지지 않으면, 일종의 영합 게임의 함정이 빠진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등 다른 소매업자들의 매출이 그만큼 줄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정도까지야 감내하겠지만, 매출 감소폭이 커질 경우 이들 부문의 불만이 폭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 국민계정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원계열 실질 기준) 추이를 이용해 추정해 보면 영합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출 목적별로 볼 때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집중된 식료품·비주류음료, 의류·신발, 숙박·음식 등 세 분야의 지출 증가액은 2009~2017년 9년 동안 약 22조1천억원으로 연 평균 2조4521억원이었다.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 3조6천억원 어치가 개인에 모두 판매될 경우 이들 세 분야의 연간 지출 증가를 모두 흡수하고도 남는다. 가계의 지출 증가가 다른 부문으로 일체 흘러들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부문의 매출이 크게 감소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예산+소득세 부과’ 결합 통한 헬리콥터 머니 방식도 검토해야

사진: ING International Survet Special Report, Helicopter Money October 2016 표지
사진: ING International Survet Special Report, Helicopter Money October 2016 표지

영합게임을 막기 위한 파격적인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 발행물량을 연 3조원 정도로 줄이고 정부가 예산을 통해 공공부문 소화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무작위 추첨을 통해 국민에 배분하는 것이다. 이중 당첨은 무효로 하되 50%는 중위소득 이하의 국민을 대상으로, 50%는 온 국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을 통해 배분하는 것이다. 일종의 헬리콥터 머니다. 공공기관 소화물량 7800억원을 제외한 2조2200억원 어치를 이렇게 배분하면 1인당 상품권 20만원씩 1100만명에게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작위 추첨 배분과 함께 소득세 적용을 결합하면 소요되는 예산을 줄일 수 있다. 당첨자에게는 소득세율 7계층구간 하위 2번째인 15%를 적용해 3만원을 선공제한 뒤 배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3300억원의 세수가 걷힌다. 공무원 복지포인트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하위 3번쩨 소득세율인 24%를 적용하면 13년 간 소득세가 면제돼온 특혜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복지포인트 1조5천억원의 24%인 3600억원의 세수가 발생한다. 이를 통해 합계 6900억원의 세수가 새로 발생한다. 정부가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을 헬리콥터 머니 형식으로 배분하는 데 드는 연간 순 예산소요액은 1조5300억원(2조2200억원-6900억원)인 셈이다. 4조5천억원 어치 발행하면서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할인 부담금이 5천억원을 감안하면 1조원 정도의 예산만 더 투자하면 헬리콥터 머니 방식으로 온 국민에게 온누리․고향사랑 상품권을 지급하는 계획도 짜볼 수 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위기는 발랄한 발상의 원천이 되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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