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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 北美 정상회담 이후 中國의 韓半島政策
南北, 北美 정상회담 이후 中國의 韓半島政策
  • 文興鎬 漢陽大學校 中國問題硏究所長
  • 승인 2018.12.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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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의 화해 무드가 조성된 이후 연이은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이루어지면서 향후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문제의 핵심 고리인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관련 당사국들이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 해 온 중국은 남북한, 북미관계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한국은 물론 북한마저 중국의 과도한 개입을 원치 않고 국제사회에서 소위 ‘차이나 패싱’(China passing)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정의용 안보실장을 접견하면서 “정성이 지극하면(精誠所至)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金石爲開)”는 말을 했던 것처럼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미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한 1992년 한중 수교이후 중국은 북미 관계개선이 북한의 국제적 고립 탈피와 개혁개방 추진에 불가결한 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중국은 한소수교, 한중수교에도 불구하고 북·미, 북·일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하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외교적 실책이라고 자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중국이 최근의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을 누구보다 환영하고 앞장서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국은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급진전을 우려하며 특히 노골적으로 중국의 강대국화를 견제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노련한 ‘북한 다루기’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그들만의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북미관계 개선 등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인 속내와 대응 전략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첫째, 시진핑 집권 2기 중국의 한반도전략을 살펴보고 둘째,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종전협정, 평화협정 논의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본 입장을 분석하며 셋째, 자국의 이해득실에 대한 전략적 계산에 입각하여 중국이 희망하는 향후 북미관계 개선의 속도, 범위를 북미 관계개선이 적극 추진되었던 1994, 2000년의 사례를 통해 분석 전망하고자 한다.

 

Ⅱ. 시진핑 집권 2기의 한반도전략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외교전략은 소위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을 위한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의 대외적 실천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는 과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하면서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을 개혁 개방 성패의 관건적 요인인 주변 환경의 평화적 유지, 주요 선진국의 자본·기술의 효과적 도입에 두었던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외교전략은 보다 공세적이고, 혁신적이면서도 상대국을 보다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핵심 기조로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세적이고 주도적인 외교전략은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겨냥한 것이며, 상대국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주로 동아시아 주변국 및 개도국에 대한 정책기조를 의미한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 역시 이러한 대외전략 기조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상호 모순적인 상황을 최대한 조화(和諧)시키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북한과의 동맹관계와 정상관계를 병행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와 북·중 전통적 우호협력관계의 실질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고질적인 한반도 현안이 미·러·일 등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있어서 자국의 핵심 이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북·중관계가 심각하게 냉각된 상황에서도 북한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대북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는 한반도, 동북아, 동아시아의 정세가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단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최대한 유지, 관리하되 북·중관계를 동맹관계와 정상관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형태로 전환하고 그 양극단 범위 내에서 최적의 전략을 구사하려는 실용적 전략이다.

 

한편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시진핑은 과거의 어느 지도자보다도 한반도 문제와 연계된 자국 핵심 이익의 확대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상황에 따라 대북정책의 좌표와 수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선택적 균형 전략’(the strategy of arbitrary balancing act)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적 균형전략은 중국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주관적 관점에서 사안의 민감성, 한반도 주변 질서 변화 양상, 주변국의 반응, 북한의 태도 등을 고려하여 동맹관계 혹은 정상관계에 근접하는 정책을 선택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이러한 전략을 자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대 북한 영향력에 대한 자신감, 북한의 불안정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 김정은 체제에 대한 무시와 의구심, 한반도에 대한 뿌리 깊은 지분 의식 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강한 지분 의식은 공식적으로 쉽게 표출되지 않지만 내면적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조선’에 대한 보호국, 속국 의식은 차치하더라도 자신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른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 적어도 한반도의 안보사안에 관한 한 적극 관여할 명분과 권리가 있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는 대개의 경우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결코 강 건너 불구경처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식으로 표현되지만 그 내면에는 자국 국경지역의 안보관리 차원을 넘어 자신들의 ‘당연한 지분’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내면적인 한반도 인식에는 미국의 최고 지도자에 비해서도 훨씬 강한 지분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2017 4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열렸던 중미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관할권’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고 동아시아 역사에 문외한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거 중국의 배타적인 한반도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시진핑 집권 2기 중국의 대 북한전략은 상황에 따라 동맹관계, 정상관계를 탄력적으로 넘나들면서 여전히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북한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등 국제적 여론과 보조를 맞추어 북한에 대한 각종 경제 제제와 압력을 구사하면서도 동맹성격의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미국, 러시아, 일본 등과 차별화된 대북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지난 3 25~28일 김정은의 전격적인 베이징 방문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5 7~8일의 따롄(大連) 방문이다. 그동안 김정은과 시진핑이 북한과 중국의 새로운 후계체제를 승계한 이후 이들 간의 접촉과 상호방문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중국이 201710월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 직후 쏭타오(宋濤) 대외연락부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했지만 김정은을 면담하지도 못할 정도로 북중관계가 냉냉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100일간 세 차례 방중을 통해 보여준 전통적 우호협력의 부활과 대외적 과시는 장기간의 냉각기를 순식간에 일소시켰다.

 

Ⅲ. 남북한, 북미 정상회담과 중국의 대응 전략

 

북중 정상의 전격적인 회동이 가능했던 것은 최근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양국이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한반도의 종전과 평화의 문제와 직결된 변화가 남북한, 북미, 한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국의 후방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북한과 한반도 현안의 논의 과정에서 자칫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중국이 의기투합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등으로 미국 못지않게 북한을 못마땅해 하며 제재 수위를 높여 왔던 중국이나 ‘큰 나라가 줏대 없이 미국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고 매우 듣기 거북한 비판을 해 온 북한이 더 이상 과거의 감정에 매여 무익한 상호공방을 지속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중국은 4월 27일의 남북한 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대한 외교부 공식 논평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역사적 만남을 가진 남북한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이를 계기로 큰 성과를 얻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이러한 입장은 비록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전례 없는 군사적 대립을 지속했던 남북한이 화해협력과 평화 안정, 한반도 현안의 정치적 해결에 있어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사실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한 남북한 당사자 간의 대화를 촉구해 온 중국으로서는 남북한의 화해무드를 적극 지지해야 하지만 남북한 정상이 한국전쟁과 남북한 군사적 대립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판문점선언을 이루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중국이 지난 몇 년간 북한과 심각한 냉각 상태를 지속했고 한국과도 주한 미군의 사드배치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어왔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급속한 변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의 대립각을 높여가고 있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이러한 우려는 판문점 선언 직후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긴밀한 소통’이 매우 필요하다는 공식 표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남북, 북미간의 대화와 소통을 반기면서도 자칫 자신들이 주역이 아닌 조력자 혹은 국외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한은 물론 미국이 한반도 문제 이해 당사국들과의 정보교류와 소통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최근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가 일찍이 자신들이 제기한 바 있는 ‘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의 선견지명과 혜안을 은근히 과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이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한관계의 변화가 아니라 김정은의 제안과 트럼프의 전격적인 수용으로 성사된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관계의 향배다. 즉 중국은 북미관계의 변화 없이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여 왔으나 그 전제는 자신들의 역할과 지분이 충분하게 보장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만약 북한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미국과 남북한의 주도로 추진될 경우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약화가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미국과의 동아시아 패권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이러한 고민은 오랜 기간의 냉각기를 깨고 김정은의 두 차례 방중을 성사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물론 중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이 방중을 요청해왔기 때문에 이를 수용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양회(兩會)의 정치 일정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분주한 중국내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김정일의 325~28일 방중과 극진한 예우에는 중국의 다급함이 엿보였다. 김정은 방중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극비 사안으로 통제되고 김정은의 북한 귀국 후에서야 방중 사실을 공식화하는 촌스럽고 특이한 행태도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건재함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특히 5월 7~8일 요동반도 최남단 다롄에서의 제2차 시진핑-김정은 회담은 그야말로 국내에서 문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회담을 모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다롄은 역사적으로 열강의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았던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김일성 주석의 별장이 있었을 정도로 북중 최고 지도자의 격 없는 만남의 장소였다. 또한 지금은 시진핑이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강한 군대 건설’(强軍夢)의 전초 기지이며 특히 중국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제2 항공모함인 산동함(山東艦)의 출해식이 거행되었던 날에 맞추어 북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는 시진핑의 다롄 방문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 맞추어 김정은과의 회담 일정이 조율된 것으로 보이지만 북중관계의 과거·현재·미래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던 회동이었다.

 

북미관계의 개선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보이는 태도와 구체적인 대응을 심도있게 분석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 1차 북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1994년의 ‘북미 기본합의서’ 채택, 200010월 조명록 북한군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클린턴 면담 직후 성사된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및 김정일 면담 과정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대적 상황은 변했지만 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중국의 미묘한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선 1994년 10월 당시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과 미 국무부 북핵 특사였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의 제네바 북미 고위급 회담은 북미간 정치·경제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 및 기술적 문제 해결 이후 연락 사무소 상호개설 등에 합의했다. 이는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인해 국제적 안보현안으로 부각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획기적인 개선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도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던 북한이 미국에 경사될 것을 우려했다. 필자는 당시 중국내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각종 접촉 과정에서 중국이 북미관계 개선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면서도 그 ‘속도와 범위를 최대한 통제·조절’하려고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중국의 국력이 미국에 비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중미 패권경쟁의 측면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한반도 영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크게 경계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나 한중수교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회복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개입여지는 크지 않았다.

 

다른 하나의 사례인 미국 클린턴 정부 집권 후반기의 북미 접촉에서도 북미관계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을 잘 엿볼 수 있다. 2000년 당시의 중국은 장쩌민의 집권 후반기로서 소위 ‘대국굴기’(大國崛起)와 강대국화 의지가 공공연하게 표출되던 시기다. 특히 장쩌민 주석은 2000 1 1일 새벽 천안문광장에서 거행된 새천년 기념식 연설에서 ‘인류문명 발전과정의 대부분을 선도해 온 중화민족의 진흥과 국가의 부강’을 역설했다. 따라서 중국은 2000 10월 초 북한군 2인자가 백악관을 방문한데 이어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포옹하는 극적인 장면을 매우 불편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중국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은 북중 양국이 매년 주요 지도자의 상호방문 및 기념행사를 거행하는 중국의용군 한국전쟁(抗美援朝) 참전 기념일인 10 25일 직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북한을 방문했던 츠하오톈(遲浩田) 당시 중국 국방 장관이 평양 외곽에서 올브라이트의 출국을 기다려야 하는 미묘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당시 중국내 네티즌들은 북한을 ‘한국전쟁에서 몇 십만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해준 구국의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라고 맹비난했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 북미관계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자국의 영향력 득실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강된 국력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영향력 경쟁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즉 중국은 미국과의 한반도 영향력 경쟁의 결과가 동북아, 동아시아에서의 중미 패권경쟁 향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기존의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경험적으로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변화의 여파가 한반도 경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 국제질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중국이 취하게 될 한반도 및 대미전략을 다음과 같이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미국과의 협력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며 사안에 따라 미국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지속하면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동참했고 특히 2017년 이후에는 대북 경제제재의 수위를 높이면서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했다. 이는 물론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해 강도 높은 대북 경제제재를 계속 요구했고 특히 중국기업들이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위반할 경우 이들의 미국 내 금융거래를 차단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 또한 시진핑 역시 중국의 권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핵실험을 지속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반감이 강했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북경제제재를 강화했다. 그러나 향후 중국은 미국과의 전방위적 협력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최근 수개월 동안 한반도 정세변화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고유한 역할과 지분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문제의 전환 과정을 대 중국 견제전략과 연계시켜 중국의 참여와 역할을 축소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요구에 너무 쉽게 응할 경우 실익 없이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으로 한국을 두둔하거나 북한을 자극하는 태도를 지양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대 남북한관계에서 나름대로의 균형정책을 취해왔으나 실질적인 측면에서 북한보다는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주력하여 왔다. 즉 북한과는 형식적인 전통적 우호 협력관계를 내세우며 일종의 전략적 자산 ‘관리’에 머물렀고 한국과는 실질적인 관계발전에 주력했다. 그러나 사드배치 문제로 인한 갈등이 겨우 치유되는 시점에서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과 이를 전후한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논의과정에서 한국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 불순한 의도의 ‘차이나 패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여기에 슬그머니 편승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갖고 있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 ‘재팬 패싱’(Japan passing)은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관련국들이 중국을 소외시키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나름대로 중국과의 소통에 신경을 써온 한국정부로서는 중국의 주장이 억지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중국이 매우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셋째, 중국은 최근 한반도 상황 변화과정에서 소외감을 갖고 있는 러시아와의 공동보조를 통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즉 중국은 중·러 전략적 협력의 연장선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국의 역할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라브로프(Sergei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5 31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러시아 방문을 요청했으며 이 자리에서 라브로프는 “북한의 안전보장 요구를 이해하며 향후 세부적인 조치 과정에서 관련국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보장이 중요하며 러시아도 향후 구체적인 논의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 8일 시진핑 주석과의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과의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가 러시아 외교의 우선적인 방향이며 중러관계가 사상 최고의 수준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회담 후의 공동성명 제3 17항에서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전면적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실제로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 국가의 대 러시아 경제 제재가 지속되고,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강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은 범위, 강도의 측면에서 점점 확대 강화되고 있다. 일례로 2018 9월 러시아가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서 30만의 병력이 동원되는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Vostok-2018)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3200명의 병력과 장비를 파견했다. 이러한 대규모 중러 연합군사훈련은 다분히 미국, 일본에 대한 군사적 시위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9 11~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제4차 동방경제포럼에 처음으로 참석하여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러시아 동방경제 포럼은 최근 푸틴 대통령이 극동지역의 경제발전과 동북아지역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목표로 매우 중시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시진핑 주석의 참가는 중러 전략적 협력 확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Ⅳ. 결론

 

2018년 4월 27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과 판문점 선언 이후 612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관련국 간의 연쇄적인 접촉과 회담은 그야말로 희망과 우려가 시시각각 교차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의 대화, 화해 분위기는 분명 기대와 희망의 국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국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나같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소리를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해묵은 상호불신과 자국 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다.

 

자국의 이해득실에 골몰하는 한반도 주변 국가 중에서도 21세기 국제 사회의 양대 축으로서 점차 협력보다는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이 가장 치열하다. 더욱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북미회담의 진행 과정과 결과가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패권경쟁 향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미·중 양국이 어렵사리 무대에 오른 남북한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중국은 북미관계가 핵심인 사안의 성격상, 그리고 이미 남북한과 수교한 입장에서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북, 북미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특히 중국의 역할이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조짐마저 보이면서 중국의 태도가 보다 공세적으로 변화했다. 특히 장기간의 냉각기를 일시에 해소한 세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이나 김정은의 싱가포르행 항공기를 지원해준 것은 다분히 중국의 계산된 전략적 행동이다. 특히 북한체제의 생사가 걸린 미국과의 담판을 위해 먼 길 떠나는 김정은에게 ‘Air China’ 표식이 선명한 중국 국적기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은 북한이 여전히 자신의 품안에 있음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이처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을 원하고 이에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의지가 있지만 그 전제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향유해 온 한반도 영향력이 확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논의·합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자신들의 역할이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영향력마저 축소된다면 한반도 평화·공영의 ‘조력자’가 아니라 ‘방해자’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이 통상, 해양 주권, 타이완, 티베트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한다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북한마저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일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친 한반도에서 적어도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한 한 절대적 지분이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결국 난마처럼 뒤얽힌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 속에서 중국을 얼마만큼 우호적인 협력자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 문제가 점점 미중관계의 종속변수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미·중의 패권경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강국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동원에 매진하고 있는 러시아, 일본 역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보다는 자국의 지분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과 남북한 공존공영이라는 한민족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민족 내부 역량의 결집이다. 남북정상이 남북 군사분계선을 오가며 진행한 세 차례의 회담과 문화적 공감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각종 문화공연을 통해 모처럼 우리는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주역이 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갈 수 있는 ‘오직 단 한번의 기회’를 누차 강조했다. 이는 비단 북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실현하기 위한 인내, 포용,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출처: 이 글은 2018 12 21일 주중 심양 한국총영사관 주최《2018 동북아공동체포럼》에서 발표된 문장으로, 주최측의 동의 하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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