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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경쟁의 다음 무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미‐중 경쟁의 다음 무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1.15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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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비전 부재 속 부활한 CPTPP가 미‐중 무역전쟁에 주는 함의
일본, 미국 중심 국제질서 유지의 ‘식스맨’?

농구에 ‘식스맨’이라는 게 있다. 주전선수 5명을 제외하고 가장 뛰어난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다. 이 층이 두터운 팀이 시즌 성적도 좋고 우승에 성큼 다가간다. 트럼프가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국제무역질서를 농구경기라고 생각해 보자.

미국 팀과 중국 팀이 결승에서 맞붙고 있다. 주심은 세계무역기구(WTO)다. 이 주심을 앉히고 경기 규칙을 짜는 데 미국의 역할은 압도적이었다. 미국 팀 현 주장은 트럼프고 그의 행정부 각료 4명이 주전선수다. 후보선수는 동맹국들로 이뤄져 있다. 상대팀 주장은 시진핑과 그의 정부 각료 4명이다. 어느 날부터 자기 동네 대장이라고 내세우기는 하지만 믿고 따르는 후보선수군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이 경기에서 미국이 이긴다고 미국이나 미국 이외 다른 나라 보통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경기시간이 짧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작전타임을 부를 수 있게 해주는(더 낮은 규제), 경기수입에서 주최수수료를 더 적게 떼는(더 낮은 임금과 세금) 나라에서 경기를 열게 하는 경기규칙과 제도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혜택은 구단주(기업과 주주들, 일부 상층 노동자)에게 주로 돌아간다. 트럼프는 이런 경기규칙과 제도를 적극 바꿔보겠다고 하면서 미국 팀 주장을 맡았지만 지금까지 성적은 영 신통찮고,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심각하게 변질될 조짐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 팀은 경기규칙과 제도를 바꾸는 데 도통 관심이 없다. 오히려 언제부터인가 이 규칙과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태도를 보인다.

결승전 시작 전부터 트럼프 주장의 심기는 불편했다. 이전 경기들에서 나타난 주심의 행태가 마음에 안 들어서다. 자신이 보기에 반칙이 아닌데 자꾸 휘슬을 불어댔다. 게다가 트럼프는 상대인 중국 팀이 결승에 진출해 자신과 맞장 뜨는 모습이 부쩍 잦아진 것에도 상당히 마뜩찮았다. 트럼프가 보기에 중국 팀의 경쟁력은 두둑한 보수를 주는 조건으로 외국감독을 영입할 때 반드시 우수선수를 데려오도록 하는(기술과 지식재산 공유) 데 있다. 게다가 상대 팀 주장 시진핑이 앞으로 ‘우리 팀에서는 영원히 내가 주장’이라고 선언(주석 임기제 폐지)한 것도 몹시 거슬린다. ‘내가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군다고 해도 쟤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생각이 트럼프의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 대외적으로 해대는 거짓말을 보면 심사가 뒤틀린다.

결국 경기 도중 트럼프 주장은 주심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고 테크니컬 파울을 저지르는 등 5반칙 퇴장 위기에 놓인다. 나머지 선수 4명이 분투하며 경기는 5~6점차 리드를 지켜나가고 있기는 하다. 때마침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조직력이 부실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 팀이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경기 전부터 ‘교체 불가’라고 큰소리 뻥뻥 치던 신장 2.2m의 센터(중국제조 2025)를 바꾸는가 하면, 감독 영입조건으로 데려온 뛰어난 외국인 선수(기술과 지식재산 공유 의무화)도 뺄 태세다. 하지만 ‘주장을 관둘 수 있다’는 말은 끝까지 들려오지 않는다.

트럼프가 좀 쉬면서 유능한 ‘식스맨’을 투입하면 남은 경기시간에 애간장을 태우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벤치에 앉아있는 후보선수들(유럽연합, 일본 등 대다수 동맹국들)에게 그동안 주장인 트럼프는 온갖 막말을 퍼부었다. ‘주전 선수들 덕분에 먹고살면서 일에 비해 너무 많이 가져간다’는 식의 말에 후보선수들은 상처를 받아 교체자로 선뜻 자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제 코가 석자’다. 후보선수에 배분하는 수입을 줄이겠다는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런데 한 후보선수가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지 싶었나 보다. 이 친구는 식스맨 가용자원에서 다른 한 친구(유럽연합)와 더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친구다. 무엇보다 중국 팀이 자주 결승에 올라오고 심지어 이기기까지 하면 자신의 앞날에 좋지 않다. 향후 식스맨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낮아지는 등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진다. 게다가 트럼프 주장의 말에도 꽤 일리 있는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평상시 해왔다. 감독 영입과 패키지로 묶어서 좋은 선수를 빼가는 것 등 중국 팀의 경쟁력이 원초적인 경쟁력이 아니라 불공정한 데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던 터다.

게다가 이 친구는 꽤 영리하기까지 하다. 트럼프 주장이 막말을 해대는 와중에도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삭이면서 향후 자구책을 염두에 두고 중국 팀 시진핑 주장을 만나기도 한다(지난해 10월 아베 일본 총리와 시진핑 국가 주석은 중‐일관계 개선과 자유무역 증진, 금융, 무역 등의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에 합의하고 세부적으로 기술 협력과 지식재산권 보호, 통화 스와프 재개 등에 의견을 같이했다). 최근에는 주장까지 헷갈리게 하는 테크닉을 구사했다. 트럼프가 낡았다고 내던져버린 농구공을 주어다가 수선해서 경기에 사용한 것이다.

미국의 암묵적 묵인 속 ‘식스맨’ 일본이 부활시킨 CPTPP?

누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식스맨’은 일본이고 농구공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다. 지난해 12월30일 발효한 CPTPP는 인구 5억명과 글로벌 국내총생산 10조달러를 포괄하는 무역합의다. 11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CPTPP는 일단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일본, 멕시코,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과 함께 출발했다.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등 4개국은 협정을 비준하는 대로 합류한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사망선고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CPTPP로 부활했다. 사진은 2010년 11월14일 칠레에서 열린 TPP 협상을 위해 모인 12개국 대표들의 모습. 부활한 CPTPP는 미국을 빼고 11개 회원국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트럼프가 취임 직후 사망선고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CPTPP로 부활했다.
사진은 2010년 11월14일 칠레에서 열린 TPP 협상을 위해 모인 12개국 대표들의 모습.
부활한 CPTPP는 미국을 빼고 11개 회원국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 협정은 트럼프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취임하자마자 트럼프는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어리석은” 협정이라고 규정하며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가 주도한 TPP를 포기했다. 중국을 가입 대상에서 배제하는 TPP는 오바마가 권력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다시 옮기는 ‘피봇투아시아’ 전략의 핵심이었다. 무역협정으로서 갖는 이득은 매우 미미했고, 지정학적, 전략적인 차원의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강했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포괄적․점진적’(Comprehensive & Progressive)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애초 TPP를 부활시키는 데 앞장섰고 결국 성공했다.

TPP의 이런 기원을 전제할 때, CPTPP가 갖는 함의는 다양하다. 미국 동맹국들 중 가장 강력한 ‘식스맨’으로서 일본의 역할이다. CPTPP 출범에 미국과 교감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 트럼프와는 아니겠지만,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나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 그의 ‘주전선수’들과 교감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전략의 혼란 속에 미국이 엉거주춤 하는 사이에 동맹국이 그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준 경우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관세 부과라는 대중국 1라운드가 끝나면 미국이 못이기는 척 슬며시 꺼내들 수 있는 카드의 하나로 CPTPP가 존재하게 됐다는 얘기다.

CPTPP에 올라타고 싶은 중국

CPTPP는 일본이나 유럽연합 등에게 서방 동맹의 주축인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수단을 확보했다는 측면을 지닌다. 이미 일본과 유럽연합은 5년 간의 협상 끝에 지난 7월 유럽연합‐일본 경제동반자협정(EUJEPA)을 타결했다. 양쪽의 비준을 모두 거친 이 협정은 오는 2월1일 발표한다. 일본은 수출 품목의 94%, 유럽연합은 99%의 품목에서 관세를 철폐한다. 일본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을, 유럽 측은 치즈와 포도주, 의류와 가방 등의 수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CPTPP의 주도적 회원국인 일본을 매개로 하여 EUJPEA는 CPTPP와 연계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유럽연합이 CPTPP에 가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미 일본은 이런 방향성을 내비쳤다.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영국에게 CPTPP 가입을 이미 권유한 것이다. CPTPP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으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타이, 대만 등이 포함된다.

물론 CPTPP에 미국이 다시 가입하려면 트럼프가 탈퇴 결정을 뒤집어야 한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니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확대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는 CPTPP를 못 본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인도와 베트남 등 중국의 배후지에 있는 국가들과 양자협상을 축으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CPTPP를 포함하는 쪽으로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는 CPTPP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에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미국이 빠진 CPTPP가 '앙꼬 빠진 찐빵'이라는 약점을 중국 공략하고 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애초 TPP가 무역협정으로서 갖고 있는 미미한 이득의 대부분도 '거대한 소비시장으로서 미국'을 포괄하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이 기능을 중국이 맡겠다고 나설 수 있다.

미‐중 경쟁의 다음 무대로 등장하는 CPTPP

중국으로서는 CPTPP에 대한 태도를 정리해야 한다. 중국 주도로 기존에 추진해온 전략은 인도, 일본, 한국, 동남아국가연합 등 역내 16개국을 포괄하려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TPP에 대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2012년 11월부터 시작된 RCEP 협상은 2015년부터 매년 연내 타결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18개분야 중 합의점을 찾은 부문은 중소기업, 세관수속 등 7개 분야에 불과하다.

미국과 중국의 다음 경쟁무대로 CPTPP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다음 경쟁무대로 CPTPP가 부상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TPP의 애초 기원을 감안할 때 CPTPP가 중국 견제로 흐르는 것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의 후신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중국과 협정을 맺는 것을 봉쇄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을 지켜본 터라 한층 더 그렇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이 중국 개혁․개방의 원동력이 됐던 것처럼 CPTPP를 제2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내부적인 필요성도 있을 수 있다. 아예 이 참에 8년째 지지부진한 RCEP 대신에 CPTPP 가입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수도 있다. 일본이 CPTPP를 부활시킨 마당에 RCEP에 미련을 가질 가능성은 낮다.

상황도 중국에 꼭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CPTPP 11개 회원국 중 8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중국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호주, 뉴질랜드와 맺은 기존 자유무역협정들도 중국이 CPTPP에 접근하는 위한 발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과는 경제개선 합의도 이뤘다. 이 합의 이후 중국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따뜻한 유대(warm ties)”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다. 냉랭했던 두 나라의 관계에 비춰보면 격세지감이다. 호주와 칠레가 중국의 CPTPP 가입에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징조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미국이다. CPTPP가 미국의 암묵적 묵인 속에서 ‘식스맨’ 일본이 유럽연합과 명시적인 교감을 하며 이뤄낸 작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CPTPP는 중국을 배제하며 관리하기 위한 전략의 부활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CPTPP의 방향을 중국 견제 쪽으로 돌리기 위한 미국의 강도 높은 개입이 예상된다. CPTPP가 미‐중 경쟁의 다음 무대로 본격적으로 등장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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