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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미 무역흑자=0’을 제안하는 중국의 속내
‘2024년 대미 무역흑자=0’을 제안하는 중국의 속내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1.24 12: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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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만․한국의 대중 흑자 대폭 축소?
신흥시장 포트폴리오투자의 중국 싹쓸이?
중국민의 해외여행 대폭 통제?

중국식 허풍은 웬만큼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우리가 동시에 발을 구르면 지구가 흔들린다’는 식의 그럴 듯한 거만함도 여기에 속한다. 땅 덩어리가 워낙 크고 인구도 많으니 지나친 자신감의 표현으로 봐줄 만하다. 하지만 2024년까지 총 1조달러 이상의 미국산 제품을 더 사들여서 지난해 3230억달러로 추정되는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겠다고 미국 쪽에 제안했다는 지난 1월18일 외신보도를 접하고서는 과장을 좀 보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미국과 무역전쟁 종식 합의를 이끌겠다는 초조함과 다급함이 짙게 묻어 있어서만은 아니다. 한국․일본․대만 등 주변국과 신흥시장을 볼모로 삼겠다는 노골적인 저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중국이 제안한 목표는 다음 세 가지 중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을 결합하지 않으면 달성 불가능하다. 하나는 한국․일본․대만 등 주변국이 중국과 맺고 있는 가치사슬구조에서 거두고 있는 대중 흑자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의 비중이 이미 70% 이상으로 올라선 외국인의 신흥시장 포트폴리오투자를 아예 중국이 통째로 싹쓸이하겠다는 심산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셋째, 중국민의 해외여행 통제를 강하게 시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밖에 나가서 1천달러 이상 쓰고 오지 마라’는 식의 해외지출 상한선이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대미 흑자 조정부담, 역내 미국 동맹국들이 떠안게 돼 있어

중국 GDP 대비 경상수지 추이(단위: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중국 GDP 대비 경상수지 추이(단위: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현재 중국의 경상수지(무역수지+무역외수지) 흑자 규모는 계속 감소해 왔다. 2008년 4206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17년에는 1649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4분기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3분기까지 128억달러 적자였다. 중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거의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흑자는 한때 10%를 웃돌았지만 2016년 1.8%, 2017년 1.3%로 줄었다. 4분기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나면서 2018년 적자를 면할지도 모르지만 0.1~0.2%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무역구조는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무역흑자를, 일본․한국․대만․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주변국에 대해서는 무역적자를 보는 구조다. 단순화시키면, 중국이 전자제품을 수출하려면 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등의 부품을 이들 나라로부터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만 봐도, 지난해 대중 무역흑자는 557억6천만달러로 전년보다 48.9% 증가했다.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려면, 한국을 포함해 이들 나라가 기록하고 있는 대중 흑자를 대폭 줄여야 한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따라 이들 나라의 대중 수출이 줄면서 흑자폭이 자연스레 감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제품을 인위적으로 더 사주는 만큼 중국은 이들 나라의 대중 흑자를 의식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면서 위안화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 유지 위해 신흥시장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 싹쓸이 하는 중국

신흥시장 외국인자본유입 추이(중국 제외). 자료: IIF
신흥시장 외국인자본유입 추이(단위: 십억달러, 중국 제외)
자료: IIF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감소하면서 중국은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를 급속하게 확대해 왔다. 일대일로가 상징하듯이, 중국은 그동안 몇 조 달러에 이르는 공격적이고 과감한 해외투자를 벌여왔다. 중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었다. 무역흑자가 줄고 중국인들의 해외 씀씀이가 커졌다.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순지출은 2015년 3분기 500억달러에서 2018년 3분기 800억달러로 늘었다. 그만큼 여행수지 적자폭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온 것은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를 비롯한 자본유입이었다. 2018년 3분기 경상수지 흑자는 2330억달러였지만, 이 가운데 무역흑자는 1천억달러에 그친다. 반면 해외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투자 등 해외자본 순유입은 1680억달러다. 전년 같은 분기 600억달러보다 세 배나 높아졌다. 이 가운데 포트폴리오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이 넘는다. 중국의 통 큰 해외투자를 자본계정 흑자가 메워오고 있는 셈이다.

신흥시장 외국인자본유입 추이(단위: 십억달러, 중국 포함) 자료: IIF
신흥시장 외국인자본유입 추이(단위: 십억달러, 중국 포함)
자료: IIF

중국의 외국자본 유입 확대 정책으로 인해 나머지 신흥시장이 겪는 어려움은 상당하다. 외국인의 신흥시장 포트폴리오투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8%(1160억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75%(약 234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2분기 대중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 순유입액은 610억달러인 반면, 나머지 모든 신흥시장은 450억달러 순유출이다. 이는 신흥시장 금융위기의 근저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만이 아니라 중국 역시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통해 달러가치가 약해지더라도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신흥시장의 어려움이 크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서 비롯한다. 국제금융연구연(IIF)의 예측에 따르면, 중국이 신흥시장 외국인포트폴리오 투자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에도 70%를 웃도는 것으로 돼 있다.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면서 중국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의 하나는 여행수지 적자폭을 줄이는 것이다. 해외여행 자제 촉구나 해외여행지출 상한선 도입 등을 동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국내적인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고, 중국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로 외국인투자가들이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기에 쉽게 동원하기가 어렵다. 결국 ‘대미 무역흑자=0’라는 중국의 제안은 일본․한국․대만․말이시아 등 주변국의 대중 무역흑자 축소, 신흥시장 자본유입의 싹쓸이를 통해 보완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 독약 섞인 달콤한 사탕을 삼킬까?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제안은 미국으로서는 매우 ‘달콤한’ 사탕이이다. 트럼프의 면전에다 돈 다발을 매달아 흔들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 감춰진 비수일 수도 있다. 가장 강력한 동맹자인 일본, 한국 등은 물론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신흥시장에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기 위한 조정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의 동맹국들을 희생하여 적을 달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중국은 누리는 셈이다. ‘미국 최우선’을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빚어질 수 있는 역설이다.

연초부터 정부는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고 난리법석이다. 이제야 공식적으로 경기 둔화를 부정해온 이전의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정직하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대미 무역흑자=0’라는 중국의 제안의 이면을 깊고 멀리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대중 수출과 대중 흑자는 중국으로부터 줄이라는 무언의 압력에 놓이게 된다. 비록 미국이 공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나리오가 묵계에 의해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대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232억4천만달러에서 2017년 178억6천만달러, 2019년 139억3천만달러로 적자폭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4년에 걸쳐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겠다는 고뇌어린 중기 계획을 세우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쥐도 새도 모르게 코 베이기 전에 말이다. 솔직히 인정하자. 지금은 무역전쟁 중이고, 그 불똥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남에 의해 강제로 조정의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자발적인 대나무의 유연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유연함이 다른 부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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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흔 2019-01-24 21:05:10
중국이 이런 제안을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