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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뜬금없는 ‘사회주의’ 경고의 실체
트럼프의 뜬금없는 ‘사회주의’ 경고의 실체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2.08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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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 연두교서 ‘미국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
소득불평등 완화, 회사 자산 약탈 방지, ‘그린뉴딜’ 추진에 대한 정치공세

정치는 모순 투성이다. 한편에서는 사회의 균열(cleavage)을 자양분으로 삼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살아 있는 생물체다. 적절한 균형이 맞지 않으면 허구한 날 상대방을 비난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진영정치로 전락하거나 그들만의 ‘끼리끼리 한통속 담합’ 정치로 빠져든다. 한국전쟁과 북한이라는 존재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남발돼 왔고 지금도 여전한 ‘종북 좌파정권’ 타령 속에 갇혀있는 한국정치는 두 모습이 기묘하게 혼재돼 있다. 한국의 이런 정치가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수출된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 정치에 ‘사회주의’(socialism) 논쟁이 본격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론 수출보다는 미국사회 자체의 균열을 반영하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미국사회에서 아주 주변화한 이데올로기에 그쳤던 ‘사회주의’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결국 정당의 작용,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그가 지배하는 공화당의 작용이 톡톡히 한몫을 거든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2월5일 밤 때늦은 연두교서 발표하는 트럼프. 미국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그의 경고는 정치공세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자신의 앿값 인하 방안이 사회주의라는 웃지못할 역설에 봉착한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지난 2월5일 밤 때늦은 연두교서 발표하는 트럼프.
미국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그의 경고는 정치공세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자신의 앿값 인하 방안이
사회주의라는 웃지못할 역설에 봉착한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5일 하원에서 때늦은 2019년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불법이민 봉쇄를 위한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예산 문제를 둘러싼 연방정부 부분 셧다운 사태로 가능할지 불투명했던 일이었다. 이 연두교서에서 트펌프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 뒤 “미국, 미국, 미국”을 연호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갈채가 뒤따랐다.

“지금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채택하라는 새로운 요청들이 울리는 경고음을 우리는 듣고 있다. 미국은 정부의 강제, 지배, 통제가 아닌 자유와 독립에 근거해 수립됐다.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나며 자유로운 상태로 남을 것이다. 오늘밤 우리는 미국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의를 새롭게 다진다.”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사회주의화’를 경고하고 나서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주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은 사회주의와 아주 거리가 먼 나라다. 있다고 해도 매우 주변화한 이데올로기에 그쳤다는 게 정설이다. 그랬던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갑자기 전면에 등장했으니 놀랄 만한 일이다. 미국에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등의 의미를 지니며 진보를 지칭할 때는 ‘리버럴’(liberal)이란 단어가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회주의’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사실상 ‘주적’ 개념처럼 사회주의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때 아닌 사회주의 경고 바람잡이 나서

물론 이번 연두교서가 사회주의를 전면에 등장시킨 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0월23일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가 나서서 바람을 잡았다. 경제학자인 캐빈 해셋 위원장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갑자기 ‘사회주의의 기회비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동안 경제자문위원회가 시장집중이나 토지이용 정책, 경기부양법안 등 긴요한 경제적 문제에 대해 학문적 탐구에 기초한 분석과 시사점을 담은 보고서를 발행해온 점에 비춰보면 뜬금없기까지 했다.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까지 나서서 이런 보고서를 낼 만큼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대중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이 보고서는 사회주의 정권에서 기아 등으로 인한 대량 사망, 조세정책의 왜곡 효과에 관한 논문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나 마오쩌둥 등의 저작 등의 짜깁기로 이뤄져 있다. 보고서는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로 부르는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무소속),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레닌, 마오쩌둥 등 역사적 사회주의 옹호자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강조점은 둘 사이의 유사성에 놓여 있다. “사회주의 정책의 역사적 옹호자들과 동시에 미국의 인물들은 비전과 의향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 양자 모두는 시장경제의 소득분배가 광범위한 국가통제를 통해 교정돼야 하는 ‘착취’(exploitation)의 부당한 결과로 특징짓는다”는 것이다. 샌더스와 워런이 “대기업들은…인간의 고통과 불안정을 착취하며(exploit) 이윤으로 전환한다”거나 “거대기업들이…단지 자신들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역사적인 사회주의 옹호자들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소득불평등 완화, 회사 자산 약탈 방지 정책들에 대한 사회주의 낙인찍기

이에 비춰보면 ‘미국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연두교서 다짐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샌더스나 워런 등이다. 여기에 ‘녹색 뉴딜’(Green New Deal)을 주창하고 있는 민주당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등과 같은 정치인을 추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 이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와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샌더스는 지난해 11월 근로자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는 이른바 ‘월마트금지법(안)’을 발의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26). 내용은 근로자 500인 이상의 기업이 근로자에 대한 투자 없이 자사주 매입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시간제 근로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가맹점 근로자를 포함해 해당 기업의 모든 근로자의 시간당임금을 15달러 이상으로 하지 않으면 자사주 매입은 금지된다. 또한, 최고경영자 보수도 해당 기업의 모든 근로자의 중위임금보다 150배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조건도 달렸다. 해당 기업 근로자에게는 유급 병가 7일도 보장돼야 한다.

워런은 지난해 3월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원천 금지하는 ‘근로보상법(안)’을 발의했다. 법 제정 이후 2년 이내에 상장기업 이사회의 3분의 1을 근로자가 선출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거래소에 증권을 등록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워런은 이런 취지를 살려 같은해 8월 ‘책임자본주의법(안)’을 발의했다. 연 매출 1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인 대기업 이사회는 주주만이 아니라 근로자와 지역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로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를 확대하고, 이사회 이사의 40%를 근로자가 선출하며, 최고경영자와 이사는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주식을 확보한 날로부터 5년 이내, 자사주 매입 이후 3년 이내에 해당 주식을 매각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코르테즈는 지구 온난화 방지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추진하자는 공약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녹색 뉴딜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을 70%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해 왔다. 소득 구간을 나누고 일정한 소득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고세율을 현행 38%에서 70%로 높이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은 아이젠하워 시절 91%, 케네디와 존슨 시절 70%, 레이건 시절 50%(1986년 이후 38%)였다.

낮은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소득불평등과 인재의 금융업계․법조계 편중의 주요 원인

이런 제안과 정책들은 트럼프가 경고하는 ‘사회주의 채택’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미국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자본주의적인 해법의 성격을 지닌다. 2014~2016년 당기순이익의 59%를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며 주가를 부양하거나, 경영진 보수와 일반 직원 보수의 격차가 312배(2017년)까지 차이가 나는 미국 자본주의는 정상이 아니다.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스탠더드앤푸어스500지수(S.&P. 500 Index)에 올라있는 동일한 기업 232개를 대상으로 자사주 매입 추이를 살펴보면, 1981~1983년 자사주 매입에는 당기순이익의 4.3%가 사용됐지만 2014~2016년에는 59%가 투입됐다. 매출기준 미국 상위 350개 기업의 최고경영진의 2017년 연평균 보수는 1890만달러(약 200억원)으로 일반 직원의 평균 보수 5만4600달러(약 6400만원)와 312배의 격차를 보였다. 스톡옵션(주식매추청구권) 행사를 기준으로 계산된 이 격차는 2000년 344배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대금융위기 이후 2009년 188배로 낮아졌다가 270~284배를 맴돌았다. 최고영영진의 연간 보수에는 급여, 스톡옵션, 상여금 등을 포함한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을 올리는 것도 비자본주의적인 게 아니다. 최고한계세율을 부담하는 초고소득층은 대개가 기업의 경영진이다. 기업 경영진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수없이 제기돼 왔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교수 피터 다이어몬드 등은 2012년 ‘누진세-기초연구에서 정책 권고로’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미국의 최적 최고한계세율은 73%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일정한 소득 수준 이상에서 부유층의 추가소득이 주는 주관적 가치는 0이라는 거였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낮으면 사회의 유능한 인재들이 금융업계나 법조계로 지나치게 흘러들어 인적자원 배분이 왜곡된다는 눈문(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경영대학원 베냐민 록우드 등, 2016년 4월 ‘과세와 재능의 할당)도 있다. 토마 피케티 등은 2014년 전미경제저널(AEI)에 실린 논문 ‘최고노동소득의 최적 과세 - 세 가지 탄력성 이야기’에서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인하가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밝혔다.

트럼프 식으로 하면 지난해 10월 트럼프 약값 인하 방안도 사회주의?

이런 식의 사회주의 비난 공세를 편다면 그 비난은 트럼프 자신에게고 향하는 게 맞다.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앞둔 지난 10월 제약업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미국의 비싼 약값을 내리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외래진료, 엑스레이, 응급앰뷸런스 서비스, 예방접종, 물리치료 등 재활서비스 등을 포괄하는 '메디케어 파트 B'에 포괄되는 의약품비에 대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17개국 평균 인덱스를 적용한 가격을 5년 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의약품 가격을 외국시장 평균을 기준으로 내리겠다는 비시장적 처방을 한 것이다. 미국에서 의사가 처방하는 상위 비싼 21개 약값은 이들 나라보다 평균 80% 높은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의 약값 인하 제안과 유사한 방안을 담은 법안을 민주당 쪽에서도 지난해 11월 발의했다는 점이다. 발의자는 상원의원 샌더스와 민주당 하원의원 로 캐난이다. ‘처방약가구제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원리가 매우 간단하다. 미국의 처방약 가격이 다른 발전국들보다 높으면 제약업자의 특허 독점은 종료되고 복제약 경쟁자들이 낮은 가격으로 해당 약의 대안을 판매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가격 과잉의(excessively priced)” 의약품을 확인할 때,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평균보다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제안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이 법안은 의약품 특허권의 종료와 복제약의 유통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뿐이다.

두 제안의 유사성에 비춰볼 때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미국의 터무니없이 비싼 약값을 인하하는 방안에 대해 트럼프와 민주당 간의 타협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약값 인하는 미국인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펴는 사회주의 공세는 이런 가능성을 현격히 줄인다. 트럼프의 사회주의 낙인찍기 공세는 그에게 따라붙는 포퓰리즘도 아니다. 그저 무책임하고 저열한 정치공세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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