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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문정인에 보내는 박수 - 방위비 분담의 정치경제학
‘교수’ 문정인에 보내는 박수 - 방위비 분담의 정치경제학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2.10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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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성격을 용병으로 전환하자는 것인가?’
무리한 요구 계속되면 트럼프에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약자는 서럽다. 아쉬운 건 약자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기 마련이다. 국내 ‘갑을’ 관계도 그런데 하물며 국제 ‘갑을’ 관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물며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까지 하다. 미국이 없으면 북한의 체제보장은 요원하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북한의 제2차 정상회담이 2월27~28일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9월 20억 달러 무기 구매 계약 등 엄청난 실리 챙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가 한국으로부터 챙긴 여러 가지 형태의 이득은 엄청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두 나라의 현안과 쟁점들 중에서 함께 패키지로 묶어 일괄 타결해야 할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것도 있었다. 트럼프는 철저하게 분리 대응했고 엄청난 실리를 챙겼다. 2017년 6월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는 방미경제사절단 참여기업 52곳에서 향후 5년 간 40조원 규모의 투자․구매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원칙 합의, 9월 서명․발효한 한‐미 자무무역협정(FTA) 개정에서 미국은 철강 분야에서 이전 수출물량의 70% 쿼터를 설정했다. 철강은 한‐미 FTA와 무관하게 이미 장기 관세유예 품목이었는데 쿼터 설정으로 옥죈 것이다. 자동차는 25% 관세를 부과당할까봐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월17일 관련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2011년 한‐미 FTA 발효 이후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반덤핑과 세이프가드 발동 등 무역구제는 되레 늘어났다. 개정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정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월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대해 세계무역기구 항소기구에서 부당하다고 패소했음에도 미국은 판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는 지난 2월8일 한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한국이 요청한 금액의 12% 수준인 연간 8481만 달러(953억원)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1년 한‐미 FTA 발효 이후 거둔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의 관세가 낮아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411). 미국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자동차는 2016년 2.5% 관세 인하에도 무역흑자 폭은 줄어들고 있었다. 무역흑자를 주도한 전기전자 품목은 이미 무관세, 저관세였다. 자연시장 증가율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26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무기를 구매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보잉으로부터 P‐3 해양정찰기 21억 달러 어치,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지대공 요격미사일 PAC‐3 미사일 64기 5억100만 달러 어치를 구매한다는 내용이다. 2014~2018년 미국 산 무기 구매액은 21조4899억원에 이른다.

주한미군 평택기지 28조원 한국 부담 깡그리 무시하는 트럼프

2014년 2월2일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서명 장면. 사진: UNC-CFC-USFK PAO
2014년 2월2일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가서명 장면.
사진: UNC-CFC-USFK PAO

그뿐이 아니다. 2007년 공사에 착공해 2020년 전체 기지가 완공되는 주한미군 평택기지는 이전비용 11조원, 기반시설비용 17조원 등 총 28조원을 모두 한국이 부담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미군기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해 12월 만료하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AM) 갱신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모범적인”(exemplar) 동맹국이자 친구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을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는 만족할 줄 몰랐다. SMA 협상에서 그는 ‘동맹 관계’를 너무 지나치게 ‘상거래 관계’로 변질시켰다. 미국의 희생 속에 동맹국이 제 잇속만 차린다고 힐난했다. 지난해 3월 이후 10여차례 협상 끝에 최근 타결을 본 SAM 갱신에 따른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2018년 8억4800만 달러(9602억원)에서 8억9천만 달러(약 1조390억원)으로, 협정 유효기간은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것으로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상률은 8.2%에 육박한다. 2010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4% 이내)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인상률이다. 미국은 지난해 첫 협상에서 7% 인상안을 제시했고, 협정 만료를 얼마 앞둔 지난해 12월 초 갑자기 트럼프의 입을 통해 50% 인상안을 들이밀면서 협상 중단을 지시했다. 그러다 같은해 12월28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통해 10억 달러-연간 협상안을 내밀었다. 정부는 1조원을 넘으면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 어렵다며 9999억원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협정 유효기간은 1991년 1차 협정 이래로 지금까지 9차 협정에 이르는 동안 초기 2∼3년이었고 최근 8∼9차 협정은 5년이었다. 이게 1년으로 줄었으니 국회 비준 동의를 받자마자 다시 갱신 협상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방위비 분담금 추이(단위: 억원, 자료: e나라지표)
방위비 분담금 추이(단위: 억원, 자료: e나라지표)

방위비 분담금이 이렇게 올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이뤄진다. 첫째, 주한미군이 고용하는 한국인 고용인 약 1만1천명의 인건비(payroll)다. 분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40%다. 둘째, 44%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각종 시설 건설(construction) 비용이다. 셋째, 군수지원 등 병참(logistics) 비용으로 비중은 16~17%이다. 어느 항목 하나 급격히 늘어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기존의 방위비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미집행 금액이 1조원이 넘는다. 이자만도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금은 면제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방위비 분담금을 8.2%나 올리면서 유효기간을 1년으로 한 것은 간단히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특히 SMA 협상 과정에서 방위비 총액 설정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기에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그동안 발언과 협상 과정에 대한 외신보도들에 비춰 보면 주한미군 방위비 총액은 20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협상 과정에서 20억 달러 거의 전부 또는 12~16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추산 방위비 20억 달러에 주한미군 봉급, 무기․장비 관련 비용 포함?

문제는 미국이 계산하는 이 20억 달러의 구성 항목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연세대 교수 자격으로 2월8일 미국의 시사종합지 ‘애틀랜틱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의 맥락은 바로 여기에 있다(https://www.theatlantic.com/politics/archive/2019/02/us-south-korea-reach-initial-military-cost-sharing-deal/582301/).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모두 부담하라는 입장을 견지하면 한미 두 나라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한국의 기여를 어떻게 계산할지에 대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 정부가 동맹의 유지비용을 부담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도록 한국을 압박할 때 주한미군의 봉급, 무기와 장비 관련 비용이 포함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한국 국민들은 그런 요구를 수용할 것 같지 않다. 주한미군은 동맹군이 아니라 용병(mercenery forces)과 같은 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SMA는 주한미군의 봉급, 무기와 장비 관련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2016년 미군 병장의 기본연봉은 3만1745달러(약 3600만원) 정도다. 주한미군 2만8500명의 1인당 연봉을 3만 달러로 보고 계산해 보면, 연간 봉급은 8억6천만 달러 정도다. 여기에 무기와 장비 관련 비용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생각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총액 20억 달러가 얼추 나온다. 트럼프 식으로 하면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의 용병’이 된다는 문제제기가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동맹 관계는 일방의 이익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주한미군 주둔은 한국만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주한미군은 인도 동쪽에서 미국 서태평안 연안을 제외한 태평양을 담당하는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OMMAND) 지상군 전력의 일부를 이룬다. 미국의 이익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희생하며 억지로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당연히 방위비 분담에도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처럼 하게 되면 상호 동맹 관계는 '갑을' 상거래 관계로 전락한다. 그 결과는 프랑스 외인부대처럼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이 고용하는 용병으로서 성격을 띠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역사학자 데이비드 케네디와 같은 이들은 2006년 ‘용병의 임금 - 시민과 군의 관계가 갖는 쟁점들’에서 “오늘날 미군은 용병의 색채가 짙다”고 일갈했다. 현재 미군처럼 시장에서 모집하는 자원군 제도는 거의 모든 미국인에게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게 주요한 이유다. 미군 자체가 용병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맥락에 보면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외인부대화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장군 출신의 필리핀 국방장관 로렌자나는 기자회견에서 1951년 체결한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해 분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으로서 유사시에 헌신할 것인지가 매우 모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필리핀이 미국에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약해진 것인지 미국 너들이 판단해라’는 배짱이 깔린 시위 성격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필리핀의 재검토 가능 발언은 상거래 관계가 아닌 동맹 관계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용병하자는 거냐?’는 문 교수의 문제제기가 정당한 이유

물론 우리나라는 필리핀과 분명히 다른 측면이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동맹의 막중한 공동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개입은 한‐미 동맹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면서 북한 핵문제까지 방치하기 어렵다는 미국 자체의 전략적 고민,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실적 기록 등이 작용했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는 동맹 관계가 핵문제 해결의 보증수표가 아님을 상징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금까지 12차례에 걸쳐 이란이 핵 합의를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동맹 관계에 있는 유럽연합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미국은 이란 핵합의를 깼다.

필리핀의 사례는 주한미군이 동맹 관계의 상징이 아닌 상거래 관계로 전락한다면 동맹의 차원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문제제기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태극기 부대’를 이루는 일부 시민들은 미국이 최종 요구한 10억 달러를 그대로 주면 되지 1300억~1400억원 아끼려고 동맹을 위태롭게 하느냐고 불평한다. 분담금의 대부분이 한국 고용인의 인건비나 국내 기업에 건설 발주 등의 형태로 국내경제에 풀리기 때문에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의 원칙은 상호 동맹 관계로 남느냐, '갑을' 상거래 관계로 전락하느냐의 근본적인 쟁점과 관련된다. 2017년 9월 북한의 제6차 핵실험이 성공하고 대륙간탄도탄(ICBM) 보유의 현실화 가능성 이 짙어진 이후 우리나라 안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제안이 쏟아졌다. 이런 제안은 해묵었지만 정당한 우려에 근거했다.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을 때 미국이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게 그것이다. 방위비 분담의 원칙도 이와 비슷한 동맹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다. 트럼프에 대해 동맹 차원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남남 인식의 격차를 좁히는 게 우리의 힘이다. 그래야 필리핀처럼 정당한 문제제기를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교수’ 문재인의 ‘용병하자는 거냐?’는 문제제기가 타당한 것도 바로 그래서다. 어찌 그런 망발을 하느냐는 순진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는 것 자체가 트럼프에 얕잡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얼음은 섭씨 0도에서 녹기 시작해야 하고, 일반 물은 100도에 끓기 시작해야 한다.

궁금해진다. 2월10일 정부 간 가서명한 이번 SMA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는 어떻게 될지 말이다. 누가 봐도 온전한 동의를 해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인다. 거부, 동의, 부분 동의, 조건부 동의 등이 떠오르는 선택지다. 조건부 동의는 미국이 재협상하지 않겠다고 하면 '독박'을 쓰는 꼴이니 선택지가 되기는 어렵다. 아마도 여당은 부당함을 실컷 토로하다 북한 핵문제 등을 감안해 동의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다. 제1야당은 미국에 대한 그동안의 태도에 비춰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 듯하고, 제2 야당도 못이기는 척 동의하거나 동의에 지장이 없는지 간을 보면서 자유투표에 임하지 않을까 싶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 개인적으론 부분 동의다. 올해 한해 분담금 증액은 수용, 협정 유효기간 1년은 반대다. 이게 그나마 동맹 차원에서 방위비 분담 원칙을 사고하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방안을 될 수 있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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