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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낙점하면 된다? 세계은행 총재 선출 이변이 나올까?
미국이 낙점하면 된다? 세계은행 총재 선출 이변이 나올까?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2.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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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 후보 맬패스 미국 재무차관에 ‘함량 미달’ 비판 폭주
유럽 선택에 달려…2005년 ‘부적합’ 폴 워포위츠 뽑았다 쫓아낸 값비싼 경험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막중한 자리에 석유기업이나 탄광회사의 최고경영진을 앉힌다면? 볼썽사나운 부조화의 극치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데이빗 맬패스 미국 재무부 대외담당차관이 바로 이런 꼴이라는 소리없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세계은행의 임무는 저소득과 중소득 발전도상국가에 대한 개발자금 지원이다. 사진: 세계은행 홈페이지
세계은행 임무는 저중소득 발전도상국가에 대한 개발자금 지원이다. 사진: 세계은행 홈페이지

자본금 2200여억 달러, 회원국 189개, 1944년 설립. 차기 세계은행 총재를 선출하는 지정학과 세계정치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임기를 3개월 남겨두고 지난 1월 갑자기 사임했다. 그만둔 정확한 이유는 김 전 총재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등과 같은 다자주의 국제기관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 제고, 이를 통한 중국 견제, 트럼프가 펼치는 일방주의에 대한 엄호와 지지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았다. 그 뒤 트럼프는 지난 2월6일 맬패스를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그동안 전임 세계은행 총재 12명은 모두 미국이 선택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과 유럽이 맺은 비공식 합의에 따라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유럽이 선택권을 행사해온 데 따른 것이다. 이번에도 이런 오랜 관행이 지속된다면 맬패스는 총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된다.

맬패스 재무차관 이후 베테랑 국제담당 직원 20여명 그만둬

총재 후보로 지명된 맬패스 개인에 대해 제기되는 불만은 리더십, 능력, 자질 등 다방면에서 수두룩하게 쏟아지고 있다. 먼저, 세계은행 이사회의 선택 기준에 비춰볼 때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25명으로 이뤄지는 이사회가 총재를 선택하는 기준의 하나는 세계은행처럼 국제사회에 노출된 큰 기관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과 경험이 증명된 바 있느냐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레이건 행정부 때 재무부 부차관보,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부차관보,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부 대외담당차관이라는 외관상의 경력이 모자라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맬패스에 대한 비판이 폭주하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비판이 폭주하는 맬패스 재무차관.
사진: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의 리더십과 소통 능력은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특히 그가 재무부 대외담당차관으로 임명된 2017년 9월 이후 대외담당업무 분야의 약 200명의 직원 중 베테랑 직원 20여명이 줄줄이 그만뒀다. 이와 관련된 2018년 7월12일 블룸버그 보도 ‘재무부, 무역전쟁의 중심에 있는 부서 직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고투하다’를 보면, 이들이 떠난 이유는 행정부 노선에 비동의도 있지만 ‘직원 무시’, ‘사안에 대한 이해 부족’ 등 맬패스 개인에 대한 분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통과 관리 측면에서 리더십의 치명적 약점이다.

맬패스가 과연 다자주의를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의문이 나오고 있다. 세계은행은 발전도상국의 ‘개발’ 문제를 주관하는 189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다자주의 국제기관이다. 그 수장이 다자주의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면 이 역시 치명적인 결격 사유다. 이사회가 총재를 선택하는 기준의 하나도 다자주의를 지지하느냐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경제자문으로서 맬패스는 다자주의의 유효성을 공공연하게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계은행을 내파시키는 임무를 띤 ‘간자’라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자주의 부정하면서 수장되겠다는 맬패스는 세계은행 내파시킬 ‘간자’?

이는 그가 세계은행의 전략적 비전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이 역시 이사회의 총재 선택기준의 하나다. 발전도상국과 함께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맬패스가 현재 밝히고 있는 일종의 공약은 ‘부채 투명성 구상’이다. 여기서 부채는 발전도상국에 빌려주는 세계은행의 개발자금을 말한다. 이 자금이 용도에 맞게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구상을 제기하려면 집행에 엄격한 절차를 거치는 이 자금이 남용됐거나 유용됐음을 보여주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떠올릴 수 있는 건 미국이 발전도상국을 ‘부채의 덫’에 걸리게 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다. 중국은 인도와 함께 세계은행 개발자금의 최대 수혜국이기는 하다. 2018년 11월 기준으로 중국은 8억5900만 달러, 인도는 3억7000만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일대일로는 중국 정부의 차관과 원조기금과 같은 재정자금, 중국 국영기업들의 투자금 등을 통해 조달된다. 규모만도 수조 달러다. 이에 견줘보면 세계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은 그야말로 ‘껌값’에 불과하다. 중국이 세계은행 개발자금을 빌리는 목적은 ‘다자주의 국제기구 참여’ 그 자체이지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의 지정학적인 외교․경제 전략의 성격이 갖는 일대일로 정책이 발전도상국에 상당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대일로와 세계은행의 개발자금은 관련성이 없는 별개의 문제다. 맬패스의 ‘부채 투명성 공약’이 중국이 빌린 개발자금에 대한 ‘정치적 심의’로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맬패스의 ‘부채 투명성 구상’이 정작 필요한 곳이 있다면,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 자본금 500억 달러 규모로 54개국이 참여해 2015년 3월 출범한 이 다자기구에는 독일과 프랑스 등도 참여했지만 미국은 가입을 거부했다.

맬패스 개인의 식견과 전문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는 2008년 대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에 6년간 수석경제학자로 있었다. 대금융위기를 낳은 주범인 미국의 주택시장 거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대금융위기 여파에 여전히 허우적대던 2011년 초 금리를 올려 ‘강한 달러’를 구현해야 한다는 식의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런 이유에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월7일 사설에서 ‘감량이 안 된다’는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대금융위기 여진 속에서 금리 인상하자는 비현실적 주장 펼쳐

맬패스가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의 폭주를 넘어 ‘미국이 낙점하면 된다’는 낡은 관행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2월14~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 참석하기에 앞서 10일과 11일 각각 일본과 한국을 찾아 아소 다로 부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일본과는 세계은행의 대중 융자를 줄이기로 합의했고, 홍 국무총리로부터는 지지 의사를 끌어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북한 핵문제 등으로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동맹국의 처지이고 보면 예견된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계은행 총재 선출 과정이 사실상 공개투표일 수밖에 없다는 사정도 반영돼 있다. 속내는 달라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지명한 후보 제치고 국제이주기구 사무총장에 선출된 안토니오 비토리노. 사진: IOM 홈페이지
지난해 6월 미국이 지명한 후보 제치고
국제이주기구 사무총장에 선출된 안토니오 비토리노.
사진: IOM 홈페이지

‘이번에는 다르다’는 분위기는 국제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6월29일 국제이주기구(IOM)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이 미는 후보였던 켄 아이작스가 2차 투표에서 떨어진 일이다. 안토니오 비토리노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 전 포르투갈 국방장관이 선출됐다. 1951년 설립 이후 단 한 차례(1961~1969년)를 빼곤 모두 미국이 사무총장을 맡던 관행이 두 번째 깨진 것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반감이 거셌던 탓이다.

2012년 막판에 버락 오바마의 확고한 지지 덕분에 겨우 세계은행 총재에 선출됐던 김용 전 전 총재는 2015년 인터뷰에서 “발전도상국들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주장이 없는 채로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총재 선거가 치러지는 모습을 다시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예측을 했다. 그만큼 미국 뜻대로 호락호락하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가 무르익는 국제사회 분위기

정부간그룹24로 알려진 발전도상국의 발언권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프랑스 출신의 국제통화기금 총재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등 다자주의 국제은행들의 거버넌스 개혁을 약속하는 대가로 위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G24의 협력을 얻었다. 중국과 인도의 투표권 상향조정 등 2010년 찔끔 이뤄진 투표권 조정은 그것의 산물이다. 하지만 발전도상 단독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세계경제에서 7개 발전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45%, 7개 거대 신흥경제들은 약 30%다. 그럼에도 발전국들은 여전히 세계은행 투표권의 약 40%, 신흥시장은 9~15%에 그친다. 여전한 비대칭이다.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15.98%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세계은행 총재는 회원국 총투표의 85%를 얻어 선출된다.

세계은행 지분과 투표권(2018년 9월 기준) 왼쪽 출자지분, 오른쪽 투표권
세계은행 주요국 지분과 투표권(2018년 9월 기준), 왼쪽 출자지분과 비중, 오른쪽 투표권 수와 비중

‘이번에는 다르다’는 게 입증되려면 유럽과 발전도상국의 동맹이 이뤄져야 한다. 오히려 중국은 변수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이 지명한 후보가 아니라면 지지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유럽국들이다. 유럽국들은 세계은행 이사회에 과잉대표 돼 있다. 독일․프랑스․영국이 독자적으로 이사를 뽑는다. 세계은행 ․이사회는 회원국 대표 25명으로 구성된다. 회원국 지분이 가장 많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이 각 1명을 선임하고, 20명은 나머지 회원국들이 선출한다. 이들 이사가 투표로 총재를 뽑는데, 회원국의 지분에 따른 가중치가 부여된다.

이에 비춰보면 세계은행 총재 선거는 사실상 공개투표다. 각 회원국들은 이사들을 통해 ‘누구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면, 이는 수치상으로 어느 나라가 누구를 지지했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속으로는 미국이 지명한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그런 척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정확한 근거와 명분을 가지고 초장부터 분명한 합종연횡을 하지 않으면 변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발전도상국과 유럽의 동맹이 가능하다면 맬패스가 1, 2차 투표를 거치면서 도태되는 게 가능하다. 자질과 능력이 있는 비미국 후보가 처음부터 80% 이상을 얻을 수 없겠지만 상당한 차이로 1, 2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다면 미국이 ‘거부권 행사’의 배짱을 부릴 여지는 극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사실상 세계은행은 기구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이를 원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상 공개투표…유럽과 발전도상국의 동맹 가능성에 달려

유럽은 부적합한 후보를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하는 데 동의하는 바람에 값비싼 비용을 치른 경험이 있다. 바로 폴 월포위츠다. 2001년부터 미국 국방부 부장관을 지내며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대표적인 ‘네오콘’인 월포위츠는 2005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됐고,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유럽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기에 동의했다. 월포위츠는 자신이 총재가 되면서 세계은행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근무할 수 없게 되자, 승진시켜 미국 국무부에 파견근무를 보낸 추문까지 일으켰다. 사임을 거부하다 유럽 등의 강력한 요구로 결국 2007년 6월 사임했다. 쫓아내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세계은행 총재 선출 과정이 사실상 공개투표인 상황에서 유럽이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일종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선의 세계은행 총재를 뽑는 게 중요하다. 국제통화기금 총재를 유럽 쪽에서 선택하는 관행을 포기하겠다’는 정도의 결단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이번에는 다르다’는 움직임은 결실을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고무적인 현상은 국제기구 책임자 선출 과정에서 ‘이번에는 우리가 할 차례’라는 식의 낡은 관행이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동유럽에서 선택할 차례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몇 차례의 공개투표 이후 유엔 총회는 능력과 자질에 기반해 서유럽 쪽에서 추천한 포르투갈 총리 출신의 안토니우 구테흐스를 선출했다.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변수는 많다. 미국의 유럽연합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 문제, 유럽연합의 노르드스트림2 가스관 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불만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그동안 행태를 보면, 사안들을 묶어서 패키지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사안별 각개 격파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걸 주면 저걸 주겠지’라는 식의 순진한 생각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맬패스와 비교가 되는 능력과 자질, 리더십과 비전을 가진 인물이 나선다면 ‘이번에는 다르다’는 일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건 분명해 보인다. 이미 추천을 위한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세계은행 이사회는 3월14일까지 189개 회원국으로부터 차기 총재 후보를 추천받는다. 이들 가운데 인터뷰 등을 통해 최종후보 3인을 선정해 발표한 뒤 4월11~14일 열리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총회 이전에 총재를 선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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