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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쌍둥이 적자’ 재등장과 미국 부채위기
깊어지는 ‘쌍둥이 적자’ 재등장과 미국 부채위기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3.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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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예산․무역 적자 비중 동시 증가
3월6일 이미 부채 상한선 초과…6월5일까지 신규 국채 발행 중단
1980년대 초반 등장한 '쌍둥이 적자' 심화 현상이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재등장하고 있다. 자료: ‘America’s Twin Deficits since 1980’, Carl Zulauf&David Orden, January 25, 2019
1980년대 초반 등장한 '쌍둥이 적자' 심화 현상이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재등장하고 있다.
자료: ‘America’s Twin Deficits since 1980’,
Carl Zulauf&David Orden, January 25, 2019

바람직한 정부적자(부채)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한 정답은 이론적으로 없다. 구체적인 경제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비록 정부적자 규모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팽창 일변도의 정책은 지나친 물가상승을 부추기기 쉽다. 역으로 정부적자 규모가 높다고 해서 경기부양이 필요한데도 마냥 긴축 일변도의 정책을 취하는 것은 곤란하다. 경제가 더 쪼그라들면 세수가 줄어 되레 정부적자를 더 키울 위험성이 있어서다.

물론 바람직한 정부적자 규모를 이론적으로 설정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미국경제리뷰(AER)에 실린 ‘부채 시대의 성장’이란 논문에서 메릴랜드대학 교수 카르멘 레인하르트와 하버드대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는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수준이 90%를 웃돌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른바 ‘90%’ 상한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90%설은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국채는 물론 민간기업의 회사채까지 매입하는 무제한의 양적완화로 정부부채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긴축 옹호론자들이 널리 인용했다.

하지만 44개국 200년의 데이터에 기반했던 이 논문의 핵심 요지는 통계 처리 오류 등으로 숱한 논쟁을 겪었다. 게다가 이 논문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케네스 로고프는 지난 1월 90%를 훨씬 웃도는 나라들에 대해서도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을 주문하는 칼럼을 가디언에 싣기도 했다. 구체적인 경제상황과 환경과는 독립적인 바람직한 정부부채 규모가 존재한다는 자신의 이론적 주장의 핵심을 철회한 셈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워낙 금리가 낮으니 경기 둔화나 침체가 다시 찾아오면 동원할 수 있는 통화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하나다. 왠만한 정부부채를 추가로 진다고 해도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적다는 사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이미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일본은 200%, 미국은 100%, 그밖에 수두룩한 발전국들이 90%를 훌쩍 웃돌고 있다는 현실이다.

트럼프 호감 사는 현대통화이론(MMT)의 맹점

다른 한편에서 정부적자(부채) 한계는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이 그것이다. 이 이론은 정부는 화폐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시민이 세금을 내려면 화폐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에 화폐 수요의 원천이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케인스주의 등 기존 경제이론과 견줘 그리 새로운 게 없다. 트럼프가 호감을 갖는 배경에는 이 이론이 내세우는 실천적 주장과 관련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없는 완전고용 달성이 쉽다’거나 ‘중앙은행은 가급적 금리를 0%를 포함한 낮은 수준에서 설정하고 유지해야 한다’거나 ‘변동환율제를 유지하면서 적자예산 지출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정부부채 규모에 신경쓰지 않고 적자재정을 통한 지출을 한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고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아니라고 해도 호기심에 눈에 반짝거릴 만한 얘기다.

현대화폐이론은 정부와 가계를 동일시하는 재정보수주의자를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정당하다. 가계의 지출은 현재 소득과 자산의 제약을 받는다. 반면 정부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을 갖고 있다. 이에 근거해 현세대만이 아닌 미래세대의 소득까지 차입능력의 기반을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발권력이 사실상 무제한이라고 가정한다는 측면에서는 현대화폐이론은 정확하지 못하다. 완전고용에 이르는 경제과정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것은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현실에서 업종 간 완전고용에 이르는 시차가 엄연히 존재한다. 휴대폰 제조업과 반도체산업은 호황인 반면, 다른 업종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당연히 호황 업종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있는 반면, 다른 업종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 이론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소득의 뒷받침이 없는 발권력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던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는 측면이다. 저금리가 자산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정을 부추겼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시절의 미국의 역사적 경험과 부작용도 그리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변동환율제 아래에서 지속적인 적자재정은 환율 불안정과 자본 유출로 이어져온 수많은 발전도상국의 경험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이 이론은 달러 기축통화에 기반한 ‘미국 예외주의’와 강한 친화성을 띤다. 빚을 많이 질수록 달러 패권이 되레 공고화하는‘지나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의 역설을 이론화시킨 것이라는 의심을 산다는 것이다. 달러가 지니는 이 특권은 1971년 12월 미국이 달러화의 금태환을 일방 정지시킨 뒤 열린 서방선진10개국(G10) 재무장관관 회의에서 당시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이라는 웃지못할 재담이 상징한다. 이는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따른 부담과 책임을 미국은 지지 않겠다는 뜻의 표현이다.

물론 현대화폐이론이 주구장창 재정적자만을 지속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완전고용에 도달하면 조세정책을 통해 경제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동성 흡수의 과정, 달리 말해 긴축의 과정은 대단히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다. 지출 축소에 저항하는 기득권이 작동하고 세금 인상에 부정적인 조세저항이 발생한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캔 음료가 나오는 식의 과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재등장한 1980년대 초반 ‘쌍둥이 적자’

이런 정도의 배경지식을 깔고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쌍둥이 적자’를 살펴보자. 쌍둥이 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상품+서비스)가 함께 증가하는 현상이다.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아래에서 등장해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고, 결국 1985년 달러가치 평가절하-엔․마르크화 평가절상이라는 ‘플라자합의’로 귀결됐다.

미국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추이

최근 미국 상무부 통계를 보면, 2018년 무역적자는 전년 대비 690억 달러(12.4%) 증가한 621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수출은 2조5천억 달러로 1490억 달러 늘어난 반면, 수입은 3조1200억 달러로 2180억 달러나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 대중국 무역적자는 437억 달러(11.6%) 늘어난 4192억 달러였다. 특히 대중국 수출은 1300억 달러에서 1203억 달러로 97억 달러(7.5%)가 줄었다. 반면 대중국 수입은 5055억 달러에서 5395억 달러로 340억 달러(6.7%) 늘었다.

대중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도입한 상계관세 부과에도 이렇게 무역적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2017년 말 발효한 ‘감세와 일자리법’에 따른 기업과 개인의 구매력 상승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제품 수요 증가 △중국과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의 보복관세 부과와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대중 수출 감소 △유럽연합의 경기 둔화와 보복관세 부과 등에 따른 수출 증가 둔화 등이 꼽힌다.

무역적자 절대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그 자체가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다. 미국 경제 규모가 비례해 커지거나 더 커지면 무역적자의 상대적 규모는 작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2018년 경상성장률(=명목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5.2%(실질 2.9%)로 미국 무역적자 증가율 12.4%의 절반을 훨씬 밑돈다. 2017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상성장률은 4.2%(실질 2.2%)인 반면 무역적자 증가율은 두 배가 훨씬 넘는 10%였다. 당연히 국내총생산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2.8%에서 3%로 늘어났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는 무역적자 증가율이 경상성장률을 밑돌았다. 경상성장률과 무역적자 증가율은 2016년 0.4%와 2.7%(실질 1.6%), 2015년 3.4%와 1.8%였다. 2014년의 경우 무역적자 증가율이 6.2%로 경상성장률 4.4%(실질 2.5%)를 웃돌기는 했지만, 2013년과 2012년 무역적자 증가율은 -14.2%, -2.2%였고 경상성장률은 3.6%(1.8%)와 4.2%(1.6%)였다. 국내총생산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줄어들어온 것이다.

무역적자 비중만 커진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중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예산적자는 8330억 달러로 전년보다 1680억 달러(25.3%), 2017년 6650억 달러로 810억 달러(13.8%)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 대비 예산적자 비중은 2016년 3.1%에서 2017년 3.4%, 2018년 4.0%로 높아졌다. 2009년 9.8%에서 2012년 6.7%, 2015년 2.4%로 꾸준히 감소해오던 추세가 역전된 것이다.

경기둔화 속 3% 안팎 성장 낙관…재정적자 가속화 위험성 높아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재정적자 급증과 비증 증가 추세가 멈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언론에 3월11일 보도된 2020년 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 지출예산안은 4조7천억 달러로 이전 회계연도 4조4천억 달러보다 6.8% 늘어났다. 국방예산은 7500억 달러로 5% 늘린 반면, 복지․대외원조․환경 등 비국방 부문 재량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미국 성장률 대비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비중 추이(성장률은 두 적자와 비교를 위한 경상성장률=명목 국내총생산 증가율)
미국 성장률 대비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비중 추이
(성장률은 두 적자와 비교를 위한 경상성장률=명목 국내총생산 증가율)

문제는 세입 예산안이 매우 낙관적인 전망 속에 짜여있다는 점이다. 2019년 성장률은 3.2%로 전제돼 있다. 2018년 2.9%보다도 되레 높게 잡혀 있다. 2020년 이후에는 3% 수준이다. 미국 의회예산처가 2019년 성장률을 2.3%, 2020~23년 1.7%, 2024~29년 1.8%로 전망하고 있는 것과 완전 딴판이다. 마치 현 정부 출범 이후 기획재정부가 성장률 전망치를 3% 안팎으로 설정하는 의지의 예산안을 내놓았던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법인세수 증가와 부동산 세수 증가에 따라 과소추계된 세입예산을 크게 웃도는 초과세수가 있었던 반면, 미국에는 초과세수가 아니라 과소세수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낙관적 세수 전망이 맞지 않으면 이는 그만큼 예산적자 규모가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2018년 회계연도 재정적자 규모는 애초 9850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1조2700억 달러가 넘는다. 무려 2900억 달러 정도가 더 늘어난 것이다. 2019년 회계연도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정적자 증가는 이미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지난 3월4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오는 6월5일까지 신규 국채 발행을 중단하는 ‘예외조치’를 보고했다. 재정적자가 22조100억 달러를 기록해 올해 3월1일 기준 법정 연방정부 부채상한선(debt ceiling)인 22조 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애초 의회예산처는 법정 부채 상한선 초과로 재무부가 연방공무원퇴직기금을 이용한 국채 차환발행 등 예외조치를 통해 9월까지는 임시로 살림살이를 꾸려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것이 석 달 이상 앞당겨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6월4일까지는 법정 부채 상한선을 23조 달러 이상으로 넉넉히 높여놓거나, 아니면 부채 상한선 적용을 유예하도록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

게다가 오는 9월까지는 2020년 회계연도 예산을 확정해야 한다. 고소득 자산가층에 대한 부유세 도입, 소득세 한계세율 인상 등을 통한 ‘녹색 뉴딜’ 추진 등 민주당이 독자적인 정책의제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갈등이 동반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런 의제를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벼르고 있다. 부채 상한선 적용이 3개월 유예돼 예산안 문제와 통합되면서 판이 커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 1월 내내 계속된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오는 10월에는 훨씬 더 대규모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연방정부 부채상한선은 의회가 정부의 과도한 차입을 막기 위해 1959년 처음 도입됐으며, 오바마 행정부 때도 완만한 상한선 확대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미국 재정적자 심화 탈출의 길=글로벌 기업 세금 탈루 방지와 부유층 과세 통한 세수 확대

미국의 나라살림 살이가 돌아가려면 일단 부채 상한선 확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래야 재무부채권 추가 발행을 통한 차입이 가능하다. 채권 매입은 미국인이나 외국인이 해야 하는데, 외국인이 하려면 달러가 추가로 해외에 공급돼야 한다. 달러가 추가로 공급되는 길은 미국이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외 제품 구매에 소비하는 것이다. 무역적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가 무역적자 축소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해외로 나간 달러가 재무부채권 매입의 형태로 미국으로 다시 원활하게 돌아올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바로 이 부분에서 ‘쌍둥이 적자’는 파열음을 낼 위험성을 높인다. ‘쌍둥이 적자’로 인해 미국 달러화의 평가절하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로화와 엔화, 위안화 등 상대국 통화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늘어나는데 이걸 이겨내며 가치를 지킬 수 있는 통화란 없다. 미국 달러라고 예외는 아니다.

탈달러화 추세가 여기에 가세한다면 미국 달러화 평가절하 압력은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유로화 표시 채권이 발행된다면 안전자산 측면에서 재무부채권보다 더 높은 선호도를 누릴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해외로 나간 달러가 미국으로 원활하게 환류하지 않을 경우 남는 방법은 연준이 2008년 대금융위기 때처럼 재무부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양적 완화를 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경기둔화나 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단순히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런 식의 양적 완화를 추구할 경우 미국 경제에 상당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재등장하고 있는 ‘쌍둥이 적자’는 향후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달러화 가치하락을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나머지 세계경제가 경쟁적 평가절하를 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는 길이다. 미국의 수입은 둔화하고 수출은 늘면서 무역적자는 완화하게 된다. 대신에 나머지 세계경제는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둔화 부작용을 상쇄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경제 비중의 축소, 중국의 부상, 제2의 국제통화로서 유로화의 존재 등 지금의 세계경제 상황은 1985년과는 다르다.

다른 하나의 길은 미국이 내부의 소득불평등 해소와 공평과세 실현을 통한 세입 기반 확충을 통해 ‘쌍둥이 적자’의 악순환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이다. 내부적인 세수기반이 뒷받침된다면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법인세율 정상화, 애플을 비롯한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 엄단, 헤지펀드․사모펀드 등 법인세를 내지 않고 주주에 대한 개인과세로 대체하는 이른바 ‘S기업’에 대한 교통정리(미국에서 이런 기업의 비중이 전체의 95%에 이른다), 고액 자산가층에 대한 부유세 도입 등은 총수요를 둔화시키지 않으면서 세수를 크게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올해 1월 5천만 달러 이상 자산가에게 2%,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에게 3%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부유세 도입 법안을 발의했다. 적용 대상은 전체 미국 가정의 0.1% 미만인데 비해, 세수는 10년 동안 7만5000가구로부터 2조7500억 달러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선택하는 길은 전자에 가깝다. 트럼프의 법인세율 35%에서 21% 인하가 상징하는 '감세와 일자리법'은 애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고소득층에 치우친 혜택만을 남긴 채 세수도 늘리지 못했고 큰 폭의 투자도 견인하지 못했다. 무역적자가 줄어들려면 1200억 달러 수준이 대중국 수출이 6천억 달러 정도까지 큰 폭으로 늘어나고 대중국 수입 증가는 미국의 경제성장률 정도 수준에서 그쳐야만 한다.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서는 미국의 소비가 줄어드는 게 빠르다. 그러려면 달러 가치가 하락해야 한다.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게 하나요, 다른 나라들이 경쟁적 평가절하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게 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독일, 일본 등을 상대로 여기에 치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1985년에는 서로 모여 얼굴을 맞대고 '플라자합의'를 끌어냈지만 지금은 양자 협상을 통해 이런 효과를 내려고 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하지만 미국인의 소비를 줄이는 평가절하는 미국 국내적으로 반감을 사기 쉽다. 이를 무마할 뭔가를 동원해야 한다. 감세 정책은 이미 한 번 써먹었으니 다시 동원하기 어렵다. 남은 건 적자재정이다. 하지만 적자재정으로 풀린 돈이 해외제품 구매로 흘러가는 건 좋지 않다. 무역적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시 이럴 경우에는 국방예산 증액이 제격이다. 문제는 이런 그림이 작동하기엔 앞서 살펴봤듯이 제약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만큼 재등장하고 있는 '쌍둥이 적자'가 공고화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런 측면에서 소득불평등 해소와 공평과세 실현을 통한 '녹색 뉴딜' 추진은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라는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그에 대한 저항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오는 9월 연방정부 부채상한선(22조원) 확대와 예산안을 둘러싼 공방은 내년 11월3일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치러질 일대 회전의 성격을 지닌다. 그렇기에 10월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그 규모와 의미는 지난 1월에 견줄 바 못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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