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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의 대우조선 인수, 유럽연합 결합심사 통과할 수 있나?
현대중의 대우조선 인수, 유럽연합 결합심사 통과할 수 있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3.25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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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알스톰 합병 거부에 비춰보면 승인 가능성 낮아

유럽 철도시장의 최대 공급업자인 지멘스와 알스톰이 글로벌 시장의 단일한 챔피언으로 합병하는 결정을 유럽연합 집행위는 2019년 2월6일 거부했다. “합병이 철도신호 시스템 시장과 초고속열차 시장의 경쟁을 해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합병 거부 결정은 집행위가 그동안 보여 온 관대한 태도와도 사뭇 다르다. 1990년 ‘유럽연합 합병 규제’를 채택한 이후 승인 거부는 30건을 밑돈다. 2018년 승인 거부는 없었고 무조건 승인 370건, 조건부 승인 23건이었다. 2017년 승인 거부는 단 2건에 그쳤다. 그런 만큼 지멘스‐알스톰 합병이 거부된 이유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세계 조선산업에서 1위 업체인 현대중공업이 2위 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본계약이 지난 3월8일 체결됐기에 더욱 그렇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해양 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월2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현대중공업으로 매각 반대 집회를 연 뒤 행진하는 모습. 사진: 대우조선해양 지회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월2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현대중공업으로 매각 반대 집회를 연 뒤 행진하는 모습. 사진: 대우조선해양 지회

유럽연합 집행위, 경쟁제한성 높고 시너지․보완성 낮다며 지멘스‐알스톰 합병 거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최종 인수하려면 유럽연합을 포함한 중국․일본 등 30여개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조정패널에 제소하는 등 일본의 강한 견제를 감안하면, 유럽연합 집행위의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지난해 7월 유럽연합‐일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했고 이 협정은 올해 2월부터 발효했다.

현대중의 대우조선 인수 이후 글로벌 조선사 예상순위. 사진: DB금융투자
현대중의 대우조선 인수 이후 글로벌 조선사 예상순위.
사진: DB금융투자

‘유럽연합 합병 규제’에 따른 기업결합 심사에서 관건은 합병이 낳는 경쟁 제한 효과를 넘어서는 충분한 효율성 이득이 있느냐다. 경쟁 제한 효과는 단기적으로 제품 가격 상승이나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 장기적으로 투자 축소나 혁신 저해, 생산물 질 하락 등으로 나타난다. 효율성 이득은 시너지와 보완성이다. 경쟁 제한 효과가 있더라도 효율성 이득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합병 승인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집행위는 “지멘스‐알스톰 합병 건에서 이런 시너지와 보완성을 보여주는 어떠한 공개된 정보도 없다. (두 회사는) 효율성이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집행위의 거부 결정은 유럽 안에서 상당한 논쟁을 낳았다.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글로벌 철도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중궈중처(CRRC)에 대응하려면 ‘유럽 챔피언 기업’을 만드는 게 필요한데 이를 외면했다는 게 반발의 핵심적 이유다. 두 나라 산업장관들은 ‘21세기에 적합한 유럽 산업정책을 위한 프랑스-독일 선언’에서 관련 시장을 평가할 때 글로벌 차원의 경쟁을 감안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쟁정책의 목표를 정하고 합병 가이드라인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연합 회원국 정부들로 이뤄진 이사회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집행위의 결정을 뒤집는 항소권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럼에도 거부 결정의 근거가 약하다는 식의 주장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유럽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상을 가져올 합병 승인을 집행위가 거부한 것은 옳다는 평가가 많다. 시너지나 보완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합병보다는 지멘스와 알스톰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판매와 생산을 조정하는 합작회사 설립 등을 통해 출혈 경쟁 없는 더 많은 해외 판매 등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대안까지 쏟아지고 있다. ‘중화중처에 맞선 유럽 챔피언 기업 창출’이라는 구호가 과장돼 있다는 분석도 많다. 국내시장 보호를 통해 성장한 중궈중처의 매출이 지멘스와 알스톰 두 회사의 합계 매출액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두 회사의 매출은 중화중처의 세 배에 이른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인수 이후 가격 인하 경쟁 약화’를 경쟁제한성으로 볼 가능성 높아

이런 내용의 지멘스‐알스톰 합병 거부에 비춰보면, 유럽연합 집행위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1위 업체와 2위 업체의 합병이기 때문에 합병에 따른 경쟁제한 효과가 가시적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상당히 많다. 2018년 말 기준 1114만5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점유율 13.9%)의 수주잔량을 보유한 현대중공업과 584만4000CGT(7.3%)인 대우조선을 합치면 총 수주잔량은 1698만9000CGT, 점유율은 21.3%로 늘어난다. 3위 업체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소의 수주잔량 525만 3000CGT(6.6%)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내세운 합병의 주요한 근거가 ‘국내 조선업체들 간의 과당경쟁 완화’이었기에 경쟁제한 효과에 대한 우려는 높은 편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관련 증권사들의 보고서에서 “(인수 이후) 가격 인하 경쟁이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로서는 과당 출경경쟁 완화에 해당하는 것이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덴마크 머스크(Maersk)를 포함해 그리스․독일 등의 선주에게는 선박 가격을 높이는 가격 인상을 낳는 경쟁제한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 집행위 경쟁총국에서는 지난 3월24일 “인수합병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며 “승인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정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에 해당하는 독일 연방카르텔도 “인수합병을 통해 침체 상황에서 회생을 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불황 탈출을 위한 인수합병은 일반 기업결합 심사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 경쟁 제한성 여부가 우선적인 기준이다”고 말했다.

지멘스‐알스톰 사례에 비춰보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경쟁제한성을 상쇄하고도 남는 시너지와 보완성이 있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멘스‐알스톰 합병의 시너지와 보완성은 유럽 기업들 안에서의 문제라는 성격을 지닌다. 유럽연합 집행위에게 한국 조선업체 간 합병에 시너지와 보완성이 있는지는 지멘스‐알스톰 합병의 경우처럼 그렇게 심각한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인수에 따라 현대중공업의 수직계열화 영역 밖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들의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일자리 상실 등의 우려가 높다는 점은 되레 시너지와 보완성에서 마이너스 요인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글로벌 결합심사 통과 설득력 높으려면 사실상 ‘빅1’이 아닌 명실상부한 ‘빅2’ 체제 돼야

국내 조선업 ‘빅3’ 체제를 ‘빅2’ 체제로 재편하는 시도는 지멘스‐알스톰 합병 시도처럼 ‘중궈중처에 맞서는 대한민국 챔피언’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 해외수주를 둘러싼 과당 출혈경쟁을 막으면서도 시너지와 보완성 창출을 통해 ‘빅2’ 간의 실효적 경쟁과 글로벌 경쟁력을 보장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덤핑 압력은 국내 조선업체 사이에서도 문제지만 오히려 그동안 중국 조선업체로부터 오는 게 더 컸다는 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빅2 체제는 그 자체가 시장에서 플레이어가 줄어드는 것에 해당하는 만큼 일정한 경쟁제한성 효과의 동반이 불가피하다. 다만 그 효과에 대한 우려는 명실상부한 빅2 체제 형성인지 아니면 사실상 빅1인지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글로벌한 시선은 후자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시너지와 보완성 측면에서 대우조선해양은 크루즈선 수주잔량에서 세계 2, 3위를 다투는 삼성중공업과 짝을 이루는 것이 명실상부한 빅2 체제 형성에 걸맞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글로벌 기업결합심사 전망에서 주관적인 희망사고(wishful thinking)를 버릴 필요가 있다. 그 전망이 밝지 않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다음달 중순부터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를 벌인다. 실사의 범위를 어느 수준까지 할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결합심사의 전망이 밝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경쟁사에 영업 기밀만 잔뜩 드러내는 결과만을 낳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다. 2016년 7월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불허했다. 그 뒤 두 회사는 너무나 안 좋게 헤어졌다. 속살을 들여다볼 대로 들여 본 뒤 합병이 무산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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