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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bling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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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배 연세대 교수
  • 승인 2019.03.31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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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교수 칼럼]
장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장애문제 해결을 위해선 재활공학에 많은 정부 예산 투입 필요

장애인콜택시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트롤러에서 “M2 Motor Error”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휠체어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원주 만종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 열차를 예약해 놓고, 열차시간이 촉박하지만 운전기사님께서 빨리 밟아주셔서 지금 가까스로 만종역에 도착했는데, 이런! 휠체어가 안 움직이는 것이다!

당혹감과 함께 순간 떠오르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일단 활동보조인 이선생에게 빨리 스위치를 수동모드로 전환하게 하고, 운전기사님과 둘이서 끙끙대면서 내가 탄 전동 휠체어를 차에서 겨우 끌어내었다. 그런데 열차가 역사에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마침 계단으로 육군병사가 한명 내려온다.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하고, 이선생과 군인 1명 둘이서, 280kg쯤 되는 나(75kg)와 휠체어(205kg)를 짐짝을 밀듯이 밀어서 역사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대합실을 거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두 명의 역무원이 1호차 탑승구에 리프트를 장치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휴 살았구나! 열차가 안 떠난 것을 감사하며, 이선생과 군인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280kg 짐짝을 리프트에 밀어 올리고 마침내 열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기획 평가발표가 있어서 열차를 놓치면 발표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은 280kg 짐짝이 된 나와 전동휠체어를 KTX 열차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휠체어 판매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긴급 수리 요청을 해 서울역으로 수리기사를 보내달라고 했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발표장으로 무거운 휠체어를 밀고 가서 발표는 무난히 잘 했다. 발표를 마치고 나오니 휠체어 수리기사가 와 있었고, 다행히 크게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간단한 부품을 교체하여 잘 고칠 수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 ‘미션임파서블’ 같은 무슨 스릴러 영화를 한편 본 것 같았다. 오늘이 딸의 생일이라서 가족끼리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사실은 발표보다도 오랜만의 가족 행사를 깨뜨릴까봐 마음이 더 초조했었다. 하지만 이제 휠체어가 가볍게 움직여 주니 내 마음도 어느덧 가벼워져서 백화점에 들러서 딸아이 생일선물로 하얀 앙고라 스웨터를 고르고 있게 되었다.

미국 의학학술원, IOM(Institute of Medicine)에서는 1997년 미국의 장애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보고서, ‘Enabing America’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신체기능에 제한이 있는 사람이 그 제한된 신체기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위하여 특별히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필요(이동보조기구, 정보와 건물의 접근성, 특별교통수단, 활동보조서비스 등)를 그 사회와 환경이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곤란의 상태’를 ‘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신체기능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어떤 작업이나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장애인(the disabled)이라고 말한다면, 장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할 수 없게 된 사람 (the disabled)을 할 수 있게 하는(enabling)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은 의학적으로 신체기능의 회복이 더 이상 불가능하여 신체기능의 제한이 고착화된 경우를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신체기능의 제한으로 할 수 없게 된 작업과 활동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휠체어와 같은 이동보조기기를 지급하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장애인용 화장실 등을 설치하고,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며,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의 특별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면, 장애인도 할 수 없었던 작업이나 활동을 할 수 있게 됨으로 장애란 어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컴퓨터, 통신, 기계공학, 전자공학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애인이 할 수 없었던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안구마우스, 컴퓨터합성음성, 보행보조로봇, 음성인식기술 등 새로운 기술들은 중증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작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로봇 등 4차산업혁명시대의 기술들은 시각장애인이 사물을 인식하고 운전을 하며,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인지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으며, 휠체어장애인이 일어서서 걷고 계단을 오르고 내려올 수 있게 하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Enabling America’보고서는 결론에서 미국의 장애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정부가 ‘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즉 재활공학에 예산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UN은 앞으로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제시하면서 표어로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Leave No One Behind)”을 제시하였다. 이 표어는 문재인정부가 지향한 ‘포용적 복지국가’와 ‘혁신적 포용국가’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나는 오늘 기술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였다. 휠체어 하나가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할 수 있게 하는 기술’, 보조공학기술은 시혜가 아닌 권리이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장애인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필요한 보조공학기술이 공적급여를 통하여 장애인에게 제대로 공급되어 ‘Enabling Korea’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안구마우스. 사진=eyecan 홈페이지
안구마우스. 사진=eyeca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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