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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마비 임박한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상소기구
전면 마비 임박한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상소기구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4.02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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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쏟아내며 구체적 대안 내놓지 않는 미국, 속셈은 무엇일까?
중국 등 비시장지위 국가 관련 분쟁 해결 별도원칙 요구할 가능성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시스템을 정말로 무력화시키자는 거야? 대안은 내놓지 않고 불만만 잔뜩 늘어 놓는 미국의 저의는 뭐야? 자신들의 무역구제가 부당하다고 자꾸 제소당하니까 ‘예외주의’ 인정해 달라고 어린애 같은 말장난 하는 거 아냐? 도대체 어떻게 바꾸자는 거야?

오는 12월10일 후임 위원 임명 안 되면 상소기구 작동 중단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 본부. 사진: 위키피디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 본부. 사진: 위키피디아

이미 부분 마비에 들어간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시스템의 완전 마비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제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사태의 핵심에는 상소기구(The Appellate Body)가 있다. 분쟁이 세계무역기구 협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는 보고서 작성의 임무를 띤 최종심(2심) 심판기구다. 이 기구가 작동하려면 적어도 3명이 필요하다. 2명의 임기는 오는 12월 10일이면 끝난다. 후임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뒤부터 국가 간 무역분쟁을 해결하는 장치는 기능 정지다. 왕관 등과 같은 ‘왕권 상징 보석(crown-of-jewels)에 비유될 만큼 세계무역기구의 핵심 장치다. 이게 무력화하면 세계무역기구가 와해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상소기구 위원은 국제통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다. 7명의 위원은 회원국 대표들로 이뤄지는 상설기구인 일반이사회가 담당하는 분쟁해결기구(DSB)에서 임명된다. 임기는 4년이고 연임 가능하다. 공석이 생길 때마다 각 회원국은 자국 위원을 배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임박한 상소기구 마비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산물이다. 출범 이후 2017년 6․8․10월, 2018년 9월 등 네 차례에 걸쳐 상소기구 위원이 공석이 될 때마다 미국이 후임자 임명을 거부했다. 미국의 위원 임명 거부가 트럼프 행정부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도 미국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2016년 5월 당시 장승화 위원(서울대 교수) 연임 거부를 비롯해 세 차례나 위원 임명을 거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상소기구 마비 사태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을 낳을 정도로 사태를 끌고가고 있는 건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해법 도출 시도는 미국에 의해 모두 거부됐다. 미국이 거부한 해법에는 지난해 10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럽연합과 캐나다가 주도하는 12개 회원국 모임에서 제출한 상소기구 개혁안이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아이슬란드, 싱가포르, 멕시코가 공동 제안국이었다. 같은해 12월 일반이사회에서 논의된 이 제안서는 상소기구 개혁지점을 5가지로 꼽았다.

미국이 거부한 유럽연합 등 12개국이 제안한 해법

첫째, 공석이 되는 상소기구 위원들에 대한 임시 규정이다. 비록 임기가 끝난다 하더라도 위원 임기 중 이미 청문이 이뤄져서 진행 중인 상소 사안의 처리는 완료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둘째, 보고서 작성의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상속처리기간 90일 상한선을 늘리자는 것이다. 셋째, 상소기구가 제소당한 당사국의 근거 법률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넷째, 보고서에는 (불필요한 부연설명을 피하고) 분쟁 해결에 필요한 경우에 한에서만 상소의 쟁점들을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상소기구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의 연례회의를 통해 법률적인 쟁점과 추세에 관한 정기적인 의사소통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들 제안은 모두 그동안 미국이 밝혀온 우려들을 상당히 해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12월 상소기구 관련 자신의 불만들을 공개적으로 설명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상소기구 개혁요구를 6가지로 요약하면서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여기에는 △90일 이내 상소기구 심판 보고서 공개 △일반이사회 동의 없는 위원 임기 연장 금지 △당사국 근거 법률을 포함한 ‘사실 쟁점에 관한 조사’(findings on issues of fact) 금지 △분쟁 해결에 불필요한 부수의견 기록 금지 △선행 사건에 대한 심판 보고서의 판례화 금지 등이다.

유럽연합 등 12개국의 제안과 미국의 불만을 견줘보면, 크게 상소기구의 절차적인 문제와 심판의 범위와 역할 관련 문제로 나뉜다. 상소기구 임원 임기나 심판 보고서 90일 이내 공개 등은 상대적으로 해결이 쉬운 문제다. 하지만 핵심은 미국이 제기하는 상소기구 심판의 범위와 역할과 관련된 쟁점에 있다. 이 문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가 주도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아이들 말장난처럼 비쳐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법률적 쟁점, 예를 들어 ‘사법 적극주의’를 들고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상소기구는 당사국 국내 법률 해석에서 손떼라는 미국의 요구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심판기구인 상소기구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사진: 위키피디아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상소기구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사진: 위키피디아

결론부터 말하면 라이트하이저가 주장하는 핵심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하면서 회원국 모두가 합의한 분쟁해결 관련 부속협정의 문언 그 자체, 거기에 담긴 정신과 취지를 넘어서는 월권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하는 논리가 바로 상소기구가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법 적극주의는 “법 해석과 판결에서 법 문언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 형성 내지 법 창조를 강조하는 태도”(위키피디어)를 말한다.

특히 본인 스스로 세계무역기구 출범 과정에서 깊숙이 개입한 당사자인 라이트하이저는 분쟁해결 관련 부속협정에는 회원국들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ies)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소기구가 분쟁해결 관련 부속협정 문언에 충실하지 않고 문언에 없는 내용을 새로 형성하거나 창조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무역기구 협정문에 대한 해석은 회원국의 권리인데 이를 침해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원국이 일종의 입법부로서 협정문의 해석과 개정의 권한을 갖는데, 사법부에 해당하는 상소기구가 사법 적극주의를 통해 협정문을 새로 쓰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관할영역 침해’(overreach)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분쟁을 낳은 특정한 조치가 근거하고 있는 당사국의 국내 법률 문구의 의미와 그 해석은 상소기구가 판단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미국이 요구하는 ‘사실 쟁점에 관한 조사’(findings on issues of fact)의 금지, 상소기구 심판의 판례화 금지는 바로 이런 뜻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분쟁해결기구 회의에 제출한 26쪽 짜리 미국의 입장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상소기구는) 분쟁해결 시스템의 ‘안정성’과 ‘예측성 확보는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없을 경우(absent cogent reasons) 이후의 사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법률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 상소기구는 분쟁해결 보고서의 성격을 변화시키고자 해 왔다. 분쟁 해결에 도움을 주는, (분쟁 당사자들에 대해 지니는) 미래의 설득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부터 회원국들이 분쟁해결 부속협정에서 일종의 관습법과 같은 판례 시스템에 마치 합의한 것처럼 판례적 가중치를 전달하는 것으로 말이다.”

‘선례구속성 원리’ 내세우며 상소기구에 대한 가공의 논란으로 시간끄는 미국, 이유는?

상소기구가 과거 분쟁에 대한 심판 결정을 판례화시킨다는 미국의 이런 주장은 그 자체가 심각한 논란거리다. 모든 분쟁해결 기구는 과거 유사한 다른 사건이 있었는지를 따진다. 비슷한 사건에 대한 과거의 결정이 있었고, 이 결정과 다른 결정을 내리려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일종의 ‘역 입증책임’(reverse onus)인 셈이다. 과거의 결정이 “설득적 가치”를 갖는다면 이를 따르는 게 보통이다. 여기에서 과거의 분쟁에 대한 심판 결정은 일종의 참고와 판단의 준거로 작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구속력을 갖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문제제기가 모두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사법 적극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럽연합과 한국 등 12개국이 내놓은 해법 중 ‘상소기구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의 연례회의를 통해 법률적인 쟁점과 추세에 관한 정기적인 의사소통을 보장’한다는 제안이 이런 사법 적극주의에 대비하는 측면을 지닌다. 분쟁을 낳은 조치의 근거가 되는 해당국의 국내 법률을 해석할 때 일정한 제한을 가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문제는 미국이 불만의 지점만 드러낼 뿐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 미국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분쟁해결 관련 부속협정을 바꾸기보다 “제기된 우려에 대한 더 깊이있는 논의”만을 촉구하고 있을 뿐이다.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례구속성의 원리’(stare decisis)까지 꺼내들며 상당히 지적으로 진지한 논쟁을 촉발하는 보고서까지 내면서 구체적 해법은 내놓지 않은 미국의 속셈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말로 판을 깰 생각이라면 이렇게 위협하겠느냐, 타협점을 찾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국가주권을 내세워 사실상 상소기구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는 데까지 엇갈리고 있다.

지난 3월1일 발표한 ‘2019년 미국 무역정책 의제와 2018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미국과 칠레는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시스템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한 가지 공동제안도 제출했다. 이 제안은 분쟁의 당사국들에게 분쟁 해결을 위한 과정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과 더 큰 유연성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현재의 분쟁해결 시스템 아래에서 당사국들에게 분쟁 해결이 권고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당사국들이 항상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공동제안에 담긴 한 내용으로 미국은 다양한 분쟁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한 특정한 영역들에서 회원국들이 분쟁 심판기구에 제공하는 지도 방안을 제안했다.”(107쪽)

“미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의 도전에 대항해 국내 무역구제 조치와 기타 조치들의 시행을 계속 방어하고 있다. 지난 10년에 걸쳐 미국의 조치는 세계무역기구에서 50차례 도전받았다. 약 절반이 미국 무역구제 조치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점점 더 외국 정부들은 특정한 경우에 미국 무역법의 적용에 도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법 자체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중국은 자국산 생산물과 관련된 반덤핑 처리에 비시장경제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에 도전했다.”(24쪽)

미국, 중국 등 비시장경제 지위 국가 관련된 분쟁의 통제권 확보하려 할 듯

이 두 부분을 결합해 보면, 미국은 자신의 무역구제 조치와 관련된 분쟁에서 중국을 겨냥해 비시장지위(NME)에 있는 국가가 관련됐을 경우 상소기구에서 벌어지는 과정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치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서 중국과 협정을 체결하는 당사국의 자동탈퇴를 정한 조항을 넣어둔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주장의 하나는 중국과 같은 비시장경제지위에 있는 국가의 경제활동을 다루기에는 세계무역기구의 규정과 관행들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이나 일본 역시 보조금과 상계관세 관련 세계무역기구 협정문이 비시장경제 지위에 있는 중국을 포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3개국이 세계무역기구 개혁을 위한 삼자포럼을 진행해온 상황에서 미국이 가공의 분쟁을 둘러싼 시간을 끌면서 시스템 붕괴 위협을 압박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이런 식의 상소기구 관련 해법을 찾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미국은 2011년 3월 중국이 제기한 반덤핑과 상계관세 소송에서 패소했다. 중국 국영기업이 은행은 세계무역기구 협정문에서 반덤핑과 상계관세 부과의 대상에 해당하는 요건인 “회원국 영토 내에 있는 정부나 공적 기구(public body)가 제공한 금융상의 기여가 있을 것”에사 ‘공적 기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상소기구의 심판에 따른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상소기구에 대한 미국의 악감정이 더 악화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국내 법률의 의미와 해석에서 상소기구는 완전히 손을 떼라’는 식의 미국의 요구를 온전히 수용했다가는, 자신에 불리한 사안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미국 예외주의에 날개를 달아줄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미국을 모방해 이런 식의 행태를 보이는 회원국들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고, 이럴 경우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 시스템은 사실상 붕괴하는 길로 들어서기 쉽다. 유럽연합이나 일본이 미국의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길들이기’이라는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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