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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 추경인가 경기대응 추경인가
재난대응 추경인가 경기대응 추경인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4.10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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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과 시기 어정쩡한 추경 편성 드라이브
시작은 미세먼지, 포항 지진‐산업위기지역 재지정‐강원 산불 등 줄줄이 추가로 달라붙어
추경보다 예비비 3조원 충실한 집행부터 시작해야

밥을 하면 삼층밥이라도 나오는 게 낫다. 죽도 밥도 아니면 곤란하다. 콩을 쑤면 메주나 메주 비슷한 게 나와야지 고추장류가 나오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청와대가 지난달 6일 때 아닌 ‘미세먼지 추경’ 편성 지시로 불 지핀 추경 논란이 흘러가는 모습이 꼭 이런 짝이다.

정부는 4월25일까지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으로 있다. 정부여당이 설정한 추경 규모는 6조원 안팎이다. 구성 내역은 이것저것 섞인 잡탕이다. 범국가기구까지 출범시킨 미세먼지 대응 차원에서 2조원, 산업·고용위기대응특별지역(산업위기지역) 재지정에 따르는 1조원, 2017년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해 발생한 데 따른 주민 지원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회복 대책 등 선제적 경기대응이라는 명목도 들어가 있다.

여당은 고성군 등 동해한 지역 산불 피해 복구에 예비비가 사용될 것에 대비해 예비비를 늘리는 것도 추경에 포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일단 확보돼 있는 예비비를 먼저 지출하고 향후 있을지 모를 태풍 등의 자연재해 등으로 일반예비비가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 추경으로 예비비를 늘려 놓자는 것이다. 올해 일반회계 예산안에는 재난대책 차원의 일반예비비가 1조2천억원 책정돼 있다.

추경보다 책정된 미세먼지 대응 예산부터 충실히 집행해야

정부와 여당은 지난 4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미세먼지 대응과 선제적 경기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정부와 여당은 지난 4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미세먼지 대응과 선제적 경기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추경이 제기되고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히 어수선하다. 미세먼지로 시작된 추경에 경기대응, 포항 지진, 산업․고용위기지역 재지정, 강원 고성군 산불 등이 추가로 달라붙는 모양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무엇보다, 미세먼지 대응 추경 편성이라는 논의의 시작 자체가 급조됐다. 미세먼지 대응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화석연료 경제의 체질변화와 녹생경제로의 이행’이라는 근본에서 다뤄야 할 성질의 문제다. 일단 급한 대로 올해 예산안 승인 과정에서 환경부가 내놓은 것보다 대기환경오염 예산이 3419억원이나 늘었다. 미세먼지 대응 예산은 1조7천억원에서 1조8천억원으로 1천억원 늘었다. 이 중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예산은 1200억원(약 1만5천대), 전기차 보조금 등 친환경차 관련 예산은 6800억원이다. 이에 비춰보면 미세먼지 대응의 무게 중심은 3조4조원을 웃도는 미세먼지 유발예산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로 옮겨가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추경 항목에 산업·고용위기대응특별지역(산업위기지역) 재지정에 1조원을 배정하는 것도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올해에도 추경을 통해 소요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식의 편의주의 행정을 꾀한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울산시 동구, 전북 군산시, 전남 목포시, 전남 영암군,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남 통영시, 경남 거제시 등 7곳이 산업위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에는 추경 1조원과 목적예비비 3천억원 등 1조3천억원이 투입됐다. 지난해 새로 지정된 것이니 추경을 통한 재원 마련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컸다.

8개월 만에 산업위기지역 벗어난다?…재지정 7곳 지원액, 본예산에 반영했어야

이들 지역은 지난 4월4일 산업위기지역으로 재지정됐다. 적용 기한이 1년 연장됐고, 산불 피해를 겪은 강원 고성군이 추가됐다. 고성군을 뺀 이들 7개 지역에 대한 재정지원은 올해 예산에 반영돼야 했다. 이번에도 추경을 통해 조달한다는 건 불과 8개월 만에 산업위기지역을 벗어나리라고 가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난센스다. 그랬다면 고성군 산불 피해 복구에 드는 비용은 추경이 아니라 일반예비비나 목적예비비를 통해 충당이 가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22일 발간한 ‘예산안 분석종합’에서 “구조조정 위기지역과 업종에 대한 재정지원은 기존에 지정된 위기지역과 업종에 대해서는 최대한 본예산에 반영하고, 목적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해 2019년에 신규로 지정되는 지역과 업종을 위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를 지적했다.

경기대응이 달라붙으면서 추경 편성 쪽으로 급물살을 탄 데는 국제통화기금의 권고가 한 몫을 차지했다. 이 기구의 연례협의단은 경제성장률을 2.6~2.7% 유지하려면 국내총생산의 0.5% 정도(약 9조원)의 추경을 편성하라고 지난 3월12일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대로 추경 규모를 가져 가기에는 정부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경기둔화나 경기부진을 공식 인정하지 않는 터에 대규모 추경 편성은 자가당착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에 남는 선택지는 추경에서 경기대응 성격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추경 규모가 6조원 안팎으로 가면 수출지원 등 ‘선제적 경기대응’ 재원은 2조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대응 추경 필요성 ‘오락가락, 갈팡질팡’

흥미로운 점은 국제통화기금이 지난 4월9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내놓은 2.6%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추경 편성 의지가 반영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간접적으로 해석하는 길이 있기는 하다. 국제통화기금은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보다 0.1%포인트 높은 6.3%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가 펼치는 경기부양 정책이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높아지면 한국경제의 수출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게 한 요인이 된다. 다른 한 요인은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높인 것처럼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의지를 평가해 성장률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6조원대 추경은 국제통화기금의 권고 수준인 9조원에는 한참을 밑돈다. 그럼에도 이 지출은 경제주체의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직접적인 경기대응 성격의 지출이 2조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경제주체의 소비로 이어진다면 6조원 전체를 경기대응 지출로 봐도 큰 무리는 아니다.

어수선하고 엉거주춤한 추경 논의는 추경 편성의 필요성과 근거는 매우 약하다는 사정을 보여준다. 산업위기지역 재지정에 따른 재정지원은 애초 올해 예산에 반영됐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고성군 산불 피해 복구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먼저 예비비 지출로 먼저 대응하는 게 맞다. 추가적인 재해나 재난으로 인해 에비비가 부족할 경우 그때 재난․재해 추경을 편성해도 늦지 않다. 이것마저 버티면서 거부하는 정당이 있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경기대응 추경의 필요성이 있는지는 정부 스스로도 갈팡질팡 하면서 솔직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

올해 예산에는 일반예비비 1조2천억원과 목적예비비 1조8천억원이 책정돼 있다. 일반예비비는 재난대책비 성격이 강하다. 목적예비비는 사회복지분야 미지급금과 예상 지급 부족액, 규제프리존 지정을 통한 지역전략산업 육성, 산업위기지역 신규 지정 등에 쓰인다. 정부와 여당이 내세우는 재난․재해 관련 대응 지출은 이들 예비비의 충실한 집행으로 푸는 게 순서다. 상당 부분은 올해 본예산에 포함됐어야 할 성질의 것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줄줄이 들러붙은 추경 편성 필요성에서 남는 건 두 가지다. 미세먼지 대응과 경기대응이다. 청와대 발 미세먼지 추경 발상은 일종의 난센스다. 그렇게 치면 시기적으로 지금 추경 필요성은 하나로 집약된다. 그만큼 경기둔화나 경기부진이 급격한가? 지난해 8월 올해 예산안 편성 때보다 경제전망이 훨씬 더 어둡게 악화했는가? 적어도 ‘그렇다’는 답변은 나와야 경기대응 추경 편성은 명분을 얻을 것이다. 정말 필요한데도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 인정에 소극적이라면, 이는 더 가혹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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