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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콘텐츠 자율규제 시대는 끝나는가
인터넷 콘텐츠 자율규제 시대는 끝나는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4.1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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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인터넷 콘텐츠 ‘정부 타율규제’ 움직임과 사전검열 그림자
영국, ‘사업자 자율규제 종언’ 선언…사전 필터링 의무 부과․위반시 벌금
미국, 중립적 전달자 지위 보장한 통신품위법 제230조 개정 시사

유해성 콘텐츠를 걸러낸다는 명분으로 사업자들에게 사실상 사전검열의 의무를 부과해 인터넷 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규제 움직임이 국제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인터넷 콘텐츠의 유해성에 대한 '사업자 자율규제'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진: 하원의장 홈페이지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인터넷 콘텐츠의 유해성에 대한 '사업자 자율규제'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진: 하원의장 홈페이지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은 4월11일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통신품위법(1996년 통신법) 제23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터넷 상의 사업자 자율규제를 남용하고 있다며 이 조항의 개정을 정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침해성 내용물의 사적 차단 및 선별 행위에 대한 보호’에 관한 조항이다.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정보 콘텐츠 제공자가 생산한 정보의 발행자나 발언자로 취급돼선 안 된다”는 이른바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 지위 보장, 이들 사업자의 유해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라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콘텐츠가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위반 등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통지를 받은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등으로 법적 책임 범위가 제한된다. 또한 사업자는 “외설스럽고, 음란하고, 선정적이고, 추잡하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이거나 기타 반대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선의로 제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취한 행동을 이유로 책임을 져선 안 된다”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규정을 적용받는다.

펠로시 의장은 “최근 영국 정부가 자율규제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는데 미국에서도 그렇게 돼야 한다”며 “제230조는 (실리콘밸리) 사업자들에 대한 선물이다. 나는 사업자들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조항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230조의 특권에 대해 좀 더 큰 의미의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폐지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 4월8일 온라인 유해 콘텐츠 규제 백서를 발표했다. 사지드 다비드 영국 내무장관은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집안을 정돈할 기회를 가졌지만 그렇게 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자율규제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망법과 매우 유사한 이 백서에 따르면, 기업들이 제공하는 쌍방형 서비스에서 벌어지는 아동 학대, 테러 행위 등과 불법 콘텐츠뿐만 아니라 “불법은 아니지만 매우 해로울 수 있는” 콘텐츠들을 차단할 법적인 주의 의무’(duty of care)가 사업들에 부과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을 물게 되며 해당 사업자의 임원들에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유해성 콘텐츠에는 리벤지 포르노, 사이버 불링(괴롭힘), 허위정보와 가짜뉴스, 자해․자살을 부추기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

새로운 타율규제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만이 아니라 파일 호스팅 사이트, 공론 포럼, 메시징 서비스, 검색 엔진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온라인 기업들에 적용된다. 해당 업계에서 재원을 대는 독립적인 규제기구가 규제를 관장하고 집행하는데, 새로운 규제기구를 둘지 오프콤과 같은 기존 규제기구가 맡게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12주의 협의기간을 거쳐 친 뒤 최종안을 수립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난 4월4일 온라인 기업이 폭력적 내용의 콘텐츠 차단에 실패할 경우 연매출의 최고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기업에 부과하거나 최고경영진을 최고 징역 3년에 처하는 규제 법안을 제정했다.

유럽의회에서도 지난 3월26일 이용자의 콘텐츠를 사전에 검열하는 효과를 낳는 조항이 담긴 저작권법이 통과됐다. 새 저작권 지침 제17조는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에서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제작하고 공유하는 GIF, 리믹스 음악, ‘밈’(meme)과 같은 광범위한 이용자창작콘텐츠(UGC)가 저작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사업자가 여과 장치를 도입하고 미리 차단하라는 내용이다. ‘업로드 필터’(upload filter)로 통하는 이 조항은 저작권 침해 여부를 법원이 아닌 민간사업자가 판단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이용자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콘텐츠를 사전에 검열하라는 효과를 낳는다. 여과 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가 저작권 침해만이 아니라 명예훼손 등을 가려내는 데까지 확장되거나, 다른 감시 기능을 하는 쪽으로 이용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풍자 등의 내용을 담은 합법적 콘텐츠를 불법으로 분류헤 표현 자유를 제약하는 상황도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명예훼손 등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일방의 주장만 있어도 블라인드 처리 등 광범위한 임시조치를 하도록 의무화시킨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2로 인한 폐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

새 저작권 지침 제17조는 독일 정부가 2017년 10월 시행한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운용개선법'을 저작권 분야에 적용한 것에 해당한다. 가짜뉴스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를 사회관계망서비스 기업 등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명백한 불법 콘텐츠”에 대해서는 불만 접수 후 24시간 이내에 삭제하거나 차단하고, “명백하게 위법한 사항이 아닐 경우” 7일의 시간 안에 처리하도록 강제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매체와 플랫폼에도 책임 부과하는데, 가입회원 200만명 이상인 SNS 기업들은 모두 해당된다. 해당 기업들은 6개월마다 가짜뉴스 내용, 삭제 비율, 처리내역 등을 담은 보고서를 독일정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자율규제의 종언’을 선언하는 각국 정부들의 규제 움직임은 인공지능(AI) 기반 알고리즘의 도입과 함께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위험 책임'(responsibility for risk) 또는 '엄격 책임'(strict liability)을 물으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 기존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를 '정보 매개자'로 취급하는 게 중심을 이뤘으나, 특정 상황에서 위험을 최소화시키고 부정적 영향을 직접 다뤄야 하는 당사자로 규정하는 ‘'위험 관리 접근방식’(risk management approach)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접근법이 도입하는 여과(필터링) 소프트웨어 등이 테러나 아동 학대 등 사회적으로 유해성이 명백한 콘텐츠에 국한하지 않고 명예훼손이나 정치풍자 등과 같은 콘텐츠 내용까지 검열하는 데까지 쉽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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