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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한국 외교의 숨고르기가 필요할 때다
[천지만리] 한국 외교의 숨고르기가 필요할 때다
  •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부 교수
  • 승인 2019.04.18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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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는 북미가 모두 수용 가능한 전략적 절충안 마련에 집중해야

지난해부터 한국과 북한 외교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기간 동안 남북정상회담은 세 차례, 북미정상회담은 두 차례, 한미정상회담은 세 차례 개최되었다. 북한과 중국의 정상회담도 네 번이나 있었다. 이들 간의 고위급회담도 부지기수로 열렸다. 하노이회담 이후 한 달여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북한은 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분주했던 이들 모두에게 ‘작전 타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서로의 이익과 신뢰를 확인하기 위해 동서분주했던 시간을 잠깐 멈추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하는 우리 선현의 말씀을 상기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최적의 해결방식인 ‘톱다운’방식의 모멘텀 상실을 우려한 나머지 대북 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고려하고 있다.

 

지금은 북한을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노이회담 후 북한은 장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예상치 못한, 수용하기에 벅찬 ‘빅딜’을 제시한 것이 그 이유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허를 찔렀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김정은은 영변지구의 모든 핵물질과 생산시설의 폐기 정도로 경제제재의 완화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빅딜’ 패키지는 모든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발사체와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의미했다. 후일담으로, 이를 미국에게 모두 양도하는 조건이었다. 미국은 이의 상응 조치로 북한의 안전보장, 북미관계 정상화와 경제발전 지원 및 경제제재 해제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공은 평양으로 넘어갔다. 3차 북미회담이든 4차 남북정상회담이든, 모든 회담의 개최 여부는 이제 평양의 결정에 달렸다. 북한의 비핵화 용단만이 이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건설적 진전을 보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선언한 ‘새로운 길’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는 ‘사회주의 나라’인 중국과 ‘우리(북한)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인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모색할 것이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의 경색국면을 지속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미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 관측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설도 나온 지 오래다. 북한은 이를 자신의 전열 재정비의 기회로 활용할 속셈이다. 이들과 북한이 어떠한 결론에 당도해도 북한에게 유리한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북한이 2017 9월의 수소폭탄실험과 11월의 화성-15호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더 이상의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은 없을 것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켰기에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의 결렬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최선희 외교부부상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약속의 번복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북한에서 이와 관련한 어떠한 조짐도 없어 북한의 입장정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에서의 시정연설에서도 핵과 미사일의 실험 재개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대신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의지와 연말까지 이를 기다릴 의향도 공표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협의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우리의 역할은 두 나라가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제 규정됐다.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스몰딜’이나 ‘스냅백’ 방안의 수용을 위해 더 구체적인 전략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남북경협과 대북제재문제는 대통령 임기 전에만 성사시키면 된다.

 

올 한해는 북미가 모두 수용 가능한 전략적 절충안 마련에 할애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심적 여유와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절충안의 마련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남북미중 정상 간의 회담이 모두 성사된 전무후무한 호기의 극대화를 위해 완성도 높은 전략방안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우선 백기투항을 의미하는 미국의 ‘빅딜’로 불안을 느끼는 북한의 안전보장장치를 미국과 마련해야 한다. 대북제재의 완화가 우선이 아니다. 불안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미국과의 절충은 한반도문제를 벗어난 영역과 이슈에서의 협력을 통해 그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방위비부담의 더 큰 수용이나 미국의 무기를 더 구매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미국이 우리의 외교적 지지와 지원이 필요한 사안을 발굴해 ‘장외’에서의 미국과의 공조와 협력이 북한 사안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활용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애용하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파키스탄, 이란, 리비아 등의 사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북한만의 비핵화 모델이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의지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이를 직접 확인했다. 문제는 이들 사례와 달리 북한의 핵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 이행 의지가 관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을 조기에 제거하고 간접적인 위협을 순차적으로 감축시킬 수 있는 접근전략의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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