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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 국제기구 상대로 한 시민 소송의 문을 열다
미국 대법원, 국제기구 상대로 한 시민 소송의 문을 열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4.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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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UN도 상업적 활동이나 불법행위 근거로 제소당할 수 있어
시민 권한 확대과 면책권 남용 방지는 긍정적, 미국 '예외주의' 날개 달아주면 부정적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2월27일 미국 대법원에서는 새로운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일반 시민들이 국제기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국제기구의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린 것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기구가 미국의 주권을 훼손하고 제한하고 있다는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기에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면서 아라비아 해에 연한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의 주민들이다. 소송을 당한 피고는 세계은행 산하기구인 국제금융공사(IFC)다. 인도계 회사인 구자라트해안전력이 구자라트에 지은 석탄화력 발전소로 인해 주변 공기와 토지, 물이 오염됐으니 대책과 보상을 요구하는 게 소송 내용이다. 국제금융공사가 피고가 된 이유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자금을 빌려주는 대부협정을 주라라트해안전력과 맺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전경. 사진: 홈페이지
미국 연방대법원 전경. 사진: 홈페이지

이 소송에서 국제금융공사는 1945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국제기구면책법’(IOIA)에 따라 소송으로부터 절대적 면책을 누린다고 주장했다. 이 법은 국제기구가 “외국 정부가 소송으로부터 누리는 것과 동일한 면책을 누린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에는 외국 정부는 사실상 절대적 면책을 누리고 있었다. 이에 근거해 국제금융공사는 절대적 면책권을 내세웠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이 법 제정 당시에 “IOIA가 제정될 때 외국 정부가 누렸던 사실상의 절대 면책을 국제기구에 부여”했다는 이유를 국제금융공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재판장인 C. J. 로버츠를 포함해 7명이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는 다수의견을 밝혔다. 국제기구에 대한 절대적 면책은 1945년 당시 상황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제시한 근거는 1952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외국정부면책법’(FSLA)에 근거한 유권해석이다. 이 법은 외국 정부 면책권에 대한 특정한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이 예외는 외국정부나 그 구성원이 저지른 불법행위, 외국정부의 상업적 활동이 포함된다. 이를 준거로 대법원은 국제기구 역시 외국정부의 면책에 대한 예외 규정이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국제금융공사의 상업적 활동이 미국과 ‘충분한 관계’가 있다면 외국정부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소송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세계은행 출자금의 16%를 차지하는 최대 출자자이니 ‘충분한 관계’가 성립함은 물론이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국제금융공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국제개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개발협회(IDA), 다자투자보장기구(MIGA)와 같은 세계은행의 다른 산하기구들은 물론, 국제연합(유엔), 세계보건기구(WHO), 미주개발은행(IADB)과 그 산하기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많은 국제기구들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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